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냄새' 조 바이든 아들 마약 보도의 전말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20.10.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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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 뉴욕포스트가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선거 후보의 차남, 로버트 헌터 바이든의 이메일 스캔들을 보도한 건 10월 중순이었다. 15일 단독보도(Exclusive)라는 문패를 달고 나온 기사의 핵심은 바이든 후보 차남이 2017년 중국화신에너지(CEFC)의 미국 투자회사 임원을 맡으면서 20%의 지분을 받기로 했고, '빅 가이(big guy)' 몫으로 10%를 받기로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뉴욕포스트 기사는 빅 가이가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추가 보도를 통해 바이든 후보로 추정했다.

신문은 바로 전날인 14일엔 2015년 바이든 부통령 시절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임원이 “워싱턴 DC에서 당신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헌터에게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도 폭로했다. 헌터는 당시 해당 우크라이나 기업 이사로 재직하며 매달 5만달러를 받고 있었다.

뉴욕포스트가 잇따라 보도한 내용의 핵심은 바이든 후보 차남이 아버지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외국기업 로비스트 역할을 하면서 부를 챙겼으며, 그 과정에 바이든 후보도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누르고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점쳐지는 바이든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었다. 뉴욕포스트는 막대한 양의 바이든 후보 차남 이메일을 입수했다고 밝히며 보도를 이어나갔다.

친트럼프 매체만 자세히 보도한 이메일 내용

한 언론이 특종보도한 내용을 다른 언론이 뒤따라 보도하는 건 흔한 일이다. 중요한 뉴스일 경우 예컨대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붙여 해당 보도 내용을 보도한다. 하지만 뉴욕포스트의 바이든 차남 이메일 스캔들은 그런 경로를 따라가지 않았다. 폭스뉴스를 비롯한 일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매체들이 보도를 했을 뿐,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류 언론(mainstream media)은 논란이 된 이메일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주류 언론이 이메일 내용에 냉담했던 이유는 뉴욕포스트가 해당 이메일 자료를 입수한 경위가 매우 미심쩍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뉴욕포스트는 해당 자료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서 받았다고 밝혔는데,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뭔가 정치공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보도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는 뉴욕포스트 보도의 근거가 된 이메일이 진짜 바이든 차남의 이메일이 맞는지, 내용이 진실인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뉴욕포스트가 기사를 내보내기 전 사내에서 자료의 신빙성을 우려해서 자신의 이름이 기사작성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게 해달라고 한 기자들이 있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메일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주요 매체는 이메일 내용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뉴욕포스트가 이메일을 입수한 경위를 더욱 중요하게 다뤘다. 바이든 후보 측은 보도가 나오자 러시아가 이번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이 있고, 이번 이메일 스캔들도 러시아 개입 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바이든 후보 측에선 이메일이 조작된 허위 자료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뉴욕포스트가 보도한 이메일 내용이 허위라고 반박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정보기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 50여 명이 때마침 '헌터 바이든 이메일 스캔들은 전형적인 러시아의 정보공작 형태를 띠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성명 자료를 제공한 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안보 관련 보좌역을 맡았던 닉 샤피로였다. 성명에 서명한 사람들 중에는 바이든 후보 지지 선언을 한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성명에서 러시아의 정보공작 의혹과 관련해 무슨 증거를 제시한 건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러시아 정보공작 의혹으로 보인다는 얘기였다. 이 때부터 러시아, 정보공작(disinformation)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수장이 이번 이메일은 러시아의 정보공작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언론 보도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바이든의 대응은 피해가기?

22일 열린 마지막 대선후보 토론에서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포스트가 보도한 이메일에 바이든 후보와 그 가족이 우크라이나와 중국 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챙긴 내용이 들어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후보가 미국인들에게 해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선후보 토론 바로 직전 바이든 후보 차남과 함께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회사에 최고경영자(CEO)로 참여했던 남성이 폭로 기자회견을 했다는 점도 거론했다.

토론 직전 바이든 후보 차남 헌터의 사업파트너였다는 남성은 “바이든 후보는 자신이 이 사업에 대해 몰랐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바이든은 차남 헌터와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내가 얘기하는 내용은 휴대전화 메시지, 이메일, 계약문서 같은 자료로 입증된다.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회사 지분 10%를 받기로 한 '빅 가이'는 조 바이든이다”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후보는 대선후보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해명 요구에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 나는 평생 외국에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둘째, 나는 세금보고 기록을 다 공개했다. 트럼프 당신은 단 1년도 세금보고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내) 부정부패 얘기는 그만하고 당신 세금보고 기록이나 공개하라.”

뉴욕포스트 보도에 나오는 이메일 내용, 차남의 사업파트너였다는 남성의 폭로 내용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토론 진행자도 바이든 후보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메일이 진짜인지, 내용이 사실인지 등에 대해 묻지 않았다.

 

정치공작 냄새 풍긴 이메일 입수 경위

문제가 된 바이든 차남 헌터의 이메일은 어떻게 뉴욕포스트 수중에 들어갔을까. 뉴욕포스트가 공개한 경위는 이렇다.

2019년 4월 바이든 가족이 사는 델라웨어의 한 컴퓨터 수리점에 누군가 맥북프로 랩탑컴퓨터 한 대를 맡겼다. 내부에 물이 들어가 망가진 컴퓨터 수리를 맡긴 사람은 수리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컴퓨터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수리점 주인은 컴퓨터를 맡긴 사람에게 연락했지만 연락은 되지 않았다. 수리점 주인은 컴퓨터를 맡긴 사람이 헌터인지 기억하진 못했다. 다만 컴퓨터에 보 바이든 재단(Beau Biden Foundation)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했다. 보 바이든은 바이든 후보의 장남이자 암으로 사망한 헌터의 형 이름이고 재단은 그의 이름을 붙여 설립한 것이다. 뉴욕포스트는 컴퓨터 수리를 맡기면서 작성한 서류에 적힌 이름을 확인해 보니 '헌터 바이든'이라고 돼 있었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컴퓨터는 법적으로 수리점 주인 소유가 됐다. 그는 지난 대선 때 트럼프 후보에게 투표한 지지자였다. 그는 찾아가지 않는 컴퓨터에 들어있는 자료를 확인했다고 하는데, 수상한 내용의 이메일과 헌터의 음란 동영상 자료 등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컴퓨터를 연방수사국(FBI)에 넘겼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FBI에 컴퓨터를 넘기기 전 하드드라이브를 복사해서 보관했다. 그리고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확실치 않지만 해당 자료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건넸다. 뉴욕포스트는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서 이메일과 동영상 자료 등을 입수했다.

헌터 이메일과 동영상 자료가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 건네지고, 뉴욕포스트가 입수한 경위는 확실히 개운치 않다. 정치공작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헌터가 자신의 랩탑컴퓨터 수리를 맡긴 뒤 찾아가지 않은 것부터 미심쩍은 일이다. 다만 이전 기록을 보면, 헌터가 코카인 잔류물이 남아있는 파이프(코카인을 흡입한 흔적이 남아있는 파이프)와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을 렌터카에 둔 채로 반납했던 이력이 있다는 점을 보면, 그런 실수를 되풀이했을 가능성은 있다.

수리점 주인은 하필 트럼프 지지자였다. 그리고 손님이 찾아가지 않는 컴퓨터 내용을 뒤져봤다. 수상한 내용이 나오자 FBI에 건넸는데, 그 전에 하드드라이브를 복제해서 따로 보관했다. 그는 어떤 경로인지 확실치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 하드드라이브를 건넸다. 그렇게 건네진 자료가 친트럼프 성향의 뉴욕포스트에 넘어가면서 선거 직전 바이든 후보를 공격하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뉴욕포스트가 이메일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뭔가 음흉한 정치공작의 냄새가 풍기는 건 사실이다.

 

뉴욕타임즈의 '트럼프 세금보고' 단독기사의 경우

9월 27일 뉴욕타임즈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과 취임 첫 해인 2017년 소득세(income tax)를 달랑 750달러씩 냈고, 과거 15년 중에서 10년 동안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내용의 단독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취재원에게서 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보고 자료를 기반으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자료를 공개하면 취재원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경쟁지인 워싱턴포스트를 포함해서 CNN, NBC, MSNBC, 월스트리트저널, 폭스뉴스 할 것 없이 성향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뉴욕타임즈 기사를 인용해서 보도했다. 뉴욕타임즈가 누구에게서 자료를 입수했는지, 혹시 바이든 후보와 관련이 있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건 아닌지, 정치공작의 가능성은 없는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은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언론이 대통령이 되면 세금보고 기록을 공개하는 전통을 깬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보고 자료를 특종보도한 뉴욕타임즈 기사를 거의 그대로 인용해서 보도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주류 언론은 이번 헌터 바이든 이메일 스캔들의 경우, 러시아의 정치공작을 중심에 놓고 보도했다. 재미있는 건 2015년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에 이사로 재직하며 거액을 받은 걸 문제 삼은 특종보도했던 매체가 뉴욕타임즈였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국내 사찰(spying)을 폭로해 200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임스 라이즌 기자가 2015년 12월 뉴욕타임즈 재직 시절에 보도한 내용이었다. 라이즌 기자가 지적한 건 바이든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부정부패를 제대로 수사하라면서 당시 우크라이나 법무장관을 압박했는데, 정작 자신의 아들은 우크라이나 부정부패와 연루된 기업의 이사로 재직하며 거액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부통령이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뉴욕포스트의 헌터 바이든 이메일 스캔들 보도가 대선 판도를 바꿀 정도로 파괴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언론은 별로 없는 듯 하다. 하물며 지난 대선 때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섰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조차도 이번 보도가 표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으로 봤다. 그렇지만 주류 언론은 헌터 바이든이나 바이든 후보 측에서 뉴욕포스트가 보도한 이메일이 가짜라고 부인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이메일 내용 자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The Hill)의 인기 있는 인터넷 방송 'Rising With Krystal & Saaga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민주당 정치인이자 여러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는 여성 진행자 크리스탈과 보수 성향의 남성 저널리스트 사가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공화당 민주당, 트럼프, 바이든을 막론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2일 이 방송에서 다룬 주제 중의 하나는 '바이든 후보가 차남 헌터의 비지니스에 대해 거짓말을 하도록 언론이 보고만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정치인이자 방송을 진행하는 크리스탈이 한 얘기는 이러했다.

"내용이 뭐든 상관없다. 지금 주류 언론에게 트럼프가 한 짓은 그저 나쁜 짓일 뿐이다. 주류 언론, 진보 진영은 원칙 없이 그저 트럼프 반대 편에만 서고 있다. 헌터 바이든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주류 언론에게 당장 중요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하고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든 눈 감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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