[재반론] 불순한 건 독일식 선거제 아닌 김순덕 기자의 개념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12.03 11: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의 칼럼을 검증한 필자의 기사에 김 기자가 손수 재반론을 썼다. 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가 독일뿐이라는 김 대기자의 언급에 “전체 의석수를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에 독일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었다. 이에 김 기자는 계속해서 독일식만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강변한다.

 

동아일보 '[김순덕의 도발]불순한 연동형 비례제, 절대 반대다' 네이버 화면 캡처.
동아일보 '[김순덕의 도발]불순한 연동형 비례제, 절대 반대다' 네이버 화면 캡처.

 

다시 지적하지만 독일식 선거제도를 일컫는 명칭은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 Member Propotional: MMP)다. '연동형'으로 특별히 번역될 여지가 없다. 이것은 두 가지 동그라미로 구성되어 있다. 겹치지 않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큰 원이 있고 그 안에 작은 원이 있는 것이다.  김순덕 기자는 독일식을 '불순'하다고 표현하지만, 독일 선거에서 1차적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이치는 전면적 비례대표제다. 이것이 큰 원이다. 다만 그 일부 의석을 지역구에서 소선거구-단순다수제로 구성할 뿐이다. 이것은 작은 원이다.

 

김 기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한사코 '순수' 비례대표제와 분리하고 있다. 또 그는 독일식과 '스칸디나이비아식'을 분리하고 있다. 무슨 기준인지 불가해한 일이다. 그렇게 '순수'를 따진다면 네덜란드나 이스라엘만 그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 국가는 전국단일선거구에서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전국단일선거구가 아니다. 선거구를 쪼갰기 때문에 개표 결과 정당의 지지율과 의석률이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지역구 의석률<지지율'에 해당하는 정당은 보정의석을 배정받는다. '전국단일선거구가 아니면서 보정의석이 있는 다층선거제'라는 틀과 '비례성을 전면적으로 구현했다'라는 점에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식은 다르지 않다.

 

김 기자가 독일식을 문제 삼고 싶다면 '소선거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스칸디나비아식이나 김 기자가 말하는 '순수'한 비례대표제보다는, 김 기자 같은 이들에게는 독일식이 덜 나쁜 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 기자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출현의 배경을 잘못 짚고 있다. 그는 “2차대전 패전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라는 김종인 전 국회의원(독일 유학파이다)의 발언을 빌려 "다시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특정 정당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김순덕 주장이 맞으려면 독일은 그 전에 저비례성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일은 전전에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당시에는 상당수 비례대표제 국가처럼 지역구에서 여럿을 뽑는 다인선거구제였다. 오히려 그 속에서 나치당이 제도권으로 진출을 했었다. 전후 독일의 우파 기민련은 미국, 영국과 같은 소선거구제를 원했다. 양당제로 수렴해야 나치와 같은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좌파 사민당뿐만 아니라 소수정당이자 자유주의•시장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도 지지율-의석률 연동 원칙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 결과 타협책으로 '전체 의석은 비례대표제-지역구는 소선거구제'라는 절충안이 나온 것이다.

 

독일은 전체적으로는 비례대표제라서 다당제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지역구에서는 불비례성이 대단히 심하며 거대정당 의석률이 높다. 스웨덴 같은 다인선거구와는 달리, 소수정당에게 지역구 의석 확보가 어렵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높고 두꺼운 장벽이다. 소수정당의 존재가 민주당과 사회주의 장기집권의 2중대로 보이는 자유한국당이나 김 기자 같은 이들에게는 다인선거구-전면 비례대표제보다는 독일식 소선거구-비례대표제 혼합형이 그나마 더 나을 것이다.

 

김 기자로서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 자체를 반대한다고 해야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한국 선거개혁에 참고가 된 독일식을 겨냥하니 논리가 엉키고 엉뚱한 맥락이 나오는 것이다. 연동형', '불순'이라는 단어는 독일 선거제를 다른 여러 나라의 비례대표제와 근본이 다른 것인 양 오해하는 결과만 부추긴다. 불순한 것은 독일식 선거제가 아니다.

 

또한 본인이 우파를 자임하고 좌파독재를 우려한다면, 현실정치적으로도 독일의 선거제나 정당체제를 특별히 때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후 독일 정치를 주도한 것은 우파정당이었다. '라인강의 기적', '독일 통일', '메르켈 장기집권'을 보라. 한국 우파가 직면한 것은 독일 우파정당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스스로의 실력이지, 독일식 제도 도입에 도사린 좌파의 음모가 아니다.

 

필자는 김순덕 대기자가 "내각책임제 아닌 우리나라에서 독일처럼 협치와 연정(聯政)이 가능할지 의문"을 표한 것에 대해서도 대통령제에서도 연정은 가능하다고 반박했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제든 의회중심제에서든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낫다고 밝혔다. 물론 이 글 와중에 ‘대통령제이면서 다당제인 여러 나라들(특히 남미 지역)이 고질적 여소야대와 정당 난립에 시달리는 건 사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걸 김 기자는 "그래도 우리나라는 남미로 뚜벅뚜벅 갈 모양"이라고 받고 말았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반박이 아니다. 남미 선거제도를 양당제를 유도하는 저비례성 선거제로 바꾸면 남미 정치불안이 없게 되나? 그리고 남미 가운데서도 우루과이 같은 국가는 대통령제-다당제이면서 민주주의 선진국을 이룬 나라에 속한다. 얼마 전 대선에서 우파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좌파 알러지를 가진 사람들도 우루과이를 베네수엘라처럼 취급하진 못할 것이다.

 

남미에 관해 납득이 안 된다면 오래 양당제를 형성한 국가를 보기 바란다. 올해 1월, <뉴욕타임즈>는 영국 브렉시트 혼란과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같은 교착상태의 원인으로 양당제와 소선거구-단순다수제를 지목했다. 영국, 미국에서도 꾸준히 선거제도 개혁의 목소리가 있었고, 여기서 양당제는 '민주주의의 몰락한 구도심'일 뿐이다. 소선거구를 다인선거구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이들 나라의 정치개혁도 독일식 선거제도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한국의 자칭 우파는 그 몰락한 구도심으로 뚜벅뚜벅 가려는 모양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