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에 '코로나19 연구'를 요구해서는 안되는 이유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20.03.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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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최형섭의 묘비문 중에서

 

기초과학을 위한 급진적 패러다임 전환

유사과학과의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은, 한국사회에 과학적 삶의 양식이 흘러 넘쳐, 유사과학의 활동영역이 축소되고 국한되어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설명했듯이, 유사과학은 결코 소멸시킬 수 없다. 그건 인류가 보유한 과학기술로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그런 의미에서 과학을 종교와의 전쟁에서 도구로 사용하는 리처드 도킨스도, 과학과 종교의 교권역이 겹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굴드도 모두 틀렸다). 과학의 진보는 언젠가 종교의 권력을 확연하게 위축시킬 것이다. 그런 일은 이미 진행중이다.

따라서 유사과학이 공공의 영역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때, 이에 대응할 공권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 사회가 과학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과학을 고급교양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기초과학이 사회에 정착했느냐의 여부와, 어떻게 사회에 인식되느냐의 문제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모두들 기초과학이 중요하다며 신문지면을 달군다. 지난 10년간 국내 석학들은 물론 노벨상 수상자들까지 동원해 기초과학을 조건 없이 지원하라고 말해왔지만, 기초과학은 여전히 불모지다⁠(2019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 기초과학 예산이 없다는 투정은, 언제나 대학의 교수들로부터 나온다. 과학기술정책에서 대학 교수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했을때, 그들이 한결같이 주장해온 기초과학예산의 증가요구를 관료들이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은 GDP 대비 연구개발 예산이 세계 1위인 상태이며, 기초과학에 투자되는 예산도 명목적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즉, 국가의 지원이 없어서 기초과학의 불모지가 되고 있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정부의 관료들은 발언권이 센 명문대 교수들의 말을 듣고 정책을 결정하기 십상이다. 그런 명문대 교수들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설파해왔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물론 한국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언제나 기초과학을 응용가능성에 맞춰 평가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연구개발예산이 증가하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도 상대적으로 증가해왔다. 문제는 한국의 정치과학자들과 관료들이 기초과학을 지원해온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나이브한 정치과학자들과 영혼 없는 관료들, 그리고 현장경험 없는 과학기술정책 입안자들이 만들어낸 기초과학의 괴물이 바로 IBS, 즉 기초과학연구원이다.

나는 기초과학연구원의 급진적인 재편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써왔고, 역사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과학비즈니스벨트가 누더기가 되어버린 기초과학연구원의 부실한 토대와 더불어, 철학적으로는 노벨상 수상을 위해 이미 성공한 부자 과학자들에게 다 쓸 수도 없는 지원을 통해 대박을 노리는 그 도박성과 유치함을 지적해왔다.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의 기초과학정책은 기초과학연구원을 통해 0.1%도 안되는 잘 나가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몰아주는 적자생존의 구시대적 지원시스템으로 추락해버렸고, 이런 상황에서 과학은 한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존재해야할 가치를 잃고, 마치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처럼 노벨상을 향해 달려가는 프로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노벨상을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 종목이 아니다. 과학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지식이자 삶의 양식이며, 상식을 지원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 과학이 사회에 존재해야만, 유사과학이 시민의 영역에서 해로운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된다.

현재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은, 기초과학을 위한 보루도, 사회를 위한 기초과학 증진의 플랫폼도 아닌 지난 반세기 한국 관료주의와 정치과학자들의 왜곡된 관념이 표출된 기형적인 형태의 값비싼 보여주기식 연구소일 뿐이다. 만약 정말 기초과학이 한국사회에서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그래서 기초과학자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조성진이나 김연아 같아지길 원한다면, 더더욱 현재의 IBS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한다. 나는 그 변화의 핵심에 소그룹, 다양성, 학풍, 그리고 평범한 과학자들에 대한 처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IBS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최형섭의 관료주의를 넘어

2016년, 탄핵 당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KIST는 건립 비용 3억원을 들여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 박정희 동상을 세우기 위해, KIST는 장영실 동상을 잘 안보이는 곳으로 옮겼고, 기부금을 편법으로 이용했다. 이 동상이 세워진 시기는, 박근혜가 연구원을 방문하기 직전이었다. 한국 과학기술계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KIST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KIST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정희 시대, 과학기술정책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유학파 중심의 테크노라트, 즉 기술관료들이었다. 그 중심엔 파이클럽을 주도했던 ‘과학관료’ 최형섭과, 산업기술분야에서 ‘공업조직자’로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던 오원철이 있다. 이중 최형섭은 현재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대부분을 제도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죽을 때까지 한국 과학기술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KIST의 박정희 동상은 철거해야 한다).

최형섭은 와세다 대학에서 채광야금학을 공부하고, 졸업후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화학야금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후 그는 유학파 과학기술인의 친목모임이었던 파이클럽을 만들었고, 당시 최고 엘리트들의 모임이었던 파이클럽의 최연장자였던 그는, 곧 원자력연구소 원장으로 부임한다. 원자력 연구소장을 그만두고 잠시 캐나다 알버타 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그는, 캐나다의 NRC(National Research Council) 모델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글이 박정희의 눈에 들어가게 된다⁠. 

최형섭이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최형섭, “N.R.C.를 중심으로 하는 Canada의 과학기술의 진흥”, <화학과 공업의 진보> 4권 3호 (1964), 286-292쪽.”

문만용, & 강미화. (2013). 박정희 시대 과학기술 ‘제도 구축자’. 한국과학사학회지, 35(1), 225-244.”에서 재인용. 

이 논문에서 최형섭이 주장한 것은 설립과 운영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되, 운영은 자율적인 형태인 NRC 모델이 한국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박정희와 독대한 자리에서, 최형섭은 기업과 학계를 연결하는 연구기관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마침 박정희의 미국 방문시기와 겹친 이 자리의 인연으로, 최형섭은 KIST의 초대소장이 된다. 최형섭은 대단한 정치력으로 당시 한국과학기술계에 필요했던 정책들을 밀어붙혔고, 다양한 인맥과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통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기술과 관련된 제도를 구축했다. 별다른 영향력이 없던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게 새마을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해 과학기술회관 건립비용을 마련해 준 것도 최형섭이었고, 장관을 마칠 무렵에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부족함을 깨닫고 과학재단을 만든 것도 최형섭이다. 대덕에 연구단지를 만든 것도, 정부출연연구소의 형태를 디자인 한 것도 최형섭이다.

최형섭은 스스로를 ‘과학관료’라고 불렀다. 그가 생각하는 과학관료는 과학계와 정부를 잇는 다리역할을 수행하는, 연구자 출신의 관료를 뜻했다.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그는 3대 과학기술 정책 목표로 “과학기술기반의 조성 및 강화, 산업기술의 전략적 개발, 과학기 술의 풍토조성”을 정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과학기술처 기존 구성원 중 지나치게 많은 인문사회학 전공자들을 과학기술전공자들로 교체한다. 그는 연구자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고, 장관 재임 3년 이내에 모든 국장을 기술직으로 교체했다⁠.

최형섭의 불도저 같은 리더십은, 개발도상국 시대의 한국에 당장 필요한 덕목이었을지 모른다. 박정희의 정치적 속내는 기술개발을 통한 경제발전이었지만, 그나마 최형섭의 존재가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형섭이 직조하고 완성시킨 한국형 과학기술정책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다. 그가 만든 제도들은 모두 개발도상국 시대의 한국사회에 들어맞는 낡은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향식 정책, 관료주의, 수직적 위계, 선택과 집중, 인내와 노력 등의 산업화 시대의 모든 도덕적 관념이, 최형섭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는 책에 녹아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21세기 한국사회가 추구해야할 과학기술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최형섭은 개발도상국 시대의 한국에 맞는 과학기술정책을 만들어 한국 과학기술의 틀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창안해낸 한국형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추격형 연구개발에 머물고 있는 한국 과학기술이 마주한 한계의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뿌려놓은 과학기술관료의 씨앗은, 이제 거대한 관료주의가 되어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현장 연구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독이 되어가는 중이다. 최형섭의 패러다임이 기초과학정책을 이끈 결과가 바로 IBS라는 연구기관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시대의 과학기술정책으로는 기초과학 연구소를 이끌 수 없다.

KIST에서 만든 최형섭 박사 카드뉴스.
KIST에서 만든 최형섭 박사 카드뉴스.

 

기초과학 연구소의 조건 - 학파, 소그룹, 다양성, 수평적인 문화

한국사회는 기초과학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이,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은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이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기초과학의 터전이 되어야 했지만, 박정희 시대 패러다임에 멈춰버린 한국에서 기초연구는 응용 및 개발을 위한 전초단계로 인식되었고, 목적기초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진행된 일련의 기초과학 지원사업들은, 대학 연구자들의 연구방향을 기초과학도 응용과학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대로 몰아붙혔다. IBS는 바로 그런 기초과학의 부재를 우려하던 일군의 과학자들이 시도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기초과학을 위한 조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하지만 잘 작동하는 제도를 만드는 방법은 있다. 그건 바로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초과학이 크게 융성했던 시간과 장소에는 ‘학파’라 불리는 일군의 과학자그룹이 있었다. 학파는 영어로는 스쿨 (school of thoughts)로 번역되는 단어로, 영향력 있는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뜻하며, 학파의 영향력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 아는 학파의 하나로 피타고라스 학파가 있는데, 다양한 분과학문의 뿌리가 되는 기초적 분야들에서는 이런 학파가 새로운 학문을 발전시키고, 학문의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과학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초과학이 등장하고 번성할 때마다 카리스마 있는 과학자의 이름이나 그들이 활동하던 장소의 이름을 딴 학파가 자주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닐스 보어가 이끈 코펜하겐 학파가 있다. 코펜하겐 학파는 양자역학의 중심이었고, 20세기 초 물리학을 이끈 젊은 과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기화학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켜 현재 생화학의 원형을 만든 독일의 리비히도 그의 실험실을 통해 화학자들을 수없이 많이 길러냈고, 하나의 학파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에는 라플라스 학파가 있었고, 영국 빅토리아 시기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생리학 학파가, 현대 영국에는 에딘버러를 중심으로 하는 실험물리학 학파가,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모건을 중심으로 하는 초파리 유전학이 학파로 발전했다⁠(학파에 대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고할 것. ”박범순. (2013). 기획: 인스티튜션 빌더-역사 속의 인스티튜션 빌더. 한국과학사학회지, 35(1), 105-129).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학파의 모습. https://www.reddit.com/r/Physics/comments/846o6r/niels_bohr_copenhagen_institute_in_1929_can_you/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학파의 모습. https://www.reddit.com/r/Physics/comments/846o6r/niels_bohr_copenhagen_institute_in_1929_can_you/

 

학파가 형성되고 혁명적인 기초과학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야말로, 기초과학을 발전시키겠다는 제도의 구축자들이 반드시 인지해야 하는 사실이다. 학파는 암묵지의 형태로 지식을 전수하며, 따라서 처음에는 공간적 제약을 지닌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파는 처음에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발전하게 된다. 물론 보편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학의 특성상, 그렇게 학파를 통해 혁명이 된 기초과학의 발견은, 곧 전세계 과학자들에게 퍼져나가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 이후 50년이 지난 한국 과학계엔 학파라 불릴만한 기초과학의 선도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의 기초과학 정책이 학파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단 한번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IBS에서 훗날 세계 기초과학의 판도를 바꿀 학파가 탄생하기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IBS를 운영하는 철학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 변화는 공간, 사람, 그리고 제도의 세 분야에서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기초과학의 혁명적인 발견은 -몇몇 분야를 제외한다면- IBS와 같은 방식의 대형사업단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기초과학의 혁명이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하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일은 가능하다. 기초과학의 혁명적인 발견이 한국에서 일어나길 바란다면, 현재 단장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거대한 연구단을, 소그룹 중심의 다양한 연구단으로 재편해야 한다. 중이온가속기 사업처럼 대규모 연구단이 필요한 연구단은 어쩔 수 없지만, 가속기처럼 거대한 기기와 장비를 요구하지 않는 생물학과 화학 등의 기초과학 연구단은 소그룹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 모습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하워드 휴즈 연구재단의 자넬리아 연구소 HHMI Janelia Research Institute 를 참고하면 된다⁠(내 책 <플라이룸>의 1장에는 자넬리아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들이 기초하고 있는 철학이 자세히 실려 있다).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기초과학 연구로 명성을 얻은 자넬리아 연구소의 모습. https://elifesciences.org/articles/44826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기초과학 연구로 명성을 얻은 자넬리아 연구소의 모습. https://elifesciences.org/articles/44826

 

둘째, 이렇게 소그룹으로 구성된 연구단의 연구주제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연구주제의 다양성만이 기초과학의 혁명적 발견을 이끌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행하는 연구분야에만 집중을 하고, 무시되는 분야는 지원하지 않는건, 기초과학연구원이 피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IBS 연구단의 대부분은 이미 외국에서 유행하는 연구주제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IBS의 소그룹 연구단에는 꿀벌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도 있어야 하고, 개구리를 연구하는 양서류학자도, 까치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도, 고라니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도 필요하다. 기초과학을 지원한다는 IBS에서 이런 학자들을 볼 수 없는 이유는, 현재 IBS가 단장을 선발하는 기준이 지금까지 낸 논문에만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래에 기초과학의 혁명을 이끌 과학자는, 이미 50~60대에 이른 잘 나가는 과학자 중에는 없다. IBS는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새로운 선발방식에 소그룹을 접목해서, 최대한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소그룹들은 자넬리아처럼 모두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연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은하도시의 못이룬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셋째, 마지막으로 기초과학의 가장 중요한 기지가 될 IBS에는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박정희와 최형섭이 만든 수직적인 관료주의 문화 속에서, 기초과학은 결코 꽃필 수 없다. 언젠가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를 성공시킨 막스 페루츠는, 관료주의가 연구소 운영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과학계의 가장 큰 특징이 관료주의다. 이런 관료주의는 권위주의를 만든다. 대학원생과 연구원이 교수의 갑질을 두려워하는 곳에선, 기초과학의 상상력이 싹틀 수 없다. 그런데 IBS는 단장 한 명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고 이런 권위주의를 더 강화해버렸다. 단장에서 일반연구원으로 내려오는 그 거대한 위계 속에서, 기초과학의 혁명적 상상력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IBS는 유치한 캠페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이 권위주의를 수평적 문화로 바꾸어내야만 한다. 소그룹을 통한 다양성의 확보는 권위주의의 약화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의 미션은 저런 거창한 것이 될 필요도 없다. 경제발전을 인류행복과 사회발전으로 바꾼다고 해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11/selectBoardArticle.do?nttId=15800&pageIndex=1&searchCnd=&searchWrd=
기초과학연구원의 미션은 저런 거창한 것이 될 필요도 없다. 경제발전을 인류행복과 사회발전으로 바꾼다고 해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11/selectBoardArticle.do?nttId=15800&pageIndex=1&searchCnd=&searchWrd=

 

보통과학자를 위한 기초과학

보통과학자는, 현대사회를 과학자라는 직업과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과학자를 말한다17. 과학자의 숫자가 다른 직업에 비해 드물었던 19세기까지도, 보통과학자라는 범주의 과학자는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과학이 탄생한 유럽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귀족 혹은 상류층이었으며, 지금처럼 조직적인 국가적 지원을 받아 연구하지도 않았다. 그 소수의 과학자들이 탄생시킨 근대과학은, 진화론,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전기의 발견, 백신 등의 혁명적인 결과를 만들며 인류의 토대를 변화시켰고, 20세기가 되자 각 국은 과학자를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과학은 현대사회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으로 성장했지만, 사회 속에서 과학자의 지위는 과학이 사회에 기여한 것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과학의 토대는 크게 변화했다. 대학이 상업화되면서 대학과 연구실의 숫자는 증가했지만, 그렇게 증가한 과학자의 숫자만큼 과학자를 위한 직업의 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과학계의 인력구조는 점점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변해갔고, 과학계도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의 현재처럼 양극화를 겪게된다. 국가가 과학의 최대 지원조직이 되면서, 기초과학은 점점 응용을 위한 전단계의 성격으로 변해갔고, 다윈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하는 기초과학자들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연구비의 규모에 제약이 오면서 과학계의 경쟁은 가속화되었고, 과학자들은 이기적으로 변해갔고, 예전에는 박사학위 없이도 교수가 되던 과학자들은, 박사를 마치고도 비정규직 박사후연구원으로 오랜기간 일을 해야 겨우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연구는 사명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직업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대부분의 사회에서 과학자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선호하는 직업이 아닌 상황이 되었고, 자연에 대한 순수한 탐구를 꿈꾸는 순진한 과학자가 발붙일 과학계는 사라졌다. 그나마 기초과학이 가끔 보여주는 혁명적인 발견 덕분에, 그리고 어쩌면 과학계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노벨상 덕분에, 선진국이 된 국가들은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에 어느정도 동의하고, 선진화된 국민을 지닌 사회에선 기초과학의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난 산업화 시대에는 무시되었던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IBS라는 기관을 통해 재탄생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이제 현대사회는 다윈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한 두명의 천재를 통해 기초과학을 지원할 수 없다. 이미 과학자의 대부분은 보통과학자들이고, 그들 중에서 혹은 그들 서로의 협력을 통해서만 과학을 수행할 수 있는 연구환경으로 변화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할 만큼 성장한 과학계의 인프라를 유지하려면, 뛰어난 한 두명의 천재 과학자가 아니라 보통 과학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섬세한 고려 없이 만들어지는 과학정책은, 결국 보통과학자 대부분이 과학계를 떠나게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무너진 과학계의 기저는 결코 다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IBS는 잘못 세워진 탑이다. 한국에서 기초과학을 부흥시키는 이유가 노벨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 정말 유치한 관료주의의 산물이다. 노벨상은 기초과학의 기반이, 즉 보통과학자들의 삶의 기반이 단단한 사회에서만 등장할 수 있는 작은 선물에 불과하다. 그 기반을 만들지 않고, 한 두명의 과학자에게 100억의 연구비를 준다고 해서, 노벨상이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노벨상이 나온다해도, 그런 정책으로 기초과학을 지원했던 사회는 계속해서 노벨상을 위한 연구만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노벨상을 탈만한 연구자를 IBS에 데려온다 해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연구자가 몇 년 후 노벨상을 탄다고 해도, 그건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노벨상이 아니다.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만들어낸 노벨상을 원한다면, IBS를 보통과학자를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변혁해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이미 실험을 마치고 제도적 정비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 시작은 이명박 정부였고 은하도시는 누더기가 되었지만, 정파가 다른 정부에 의해 시작된 연구소라고 해서 정치적 결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곳엔 한국사회에서 어렵게 생존해온 기초과학자들의 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초과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정립하길 바란다. 그곳에서 보통과학자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사람이 사는 세상을 꿈꾸던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은, IBS와 보통과학자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리라 믿는다. 기초과학의 꿈은, 노벨상이나 천재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과학자들 속에 존재해야만 한다(보통과학자에 대해선 필자의 다른 연재를 참고할 것).

 

덧붙이는 글: 코로나19 사태에서 기초과학의 역할

기초과학에 대한 철학이 사회에 스며들지 못한 곳에서는, 과학언론조차 기초과학의 역할을 왜곡하게 된다. 기초과학은 말 그대로 기초적인 지식을 발견하는 학문이며, 실생활에 대한 응용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격이 강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험의 성격을 지니며,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평소에 해당 사회가 얼마나 기초과학에 투자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서 기초과학 연구소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제 겨우 7년 남짓 투자한 기초과학연구소에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단장도 없고, 기초과학연구원이 질병통제본부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과학언론 중 한 곳이 집요하게 과학기술계를 질타하며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 덕에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IBS까지 코로나19 진단법을 개발했다며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싣고, 여기서도 모자라 기자회견으로 이 성과를 알리려 했다가 혼선을 준다는 이유로 과기부의 제지를 받았다. 그러자 이 언론은 또 기사를 써서, 과기부가 과학기술계의 입을 막는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기초과학연구에 매진해야 할 IBS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미 IBS는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고, 바로 이런 활동이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현 사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 것이다.

I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기초정보.
I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기초정보.

 

과학기술계가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연구개발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생산’하고, 검진결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방역’ 및 ‘의사결정’을 하는 건, 질병본부를 비롯한 정부의 일이다. IBS나 정부출연연구소 같은 연구기관들은, 평소의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이런 상황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거나, 기업은 하지 못하는 연구를 수행해서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끝난다. 그런 연구기관들에게 당장 치료제나 백신을 내놓으라고 떠드는 과학언론이 있다면, 그 곳엔 과학기술 현장 경험을 지닌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기초과학연구는 산업에 당장 응용될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아니며, 정부출연연구소 또한 기술이전을 통해 이런 사태에 대한 방비를 도모하는 곳일 뿐, 회사나 산업체처럼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언론은 사태 초기부터 과학기술계가 보이지 않는다며 질책을 해댔다. 하지만 그런 질책은 현 시국에서 과학언론이 취해야 할 옳바른 스탠스가 아니다. 게다가 과학기술계가 가만히 앉아 있었던게 아니다. 감염학회 등을 주축으로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들이야말로 코로나19에 대처할 수 있는 과학기술계의 어벤저스였다. 과학기술계에서 코로나19를 직접적으로 당장 다룰 수 있는 전문가들은 발빠르게 움직였고, 권고문과 정부에 대한 자문을 통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해당 언론은 이런 과학기술계의 움직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사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IBS를 겨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해당 언론은 의협에 의해서 코로나19 범대위가 해체된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의협이 정치적 프레임으로 범대위를 빨갱이로 몰아갔을때, 해당 언론은 과학기술계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이는 과학기술계에 대해 균형잡힌 언론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초과학연구를 하는 과학기술인들이 현재 코로나19에 기여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또한 위급한 국가통제 상황에서 과학기술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과학언론은 과학언론답게 철저하게 검증하고 묻고 따지고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에서 3류로 판명난 것은 언론이지 과학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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