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통령 비판 대자보 유죄' 전두환 때도 없었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6.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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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비난 대자보를 붙인 청년에게 '건조물침입'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지난해 11월 24일 김모씨(25)는 단국대 천안캠퍼스 자연과학대학 건물 내부 등 4곳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약식 기소된 바 있다. 단국대 측은 학교에 피해가 없으며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으나 김씨는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를 두고 보수성향의 청년단체인 신(新)전대협은 "전두환 때도 없었던 대자보 유죄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정말 전두환 군사정권때 대자보 유죄 판결이 없었는지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를 통해 '대자보+유죄', '대자보+기소'로 키워드 검색을 해봤다.  그 결과 1980년대 대학가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게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대학생들의 사례가 여러 건 검색됐다.

연대기 순으로 가장 먼저 검색되는 사건은 '무협지에 공산이론 전 연대생 3년 선고' 제목의 기사다. 1982년 2월13일 서울형사지법은 연세대 신학과 4학년 박모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위반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무림파천황'이라는 무협소설을 집필하면서 공산주의 이론을 삽입해 2000권을 제작, 반포한 혐의를 받았다. 박씨는 또 반정부 대자보를 작성해 두 차례 연세대 교내에 게시한 혐의도 받았다.

1987년 5월1일 자 <동아일보>에는 '민주조선 대자보 관련 서울대 2명 집유 선고'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형사지법은 서울대 민주조선 대자보 사건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울대 서양사학과 3학년 황모씨에게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최모, 박모씨에 대해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대 민주조선 대자보 사건'은 1986년 10월10일 경찰이 서울대 인문회관 벽에 북한의 ‘민주조선’ 10월5일자에 게재된 내용을 그대로 옮긴 대자보를 수거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당시 치안본부는 “지금까지 지하불온 유인물과 학원가의 벽보 가운데 북괴의 주의주장을 인용 각색해서 사용한 경우는 있었지만 전문을 그대로 옮겨 쓴 벽보는 이번이 처음으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정권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뒤 1980년 9월1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후 87년 민중항쟁을 거치며 1987년 10월 직선제 대통령 선출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통과됐고 1988년 제6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따라서 1979년말~1988년 2월까지를 전두환 정권기라고 본다면 "전두환 정권에서도 대자보 유죄판결을 없었다"고 밝힌 보수성향 청년단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보수성향의 학생단체 '신전대협'이 배포한 전단. 대통령 비판 대자보가 유죄를 받은 건 전두환 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성향의 학생단체 '신전대협'이 배포한 전단. 대통령 비판 대자보가 유죄를 받은 건 전두환 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전두환이 아닌 다른 정권때는 어땠을까. 이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비방이 유죄 판결로 이뤄진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했던 2010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설치한 홍보물 22개에 쥐 그림이 덧칠해져 이슈가 됐다. 사법당국은 수사 끝에 대학강사 박모씨를 체포했고, 박씨는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비판 유죄 사례가 있었다. 풍자 전단을 뿌린 팝아티스트 이하(42·본명 이병하)씨는 2014년과 2015년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 1만8000여장을 직접 배포하거나 타인이 뿌리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전단지엔 박 전 대통령 얼굴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여주인공 복장이 합성돼 있거나, 침몰하는 종이배를 배경으로 한복 차림의 박 전 대통령이 개를 치마폭으로 감싸는 모습 등이 담겼다. 검찰은 이씨에게 건조물 침입, 경범죄처벌법,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유죄가 확정됐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다가 기소되어 벌금이 확정된 사건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대통령 비판 후 처벌받은 사건과 유사하다. 경찰은 학교측 신고가 들어와 수사에 들어가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단국대 천안캠퍼스측은 신고한 것이 아니고 대자보가 붙은 사실을 업무 협조 차원에서 경찰에 알려준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피해자가 없거나 처벌을 원치 않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기소를 하고 사법부가 유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정권교체가 된 이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죄가 되는 사례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2월 당시 문재인 대선 예비후보는 JTBC 예능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했다. 당시 패널인 전원책 변호사는 문 후보에게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나'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참아야죠 뭐. 국민들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답했다. 신 전대협이 배포한 전단 사진은 이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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