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에 출동한 '건십'은 전투기가 아니라 헬기다

  • 기자명 임영대
  • 기사승인 2020.06.0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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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4일, 노컷뉴스에서는 광주 CBS를 인용하여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생한 계엄군 측의 진상에 대해 [단독]5·18 계엄군, 군 부대서 저항 못하는 시민 대검 '학살’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한 배경이나 계엄군의 시민 학살 등에 관해 상세하게 밝힌 조사자료를 풍부하게 넣고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방송사, 또는 취재기자 측의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잘못 해석된 부분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수정이 필요하다(아래는 기사 중 수정이 필요한 부분).

-이밖에 전투기 출격 대기 정황과 헬기 사격에 대한 증거도 추가로 발견됐다.

-군 문서인 11특전여단 전투상보의 송암동 오인사격 상황도에는 '건십 2대 공중 엄호'로 기록돼 있다. 건십은 무장된 상태의 전투기를 뜻한다.

-505보안부대 수사관을 지냈던 허장환씨의 과거 증언과 맞물려 5·18 당시 실제 전투기가 출격했거나 이러한 계획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장환씨의 공개 증언”이란 당시 보안부대 수사관이었다고 하는 허장환씨가 2019년 5월에 매체에 밝힌 내용으로, 1980년 5월 당시 몇몇 공군기지에서 광주를 폭격하려 준비하다가 보고된 교전이 계엄군 부대 간에 벌어진 오인교전으로 밝혀진 후 출격을 취소했다는 주장 (JTBC "헬기사격, 전투기 무장 출격대기도" 구체적 증언 일치 참고)이다. 아직 명확한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사안이다.

게다가 이번에 보도된 문안은 전투기 출격 준비를 입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자가 주장한 것처럼 ‘건십’이 ‘무장된 상태의 전투기’를 뜻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십이란 무엇인가?

건십(gunship)은 본래 군함 중에서도 포함(砲艦)을 의미하는 단어로 건보트(gunboat)라고도 한다. 이건 대양을 항해하는 큰 배가 아니라 강이나 육지 가까운 연안을 운항하는 소형선으로, 탑재하고 있는 함포로 육지에 있는 적을 공격하고 연안을 경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진 1. 고전적인 포함의 사례, 양쯔강 경비를 맡던 미 해군 포함 파나이(USS Panay) 호
사진 1. 고전적인 포함의 사례, 양쯔강 경비를 맡던 미 해군 포함 파나이(USS Panay) 호

 

본래 배를 가리키던 건십이라는 표현이 날아다니는 물건을 가리키게 된 건 베트남전에서부터였다. 베트남에서 미군은 헬기를 대량으로 도입하면서 최초로 헬기 기동부대를 만들었는데, 이 헬기들을 호위할 전력이 필요했다. 헬기 기동부대는 지상군처럼 스스로 전차나 야포를 장비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정익을 장비한 전투기는 헬기 부대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없었다. 헬기보다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헬기 속도에 맞추면 전투기가 추락하고 만다. 그래서 일반 헬기에 기관총과 로켓탄 등을 장착한 무장헬기가 처음 만들어졌고, 이 무장헬기를 건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개발된 AH-1 코브라, AH-64 아파치 등의 공격헬기들도 이 건십이라는 이름을 이어받는다.

사진 2.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주력으로 사용한 UH-1 이로쿼이즈(Iroquois, 미국 동부에 살던 원주민. 미군은 헬리콥터에 원주민 부족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수송헬기를 개조한 UH-1 무장헬기
사진 2.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주력으로 사용한 UH-1 이로쿼이즈(Iroquois, 미국 동부에 살던 원주민. 미군은 헬리콥터에 원주민 부족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수송헬기를 개조한 UH-1 무장헬기

 

사진 3. 전문 공격헬기인 AH-1 코브라, 사진은 G형이다. 코브라는 본래 UH-1의 개량형이라 인디언 이름이 별도로 붙지 않았다.
사진 3. 전문 공격헬기인 AH-1 코브라, 사진은 G형이다. 코브라는 본래 UH-1의 개량형이라 인디언 이름이 별도로 붙지 않았다.

 

다만 이 ‘건십’이라는 명칭이 헬기에만 붙는 건 아니다. 고정익기에도 붙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붙는 건 전투기가 아니다. 수송기를 개조한 공격기에 붙는 명칭이 바로 건십으로, 이것 역시 베트남전에서 유래되었다.

 

수송기를 개조한 건십

베트남전 당시, 미군은 적인 베트콩이나 월맹군을 상대하기 위해 수시로 항공지원을 요청하곤 했다. 미군은 압도적인 항공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항공지원을 받기는 쉬웠으나, 문제는 그게 효과가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랬지만, 전투기는 한 지점에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지원요청을 받으면 날아와서 폭탄을 던지고 돌아가는데, 유도무기가 없던 시절이고 보니 적을 겁주는 것과 별개로 실제로 폭탄이 명중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베트남전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했다.

기관총이나 기관포는 폭탄보다는 명중률이 높았다. 하지만 전투기나 공격기가 기관총으로 지상에 있는 표적을 맞히려면 땅을 향해 기수를 숙여야 했고, 그러면 땅바닥에 처박을 위험이 커질뿐더러 고도가 낮아지면서 적이 쏘는 대공포화에 노출될 위험도 커진다.

헬기는 공격하다가 추락할 위험이 낮고 싣고 있는 무기의 명중률은 높다. 하지만 탑재하는 무기의 수량이 적다는 문제가 있고, 항속거리가 짧으며 대공포화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지상군을 지원하기에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다. 여기서 수송기를 개조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당시 미군에는 2차대전 때 생산한 낡은 C-47 수송기가 잔뜩 있었다. 이 비행기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대량의 탄약을 탑재, 말 그대로 밤새도록 사격을 퍼부어도 될 정도로 개조했다. 이 비행기가 수송기를 개조한 첫 건십인 AC-47이다.

AC-47이 전투에서 큰 성과를 올리자 미군에서는 C-119와 C-130처럼 더 큰 수송기에 더 큰 화기를 싣는 식으로 계속 개량한다. 처음에는 7.62mm 미니건(발칸포와 같은 구조의 기관총으로 M60기관총에 쓰는 탄환을 사용한다)을 주로 싣다가 20mm기관포, 40mm 기관포, 105mm 곡사포 등을 탑재하게 되었다.

 

사진 4. 베트남전에서 사용한 건십인 AC-47, AC-119, AC-130(왼쪽부터)
사진 4. 베트남전에서 사용한 건십인 AC-47, AC-119, AC-130(왼쪽부터)

건십은 수송기를 개조한 만큼 대량의 탄약을 실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공중급유까지 받아 가면서 오래 떠 있을 수 있으며, 표적 주위를 맴돌면서 직사화기로 공격하는 만큼 공격 성공률도 높았다. 다만 기본이 수송기인지라 적이 전투기를 띄운다면 상대가 안 되고, 대공포화에 격추될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건십은 제공권을 언제나 확실히 쥐고 있는 미군에서나 쓸 수 있는 장비다. 미군조차 베트남에서 상당수 건십을 대공포화에 상실했고, 후기에는 모든 건십은 야간에 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래야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의 대공포화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제약이 좀 있기는 해도 지상군 지원에서는 이런 수송기 개조 건십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함이 입증되면서, 미군에서는 베트남전 이후에도 건십을 유지하고 있다. 오래된 기체들은 모두 퇴역했지만 AC-130은 개량을 거쳐 21세기까지 후속 모델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최신 기체인 AC-130J는 기본 무장인 105mm포에서 유도포탄을 쏠뿐더러 유도폭탄과 미사일, 레이저 무기까지 장비하고 있다.

사진 5. 최신 건십인 AC-130J 고스트라이더(Ghostrider)
사진 5. 최신 건십인 AC-130J 고스트라이더(Ghostrider)

 

광주에 뜬 건십의 정체는?

위에서 살폈듯, ‘건십’은 무장한 전투기를 뜻하지 않는다. 또한, 두 번째로 설명한 수송기를 개조한 공격기는 한국군이 보유한 적이 없다. 따라서 위 기사에서 언급한 ‘공중 엄호에 참여한 건십’이란 헬기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해당 지역에 공격헬기가 출격한 바 있음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서 보도된 바가 있다.

 

기념재단은 이 탄피들이 80년 5월 24일 육군 31항공단 103항공대의 공격형 헬기 AH-1J(일명 코브라) 운용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고 기록을 추적하고 있다. 5ㆍ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AHI-J 헬기에 벌컨포가 장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80년 9월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가 발행한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엔 5ㆍ18 당시 AH-1J 헬기 2대(인원 49명)가 운용됐고, 그 임무로 ‘무력시위 및 의명 공중화력 지원’이라고 기록돼 있다. 또 전교사 작전처 ‘보급 지원 현황’ 문건엔 80년 5월 23일 20㎜ 벌컨포 탄 1,500발이 항공대에 지급된 것으로 적혀 있다. ‘2군 계엄상황일지’에도 80년 5월 24일 AH-1J 2대와 500MD 2대가 지상 엄호를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당시 남구 송암동 효천역 부근에서 계엄군간 오인 사격 상황이 발생하자 AHI-J 헬기가 공중화력 지원에 나선 것으로 기념재단 측은 추정하고 있다.

5ㆍ18 헬기 ‘기총소사’ 추정 탄피 나왔다  (한국일보, 입력 2017.02.16. 15:21)

 

위의 노컷뉴스 기사가 언급한 “송암동 오인사격 상황” 당시 출격한 “건십”이 헬기였음은 이 보도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헬기가 뜬 것이 분명한 사안에 대해 “이는 전투기다”라는 전혀 정확하지 않은 설명까지 덧붙여 보도한다면, 이는 사실을 밝히는 데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기사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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