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망겜’이 오히려 잘 나가는 이유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12.14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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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게임 커뮤니티나 게시판, SNS 등지에서 플레이어들로부터 이른바 ‘똥겜’, ‘망겜’ 취급을 받는 게임들이 적지 않다. 게임 웹진이나 뉴스 등에서 신작 게임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면 몇몇 게임의 경우 댓글란은 사실상 안 봐도 예상 가능한 정도다. 이러한 비판적 입장은 특히 몇몇 게임 유형에 집중되는데, 모바일 기반의 롤플레잉 게임들, 국산 MMORPG들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단지 게시판과 커뮤니티의 분위기로만 살펴본다면 이런 게임들이 대체 왜 만들어지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소비자인 게이머들이 이토록 싫어하고 비난하는 게임들이 팔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 아니 반응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비난까지 받는 게임들은 그런데 왜 자꾸 출시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조금 다른 온도차가 존재한다. 얼마전까지 질 낮은 광고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지탄을 받았던 한 게임을 중심으로 살펴 보면 꽤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왕이 되는 자’ 라는 이름의 모바일 게임이다.

2018년 4월 모바일 스토어에 출시된 중국산 모바일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 ‘왕이 되는 자’는 이미 여러 매체나 뉴스 등에서도 혹독하게 비판받은 지 오래인 게임이다. 단조로운 전투 구성, 무의미한 게임 난이도, 성의없는 한글번역 등 게임 자체만으로도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이 게임은 특히 여러 SNS에 걸어 둔 광고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또 본 게임과 매우 무관한 내용을 다루는 바람에 상당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던 게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왕이 되는 자’ 의 매출 순위는 다소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2018년 12월 8일 기준 ‘왕이 되는 자’의 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부문 매출 순위에서 이 게임은 무려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먹는 욕을 생각한다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순위다.

단순 다운로드 순위가 아니라 인 게임 결제를 포함한 매출 순위에서 8위라는 점은 온라인상의 여론과 실제 게임의 매출을 일으키는 플레이어의 숫자와 인당 결제액이 상당히 큰 괴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게임 애호가 층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의 의견과는 달리, 대중성의 측면에서 이러한 게임들은 적지 않은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다수 존재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해당 게임의 매출을 일으키는 과정은 커뮤니티 등에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분명히 존재하는 흐름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모바일게임 매출 순위. 상위권 게임 중에 게임 커뮤니티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마니아층과 일반 게이머의 괴리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대중화의 일로에서 ‘막장 게임’은 더 자주 만나게 될 것

모바일 시대가 도래한 이후 디지털게임은 상당한 수준의 양적 확장을 이루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인앱결제라는 새로운 매출처는 모바일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게임의 수익구조 환경을 열어제꼈고, 콘솔 기기나 고사양의 PC가 없이도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한 대씩 들어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보편 환경은 게임이 익숙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상당히 손쉽게 게임을 접해볼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냈다. 워낙 강력한 매출견인력 때문에 상당수 게임사들이 주력 콘텐츠를 모바일로 돌리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들이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등장하는 게임들이 기존 게이머 입장에서 성에 차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오래된 게임 애호가 입장에서 도무지 모바일 기반으로 등장하는 최근의 고매출 게임들에서 별다른 매력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 게임들을 마냥 게임이 아닌 무언가로 치부해버리기도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매출순위 8위를 하는 그 게임의 이용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게임의 재미를 인정하고 기꺼이 자신의 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이상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게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여성 노출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히어로즈 오브 마이튼 앤 매직 시작.

 

선정적 광고로 문제가 된 왕이되는자.

 

다시 처음의 용어로 돌아가 보자. 최근 쏟아지는 이른바 ‘양산형’이라고 불릴 만한, 게임 애호가들로부터 ‘똥겜’, ‘망겜’ 취급을 받는 이들 게임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매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들을 ‘진정한’ 게임이 아니라고 부르는 것 또한 대단히 주관적인 이야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특히 그런 게임들을 즐기는 이용자가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난은 자칫 실제로 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이들의 입장을 못 듣게 되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게임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TV 드라마에서도 우리는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들이 언제나 상당히 높은 시청률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들을 보아 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드라마들을 ‘드라마가 아니다’ 라고 부르기 어려웠던 것처럼, 양산형 게임들과 이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뭉뚱그려 ‘게임이 아니다’로 통칭하는 것도 그리 적절한 입장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타인의 취향을 그저 쉽게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 라는 말로 깎아내리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매출상으로는 사실상 절대 다수의 사용자들이 현금 결제를 해가며 지지하는 게임들이 존재하는데도 이들의 플레이가 무의미하다며 평가절하하는 것은 자칫 게임이 서브컬처 취급을 받던 시절에 마니아로서 느꼈던 특별한 지위에의 소속감으로 보편화된 게임문화를 함부로 평가하는 일일 수 있다. 오히려 당대에 주류를 이루는 게임들이 드러내는 양상들이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와중에 더 대중들로부터 매출 면에서 큰 지지를 받는지를 궁금해하고 이해해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많은 매출이 나는 게임의 존재를 그저 부정하는 것은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아니다.

물론 게임의 대중화 과정에서 늘어나는 과도한 상업화와 그에 따른 콘텐츠의 저질화 자체를 비판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비판은 갈수록 대중화와 함께 커져갈 게임 콘텐츠의 상업화 경향 안에서 더욱 필요하며, 특히 이러한 비판들이 좀더 게임 제작과 소비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들이 나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중화와 함께 양산화의 길을 걸어가는 디지털게임의 환경은 적절한 비판을 통한 견제라는 고삐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 다만 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심지어 망가져간다고 여겨지는 현대의 게임 문화 자체마저도 말 그대로 게임의 일부라는 점이다. ‘망겜’ 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나가서’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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