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광고 기사, 정파적 보도...언론 불신엔 이유가 있다

  • 기자명 권성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6.11 13: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일 오후 2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10호에서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념식 및 기획세미나’가 열렸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김준범 80년 해직 언론인 협의회 공동대표 등 해직기자,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등 시민 단체 활동가, 이원섭 전 언론학 교수를 포함한 40여명의 시민사회 각계각층 인사가 참석했다. 

김준범 80년 해직 언론인 협의회 공동대표가 사회를 보고 이봉현 한겨레신문 저널리즘책무실 실장, 이원섭 전 가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이 토론의 패널로 참여했다. 패널들은 1980년 언론투쟁에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오늘날 언론 생태계에 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1980년 언론투쟁은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가 1000여 명이 불법해직된 사건이다. 패널들은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와 해결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 관행'이 언론에 대한 불신 만들어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언론 불신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언론 불신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의 발표로부터 ‘한국 언론의 신뢰 위기와 구조적 요인’에 관한 토론이 시작됐다. 이 대표는 “한국은 세계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가 가장 낮은 나라다”고 말하며 한국 언론진흥재단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진행한 연구를 제시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언론 자유는 회복됐지만 언론의 신뢰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언론 불신은 언론 신뢰와 독립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조국 사태, N번방 사건 등을 예로 들며 언론의 ‘관행’이 언론 불신이라는 악순환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SBS 동양대 총장 직인 오보를 예로 들며 “조국 사태를 보면 검찰이 흘린 정보를 확인 없이 보도했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의 경우는 다른 언론사의 보도를 따라가기 싫어하는 관행을 반복해 언론이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 실장은 한겨레의 사례를 거론하며 ‘책무’에서 불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책무를 위해서는 윤리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것부터 해야 한다. 이 실장은 “현장에서 마주하는 가이드라인은 추상적”이라며 “언론단체나 협회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참고해 개별 언론사가 윤리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30년 전에는 신군부의 보도지침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언론사 사내 보도지침의 시대”라는 신홍범 민주언론협의회 실행위원의 말을 인용했다. 신 위원이 말한 ‘사내 보도지침’은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 추구와 언론 스스로 권력화된 점이다. 시민들이 언론 보도를 멀리하며 언론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원인에는 이런 모습에 관한 실망이 있다고 했다. 신 사무처장은 “대표적인 것이 의미없는 단독, 속보”라고 했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 실장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 실장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공영방송 망가졌지만 개혁과제에서 빠져

손석춘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발표로 시작된 2번째 토론에서는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논의됐다. ‘시대정신과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과제’의 주제에 이원섭 전 가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성현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토론은 손석춘 교수의 발표에서부터 시작됐다. 손 교수는 신방복합체가 언론 시장의 독과점을 강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중동 신방복합체에게 저널리즘 복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안의 저널리즘’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와 <정치합시다>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저널리즘 토크쇼>는 수사 중인 최강욱씨를 섭외했고 <정치합시다>는 유시민과 홍준표, 박형준을 패널로 섭외했다”며 “토크쇼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사라졌고 <정치합시다>의 모습은 양당체제를 공고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대체 왜 한국의 공영방송은 ‘친정부 편향’일 수밖에 없는지 의문이다”고까지도 했다. 

손 교수는 21대 국회의 3대 개혁 과제에 언론이 빠져있는 것을 지적하며 각성을 촉구했다. 21대 국회가 발표한 3대 개혁 과제는 국회, 권력기관, 교육 개혁이었다. 손 교수는 현재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언론 지형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봤다. 그는 “외부에서도 참여하는 미디어 위원회를 활성화할 것”과 “언론이 정파적 관점을 탈피하고 민중적 관점을 가질 것”을 주장했다. 

손석춘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시대정신과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손석춘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시대정신과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저널리즘 복원은 과도한 정파성 탈피에서 시작

이원섭 전 가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과도한 정파성을 탈피해야 한다”며 “기자의 혼이 실종된 것 같다”고 손 교수의 진단을 동의했다. 박성현 자유언론 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은 과도한 정파성 추구는 견제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했다. 박 편집위원은 “저널리즘의 존재 목적인 ‘진실성’을 견지하는 중요하다”며 “취재에는 기자의 문제의식이 있고 언론이 완전한 중립성,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반면 손석춘 교수와 대안을 다르게 생각하는 패널도 있었다. 이선민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과도한 정파성을 탈피해야 한다는 손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대안을 달리 생각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홍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사매매 관행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손 교수의 ‘민중적 관점’은 청년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관점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이날 행사는 이후 80년 제작거부 언론 투쟁 40년 기념식까지 진행됐다. 기념식에서는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인사말을 했고 김중배 전 기자가 격려사를 했다. 이들은 모두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