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선전략은 '닉슨 흉내내기'다

  • 기자명 박상현
  • 기사승인 2020.09.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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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2기 어젠다는 뭘까?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되면 하려는 일에 대해서 밝힌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누구나 어젠다가 있어야 하는데, 2016년에 썼던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쓰기 힘들다. 4년을 받았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객관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다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그 주장은 반만 맞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하는 어젠다는 말한 적이 없지만, 이유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바로 “민주당 대통령이 나오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의 11월 대선 승리전략이기도 하다. 

이 전략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법과 질서,' 다른 하나는 ‘AOC’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두번에 걸쳐 간략하게 설명해보려 한다.

리처드 닉슨(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아 종종 비교대상이 된다.
리처드 닉슨(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아 종종 비교대상이 된다.

 


트럼프의 선거전략 ① 법과 질서, 1968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가 사용하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말을 가져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트럼프가 얼마나 보수/과거회귀적인 주장을 하는지 잘 보여주지만, 이 문구의 ‘again'을 생각해보면 그걸 처음 사용한 레이건 역시도 “미국은 과거에 위대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암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트럼프와 레이건, 두 사람이 지향하는 '위대했던 미국의 시대’는 언제일까? 2차대전에 승리한 직후, 그러니까 1940, 50년대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 시대가 언제 끝났다고 생각할까? 민주당이 집권하고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통과된 1960년대, 즉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집권시절(1961-68)이다. 백인들끼리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환상이 이 때부터 깨졌기 때문이다.

 

린든 존슨의 뒤를 이은 대통령은 악명높은 리처드 닉슨(1969-74)이다. 그런데 사실 1968년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후보는 닉슨이 아니라 JFK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즉 RFK였다. 하지만 RFK는 결정적인 캘리포니아 주 경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 후보를 굳히려는 순간에 암살 당했다.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두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이 RFK의 당선을 확실시 했던 이유는 킹 목사의 암살 이후 일어난 전국적인 폭력시위 사태에서 흑인과 백인을 모두 아우르는 지지를 받으며 미국을 진정시킬 수 있는 후보는 RFK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디애나 주 처럼 보수적인 지역에서 백인들의 지지까지 끌어냈다.

 

1960년 선거에서 JFK에 패했던 닉슨은 그의 동생인 RFK에게 다시 패할 상황이었고, 그가 꺼낸 카드는 바로 "법과 질서(Law and Order)”였다. 비폭력주의를 고수하던 킹 목사가 백인에 의해 암살된 사건으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이 상점에 불을 지르고 폭동을 일으키자, 이들의 공포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 닉슨의 선거전략이었다. 전에도 썼지만, 2020년은 1968년의 판박이라는 말이 나오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위와 같은 상황이다. 여기에는 우연적인 요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1968년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주기적으로 다시 터져나오는 필연으로 보고 있고, 무엇보다 트럼프가 닉슨의 선거운동 전략은 물론 연설까지 고스란히 가져다가 사용하면 상황을 그렇게 몰고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능하다면 여기에 관해서는 뉴욕타임즈의 팟캐스트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사실 이번 포스트는 대부분 이 팟캐스트의 내용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여기에 출연한 Emily Badger기자가 쓴 기사들도 좋은 인사이트를 주니 찾아보시길).

 

에밀리 배저 기자는 트럼프의 닉슨 흉내내기를 “Suburban Strategy(교외지역 전략)”이라 부른다. 대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부유한 주택지역을 서버반(suburban)이라 부른다. 흔히 영화에서 보는 집집마다 잔디밭이 있고 조용한 동네들이다.그런데 이런 교외지역이 미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2차대전 직후다. 20대의 청년들이 오랜 기간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와서 일제히 결혼을 하면서 집을 마려하려고 하니 당연히 주택부족 현상이 벌어졌고, 미국 정부는 이 수요를 채워주기 위해 레비타운(Levittown)처럼 대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을 주택지로 집중 개발하면서 “교외지역(suburban)”이 탄생하게 된다.밀렸던 결혼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갑자기 많아진 신혼부부들을 위해 새로운 타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들에게서 아이들이 일제히 태어나고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 혹은 ‘부머’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니 미국의 경제는 활황을 거듭하게 된다. 집집마다 자동차를 사고, TV와 냉장고, 세탁기를 사면서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나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하지만 흑인들은 이 혜택에서 제외되었다. 부유한 교외지역에서 집을 사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흑인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 없었던 건 물론이고, 새롭게 지어지는 좋은 동네에서 흑인이 집을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다. 지금도 주택구입에 관해서는 많은 차별이 숨어있지만, 그 때는 내놓고 거부하던 시절이다. 결국 흑인들은 좋은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고 살기 나쁜 지역에 모여살게 되었고, 백인 신혼부부가 정착한 교외지역은 점점 땅값이 오르면서 이들은 아무런 힘들이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 (미국도 자산증식수단 1위는 무조건 부동산이다). 게다가 지역의 세금수입으로 학교를 운영하기 때문에 부자동네는 학교도 좋아지고, 가난한 동네의 교육질은 계속 떨어진다. 흑인 아이들은 질 떨어지는 교육을 받고, 부모는 자본을 축적하지 못하니 자식들은 성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악순환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JFK와 린든 존슨의 1960년대가 흑인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민권법을 통과시킨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흑백갈등과 시위를 낳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흑백 모두 다같이 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그 격차를 느끼지 못하다가 1960년대 미국의 고성장의 과실이 전부 백인들에게만 들어가는 것을 흑인들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게는 재산증식의 기회,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면전에서 거부되고 흑인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제3세계와 같은 상황인데, 옆동네에서 보는, 혹은 미디어를 통해 보는 백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었던 거다. 1960년대의 인종갈등으로 유발된 폭동, 2020년 흑인살해로 인해 일어난 시위와 폭동에서 왜 자꾸 백인들의 재산에 불을 지르는지 궁금했다면 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백인들이 가지고 누리는 재산은 바로 차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방화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초점이 거기에 맞춰지는 이유가 그것이라는 뜻이다.


2020이 1968년의 판박이라는 주장을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8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도) 대부분의 역사책은 딱딱하고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안내서가 특정 인물에 관한 책을 읽는 방법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흥미로운 인물에 관해 읽다보면 그 시대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가령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1800년대에 거듭된 프랑스 혁명시기가 이해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1968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위에서 언급한 로버트 케네디(RFK)다. 그런데 마침 내가 RFK의 마지막 82일을 다룬 책을 번역했다(번역을 시작한 작년만 해도 2020년이 이렇게 진행될 줄 전혀 몰랐다). 이건 뒷광고가 아니라 내놓고 하는 광고이지만, 나도 번역하느라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1968년의 미국이 아주 생생하게 다가오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운동을 담은 책 '라스트 캠페인'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운동을 담은 책 '라스트 캠페인'

 

이제까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꾸준히 읽었던 분들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책이고, 읽고 나면 2020년의 미국 정치가 새롭게 보일 만한 책이라 이 자리를 빌어 추천드린다. (그리고 ‘워싱턴업데이트’를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아직 몰랐던 분들에게는 궁금증도 풀어줄..)

*이 글은 페이스북 워싱턴 업데이트 페이지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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