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해적질'까지....코로나19가 드러낸 미국의 민낯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20.04.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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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마스크를 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수준의 자택대기령(Stay at home order) 때문에 거리나 공원, 공공기관 등에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지만, 생활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마트를 가거나 병원, 교통 이용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외출을 할 때 관찰해보면 여전히 마스크 착용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문화적 원인이 큽니다. 테러의 위험을 상대적으로 가깝게 느끼고 있는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아주 위협적인 존재로 여깁니다. 또 총기 소지가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

만약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 마스크를 쓰고 밖을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집에서 쉬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아파도 출근한다는 문화의 한국과 달리 휴가나 연차를 쓰는 것이 보다 자유로운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형성된 인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도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코로나19 확진자수 세계 1위를 기록하고 확산세가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마스크에 대한 공고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마트 몇 군데를 가보니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이전엔 코로나19가 중국을 비롯해 동양권에서 발원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인종차별 혐오 범죄가 벌어지면서, 동양인들만 눈치를 보며 마스크를 쓰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미국인들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독특한 것은 미국인들 중에서는 마스크 대신 장갑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바이러스가 매개체를 통해 감염 되다보니 바이러스를 직접적으로 옮기는 손을 가리기 위한 방안인데요. 사실 바이러스 감염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손으로 감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호흡기를 가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텐데, 장갑이 더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상황이 다소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아직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장갑을 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손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만큼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도 더욱 커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던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도 드디어 마스크 착용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마스크 착용이 바이러스 전파 예방에) 좋을 지도 모른다(it may be good)”면서 마스크 착용을 조언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 착용은 추가적인 자발적 공중보건 조치로서 자발적인(voluntary)” 행동 조치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백악관의 이 지침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권고 사항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CDC는 의료·보건용 마스크가 아닌, 천 마스크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 대신 스카프를 언급하기도 했죠. 반드시 의료·보건용 마스크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인데요. 이에 따라 CDC는 웹사이트를 통해 마스크의 적절한 착용 방법이나 제조 방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에서도 천 마스크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How to make your own face mask)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출처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 https://www.cdc.gov/
출처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 https://www.cdc.gov/

 

의료·보건용 마스크가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는 게 당연함에도 이렇게 천 마스크 사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마스크 수급 상황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에서입니다. 백악관 코로나바이러스 TF 관계자들은 이날 권고에 앞서 마스크 사용을 미국 전 지역에 보편적으로 사용할지, 아니면 코로나19 지역 사회 전염이 심각한 지역으로 안내를 좁힐지를 논의한 바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전파보다도, 마스크 사용을 권고함에 따라 불필요한 공황 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더욱 중요한 문제였던 셈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New face mask guidance comes after battle between White House and CD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고문 중 일부는 모두를 위해 마스크를 추천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CDC의 권고를 전달하기는 했지만, 백악관에서는 이날 지침에서 이 권고가 코로나19 집중 발생 지역에서 특별히 강조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특히(especially)”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문제로 의사결정이 늦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치권이 우려하는 바는 치안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미국의 치안 불안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총기 구매가 급격하게 늘고 있어서 총기 수급 역시 원활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혼란이 닥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자택대기령이 길어지면서 경제적 타격도 심화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수당 신청자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2주간의 실업수당 신청 건수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 6개월간의 건수와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여전히 마스크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아직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는 않고 있지만 분위기는 다소 바뀌었습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1일(현지시간) 저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연 화상 언론 브리핑을 통해 기존과 같이 "의료용 마스크를 아프거나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사용을 권고한다"고 밝히면서도 "마스크가 다른 보호 조치와 결합해야만 효과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마스크 착용에 대해 긍정하지 않던 기존 입장과 달리, 마스크 착용의 가치에 대해 평가를 하겠다는 의미여서 다소 온도차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바라보던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마스크 때문에 이전투구하는 모습, 시장과 정치권이 요동치는 현상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지난 4일에는 3M이 태국 공장에서 만들어 독일 베를린으로 판매될 예정이던 마스크를 미국에서 가로채갔다는 뉴스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독일 안드리아스 가이젤 내부장관은 현대판 해적행위(an act of modern piracy)”라고 미국을 맹비난했습니다.

 

미국의 마스크 부족 상황은 의료진들조차 쓸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미국의 일부 병원들은 의료 환경과 장비 부족 등의 실태를 고발한 의료진들을 해고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의료, 보건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관련 정보를 대중이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그 국가가 과연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할 자격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이 보유한 마스크는 충분치 않습니다. 미국의 대형마트 안에는 대부분 약국이 입점해 있는데, 이런 일반 약국은 물론 CVS, Walgreens 등 약국 체인점에서도 마스크는 품귀 현상에 시달립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도 물량 부족으로 배송에만 1달 이상 걸릴 정도입니다.

미국은 전략비축물자로 3000만장의 마스크를 보유한 상태라고 하는데, 현재 그 수요는 이미 10배를 넘어선 상태이기 때문에 급격한 마스크 수급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3M, 허니웰 등의 마스크 생산 업체는 대부분 중국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생산업체들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으로 생산 라인을 대부분 이전했고, 결국 미국 마스크의 90%는 중국 공급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은 과학, 의료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첨단 고급 기술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미국 우주재단이 2018년 발간한 ‘2017 우주보고서(The Space Report 2017)’에 따르면 세계 최다 인공위성 보유국은 단연코 미국이며 우주개발 예산, GDP 대비 우주개발 투자비율, 우주기관 인력 규모 등에서 모두 미국이 우주기술 세계 1를 기록하고 있습니다현재 붕괴 직전에 온 미국의 의료체계 또한 의료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세계 최상위 수준을 자랑합니다.

전 세계에서 우주로 가장 많은 인공위성을 쏘아온 세계 최고의 기술 보유국 미국이 고작 마스크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의료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공공의료가 무너져 버리고 의료보험이 없어 의료비를 감당하기 두려운 평범한 미국인들이 느끼는 세계 1위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도래할 뉴 노멀(New normal)’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왔던 미국이 맞이할 뉴 노멀의 기준에,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 마스크는 아주 중요한 화두이자 상징이 될 것이 틀림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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