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자 조사도 없이 "감봉 1개월"...결국 외교문제로 비화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7.31 15: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이 현지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뉴질랜드 정부가 한국 정부에 공개적으로 실망을 표했습니다. 뉴질랜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30일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경찰 조사를 진행하도록 해당 외교관의 면책 특권을 포기하지 않은 데 대해 실망을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대변인은 이어 뉴질랜드는 모든 외교관이 주재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기를 기대한다. 이제 한국정부가 다음 조치를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외교관 A씨는 2017년 말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에 근무할 때 뉴질랜드 국적 남성 직원의 엉덩이와 가슴을 세차례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20181월 한국으로 귀임했습니다. 올해 2월 뉴질랜드 법원은 A씨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25일 뉴질랜드 현지 언론이 보도하면서 크게 알려졌고 2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정상 통화에서 언급이 되어 외교문제로 비화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확인해 처리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성추행 수사 비협조 한국에 실망했다는 뉴질랜드,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안 지켜진 피해자 중심주의

당시 A씨의 성희롱 문제가 불거지면서 뉴질랜드 한국대사관은 A씨를 조사한 끝에 2018년초 한국으로 귀임시켰습니다. 외교부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 및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A씨는 2018218일 감봉 1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습니다. A씨는 현재 필리핀 총영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경찰은 한국 정부에 A씨를 뉴질랜드로 소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A씨가 뉴질랜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을지 여부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이며 뉴질랜드 경찰의 대사관 내 폐쇄회로TV 등 자료제공 협조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관의 면책특권이 이 혐의에도 적용이 된 겁니다.

외교부의 문제는 A씨에 대해 징계 조치를 내리면서 피해자의 주장을 듣지 않았다는 겁니다. A씨는 직원의 가슴을 툭툭 쳤을 뿐이며 성추행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주장은 다릅니다. 피해자는 A씨가 201711월쯤 대사관 사무실 컴퓨터를 고치라고 부르더니 뒤편에서 자기 엉덩이를 꽉 쥐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얼마 뒤에는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의 사타구니 부위와 허리벨트 부분을 움켜쥐었다고 피해자가 뉴질랜드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외교부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면, 피해자측의 주장을 조사를 했어야 하고, 관련해서 폐쇄회로TV와 당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을 조사했어야 하지만, 이런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30일 뉴질랜드 외교당국은 A씨와 함께 근무했던 한국 대사관 직원들을 참고인 조사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당시 CCTV 자료를 요구했지만 외교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 외교부 무관용원칙은 어디로

201612월 칠레 한국대사관 참사관 박모씨는 현재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심지어 박씨는 한류 전도사였습니다. 한류에 빠져있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며 음란한 문자를 보내고 강제 추행을 하려고 한 것이거 현재 고발 프로그램의 함정취재에 걸린 겁니다. 한국 정부는 박씨는 한국으로 귀국 시켰고 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20177월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 대사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여직원을 성추행 및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해당 대사는 한국으로 소환되어 법정에 섰고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외공관 성추행/성폭행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자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재외공관 성비위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외교부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성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외교부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지만 재외공관 성추행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지속됐습니다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이 지난해 10월 외교부터로터 받은 성범죄 관련 비위행위 일지에 따르면 무관용원칙 선언 이후 성 비위 사건은 총 10건으로 이중 강등·정직·파견과 같은 중징계는 6, 견책·감봉 등 경징계는 4건이었습니다. 이중 재외공관에서 발생한 것이 8, 국내 본부가 2건이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망고를 주겠다며 행정직원을 집으로 불러 술을 먹인 뒤에 성추행한 파키스탄 대사관의 외교관은 정직 3개월 징계에 그쳤고, 외교부는 형사고발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역시 현지 언론 보도가 있기 전까지 외교부는 3년간 성추행 사실을 사실상 쉬쉬 했으며 감봉 1개월이라는 면죄부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있었어야 하는데, A씨 진술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가 이 사태에 이르게 된 겁니다.

 

3. 내로남불의 한국 외교

최근 한국 경찰은 한국여성을 추행한 전 필리핀 대사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렸습니다. 해당 외교관은 지난해 12월 한국인 여성을 뒤에서 껴안는 등 성추행했고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올 초 필리핀 귀국 뒤 대사직 물러나고 잠적했습니다. 외교부는 "주한 외교단 사건·사고 발생 시 관련 국제법·국내법에 따라 엄중히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78월에는 주한 멕시코 대사관 외교관이 한국인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해당 외교관은 면책특권을 이용해 경찰 조사를 거부하다 출국했습니다. 당시 한국 외교부는 멕시코 대사관에 항의를 하며 주재국 법령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주재국 법령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한국 외교관은 면책특권을 이용해 귀국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외교부의 내로남불 행태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