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외출금지령'...재외선거 투표는 어떻게?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20.03.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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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법정사무라서 재외선거가 그대로 시행되는 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다만, 저희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 재외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소 운영 시 손 세정제 비치, 6피트(ft) 간격 유지 등 코로나19 차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투표 참여를 원하시는 재외국민들께서도 개인방역에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9일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21대 국회의원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지며, 재외선거도 예정대로 시행된다는 내용. 재외선거를 신청한 교민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메일엔 '송구하다'는 표현이 들어있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지만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선거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 보니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는 뜻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명령 위반해 외출시 '1천달러 이하 벌금 혹은 6개월 이하 징역'

총영사관 측이 송구하다고 할 만큼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상황은 좋지 않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확산 방지를 위해 통행제한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 전역에 Stay At Home(자택대피) 명령을 내렸다. 생필품을 사러 가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 사회기반시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해야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외출하지 말고 출근도 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캘리포니아주 법 조항에 따라 위반할 경우 1000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과 징역을 모두 받을 수 있는 명령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차원의 명령 이전에 이미 이미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카운티 정부들은 4월 7일까지 3주동안 자택대피라는 이름의 통행제한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주정부 명령은 3주라는 기한을 두지 않고 "추후 공지가 있을 때가지"라고 밝힌게 가장 다른 점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공지가 있을 때까지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얘기다. 코로나19 확산 속도로 볼 때 이대로 두면 얼마 안 가 의료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대혼란이 발생할 게 불보듯하니 인위적으로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해서 확산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었다. 백악관은 10명 이상 모이지 말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 상황 변화에 따라선 미국 전체에 국가 차원의 통행 제한 조치를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동네 풍경은 어떨까. 일주일 정도 거의 꼼짝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하루에 한 두번 집 주변을 산책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 21일 토요일 오후에 차를 몰고 나갔다 .물과 계란, 야채, 과일 같은 걸 사기 위해 동네 마트에 들렀다. 손님이 많은 코스트코, 트레이더조 같은 매장은 입장 제한을 하고 있었다. 일정한 인원이 장을 보고 나오면, 그만큼 입장을 시켰다. 화장지, 키친타월, 세정제 같은 물품은 동이 나고 없었다. 1명 당 1개씩만 판매하는 제품들이 눈에 띄었지만 식재료가 동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코스트코 매장 안의 손님 숫자는 평소의 10분의 1이나 될까 싶었다. 다만 마스크를 쓴 사람들 숫자는 조금씩 늘고 있는 듯 보였다. 마트 주변의 식당, 커피숍은 영업시간을 줄였고 매장 내 판매도 중단됐다 .옷가게, 잡화점 같은 곳은 문을 닫았다. 주말이면 차 댈 곳이 없던 주차장은 이 빠진 도끼빗 마냥 볼품이 없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이웃들은 여전히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사회적 거리'에는 신경을 쓰는 눈치다. 만나면 악수라도 하던 옆집 백인 친구는 말로만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 역시 그게 편하다. 하지만 동네를 벗어나 지역 전체로 보면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인이 코로나19 사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아시아인에 대한 위협과 범죄 우려 커지며 투표 포기자 속출

최근 페이스북을 포함한 소셜미디어에선 이 지역의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기침을 한 아시아인 남성을 백인 남성이 위협하는 영상이 퍼지고 있다. 'Coughing while Asian'이란 제목의 이 영상에서 백인 남성은 매장에서 쇼핑을 하다가 기침을 한 아시아인 남성에게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시아인 혐오 피해를 조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웹사이트를 열자마자 24시간만에 40건이 넘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쪽 인사들은 공공연히 코로나19를 가리켜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아시아인 혐오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을 구별하지 않은 미국에서 중국 바이러스 혹은 중국인 바이러스는 그냥 아시아 바이러스, 아시아인 바이러스라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은 아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 많이 사는 로스엔젤레스 지역에서 총기 구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불안감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총영사관이 보내온 이메일 내용대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재외선거는 다음달 1일부터 6일 사이 치러진다.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에 선거 참여 등록을 한 유권자는 4000명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 산호세(새너제이) 코트라(한국무역관), 새크라멘토 한글학교, 이렇게 총 세 곳에 투표소가 차려지는데, 총영사관 투표소에서는 1~6일, 산호세와 새크라멘토 투표소에선 3~5일 투표가 진행된다. 

그런데 총영사관 이메일의 "송구하다"는 표현을 반영하기라도 하는 듯, 투표 열기는 뜨겁지 않다. 유권자의 관심이 낮아서라기보다는 과연 안심하고 투표하러 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서다. 우려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코로나19 감염과 아시아인 혐오 범죄 피해 우려. 감염 우려의 경우, 총영사관 측은 투표소에 손 세정제를 비치하고 6피트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대기줄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놓겠다고 한다. 다만 마스크는 유권자 개인의 선택에 맡겼다. 안전 문제는? 개인의 몫이다. 백악관, 연방정부는 10명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고, 주정부와 카운티 정부는 먹고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러 가는 경우가 아니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두 명도 아니고 수십명, 수백명이 투표소를 찾아 주위의 눈길을 피해 조용히 소리 소문없이, 눈총 받지 않고 투표를 마치고 갈 수 있을까.

 

재외선거 진행에 "송구하다"면서 '안전은 알아서 하라'는 정부

이번 재외 선거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한달 전 미국 국무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지기 전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은 캘리포니아 주정부, 지역 카운티 정부들의 협조를 구하진 않았다고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합쳐서 최대 4000여 명이 세 곳의 투표소를 방문하는 행사를 치른다고 하면 주정부, 카운티정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보면, 아예 얘기하지 않는게 현명할 수 있다. 투표를 하러 오는 유권자의 안전은 좀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좀더 안전하게 투표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선출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선관위 측은 현행 법에 따라 재외선거의 경우 투표소에 가서 본인이 직접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 선거사무를 담당하는 이민철 영사에게 "현재 이 지역이 비상상황인데 전자투표를 하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 영사의 대답은 "현행 법에 따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재외선거와 관련해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고려해 중국 우한총영사관의 선거사무를 중단한 것 외엔 아직까지 재외국민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선거일정을 조정하진 않고 있다. 헌법 2조 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재외국민에게 "송구하다"면서까지 진행하는 선거를 보다 안전하게 치르는 방안은 정녕 찾을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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