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후쿠시마가 체르노빌보다 11배 큰 원전사고다?

  • 기자명 박강수 기자
  • 기사승인 2019.12.3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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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국가대표팀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합니다. 원전사고 지역에서 약 67km 떨어진 후쿠시마 아즈마 스타디움에서도 경기가 열립니다. 한국 응원단 역시 이 지역을 방문해야 합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이후 최근까지 수 많은 한국 언론의 후쿠시마 방사능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8년째 똑같은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봐서는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안전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은 후쿠시마 주요 지점 방사능을 직접 측정해 방사능 지도를 그렸습니다. 이 기사와 지도가 한국 국민과 정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팩트입니다.

[모두를 위해 '후쿠시마 방사능 지도'를 그리다] 시리즈

"그래서, 후쿠시마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안전하다는 거야?"

JTBC는 왜 일본시민단체로부터 '방사능 편파보도' 항의를 받았나

③ 사고 5km 이내 높은 수치...후쿠시마 경기장 방사선은 '보통'

후쿠시마 음식 37개 측정...전체 방사선 이상 없어

⑤ '후쿠시마 방사능' 위험지역과 안전지역을 확인하다

⑥ "문제 없다"와 "끝났다" 사이에 '후쿠시마의 진실'이 있다

⑦ "후쿠시마 방사능 피해는 암이 아니다. 공동체와 산업의 파괴다"

⑧ "도쿄올림픽 후쿠시마 경기, 원전사고 종식되었다는 식으로 이용될까 우려"

⑨ "일본 방사능 데이터 은폐는 불가능하다. 민간에서 끊임없이 조사하기 때문"

⑩ [기고] 시민들이 측정해 만든 '일본 방사능 지도' 어디까지 믿을수 있나?

⑪ [팩트체크] 일본정부가 원전사고 뒤 방사능 기준치를 낮췄다?

⑫ 방사선 안전기준치와 선량한도치는 100배 차이가 난다

⑬ [팩트체크]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11배 큰 원전사고다?

⑭ [팩트체크] 후쿠시마 사고 후 도쿄전력 임원들 해외도피?

⑮ [팩트체크] ‘먹어서 응원하자’ 참여한 일본연예인 피폭?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대미문의 사고가 난 뒤 1990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체계를 마련한다. INES는 원전사고의 규모와 심각성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평가 체계다. 0~7등급으로 구성되며 숫자가 클수록 심각한 사고다. 1~3등급은 고장으로, 4~7등급은 사고로 분류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발생 한 달여 만에 최고 등급인 7등급이 매겨졌다. 현재 INES 분류상 7등급에 해당하는 사고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둘뿐이다. 세계가 합의한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인 셈이다.

국제원자력사고등급 체계를 형상화한 피라미드. 숫자가 높을수록 사고의 심각성도 크다. IAEA 홈페이지 캡처.
국제원자력사고등급 체계를 형상화한 피라미드. 숫자가 높을수록 사고의 심각성도 크다. IAEA 홈페이지 캡처.

등급이 같기 때문에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둘 중 어느 쪽이 더 최악의 사고인가’를 두고 상충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훨씬 심각한 사고”라는 주장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 왔다. 단순한 과장이나 수사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의 11배 규모”라는 식으로 구체적 숫자를 내세운 경우도 많다. 후쿠시마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보다 심각한 사고일까. 뉴스톱에서 검증했다.

 

출처는 탈핵운동가 김익중 교수

“후쿠시마는 체르노빌 이상”을 주장하는 위 커뮤니티 게시물들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의 강연과 책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익중 교수는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경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등을 맡아온 탈핵운동가다.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해 탈원전 정책 구상에 참여했고 박근혜 정부 초기 민주당 추천 몫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1000회가 넘는 대중 강연을 해오며 탈핵 운동의 최전선을 누비고 있다.

실제로 “후쿠시마 핵 사고는 체르노빌의 11배 규모”라는 주장은 김익중 교수를 통해 처음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9월 4일 당시 진보신당 당원을 대상으로 한 초청 강연 자리에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규모를 설명하는 김익중 교수. 노동당 유튜브 캡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규모를 설명하는 김익중 교수. 노동당 유튜브 캡처.

(후쿠시마 원전의) 4호기 원자로는 비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 터진 거예요. 이 안에 들어 있는 핵연료 양은 원자로의 4배 내지 5배 해요. 그럼 체르노빌 사고하고 비교하기 쉽죠. 체르노빌은 이거(원자로) 하나 터진 거죠? 사용 후 핵연료? 없었어요. 새 거였거든요.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의 몇 배냐? 계산 한 번 같이 해 봅시다. 한 배(1호기 원자로), 두 배(2호기 원자로), 세 배(3호기 원자로), 더하기 네 배(3호기 사용 후 핵연료), 더하기 네 배(4호기 사용 후 핵연료), 3 더하기 4 더하기 4, 11. 얼추 열 배 규모에요. 후쿠시마 핵 사고는 체르노빌의 얼추 열 배 규모에요. 그런데 지금도 기사나 뉴스나 이런 걸 보면 체르노빌 사고가 크냐, 후쿠시마가 크냐, 체르노빌이 더 컸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알고 있는 기사들이 많아요. 이렇게 쉬운걸. 원자력 공학 전공한 사람들은 다 계산하고 있을 거예요. 전세계적으로 10만명이 넘을 걸요. 우리나라도 몇 천명 될 겁니다. 거기 전공한 사람들, 아무도 그 얘기 안 해요. 이 쉬운 걸. 그래서 전세계에서 제가 ‘후쿠시마가 체르노빌보다 열 배 규모다’ 라는 이 사실에 대한 지적소유권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새로 발견한 거 같아요. 아무도 이 얘기를 안 해줘, 전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거짓말 하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숨깁니다. 거짓말 덩어리에요. 핵 산업계는.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의 11배에서 10배 규모”라고 밝힌 김 교수의 추정치는 이후 조금씩 수정된다. 2013년 8월 5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처음에는 11배로 추측했지만 최근에 7배로 수정했다”고 말한다. 기사는 이 추정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이 주장은 그대로 인용되어 같은 해 9월 12일 JTBC의 시사교양프로그램 ‘썰전’ 29회에 실린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원자로가 하나였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로가 네 개였으니 방사능 유출량도 더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추론까지 전파를 탔다.

JTBC 다시보기 화면 캡처.
JTBC 다시보기 화면 캡처.

2014년 초까지 ‘체르노빌의 7배’를 한동안 고수해오던 김 교수의 주장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는다. 2014년 8월 11일 정의당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11편에 출연한 김 교수는 사고에 휘말린 원자로와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 개수 차이를 설명한 뒤 “그래서 산술적으로 합하면 5배 이상이 되는 거죠. 이 수조를 계산하지 않는다 해도 손상된 핵 연료의 양은 최소 3배가 됩니다”라고 비교적 보수적인 추정치를 제시한다. 사고 규모에 대한 추정치가 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어떤 이유로 숫자가 수정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인터뷰에는 명확한 숫자 대신 “체르노빌의 10%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잘못되었다”는 말만 나와 있다.

 

10배 vs 10분의1, 국제기구와 학계 계산은 후자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파악되는 김익중 교수의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의 3~11배 규모 사고” 주장 논거는 다음과 같다.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모두 실제로 밖으로 유출된 방사선량은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내부에 남아 있는 핵물질 양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사고 규모는 손상된 핵연료의 양으로 추정해 계산해야 한다. 체르노빌은 원자로 하나가 터진 것이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자로 3개, 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 2개가 터졌다(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에는 핵물질이 원자로보다 4배 많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최소 3배에서 최대 11배 규모가 큰 사고다. 일본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의 계산은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은 ‘거짓말 덩어리’다. 

반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체르노빌 원전사고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의 사고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고 발생 약 한달 뒤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공기 중에 유출된 방사성물질의 규모의 추정치는 37만TBq(테라베크렐, 테라는 10의 12제곱, ‘조’를 뜻한다)에서 63만TBq까지다. 이는 전체 방사성 물질의 양을 요오드131로 환산한 값이다. 원전 사고에서는 세슘137과 세슘134, 스트론튬90, 플루토늄239, 제논133 등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에 INES 기준에 따라 전체 유출량은 요오드131을 기준으로 환산하여 집계한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후쿠시마의 유출 방사선량은 체르노빌의 7~12% 수준이라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즉, 일본 정부의 10분의 1과 김 교수의 10배가 상충하는 모양새다.

국제 기구와 학계의 추정치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더 가깝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3~11배 더 거대한 사고라 주장하는 이는 김익중 교수 말처럼 그가 유일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사고 원인과 피해 현황, 대응 방안 및 대책 마련을 위해 8차례의 국제 전문가 회의를 진행하고 주제별 보고서를 발간했다. 사고 이후 방사선 유출과 방호를 다룬 6번째 보고서에서 IAEA는 “현재까지 추정치로 볼 때 후쿠시마 사고에서 공기 중으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체르노빌 사고에서 유출된 양의 약 10~20% 수준”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IAEA 보고서 'RADIATION PROTECTION AFTER THE FUKUSHIMA DAIICHI ACCIDENT: PROMOTING CONFIDENCE AND UNDERSTANDING(2014)' 캡처.
IAEA 보고서 'RADIATION PROTECTION AFTER THE FUKUSHIMA DAIICHI ACCIDENT: PROMOTING CONFIDENCE AND UNDERSTANDING(2014)' 캡처.

또한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총망라된 2015년도 IAEA 사무총장 보고서에서도 “후쿠시마 사고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체르노빌 사고의 10분의 1 수준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담겼다. 보고서는 수학 모델과 컴퓨터 코드를 활용하여 후쿠시마 사고의 방사선 유출량 추정치를 계산한 복수의 연구 논문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2013년에 발간된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 보고서 또한 “후쿠시마 사고에서 유출된 주요 방사성 물질 요오드131과 세슘137의 양은 각각 체르노빌 사고에서 공기 중으로 유출된 양보다 약 10배, 5배 낮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들 보고서에는 모두 대기 중으로 유출된 방사성 물질 대부분이 북태평양 표면에 떨어졌다고 써있다. 토양 오염보다는 해양 오염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IAEA 사무총장 보고서 'THE FUKUSHIMA DAIICHI ACCIDENT(2015)' 캡처.
IAEA 사무총장 보고서 'THE FUKUSHIMA DAIICHI ACCIDENT(2015)' 캡처.
UNSCEAR 보고서 'SOURCES, EFFECTS AND RISKS OF IONIZING RADIATION Vol.1(2013)' 캡처.
UNSCEAR 보고서 'SOURCES, EFFECTS AND RISKS OF IONIZING RADIATION Vol.1(2013)' 캡처.

체르노빌 사고에 비해 후쿠시마는 규모와 양상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끔찍한 재난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체르노빌의 10% 수준이라고 해도 유출된 방사선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30배에 육박한다. 김 교수의 설명처럼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났던 원자로는 하나이고 후쿠시마는 원자로 3개와 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가 사고에 연루되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4기 안의 핵연료가 체르노빌 핵연료의 10배에 달한다는 추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체르노빌은 원자로 하나, 후쿠시마는 원자로 네 개가 터졌으므로 후쿠시마가 더 큰 사고라는 논리는 두 사고의 디테일을 전부 건너 뛴 설명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원자로 종류와 사고 경위가 완전히 다르다. 체르노빌의 원자로는 별도의 격납용기 없이 시설 외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무리한 조작과 실험으로 가동 중이던 핵연료봉이 폭발해 시설 천장이 파괴되었고 고농도 핵물질이 그대로 대기에 노출된 채 열흘 넘게 불타올랐다. 핵연료봉 파편이 사방으로 유출되었다. 반면 후쿠시마의 원자로는 강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격납용기의 보호를 받았다. 지진이 일어나자 원자로는 즉각 가동을 멈췄으나 외부전력이 차단되고 뒤이은 쓰나미에 비상발전설비마저 침수되면서 원자로 냉각 기능은 마비되었다. 이때 가열된 원자로에서 발생한 다량의 수소가 산화하면서 폭발한 것이 후쿠시마 사고다. 원자로가 터진 것이 아니다. 자연히 유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에도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28명이 치명적인 방사선 노출로 사망한 체르노빌에 비해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직접적인 방사선 노출로 인한 사망자가 없고 피해도 비교적 적었던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체르노빌에서는 RBMK 원자로(위)를 썼고 후쿠시마에서는 비등경수로(아래)를 썼다. RBMK 원자로는 감속재로 흑연을 쓰는데 이 흑연이 폭발 사고의 방아쇠로 작용했다. 반면 비등경수로는 감속재로 물을 쓰기 때문에 화재나 노심의 직접적인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진은 왓챠플레이 유튜브 영상 '체르노빌 과학적으로 100% 이해하기 (+후쿠시마) / 왓챠X과학과사람들' 캡처.
체르노빌에서는 RBMK 원자로(위)를 썼고 후쿠시마에서는 비등경수로(아래)를 썼다. RBMK 원자로는 감속재로 흑연을 쓰는데 이 흑연이 폭발 사고의 방아쇠로 작용했다. 반면 비등경수로는 감속재로 물을 쓰기 때문에 화재나 노심의 직접적인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진은 왓챠플레이 유튜브 영상 '체르노빌 과학적으로 100% 이해하기 (+후쿠시마) / 왓챠X과학과사람들' 캡처.

 

본질을 가리는 무리한 규모 비교

원전 사고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적인 설계를 통한 최선의 추산이 있을 뿐이다. 김익중 교수의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의 3~11배” 주장이 맞다면 IAEA와 UNSCEAR, WHO를 비롯한 전세계의 전문가와 과학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집단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들이 일본 정부의 로비를 받아 진실을 은폐하거나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 관계에 따라 학자로서 양심을 저버리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고 규모에 대한 판단의 과학적 신뢰도는 압도적으로 후자가 높을 것이다.

핵발전의 위험을 지적하고 원자력산업계의 폐단을 폭로하고 탈핵 운동을 추진하는데 “후쿠시마가 체르노빌보다 심각한 사고”라는 레토릭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이는 오히려 논리의 허점을 드러내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 사이 사고 피해자들은 허무한 수사적 대결 너머로 방치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가장 큰 피해는 방사능 유출 자체가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정보의 유통이 차단되고 정부와 언론, 전문가 집단이 한번에 신뢰를 잃으면서 전 사회적인 균열과 절망이 사고 피해 당사자들과 약자들의 고통으로 전가되었다는 데 있다.

WTO는 이를 후쿠시마의 재난이 불러온 가장 중대한 공중 건강 문제로 본다. 방사능이 아니라 소개 과정과 피난 생활에 따른 사회적 고립, 가족간 단절, 낙인 효과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WTO 조사에 따르면 임시 주거지에 수용된 노인들의 당뇨, 정신질환 발병률과 함께 사망률이 급격히 치솟았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행동장애, 과다행동 등 정신적인 문제가 보고되었다고 한다. 피난민들의 외상후스트레스성장애(PTSD) 비율 역시 일본인 평균에 비해 높았다. 원자력 사고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파괴된 일상의 재건이 기약없이 미뤄지는 것이다. 사실이 흔들리면 희망은 더욱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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