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장려'와 '질병등록' 동시에? WHO 모순인가 아닌가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20.05.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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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 WHO의 행보를 두고 말이 많다. 특히 게임 분야에서의 발언은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드높다. 그도 그럴 것이, 2019년 5월의 국제질병사인분류코드(ICD-11) 개정안에서 코드명 6c51로 게임이용장애를 정식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안을 통과시켜 게임 관계자들의 반론을 불러일으켰으면서 정작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집에서 게임을 하는 행위를 장려하는 ‘플레이 투게더’ 캠페인을 앞장서서 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게임질병코드 등재에 의문을 품는 입장에서 납득이 쉽게 가지 않는 행보지만, 이 글에서는 비난보다는 도대체 왜 WHO가 이런 입장들을 내놓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 보고자 한다. 당장 국제기구가 제시한 가이드의 국내 수용방식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어떻게든 영향이 올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최대한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ICD-11 개정에서 ‘플레이 투게더’ 캠페인으로 이어지는 WHO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 입장을 존중하는 선에서 반대편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좀더 유의미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WHO가 게임업계와 함께 진행하는 '플레이 어파트 투게더' 로고
WHO가 게임업계와 함께 진행하는 '플레이 어파트 투게더' 로고

 

ICD-11의 의미와 역사, WHO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접근

ICD-11은 국제질병사인분류코드인 ICD(International Statistical Cal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의 제 11차 개정판이다. 1700년대부터 인간의 사망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왔고, 1891년 빈에서 열린 국제통계회의에서 처음으로 사망원인분류의 작성이 이루어지며 ICD의 원류가 시작되었다.

몇 차례의 국제회의를 거쳐 1928년 국제사망원인분류가 발표되고, 1938년 10월 파리에서 통과된 국제사망원인분류 개정회의에서 현재의 ICD-1판으로 볼 수 있는 사망원인분류 제 5판이 승인을 통과했다. 이후 꼭 사망원인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질병 전반에 대한 분류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1946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보건회의에서는 세계보건기구 WHO에 통계분야에서 다루던 사망원인분류를 WHO에서 주관하여 개정할 것에 대한 요청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48년 WHO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ICD라는 이름의 분류표준을 승인했다. 사망원인분류 5판의 개정판인 6판이 ICD-6으로 승인되며 사인 및 질병을 포괄하는 WHO의 공식 분류코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WHO는 ICD의 개정을 진행애 왔다. 1965년 ICD-8 개정회의부터는 한국도 ICD-8을 로컬라이제이션한 KCD를 제정, 국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1975년, 1989년 각각 9판과 10판의 개정판을 승인한 WHO는 2019년 ICD-11이라는 새 개정판에 대한 승인을 통과시켰고, 이 안에 6c51이라는 코드를 달고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가 정식 질병분류로 포함되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질병에 게임이용이 포함되는 것은 납득이 쉽지 않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WHO가 규정하는 건강과 질병의 맥락이 좀더 폭넓다는 사실을 살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1946년에 WHO가 제창한 건강Well-being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를 가리키며, 좀더 넓은 사회 전반의 위협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의 의미 또한 보다 넓은 의미로 적용된다. 세균감염, 부상 같은 생리학적 질병요소에만 건강을 위협하는 의미로서의 질병이 국한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건강 개념의 확장은 1946년 건강개념의 제창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앞서 소개한 ICD-11의 주요 개정에 대한 Lancet의 논평에서도 의학 범주의 확장, 사회적 조건과 같은 외부요인의 역할 강조가 11차 개정판의 주요 변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ICD-11에 등재된 게임이용장애의 세부 내용들

ICD-11의 게임이용장애 코드명은 6c51이다. 코드번호 06은 정신적, 행동적, 신경발달적 장애를 가리키는 카테고리 번호이고, 그 하위분류인 ‘약물,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 아래에 ‘물질사용으로 인한 장애’,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 두 가지 분류가 존재한다. 

이중 게임이용장애는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에 속하며, 같은 카테고리 안에는 총 네 개의 코드가 존재하며 아래와 같다.

코드명

제목

6C50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

6C51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6C5Y

특정된 기타 중독성 행동에 관한 장애

6C5Z

특정되지 않은 기타 중독성 행동에 관한 장애

 

6c51 게임이용장애에도 두 개의 하위분류가 존재한다. 6c51.0은 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리키고, 6c51.1은 주로 오프라인 게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지칭한다. 두 개념은 세부분류코드로는 갈라지나 정의에 있어서는 동일하며, 제목 외의 세부 분류조건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게임이용장애는 ICD-11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항목을 통해 정의된다.

* 게임행동에 대한 제어 손상

(시작, 빈도, 강도, 지속, 종료 등에 대한 통제 불가)

* 게임에 대한 우선순위 부여가 삶의 다른 관심 및 일상활동보다 우선할 정도로 증가

* 이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거나 게임이용량을 증가시키는 행동패턴

* 이러한 행동패턴은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및 기타 기능영역에서의 상당한 손상을 야기하기에 충분한 심각성을 지님

* 일반적으로 진단 할당을 위해 최소 12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어야 하나, 이는 모든 진단요건이 충족되는 상황에서 증상이 심각할 경우 단축될 수 있음.

 

앞서 언급한 WHO의 방침과 ICD-11 개정의 주요 변화점을 함께 놓고 생각해 본다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신설 또한 어느 정도 같은 방향성 하에 진행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질병은 더 이상 생리학적인 범주에 머물지 않으며 그 현상과 결과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면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과도하게 게임을 이용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도함이라는 기준은 매우 모호해서 자녀가 게임 좀 많이 하면 바로 중독을 의심한다거나 하는 식의 문제도 있지만, ‘게임만을 삶의 목적으로 두어 일상을 해치는’ 사례가 문제적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ICD-11의 게임이용장애가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지적 자체만으로는 질병코드 등재 자체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간 진행된 게임이용 관련 질병코드 논란에서 나온 의학계 쪽의 입장도 비슷하다. 게임이용 전체를 싸잡아 질병적 행위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며,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류코드에 등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전혀 무가치한 입장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 대한 오해는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복합적인 현상은 복합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WHO와 ICD-11의 입장을 이해한다 쳐도 그러나 여전히 논의해야 할 지점들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건강과 질병의 개념을 폭넓게 가져가고자 하는 WHO의 입장을 고려했을 경우 그 치료와 해결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의학, 생리학의 바깥 분야와의 폭넓은 의견 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질병의 범주가 생리학적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안녕을 해치는 좀더 넓은 의미가 된다면, 마찬가지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의학적 범주 밖을 고려해야 함에도 이러한 부분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다. 2019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WHO 안의 중독섹션 자문 그룹은 보건정책담당자, 중독분야전문가 그룹으로 의사, 심리학자, 보건학자 등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질병의 정의가 확장되어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고민은 의학계 근처의 그룹에서만 진행된 것이다.

당장 디지털게임이 가지고 있는 매체적 성격이나 사회적 측면을 생각한다면 게임과 게임이용에 관한 입체적 지형을 그려내는 데 있어 WHO 내의 중독섹션 자문그룹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질병의 범주가 생리학적 차원이 아님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증상의 정의와 진단, 치료를 의학적 범주 안에서만 다루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평소 자주 드는 예를 다시 들어 설명해 보자. 서울역 앞 PC방 등에 가보면 딱히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심야 정액을 끊어 PC방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여름의 잠못드는 열대야를 가장 싸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만원도 안되는 PC방 심야 정액이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단 정액권은 끊었으니 뭔가 해보자고 프랜차이즈 PC방 하단의 마이너한 MMORPG를 하나 잡고 플레이하다 재미가 붙어 계속 하게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게임이용장애 진단 대상자인가?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ICD-11의 게임이용장애 정의 이상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는 왜 PC방에 출퇴근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이유들을 생각해야 하고, 프랜차이즈 PC방의 기본제공 게임에 이른바 ‘아재’들을 위한 손쉬운 난이도의 단순한 온라인게임들이 일군의 라인업을 이루는 현상에 대한 산업적, 문화적 고찰도 요구된다. 질병이 사회적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라면, 그 해석과 정의, 진단과 치료 또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맥락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당장 WHO는 한 번도 게임 전체를 싸잡아 질병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음에도 질병코드 등재를 ‘WHO가 게임을 악마화한다’고 받아들이는 미디어 전반의 상황이 이를 드러낸다. 아무리 의학 분야에서 과도한 이용만을 문제삼는다고 이야기해도 그렇게 미디어 전반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이 문제가 이미 사회적 이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오랫동안 게임과 게임이용에 쏟아진 수많은 낙인들, 이제는 거론하는 것조차 밈meme으로서는 뒤쳐진 수많은 게임에 대한 근거없는 부정적 시선이 아직도 난무하는 마당에 WHO의 메시지는 쉽게 왜곡된다. 게임이용장애로 인한 이슈와 논란은 그래서 분명하게 의학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 문제를 WHO나 의학계 단독으로만 해결해선 안되는 이유다.

 

합의에 필요한 시간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다

WHO가 과도한 게임 이용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다는 의미로 ICD-11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등재했다는 점을 나는 최대한의 선의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과도한 게임 이용은 분명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해결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여러 문제들 – 아직까지 학계의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연구상태, 도박장애와 구분되지 않는 질병코드 정의, 부적절한 설문, 설계 등으로 인한 연구 자체의 한계 등 – 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디지털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선제적 관찰이라는 부분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 세부적인 해결방안의 도출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ICD-11 게임이용장애 등재 이후 쏟아진 논란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서로간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함께 짚어낼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과도한 게임이용’ 자체가 문제라는 사실은 ICD-11 이슈에 서로 입장을 달리 갖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최소한의 공통점으로 짚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그 과도한 게임이용은 왜 발생하고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게임계와 의학계, 사회과학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이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 통계청의 KCD 로컬라이제이션이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논쟁이 발전적으로 흐르지 못한 채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론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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