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총을 구한 '소외 청소년'의 폭주, '약자 혐오' 일본에 경종을 울리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0.07.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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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들의 뿌리를 시들게 하는 힘이  (Drives my green age; that blasts the roots of trees)

나의 파괴자다. (Is my destroyer.)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구부러진 장미에게 말할 수 없다 (And I am dumb to tell the crooked rose)

내 청춘도 똑같은 겨울 열병으로 굽어졌음을. (My youth is bent by the same wintry fever.)”

「바보 타로」는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라는 시로 신인상을 받은 뒤 마치 자신의 노래처럼 살다간 영국의 시인, 딜런 토마스를 연상시키는 문제작이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바보 타로」는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라는 시로 신인상을 받은 뒤 마치 자신의 노래처럼 살다간 영국의 시인, 딜런 토마스를 연상시키는 문제작이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 제작위원회

문득 열아홉에 이 시를 써 평단으로부터 ‘천사 혹은 악마’라 불린 작가, 딜런 토마스를 떠올렸다.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 잠시 시계를 2018년의 12월 18일로 돌려보자.

정토종 본산 부지 한구석에 세워진 33층 마천루에서 마흔 세 번째 호치영화상(The Hochi Film Awards)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올해 초 심은경에게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안긴 일본 아카데미상보다 2년 일찍 재일한국인 문호 김봉웅 등을 초대 심사위원으로 선임해 제정된 이 상은 최양일, 기타노 다케시, 이상일 등 역대 수상자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알 수 있듯 매년 최고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에게 수여되었다.

그런데 이날 밤 이변이 일어났다. 감독상 수상자로 그해 5월 칸에서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호명되지 않은 것이다. 상은 <일일시호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간 오모리 타츠시 감독에게 돌아갔다. 한 시대를 리드하는 감독의 세대가 60년대 생에서 70년대 생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결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면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자.

2005년에 내놓은 데뷔작 <게르마늄의 밤>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다음 작품인 <켄타와 준과 카요짱의 나라>는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되었다. 대중성도 검증받았다. 한국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베를 엮다』로 사랑받은 미우라 시온과 의기투합,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마호로 역 앞 다다 심부름 집>은 개봉 48시간 만에 흥행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영화제 초청 행렬도 계속되었다. 다음 작품인 <도련님>도 뒤질세라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 갔고,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으로 첫 방한을 성사시켜준 <안녕 계곡>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심시위원특별상까지 받았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할 때마다 차기작으로 흥행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연출하며 인기몰이를 하는 영민함을 보인 반면, 그는 ‘차세대 선두주자’로 인정을 받자마자,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작품을 향해 돌진하는 우직함을 보였다.

‘소확행’붐을 일으킨 「일일시호일」이후 70년대 생 감독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오늘’은 이미 예정되어있던 결과이기도 했다. 지난 2005년 「게르마늄의 밤」 이후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은 세계의 유수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했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소확행’붐을 일으킨 「일일시호일」이후 70년대 생 감독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오늘’은 이미 예정되어있던 결과이기도 했다. 지난 2005년 「게르마늄의 밤」 이후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이 세계의 유수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했다. 사진제공: Harvest film Co., Ltd.

이는 모두에서 필자가 딜런 토머스의 시를 인용한 이유와도 연관된다.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로 신인상을 받은 시인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세상의 위선에 대항하며 삶과 죽음, 성장과 노쇠, 창조와 파괴의 충동적 에너지를 담은 노래들을 발표했다. 쌓인 명성과 세간의 기대에 대한 배반. 오모리 감독이 8밀리 영화를 만들던 대학시절부터 줄곧 함께해 온 ‘동지’(프로듀서 곤도 타카히코)와 돌연 20년 이상 준비해왔던 <바보 타로>를 제작한 것도 같은 맥락 아닐는지.

‘타로’란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다. 호적도 없고 학교에 가본 적도 없이 홀어머니에게 방치된 채 온종일 공터에서 지내는 그를, 사람들은 한국어의 ‘아무개’, 영어의 ‘존 도(John Dow)’쯤에 해당하는‘타로’라 부른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에이지(스다 마사키), 스기오(나카노 타이가)와 함께하던 타로의 위태로운 일상은 우연히 손에 넣은 권총 한 자루에 의해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그렇게 극사실주의(hyperrealism)와 초현실주의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올해 최고의 문제작, <바보 타로>는 2016년 가나가와의 지체장애인복지시설에서 일어난 19명 학살사건, 소외계층의 아이와 그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부모, 약자 혐오 같은 후기 자본주의 세계의 병적 징후를 15세 소년의 폭주하는 에너지를 통해 그려낸다. 실로 “일본사회에 날리는 카운터펀치”같은 영화다.

하지만 “악평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다들 아예 입을 닫아버리더라”며 쓴웃음을 짓던 곤도 프로듀서의 술회처럼 일본 평단과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도 그럴 것이, 훈훈한 감동의 걸작이나 한편 더 만들어 주리라 믿었던 모두의 예상에 반하는 것은 물론, 아픈 곳을 찔러대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오모리 감독은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기색이다.

호적도 없고 학교에 가본 적도 없이 홀어머니에게 방치된 채 온종일 공터에서 지내는 그를, 사람들은 한국어의 ‘아무개’, 영어의 ‘존 도’쯤에 해당하는 ‘타로’라 부른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에이지, 스기오와 함께하던 타로의 위태로운 일상은 우연히 손에 넣은 권총 한 자루에 의해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호적도 없고 학교에 가본 적도 없이 홀어머니에게 방치된 채 온종일 공터에서 지내는 그를, 사람들은 한국어의 ‘아무개’, 영어의 ‘존 도’쯤에 해당하는 ‘타로’라 부른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에이지, 스기오와 함께하던 타로의 위태로운 일상은 우연히 손에 넣은 권총 한 자루에 의해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 제작위원회

홍상현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셨다. 한국의 주요 국제영화제에 모두 참가하셨다. 올해는 특히 경쟁부문에 초청되셨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오모리 타츠시

영화제에 초청된다는 것은 그 영화가 국제적으로 평가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한 까닭에 대단히 기쁘다.

아울러 세계의 많은 분들, 그중 특히 이웃나라 한국의 분들에게 제 영화가 전해졌다는 점, 저 자신 감독으로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할 뿐더러, 일본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만든 작품에 인류적 보편성이 부여되었음을 의미하기에 더욱 뿌듯하다.

 

홍상현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무용가, 마로 아카지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따지는 딱히 아티스트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을 단번에 뒤바꾼 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오모리 타츠시

정확히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예술에 흥미가 없었다. 부친의 업인 무용에 대해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느낄만한 감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도리어 아버지가 회사원인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아버지의 세계를 느끼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 예술과 조우하니 그것이 극약처럼 작용하더라. 삶의 다양성을 깨닫게 된 거다. 사회에서‘나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고양감(enhancement)이나 그 밖의 복잡한 심정 등을 영화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스테레오타이프의 사회에 영합하는 것만 바라보던 때는 도리어 삶이 힘겨웠는데 그 시기를 기점으로 자유로움을 맛보았다. 이내 아버지의 춤추는 모습도 재미있게 느껴지더라.

 

홍상현

동생인 오모리 나오 배우도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유명하다.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안녕 계곡>에서는 감독과 배우로 최고의 팀플레이를 보여주지 않았나.

오모리 타츠시

동생을 신뢰한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배우를 믿는 일이기도 하고.

이 믿음은 무조건이며 전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오모리 나오는 가족인 까닭에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빨리 제게 그런 신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저에 대한 믿음 역시 다르지 않았을 테고.

한국 독자들에게는 『베를 엮다』로 유명한 소설가 미우라 시온은 오모리 타츠시 감독과 “세계와의 거리감, 사물을 바라보는 법, 고독에 대한 동경이나 두려움” 등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공통성”을 가진 ‘예술적 동지’이다. 2011년 그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하고 오모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마호로 역 앞 다다 심부름 집」은 개봉 48시간 만에 흥행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사진제공: Ⓒ2011 「마호로 역 앞 다다 심부름 집」제작위원회
한국 독자들에게는 『베를 엮다』로 유명한 소설가 미우라 시온은 오모리 타츠시 감독과 “세계와의 거리감, 사물을 바라보는 법, 고독에 대한 동경이나 두려움” 등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공통성”을 가진 ‘예술적 동지’이다. 2011년 그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하고 오모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마호로 역 앞 다다 심부름 집」은 개봉 48시간 만에 흥행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사진제공: Ⓒ2011 「마호로 역 앞 다다 심부름 집」 제작위원회

홍상현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휴머니티에 대한 열망을 역설적으로 아웃로(outlaw)한 인물을 통해 그려내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예술가적 저항정신’이라는 면에서 <이지 라이더>같은 데니스 호퍼의 초기 연출작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주로 어떤 영화작가로부터 영감을 얻으시는지.

오모리 타츠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존 카사베츠다. 사랑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도 무척 좋아한다. 인간의 가능성을 역사나 자연 등 저항할 수 없는 것들을 통해 그려내니까. 같은 이유에서 베르너 헤어조크의 작품도 즐겨보고.

이들의 공통점은 관습이나 도덕, 법률 등과 같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부분, 즉 자유롭게 살아 숨 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 아닐까. 그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인성과 접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드라마가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홍상현

작가 미우리 시온도 당신의 커리어와 결코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본다. 예술적 동반자 관계이기도 할뿐더러 그녀의 원작을 영화화한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 집』의 경우, 현재까지도 관객들에게 회자된다.

오모리 타츠시

미우라 작가와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공통성이 있다. 세계와의 거리감, 사물을 바라보는 법, 고독에 대한 동경이나 두려움 같은.

아울러, 그녀는 소설가라서 스토리텔링에 능숙한 반면 저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그 안에서 영화적 표현을 추구할 수 있는 까닭에 상호보완적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본다.

 

홍상현

일본영화에서는 투자자보다도 프로듀서의 능력이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다만, 이게 지나칠 경우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프로듀서의 영화’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면에서 오랜 세월 함께 작업해 온 곤도 프로듀서야말로 이상적인 파트너 같은데.

오모리 타츠시

영화에서는 늘 작품성과 상품성이 함께 요구하는데, 이는 영화가 가진 있는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시점이나 사고방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양조(brew)된 것으로 그것이 어떤 작품에든 배어있다. 이를테면 관객에게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일일시호일>과 <바보 타로>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감독의 영화 ’나 ‘프로듀서의 영화’ 같은 규정을 넘어 침투해가야 한다. 제가 보기에 프로듀서란 감독이라는 ‘화가’에게 캔버스를 마련해주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곤도는 늘 저를 헤아려주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와의 좋은 케미스트리(chemistry)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세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를 인정하기란 게 쉽지 않겠지만. 그런 이유로 모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리는 일 또한 늘어난다. 산다는 것은 무지와 맞닥뜨리는 일. 이는 코로나바이러스일수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일수도, 존 카사베츠가 그리는 사랑의 모습일 수도 있다.”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말이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사람들이 세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를 인정하기란 게 쉽지 않겠지만. 그런 이유로 모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리는 일 또한 늘어난다. 산다는 것은 무지와 맞닥뜨리는 일. 이는 코로나바이러스일수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일수도, 존 카사베츠가 그리는 사랑의 모습일 수도 있다.”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말이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 제작위원회

홍상현

<바로 타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신지 20년도 더 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보더라도 대단히 적절한 느낌이다.

오모리 타츠시

세계와 어떻게 접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질 때마다, 인간은 사회라는 제도로 스스로를 지나치게 감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생명을 지닌 ‘생물’이기에 삶 또한 필연적으로 죽음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역으로 삶을 구가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생명이란 아름답고도 불확실한 것임을 직시해야한다.

예컨대 인류문명이 제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무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세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를 인정하기란 게 쉽지 않겠지만. 그런 이유로 모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리는 일 또한 늘어난다. 산다는 것은 무지와 맞닥뜨리는 일. 이는 코로나바이러스일수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일수도, 존 카사베츠가 그리는 사랑의 모습일 수도 있다.

 

홍상현

김영덕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언급했듯 “이유나 결과에 대한 고민도 없는” 세 주인공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객들이“내내 긴장을 놓지 못하는”이유와도 연관되는 것 같다.

오모리 타츠시

영화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작가로부터 독립적인 성격을 띠는 까닭에 심지어는 휴머니즘이나 그 밖의 어떤 동조압력에 의해서도 노예화되어서는 안 된다. 선악을 초월해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바보 타로>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과 맞물려있다. 여기서 제가 존경하는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야마토야 아츠시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싶다.

“영화는 가장 순수한 지상의 도록이다.

코뿔소가 대평원을 달리는 것처럼 온전한 놀라움이다.

나는 그 코뿔소처럼 달리고 싶다. 그런 연출이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스피드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눈을 부릅뜨고 아침노을 지는 대평원의 싱그러운 내음을 맡고 싶다.

이 폭주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홍상현

<게르마늄의 밤>에서도 그랬지만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미장센이 돋보인다. <바보 타로>의 시각적 표현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오모리 타츠시

<바보 타로>의 시각적 표현은 소극적 표현과 적극적 표현으로 나뉜다.

전자는 로케나 구도처럼 관객들이 부지불식간에 영화의 세계를 느껴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강변이나 건술 중인 외딴 집에서의 촬영에 큰 비중을 두었다. 등장인물을 사회적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장소나 집 = 가족이라는 의미작용을 할 수 없는 곳에 배치한 것이다.

후자는 어떤 강한 의도를 느끼게 한다. 예컨대 무용집단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의 무용수들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몹신이 그렇다. 초현실적이지. 죽음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려는 의도에서 연출했는데 현실과의 매칭이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그 자신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국화와 단두대」에 출연한 배우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영화계에서 배우에게서 최대의 연기력을 이끌어내는 걸로 유명하다. 필자가 노하우를 묻자 오모리 감독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배우에 대한 신뢰”였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그 자신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국화와 단두대」에 출연한 배우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영화계에서 배우에게서 최대의 연기력을 이끌어내는 걸로 유명하다. 필자가 노하우를 묻자 오모리 감독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배우에 대한 신뢰”였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 제작위원회

홍상현

배우에게서 최대의 연기력을 이끌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신데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지.

오모리 타츠시

우선은 배우를 철저하게 신뢰해야한다. 배우의 악기는 육체이므로 긴장이 드러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아울러, 연기란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영화감독들의 실수는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무조건 옳은 양 행동하는 것이다. 제 경우 배우에게 연기를 하는 시점에 그가 다른 누구로도 대체될 수가 없으며, 이는 그 인성이 표명되기 때문임을 끊임없이 전달한다.

 

홍상현

역시 감독 자신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갖고 계시기 때문인지 관점과 논리가 차별화되어 있다.

오모리 타츠시

배우가 긴장 속에서 있다는 것을 안다. 아울러 영화자체와 다른 점에 너무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필요 없는 부분은 배제해도 좋다고 배우에게 말해줄 때도 있다.

 

홍상현

에이지 역의 스다 마시키 배우는 한국에도 팬이 많은데 <바보 타로>에서 가장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오모리 타츠시

스다 배우와는 전에 작품을 함께했던 경험이 있어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있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역할에 대해 120퍼센트 이해하고 있더라. 스다 배우 특유의 영화와의 거리감을 좋아한다. 배우로서 온몸을 던져 작품과 감독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바보 타로」는 2016년 가나가와의 지체장애인복지시설에서 일어난 학살사건, 소외계층의 아이와 그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부모, 약자 혐오 같은 후기 자본주의 세계의 병적 징후를 15세 소년의 폭주하는 에너지를 통해 그려낸다. 소년과 파괴자 사이를 오가는 타이틀 롤을 연기한 요시야 말로 「바보 타로」최대의 ‘발견’이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바보 타로」는 2016년 가나가와의 지체장애인복지시설에서 일어난 학살사건, 소외계층의 아이와 그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부모, 약자 혐오 같은 후기 자본주의 세계의 병적 징후를 15세 소년의 폭주하는 에너지를 통해 그려낸다. 소년과 파괴자 사이를 오가는 타이틀 롤을 연기한 요시야 말로 「바보 타로」최대의 ‘발견’이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 제작위원회

홍상현

유약하며 사랑에 갈등하는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스기오 역의 나가노 타이가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스기오라는 캐릭터의 함의도 있는 것 같던데.

오모리 타츠시

그렇다. 타로와 에이지, 그리고 사회와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두 사람의 큰 파도에 휩쓸리는. 관객은 그를 통해 이 영화를 본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가 죽고 타로는 살아남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가능성을 표현하려 했다.

 

홍상현

타이틀 롤을 맡고 있기도 하지만 역시 <바보 타로> 최대의 발견은 요시 배우라고 생각한다. 소년과 파괴자 사이를 오가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신인을 찾아냈나.

오모리 타츠시

무척 많은 젊은 배우들을 만나봤지만 이 역에 맞지 않았다. 하나같이 사회화가 되어있더라. 다들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거다. 그러다 구글에서 ‘14세 유명인’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다 그를 발견했다. 사진에서 빛이 났다. 또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홍상현

<바보 타로>가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모리 타츠시

매일 스릴이 넘쳐서 정말 재미있었다. 그의 섬세한 마음과 상냥함, 그리고 겁 없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영화인의 하찮은 룰(rule) 따위는 버리고, 최대한 그의 룰에 따라 촬영하려 했다.

「바보 타로」가 세 번째 출연작인 우에다 사샤 배우는 스기오에 대한 호오의 감정이 뒤섞여 일어나는 혼란스러움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장면에서 배우의 마음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여주려 했던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실현시켜주었다. 「바보 타로」가 영화 데뷔작인 요시와 더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제작위원회
「바보 타로」가 세 번째 출연작인 우에다 사샤 배우는 스기오에 대한 호오의 감정이 뒤섞여 일어나는 혼란스러움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장면에서 배우의 마음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여주려 했던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실현시켜주었다. 「바보 타로」가 영화 데뷔작인 요시와 더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사진제공: Ⓒ2019 「바보 타로」 제작위원회

홍상현

요코 역의 우에다 사샤 배우는 마치 <바보 타로>를 통해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감독의 연출에 따라 배우의 역량이 얼마나 극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모리 타츠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다. 우에다 배우는 제가 워크숍에서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보니 오히려 가장 엄격하게 대했을지도 모르는데 피아노도 직접 연주하고 노출장면까지 소화해주셨다. 저는 제 작품 속에서 배우의 마음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여주려 하며, 그런 의도의 장면을 시나리오에 담아낸다. 예컨대 <바보 타로>에도 요코가 스기오에 대한 호오의 감정이 뒤섞여 일어나는 혼란스러움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신이 있다. 무척 힘들었을 텐데 잘 해내더라. 우에다 배우가 영화계에서 좀 더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상현

<바로 타로>를 보면서 시종일관 들었던 생각은 오모리 타츠시라는 감독에게 일본영화계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동세대를 리드하는 감독으로서 국제무대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신가.

오모리 타츠시

일반적 도덕론에 가까운 휴머니즘이나 헤브라이즘적 윤리관에만 기대게 될 때 영화는 오히려 그 자유를 제한받을 수 있다. 영화언어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특정한 논리구조 안에서 이미 답이 정해져있는 몽타주컷 백(cut back)만 보다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저는 앞으로도 세간에서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려고 내세우는) 이론이나 이유, 구실, 핑계, 혹은 도덕에 비추어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조명하며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를 위해 영화제, 관객들과의 직접적인 만남, 세계 동시 개봉 등과 같은 채널들이 제게 기회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렇게 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생각이다.

「바보 타로」의 해외용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관객들은 7월 11일 20시와 7월 15일 16시 30분. 두 번에 걸친 상영회 티켓을 7월 2일에 일찌감치 매진시키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사진제공: Color Bird Inc.
「바보 타로」의 해외용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관객들은 7월 11일 20시와 7월 15일 16시 30분. 두 번에 걸친 상영회 티켓을 7월 2일에 일찌감치 매진시키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사진제공: Color Bird Inc.

“<바로 타로>라는 일본영화가 있습니다. 일본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생물에게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죽음이라는 한계에 등을 돌리고 오로지 돈에만 매달림으로써 삶 자체를 구가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한 명의 이름 없는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이름이 없으니 모두들 타로라 불렀지요. 그는 삶의 의미도 죽음의 의미도 몰랐어요. 하자만 실은 누구도 이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한답니다. 그저 아는 척을 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신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셨으니까. 타로가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나타난 기적의 소년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바보’라고 하는 사람도, 아니, 동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요. 적어도 저는 타로가 순수한 지상의 놀라움이라고 생각합니다.한국 관객 여러분께, 부디 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7월 11일 20시와 7월 15일 16시 30분. 두 번에 걸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회의 온라인예매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는 낭보를 전하자“(코로나 19 사태로) 방한이 어렵게 되지만 않았던들 매일 시간을 내서 대면 GV 연습이라도 했을 것”이라며 소년처럼 웃던 오모리 감독. 6년 전 <안녕 계곡>의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작품의 심각한 분위기 때문에 자칫 딱딱하게만 흐를 수도 있었던 GV의 분위기를 적절한 균형감으로 리드해가던 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던 지인의 술회가 떠올랐다.

확실히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그와 직접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나, 크게 슬퍼하지는 않으려 한다. 막연하지만 앞으로 그와 영화제를 통해, 혹은 새 작품의 국내 공개를 통해 많날 기회가 늘어날 거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70년대 생 감독의 선두주자 오모리 타츠시’의 활약을 좀 더 지켜보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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