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균' 아닌, '향균 제품'이 넘쳐나는 어이없는 이유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6.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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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가 앓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업종은 뜻하지 않게 호황을 맞았다. 살균·소독제, 마스크 등 미생물과의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인류의 무기를 만드는 산업이다.

미생물과의 싸움. 한국어에서는 항균(抗菌: 균에 저항함)이라고 부른다. 제품의 원료나 표면을 각종 미생물이 서식하기 어려운 재질로 처리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항균 처리라고 부른다.  여러 기관에서 항균 성능을 시험한 시험성적서를 발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항균 못지 않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향균>이다. 인터넷 검색에 <향균>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향균 필름, 향균 스티커, 향균 마스크, 향균 히어로, 향균 물티슈 등 무수한 <향균>제품이 쏟아진다. 모두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섬유기업 효성이 자사의 항균제품을 '향균사'라고 홍보하고 있다. 효성은 뉴스톱의 취재 이후 해당 표현을 '항균'으로 바로잡았다.
섬유기업 효성이 자사의 항균제품을 '향균사'라고 홍보하고 있다. 효성은 뉴스톱의 취재 이후 해당 표현을 '항균'으로 바로잡았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굴지의 섬유기업인 효성은 항균기능이 함유된 자사의 섬유제품을 홍보하면서 <향균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효성의 항균 섬유 제품을 원료로 가져다 만든 마스크 등 섬유 제품에는 빠지지 않고 <향균>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심지어는 살균·소독제 이름에도 <향균>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환경부가 5월20일 배포한 '코로나19 살균·소독제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세부지침'에는 '코로나19 자가소독용 환경부 신고제품 중 일반소독용 살균제' 92종이 소개된다. 이 가운데 하나가 '향균 탈취 스프레이'이다.

언론 기사에서도 쉽게 <향균>을 찾아볼 수 있다. 뉴스1, 뉴시스 등 민간 통신사부터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등 경제지,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 종합일간지까지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향균>이란 말을 쓰고 있다. 

<향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사를 출고한 기자들에게 문의했다. 왜 '향균'이라는 말을 사용했냐고. 돌아온 답은 '오타'였다. 본문에도 제목에도 '향균'이 넘쳐나는데 모두 오타란 말인가? '향균'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고, 달리 추론할 뜻도 없으니 오타가 분명하다. 향기로운 균? 너무 이상하고 용어가 쓰인 맥락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마스크 제조업체에 왜 '향균'이라는 말을 쓰냐고 물었더니 "원료 회사에서 '향균사'라는 말을 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는 '향균'이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무분별한 '복붙' 때문은 아닐까? 제품을 만들어 이름을 붙이는 회사에서도, 보도자료를 가공해 기사를 만들어내는 언론사도, 협찬 받은 제품의 사용후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인플루언서'도 말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컨트롤C+컨트롤V'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향균>제품 불매운동을 제안한다. 자기네 제품이 무슨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컨트롤C+컨트롤V'를 누르는 회사들을 향한 경고다. 내가 사려고 하는 제품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나를 포함한 소비자들이 자성의 기회로 삼자는 뜻이기도 하다. <향균> 제품이 불매의 대상이 되면 아무렇게나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우리말도 약간은 치유될 수 있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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