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을 마실 수 있을까?

  • 기자명 더사실포럼
  • 기사승인 2020.08.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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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물이네요”.

-빌 게이츠 (2015), 5분전에 인분이었던 슬러지에서 추출하여 정화된 물을 마시고 나서 

 

2015년 1월, 세계적 갑부인 빌게이츠가 뜬금없이 사람의 배설물에서 정화한 물을 시음하는 행사를 연다. 물을 사 마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 이런 엽기적 행동을 했을까. 야니키 옴니 프로세스 (Janicki Omniprocess)는 사람의 배설물을 식수로 전환하는 기획이다. 빌 게이츠는 바로 이 옴니프로세스를 일반인에게 홍보하기 위해 물 시음 행사에 참여한 셈이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물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위해 야니키 옴니프로세스 개발을 오랫동안 지원해왔다.

인간은 모두 자신이 버린 물을 재활용해 마신다. 옴니프로세스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물의 재활용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내가 버린 물은 보통 하수관을 통해 하수처리장에 들어가고 일정의 처리과정을 거쳐, 이후 하천으로 방류된다. 처리된 방류수는 기존의 하천수와 섞이고 이물은 취수원에서 취수된다. 취수된 물은 먹는 물 공정에서 처리되는데, 이렇게 처리된 물이 다시 각 가정으로 이송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한, 내가 버린 물의 일부는 다시 나에게 되돌아 온다. 물은 돌고 돈다.

쓰고 버린 물을 음용수로 직접 재활용하는 방법을 ‘직접 물 재사용 DPR (Direct Portable Reuse)’라고 한다. DPR이 빌 게이츠가 광고를 할 정도로 중요한 기술인 이유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심화 되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최근의 자료를 보면, 과거 1만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 변화는 1°C 이하인 것에 비해, 최근 100년간에는 지구의 온도가 1°C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 사실이다.

기후변화는 세계적인 물부족을 초래하고 있다. WHO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전 세계의 약 22억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음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은 가뭄으로 인해 항상 물부족 사태를 겪는데, 2016에는 물부족 사태 때문에 도시지역 25%에 강제 절수 조치를 실시해야 했다. 물부족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쓰고 버린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다면, 전 세계적인 물부족의 부담을 덜 수 있다. DPR공정의 핵심은 멤브레인(membrane)이라고 부르는 막을 통해서 물을 걸러 내는 공정이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쓰고 있는 가정용 정수기도 막을 이용하여 수돗물을 걸러주는 공정인데, 이 정수기 막의 구멍의 크기를 더 작게 하면 아주 작은 오염물질도 제거 할 수 있다. 즉 구멍이 촘촘한 막을 사용하면 역삼투막 (Reverse Osmosis) 현상을 통해 하수와 같이 쓰고 버린 물도 먹는 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만으로도 내가 버린 배설물을 재사용해서 마실 물로 만드는 건 가능하고, 실제로 물이 부족한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DPR을 적용해서 물을 재활용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물 문제는 어떤 상황일까? 한 때 물부족 국가라는 말이 떠돈 것처럼, 정말 한국은 물 부족 국가일까?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에서 정한 1인 가용 수자원량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로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 1인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만큼 물이 풍족한 국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가뭄이 과거에는 2~3년마다 한 번 발생하다가, 2008년 이후에는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 . 그렇다면 한국은 DPR을 통해 물을 재활용할 역량은 될까? 놀랍게도 오산시에서도 버린 물을 처리해서 시음한 사례가 있다. 심지어 이러한 시도는 2012년에 했던 것으로, 무려 빌게이츠 보다 3년이나 더 빠르다! 따라서, 한국도 DPR을 할 사회적 여건이나 기술적인 역량은 갖추고 있다. 나아가 DPR 방법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한국에서 꽤나 도전해 볼만한 과제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사회적 성숙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가 버린 물을 직접 먹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DPR에 담겨 있는 실천적 생태 철학적 의미다. 쓰고 버린 물을 음용수 수준까지 끌어 올리게 된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의 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실천적 방안이다. 즉, 이 방식은 구호만으로 지속 가능한 환경(sustainable environment)을 외치는 나이브한 환경운동에 대한 도전적 시발점이다. DPR이 자리잡는다면,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에게 건강한 환경을 물려주는 가치를 교육하는 일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법제도 개선 문제다. 기존의 법제도는 먹는 물(상수) 관련 규정, 버리는 물(하수) 규정이 따로 되어 있고 관리 주체도 다르다. DPR은 버리는 물이 먹는 물로 전환되는 공정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통합 관리해야 하는 지, 그리고 현재 분절되어 있는 상하수도 관리 주체도 정비해야 한다.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는 세번째는, 일반인들의 DPR에 대한 인식(perception)을 개선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DPR공정은 심리적 저항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합의와 소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국내의 경우, 가정의 수돗물 음용률도 그리 높지 않은 현실에서 DPR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왜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을 단순히 공청회나 의견 수렴의 절차로 받아들이지 말고, 실천의 일부로 수용해야 한다.

그림 1. IVL 스웨덴 환경 연구소(Swedish Environmental Institute)가 7년간의 고심 끝에 만든 스웨덴 스토홀럼 가정 하수 처리수를 이용한 스웨덴 최초의 맥주, PU:REST. IVL SWI와 뉴카네기 맥주와 칼스버그 스웨덴의 공동 작품으로 본 프로젝트는 이루어졌다. 물의 순환의 의미를 생동감 있게 시민에게 전달하는 과학적 작품이라 할만하다.     
그림 1. IVL 스웨덴 환경 연구소(Swedish Environmental Institute)가 7년간의 고심 끝에 만든 스웨덴 스토홀럼 가정 하수 처리수를 이용한 스웨덴 최초의 맥주, PU:REST. IVL SWI와 뉴카네기 맥주와 칼스버그 스웨덴의 공동 작품으로 본 프로젝트는 이루어졌다. 물의 순환의 의미를 생동감 있게 시민에게 전달하는 과학적 작품이라 할만하다.     

 

현재 물값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대한민국 실정에서의 DPR은 조금 먼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기후변화에 의한 우리나라의 물 문제가 불안해 지는 시점에서, 국내 DPR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어, 이 운동이 다가오는 지속가능 경제를 선도하는 실천적 축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김성표는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다. 토목공학과에 진학하여 정답을 찾아야 하는 역학분야에서는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교 3학년때 강변에서 가축분뇨의 영향을 계산하라는 석사 지도교수님의 시험문제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환경 공부를 하리라 결심. 이후 미국에서 수 환경 및 공학적 인간구조물내에서 항생제 내성을 포함한 미량오염물질 제거에 대한 연구로 박사를 마쳤다. 정답이 없는 물환경문제를 공학적인 해답을 내놓기 위해 다양한 학문의 습득과 과학자들과의 교류에 나름 열심이다. 더사실포럼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더사실포럼(더나은사회실험포럼)은 과학기술계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네트워크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한국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모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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