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수당' 반대 홍남기에 묻는다...“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 기자명 전용복
  • 기사승인 2020.03.16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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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복 칼럼] 기재부의 '재난수당 안되는 3가지 이유'에 대한 반론

코비드-19(COVID-19) 대응 추경 규모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모두 필요할 때라며 반박했다. “민생의 절박한 목소리에 대한 공감을 뜨거운 가슴이라 한다면, “과연 무엇이 국가경제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는 차가운 머리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싯구를 인용하며 잘못된 선례혹은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경계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와 기재부 관료들이 차가운 머리로 걱정하는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란 무엇이고, 과연 그러한 우려가 합당한 것일까?

그들의 우려는 312일 언론보도(경향신문, 3.12일자, 재정당국 재난기본소득반대할 수 밖에 없는 3가지 이유)를 통해 일정부분 확인할 수 있다(코비드-19 재난 대응이 재난수당혹은 재난기본소득의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양자의 차이는 지원대상, 지원 기간, 지원 방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위 언론보도는 재난기본소득에 한정하여 답변한 측면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기재부의 소극적 대응태도 일반을 옹호하는 논리에 집중한다). 기획재정부는 재난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로 ① 재정건전성 악화 ② 채권 금리 인상 부담 ③ 낮은 경기 부양 효과 등을 꼽았다. 

아래에서 이 3가지 이유를 좀더 찬찬히 살펴 보겠지만, 이들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지금까지 재정활동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되뇌여온 경제 교리들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특수성 등을 감안한 것이 아니라 원형 그대로의 교리들이다. 여기서 우선 놀라운 점은 전쟁과 유사한 국가 재난 상황에서도 그 교리들은 고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와도 다른 대리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가들의 정부는 규모와 방법 모두에서 전례가 없는 대응책을 실행했다. 재정 보수주의로 유명한 우리나라도 200928.4(통합재정 268.4조 대비 10.6%)의 추경을 편성하고 실행했다. 이후 IMF와 세계은행 등 신자유주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 받아온 국제기구들조차 자신들이 설파해 온 정책제언들을 반성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도 그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① 재정건전성 악화?

차가운 머리진정으로 국가경제와 국민을 위하는재정정책을 고려할 때, 일각에서 요구하는 대규모 직접지원을 경계해야 해는 첫 번째 이유는 재정건전성악화 우려이다. 보도에 따르면 기재부 관계자는 우수한 재정건전성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 중 하나라고까지 말했다. 여기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재정건전성 문제는 흔히 국채위기와 같은 금융안정성 문제(다른 말로, 국가 신용도)와 연관지어 논의된다. 이에 대해 우선 지적할 것은 최근 IMF조차도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지나치게 낮고, 재정정책이 과도하게 보수적이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재부가 작년 12.26일 발표한 2018 회계연도 일반정부 및 공공부문 부채 실적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정부 부채(D2)759.7조로, GDP 대비 비율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3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은 40.1%를 나타냈다. 반면, 회원국 전체의 평균 비율은 109.2%를 기록했다.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보유한 우리나라 정부의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채는 환율이나 이자율 변동 등 시장위험에 매우 강한 대응능력을 갖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국채의 구성을 보면, 통화별로는 원화 표시 부채가 98.9%, 내외국인 비중으로는 내국인 보유비중이 87.5%, 그리고 고정금리채가 95.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표시 국채 비중과 내국인 보유 비중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재정건전성을 옹호하는 논리를 무색하게 한다. 외화표시 국채란 해외 차입을 의미하고, 그 비중이 큰 상황에서라면 국채발행에 좀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면 외국인 국채 보유자가 외환으로상환을 요구하게 되고, 외환이 부족하게 되면 국채위기와 외환위기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도 유사한 위험을 갖는다. 국내외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외국인들의 채권매도와 대규모 외화자금 이탈이 발생할 수 있고, 그 결과 원화가치 급락과 외환부족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채의 구성은 이러한 문제와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채의 대부분이 국내통화(원화) 표시이고 대부분을 내국인이 보유하는 경우, 만기가 도래한 국채에 대해 정부가 상환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이유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최종적으로 국내통화(원화)의 발행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시장 또한 항상 국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부가 귀금속(, )이나 해외통화로 상환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러지 못해 국채위기를 경험했던 역사적 사건들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금본위제 폐지 이후, 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부파산을 획책하지 않는 한, ‘내국인이 보유한 국내통화 표시 국채가 경제적 혹은 운영상 원리의 제약 때문에 디폴트된 경우는 없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남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불거진 국채위기도 사실상 외채위기였다. 유로존 국가들은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하지만, 스스로 유로화를 발행할 권한은 없다. 그래서 유로화는 이들에게 외화와 다를 바 없었고, 채권자들의 상환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남미국가들의 국채위기도 대부분 외화로 상환을 약속한 국채(외채)에서 발생했지, 국내통화 표시 국채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사실에 비추어 우리나라 기재부의 개정건전성 중시 입장은 지나치게 과도하다 할 것이다.

 

② 채권 금리가 상승?

코비드-19 재난에 대응한 추경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두 번째 이유는 채권금리의 변동성 확대 및 상승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수요가 일정한 상태에서 공급이 갑작스레 늘어나면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정부측 논리를 옹호하고 있다.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재정적자 확대를 반대하는 흔한 논리는 국가부채가 증가하면 금리가 상승하고, 높아진 금리로 인해 민간의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이다. 우선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는 것이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가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가부채를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선진 경제들의 경험은 재정건전성 옹호론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채무비율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거의 20여 년 동안 제로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 왔지, 금리 급등 현상은 없었다. 또한 2008년 이후 미국과 대부분의 EU국가들에서 정부부채가 증가하는 동안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더 장기적 시각으로 보더라도, 국가채무비율과 금리는 역의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고 할 것이다.

재정건전성론자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이런 역사적 경험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재정건전성 담론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도그마적으로 부정해 왔을 뿐이다. 현재 전세계의 중앙은행들은 금리 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 목표 금리는 은행들 사이에서 초단기로 거래되는 지급준비금에 대한 금리를 지칭하고, 그것은 중앙은행만이 발행한다. 시장에 지급준비금이 부족(과잉)해지면 시장금리가 목표금리를 상회(하회)할 것이고, 이에 대응하여 중앙은행은 지급준비금의 과부족을 상쇄하여 시장금리를 목표 수준에서 유지하고자 한다. 이것을 공개시장운영이라 부르고, 이때 사용되는 수단은 주로 국채이다. 우리나라처럼 예외적으로 한국은행이 스스로 발행하는 채권(통화안정증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시중에 지급준비금이 부족하여 기준금리 상승 압력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은 지급준비금을 새로이 창조하여 시중의 국채를 매입한다. 그렇게 되면 시중에 지급준비금이 풀려 지급준비금 부족과 기준금리 상승 압력이 해소되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를 매도하여 시중의 잉여 지급준비금을 흡수한다. 시중 은행을 포함하여 민간 금융기관들은 이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시장금리를 형성하게 되므로, 기준금리가 시중금리의 추세를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재정적자가 금리를 상승시킬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교리와는 달리, 정부의 적자지출은 시중의 지급준비금 공급을 늘리고, 그 결과 금융시장에서는 오히려 금리하락 압력이 발생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여 채권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견해이다. 시중의 금융기관들이 신규 발행 국채를 인수하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른 말로, 시중 은행들은 국채 인수비용이 수익을 초과(대개 그렇다)하는 한, 이를 거절할 이유도 없고,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필연적 제약도 없다. 당장 국채 발행 물량을 인수할 지급준비금이 부족하다면, 국채 인수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중앙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중앙은행의 의지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직접 대출 외에도 중앙은행이 제도적으로 이 과정을 잘 관리할 방법은 다양하다. 더구나 긴급 재난상황에서라면, 이를 어렵게 하는 해당 법률을 일시적으로라도 수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필연적인 경제적 이유는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한 국채 발행으로 시중의 지급준비금이 일시적으로라도 부족해지면, 기준금리 상승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앙은행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기준금리를 방어해야 하는 중앙은행은 지급준비금을 창조하여 시중에 풀린 국채를 매입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 국채 발행이 금리를 상승시킬 이유는 없다.

이렇게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지급준비금의 형태로 재정을 조달하고, 이를 재난수당 등 가계의 소득으로 이전하면 오히려 금리하락 압력이 발생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가 가계에 대해 이전지출을 행하게 되면, 우선 지급준비금이 민간은행들에게 흘러간다. 왜냐하면, 개인이 중앙은행에 직접 계좌를 개설할 수 없는 현 제도 하에서, 정부의 이전지출은 민간은행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난수당의 수령자가 계좌를 개설하고 있는 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지급하고, 해당 은행은 수령자의 계좌에 예금액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소득이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 주의할 점은 이 은행 예금액은 지급준비금이 아니라 해당 은행이 스스로 창조한 신용화폐이다). 그 결과, 정부지출이 증가하면 민간은행이 보유하는 지급준비금이 증가한다. 이는 오히려 금리를 하락시키는 요인이지, 그 반대는 아닌 것이다.

종합하면, 적자재정을 일으켜 국민들에게 재난수당을 지급하면 금리가 상승할 것이란 주장은 실증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근거가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면에는 시중의 자금은 희소한 자원이고, 이들 두고 정부와 민간이 경쟁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정과정을 실제 있는 그대로 분석하지도 않고, 지급준비금과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신용화폐를 구분하지도 않기 때문에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준비금이든 은행의 신용화폐든, 통화는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중앙은행과 민간은행들이 전산상 숫자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무()에서 새로 창조한 것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공급이 부족(희소)한 경우는 없다.

 

③경기부양 효과가 적다?

기재부 관계자의 세 번째 이유, 즉 재난수당의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이전한 소득의 많은 부분이 저축되고 소비에 사용되지 않아, 재정승수효과가 작다고 한다. 이전지출의 승수효과가 작다는 연구결과가 일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결과를 그대로 신뢰하긴 어렵거니와, 이를 재난수당 지급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 첫째, ‘이전지출의 재정승수를 추정한 연구들에서 말하는 이전지출은 정부의 경상지출 중 보조금 및 경상이전인데, 여기에는 자치단체이전, 민간이전, 보전금, 각종 출연금, 심지어 (규모는 작지만) 해외이전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이전지출 항목들은 재난수당과 같이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성 소득보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자료를 이용한 분석결과는 재난수당의 무용성을 지지하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 둘째, 이들의 추정방법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의 통계적 추정 모델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주장하는 가정에 의존하는 구조적 경제모형이기 때문이다. 그와 다른 가정을 도입할 경우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셋째, 이전지출의 경제적 효과를 제대로 측정하려면, 어떤 복잡한 계량경제학적 모형을 설정하고 추정하기 보다는, 그렇지 않았을 가상의 경우와 대비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분석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관찰 불가능의 영역이고, 통계적 분석의 대상도 아니다.

예컨대, 1990년대 대규모 자산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정부의 대대적인 재정정책에도 불구하고경제성장률은 1%를 넘기기 힘들었다. 이를 두고 일본의 재정정책이 무효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일본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 덕분에완전한 붕괴를 막고 이 정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전지출이 갖는 경기부양 효과를 단정지을 수 없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사 제대로 된 변수와 경제모형을 사용하여 이전지출의 재정승수를 추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신뢰하기 어려운 우니라나라 고유의 사정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정부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아 사회복지지출 비중(2015년 기준 GDP 대비 11.2%, OECD 평균 22%)도 낮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작은 정부, 적은 사회복지지출 구조에서 순수히 이전지출의 규모는 필연적으로 작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전지출이 다소 변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경제 전체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적 추정이란 이 변수들의 변화의 연관성을 포착하는 일인데, 이전지출 변수 자체가 우리나라처럼 극도로 작을 경우 조그만 통계적 오차에도 추정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 작은 효과만을 추출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전지출의 재정승수가 작다는 주장, 특히 재난수당의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재난수당, 혹은 정부가 필요한 이유

이와는 반대로, 재난수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재난상황에서의 재정정책 효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코비드-19 재난으로 타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평소소비성향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득 단절로 고통받은 이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이 소비되지 않고 저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내수에 직접 의존하고 있는 자영업 상가수 감소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코비드-19 재난 이전부터 우리나라 경제는 심각한 내수부족에 직면해 있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작년 4/4분기 74.1%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내수부진을 그 원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해당 기간 동안 수출이 증가한 해에도 이 지표는 크게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가동률은 주로 내수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정부의 이전지출은 (승수효과의 크기와 무관하게) 이들을 부양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무너진 내수를 부양하여 경제성장이 유지된다면 세수기반이 확대되어 재정건전성이 오히려 개선될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저가동률과 불완전취업은 잠재생산능력 자체를 잠식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숙련노동과 기술이 장시간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면, 영원히 재사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자를 유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들에게 수요를 보장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빈곤한 가계에 소비여력을 지급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쳐놓은 프레임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밖에서만 생각한다면, 그리고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실시된 양적완화라는 정책실험의 교훈을 참고한다면, 기재부의 우려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재난수당 지급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되, 해당 국채 전부를 한국은행이 매입해 영원히 보유하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채가 시장에서 유통될 때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정부기관이 영원히 보관하고 시장에 내다 팔지 않는다면 재정건전성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또한 이자율 변동도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재정지출 증가로 기준금리 하방 압력이 발생할 테지만, 그것을 다루는 일은 중앙은행이라면 상시적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허구적 관념에서만 탈피하면 된다.

경제와 정부재정은 사회의 한 하위 구성부분일 뿐이다. 재정보다 상위 개념인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차가운 머리따뜻한 가슴과 충돌하지 않는다. 더구나 재난상황에서의 정부정책은 따뜻한 가슴이 우선되어야 할 당위가 있지 않을까? 극단적 재정보수주의 하에서도 우리 정부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개입하여 피해자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수혜의 대상과 방법에 관한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경제위기나 자연재해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와 당위가 있어 온 것이다. 특히 기업들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은 재난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재난과 자연재해에 더해, 감염병 재난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은 충격을 준다. 580만 자영업자, 580만의 임시-일용직 노동자, 220만 특수고용직, 260만 장애인들, 비자발적 실업자들, 독거노인분들, 한부모 또는 맞벌이 가정 등이 그들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의 국민이 묻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재정건전성 알뜰히 지켜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 따끔한 결론은 지극히 내정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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