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무시하고, 백악관에 조치 요청한 청와대의 속타는 마음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6.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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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23일 정식 출간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22일 청와대가 볼턴 회고록 내용에 대해 정면 박박했습니다. 볼턴은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은 조현병 환자같은 생각 (schizophrenic idea)이라고 썼습니다. 청와대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간 진솔하고 건설적 협의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형태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조현병같은 생각이라는 발언에 대해 그것은 그 자신이 판단해 봐야 될 문제다. 그 본인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볼턴 자서전에 격노한 청와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급 맞춘 대응

언론보도 과정에서는 명확하게 분리되지는 않았지만 22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 공식입장은 짧게 읽고, 대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입장을 길게 대독했습니다. 청와대에선 볼턴의 카운터파트였던 정 실장이 입장을 밝히는 것이 격에 맞다고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 실장은 회고록에 대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정상들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다.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가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정 실장의 입장문 형태를 빌려 대응한 것은 한미 외교당국 간 공론화 할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청와대가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회고록 내용이 기정사실로 굳어질 수 있어 회고록 내용이 처음 보도된 지난 18일 이후 상황을 주시하다 회고록 나오기 하루 전에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2. 백악관을 향한 당부

정의용 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내용은 21일 저녁 미국 국가안정보장회의에 전달됐다고 전했습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미국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인 만큼 양국의 신뢰에 금이 가는 상황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력하게 당부한 것이기도 하다.백악관은 출판사측에 회고록 400여곳을 수정 및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중 한반도 관련 내용은 110곳에 달합니다. 한국측의 요청에 부응한 겁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북미 비핵화 외교를 한국의 창조물로 묘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진찍기용으로 판문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평가했습니다청와대는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이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폄훼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공식대응했습니다. 볼턴 회고록은 한미양국 이해를 침해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미간 공조를 통해 볼턴 흔적 지우기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3. 한국 정치에 나비효과

청와대 발표는 야당의 대여 공세에 대해 적절하게 선을 긋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이미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대남강경대응으로 대북외교성과가 빛이 바랜 상태에서 볼턴의 폭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통합당은 회고록 내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 설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고 박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정부의 즉흥적인 자가발전 외교가 결국 한·미 신뢰를 깨버리고, 남북관계는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처럼 파탄에 빠졌다고 비판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논평에서 모든 것이 각본에 의한 굴욕적 드라마였음이 드러났다“(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이렇게 배제되고 소외당해왔다는 것은 충격을 넘어 굴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통합당은 북한의 대남 도발 규탄 및 북핵 폐기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볼턴에 대해 공격하며 청와대 지원사격에 나섰습니다. 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볼턴이) ·미 관계 개선을 전혀 바라지 않았고, 내심 파탄을 바랐다고 실토한 것"이라며 볼턴을 '허접한 매파'라고 비난했습니다. 김경협 의원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결렬시키기 위한 볼턴의 솔직한 고백, 이것이 미국 네오콘(보수 강경파)의 진심"이라고 ㅂ판했습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했던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라는 둥, 북미 외교가 한국의 창조물로 '가짜 어음'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의 말은 믿지 못하고, 자신의 책 판매에 혈안이 된 볼턴의 말은 믿는가. 이런 야당의 행태야말로 국격을 떨어트리는 자해 행위"라며 보수야당을 공격했습니다. 당분간 볼턴 회고록 내용을 둘러싼 진위논쟁이 이어지면서 여야간 대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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