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주의와 낙인찍기...'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변한게 없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10.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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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잔혹성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사건의 피의자가 우울증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졌다.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을 반대하고 피의자를 엄벌에 처해야한다는 성난 여론의 한 쪽에서는 모든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게 된다는 반대 여론도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여러 논란과 팩트를 확인했다.

 

KBS 방송화면 캡처

유명인 언급 거치며 청와대 청원 100만 명 넘어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 나쁜 마음먹으면 우울증 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심신미약의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될까요?”라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6일 만인 지난 23일 100만 명이 넘게 참여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사상 가장 높은 참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커지게 된 과정에는 몇몇 유명인들의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배우 오창석과 가수 김용준, 산이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피의자의 강력 처벌을 호소했다. 오창석은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 친구 사촌 동생이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얼굴에 칼을 30여 차례 맞았다고 합니다”며 해당 사건을 언급했다. 이어 “부디 여러분들의 서명으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피의자가 올바른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링크를 덧붙였다.

가수 김용준은 피해자가 자신의 지인 사촌 동생이라고 밝히며, “꿈 많은 젊은 친구에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다시는 그 누구도 이런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려요”라고 했고, 래퍼 산이는 “괜찮아 괜찮아 사람 쳐 죽여도 약 먹으면 심신미약”이라는 문구와 함께 ‘#강력처벌, #동의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가 커진 데에는 작가로도 유명한 응급실 담당의사의 SNS 게시글도 일조했다. 피해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을 때 담당의였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임상조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당시의 상황과 피해자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술하며 “그가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 주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 게시물은 지난 24일 현재 21만여 명이 공감을 표했고, 4만5900여명이 공유했다.

 

① 심신미약과 감형 논란 

사건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몇몇 논란도 불거졌다. 첫 번째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여부다. 이 사건에 가장 큰 관심거리이기도 하다. ‘심신미약’은 심신장애의 하나로 심신 상실보다는 정도가 가벼우나, 정신 기능이 쇠약하여 시비를 가리고 그 변별에 의해 행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형법 10조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심신장애는 정신기능에 장애가 있는 상태로서, 실정법상으로는 심신상실(형법 제10조 1항, 민법 제12조)과 심신미약(형법 제10조 2항) 또는 심신박약(민법 제9조)으로 나누어져 있다.

의학용어가 아닌 법률용어로 심신미약의 판단은 여러 정황과 증언, 의학적 감정과 소견을 통해 범죄 당시 판단력과 의사 결정능력이 없었는지를 판사가 결정한다. 위의 형법 제2항에서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가 아닌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법관은 반드시 형을 감경해야 한다.

판사들은 심신미약을 판단할 때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의 감정 의견을 기초로 판단하지만 최종 결정은 스스로 법률적 판단으로 내린다. 전문가들의 감정뿐만 아니라 범행의 계획성, 범행 이후의 과정 등도 고려대상이 된다. 보통 지적장애, 조현병, 음주나 마약 등의 약물복용 상태 정도가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아 왔다.

심신미약에 의한 대표적인 감형사례로 최근 많이 언급되는 것이 조두순 사건과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조두순은 지난 2008년 경기도 안산에서 8세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술을 마셔 심신미약의 상태였다는 조두순의 진술을 참작해 징역 12년 형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2년 후인 2020년 12월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2016년 5월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은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망상으로부터 영향 받은 피해의식” 때문에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 씨가 오랫동안 조현병에 시달려 왔고 범행 당시에도 심신 미약 상태였음을 고려했다. 1년 후 대법원은 징역 30년형의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지난 해 인천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도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에서 최장 1개월 동안 정신 감정을 받게 된다. 병원에서는 의사면담, 뇌파 검사 및 행동 검사, 다면적 인성검사, 병실생활 관찰 등이 이뤄지며 정신과 전문의 7명과 공무원 2명이 심의위원으로 참가해 최종적으로 정신감정서를 작성한다. 

 

②우울증만으로 심신미약 인정된 사례 없어

하지만 우울증 약을 복용한 사실 만으로는 심신미약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우울증과 범행과의 연관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전에 우울증이 있었느냐, 정신질환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를 당시에 판단력이 있었는지가 심신미약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최근 논문에서도 법관과 정신감정인이 심신장애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울증과 같은 단순 진단명이 아닌 범행 당시 ‘판단력 이상’ 여부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달 발간된 ‘형사정책연구’ 가을호에 <법정에 선 정신장애: 형사책임능력에 대한 의료지식과 법적 결정> 논문을 발표했다.

정신장애가 있는 피고인에 대한 형사책임능력판단에서 감정인인 의사와 법관의 직업적 관점이 판단의 차이를 낳는지, 또 어떠한 요소가 형사책임능력판단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이 논문에서, 심신장애를 주장해 정신감정이 이뤄진 222건 가운데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으로 판정된 경우는 181건(81.5%)이었으며, 실제 법원에서 심신장애가 인정된 경우는 162건(73.0%)이었다.

출처 : <법정에 선 정신장애: 형사책임능력에 대한 의료지식과 법적 결정> 논문

정신 감정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병명은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82건·36.9%)였고, 알코올사용 장애(62건·27.9%), 인격·행동장애(38건·17.1%), 지적장애(17건·7.7%), 양극 성 장애(15건·6.8%) 순서였다. 이 가운데 법원에서 심신장애로 인정된 병명은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76건·92.6%), 알코올사용 장애(48건·77.4%), 인격·행동장애(26건·68.4%), 지적장애(16건·94.1%), 양극성장애(14건·93.3%)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 위원은 논문의 결론을 통해, “두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피고인의 정신의학적 증상 가운데 판단력 저하가 책임능력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피고인의 정신장애 진단이 일종의 ‘면죄부’가 되어 쉽게 형을 감면받는 것은 아니며, 심신장애라는 법적 개념의 구성요소인 사물변별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증상이 중요하게 고려됨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혜랑 대구지법 판사와 최이문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가 2018년 초 공동발표한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2014~2016년 심신장애를 주장한 피고인이 법원에서 인정을 받은 비율은 1597건 중 305건으로 5건 중 1건이었다. 심신장애를 인정받은 사유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68.5%로 가장 높았고, 지적장애 15.7%, 알코올 의존증 7.1%였다.

결론적으로 법원의 심신미약 인정 비율은 매우 낮으며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려면 범행 당시 본인을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사유가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일명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는 조현병은 환각이나 망상 때문에 범행을 저지를 경우 심신미약을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 우울증은 심신미약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③ '정신질환자'에 예비범죄자 낙인

우을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는 것과 심신미약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다. 심신미약은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며 범행을 저지를 당시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반면 정신질환은 의학적 개념이다. 앞서 봤듯이 모든 정신질환자가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가 우울증을 앓았고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위해 이를 활용하려 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둘을 구분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람들의 공분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겪었거나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앞서 강남역 살인사건 때도 범인이 조현병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며 다른 ‘조현병’ 혹은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우려가 커졌었다.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조현병’과 ‘정신질환’을 강조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댓글 등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와 공격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지난 22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신과 의사의 칼럼과 함께 “제가 우울증 경험자인데 단 한 번도 사람 죽여야겠다 생각한 적 없어요. 저 담당했던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우울증은 뇌호르몬 이상으로 행복과 의욕을 끌어내는 호르몬을 다 써서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거라 하시던데요? 그래서 슬프고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상태 되고 그게 너무 심해지면 살아서 뭐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또 못 할텐데 이렇게 되서 자살하는 건데요? 안 그래도 어디 가서 우울증이라그러면 음침우울자살정신병으로 보는데 이제 살인가능자로 보겠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25일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행복한 아이 연구소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신과 질병으로 인해 힘든 분들이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치료를 포기하는 분들이 늘어날 수 있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고 이중 적잖은 수가 치료받지 않은 정신과적 질병이 원인이다. 정신과 질병을 가진 분들도 일반 시민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질병을 핑계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도 우려를 표명했다. 봉직의협회는 지난 21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입장문에서 “최근 몇 년간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에 자극적인 보도와 소문들로 인하여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선량한 정신질환자들이 오해와 편견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며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심신미약이란 형법상의 개념으로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가해자는 심신미약의 여부는 물론, 정신감정을 통한 정확한 진단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하여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추어 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④ '국민적 공분' 있으면 의료 기록 공개해도 되나

또 다른 논란은 피해자 응급담당의였던 남궁인 교수가 당시 상황과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을 상세히 인터넷에 공개한 것에 대한 찬반 논란이다. 남 교수는 본인이 이런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충분히 논란이 될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공익'을 이유로 환자의 의료 정보를 공개했다. 얼굴에 있는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자세히 묘사해 많은 범인 처벌 당위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의사로서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료윤리를 저버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윤현배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연히 환자의 동의는 구하지 못했을 것이며, 유가족의 동의를 구했다는 언급도 어디에도 없다. 정보공개의 공익적인 목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이는 명백한 의료윤리와 의무의 위반”이라며, “우리는 과도한 영웅심 혹은 반대로 지나친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하며, 이러한 성찰과 실천만이 우리의 업을 여전히 숭고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글도 현재 삭제된 상태다) 윤 교수의 주장은 의료인의 직업윤리 및 환자정보준수 의무 등을 담은 의사윤리강령에 기반하고 있다.

문화평론가인 정지우씨도 “공익적인 이유에서, 공적인 담론을 위해서라면 정보 공개가 허용될 여지가 있지만 “그의 글에서 그런 명확한 공론화 지점을 읽어내지 못했다”며 “그는 어떤 감정적인 문제를 위해 지나치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켰다”고 직업윤리 문제 등을 지적했다.

 

⑤'조선족' '게임중독' '전라도'...언론의 선정적 보도 반복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형태도 문제다. 피의자가 공개되기 전까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범인이 ‘조선족’출신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피의자의 신원이 공개된 후에는 혐오와 극우성향으로 잘 알려진 ‘일간베스트’에 피의자가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오고 거기에 호응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뉴스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어 보이고 근거가 없거나 황당하기까지 한 루머가 '틀렸다'며 일부 언론에 소개됐다. (조선족 기사특정지역 기사) PC방 전 아르바이트생의 발언을 근거로 ‘게임중독’ 성향을 보였다는 단독 기사도 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는 지난 22일부터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피의자가 우울증을 앓은 것은 사실로 알려졌지만 우울증 진단 자체가 심신미약 판정의 근거가 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함께 폭주하는 여론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이들이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삭제한 것처럼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정치적-사회적인 이유로 나타난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하락과 함께, '잔혹한 범죄'와 '선정적인 보도'는 여론의 과잉된 감정을 채근하는 듯하다. 그리고 분노조절장애의 그것처럼 흘러넘치는 분노의 감정들은 '낙인찍기'라는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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