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애니메이션' 양성평등 어겼다? <안녕 자두야> 방송한 채널 '법정제재' 논란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1.01.2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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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여성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를 방송한 채널에 법정 제재를 가했다. 이에 대해 “어린아이들이 주로 보는 프로그램인 만큼, 성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을 방영한 것에 대한 제재는 당연하다”는 의견과, “10년 전 작품을 현재의 성인지 감수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안녕 자두야>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 왜 법정 제재를 받았나

지난 6일 열린 2021년 제1차 방송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방심위는 <대교어린이TV>, <애니원티브이(AnioneTV)>, <디즈니 채널>, <챔프>가 내보낸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에 등장한 장면 중 일부가 방송심의규정 제30조 3항 '양성평등에 관한 규정'을 지키지 않아 심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안녕 자두야' 시즌1 ‘예뻐지고 싶어!’ 편 갈무리
'안녕 자두야' 시즌1 ‘예뻐지고 싶어!’ 편 갈무리

문제가 된 장면은 <안녕 자두야> 시즌1의 ‘예뻐지고 싶어!’ 편에 등장한다. ①주인공 자두의 아버지는 자두에게 여자 얼굴이 그게 뭐냐며 선크림을 바르라고 질책한다. ②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수컷 구관조에게 버림받은 검은색 암컷 구관조가 악어에게 잡아먹히자 ‘어차피 살고 싶지도 않았을 텐데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른다’라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③자두가 예뻐지기 위해 목욕탕에서 자신의 양 볼을 젓가락으로 찌르거나, 백설탕 물로 세수한다.

방심위 2021년 제1차 방송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갈무리
방심위 2021년 제1차 방송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갈무리

방심위 위원들은 대체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편성채널은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을 수립해 운영해야 한다”, “외모와 관련된 편견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내용을 걸러내지 못하고, 문제가 지적된 이후 편성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는 임기응변식 대처는 충분하지 않다”, “본 에피소드는 2011년 1기에 편성된 것이고, 10년 전에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에서 용인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이 콘텐츠에 대한 개편 없이 그대로 2020년에 방송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데 뜻을 모았다. “기존에 만들어졌던 프로그램이고, 시대 관념이 변할 때마다 방송사에서 전수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다수 의견으로 해당 안건은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전체 회의 결과 <안녕 자두야> 중 문제가 됐던 내용을 방송한 방송사 중 <대교어린이티브이>, <애니원티브이(AnioneTV)>, <챔프>는 전체 회의에서 법정제재에 속하는 ‘주의’를 받았고, <디즈니채널>은 유사 심의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권고’를 받는 데 그쳤다.

◈ 법정제재 받으면 어떻게 되나

방송광고와 상품판매방송(TV홈쇼핑)을 포함해 모든 방송내용은 방송심의 대상이 된다. 이를 심의하는 기관이 방심위인데, 자체 모니터를 하거나 시청자 민원을 바탕으로 심의 안건을 상정한다.

먼저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심의하는데, 규정 위반의 정도가 경미하면 ‘의견제시’ 또는 ‘권고’와 같은 ‘행정지도’ 처분을 받게 된다. 이 경우에는 해당 방송사에 법적 불이익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심의규정 등의 위반 정도가 중하거나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건들은 9명의 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전체회의에 상정해 논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법정제재(주의·경고·징계·정정수정 또는 중지)’나 ‘과징금’을 받게 되며,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수행하는 방송평가에서 감점을 받는다. 

방심위 블로그 갈무리
방심위 블로그 갈무리

심의의결 유형에 따라 방송평가 감점 점수가 다른데, ‘주의’를 받으면 1점, ‘경고’를 받으면 2점, ‘방송편성 책임자·해당 방송 프로그램 또는 해당 방송광고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나 ‘해당 방송프로그램 또는 해당 방송광고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를 받게 되면 4점이 깎인다. 법정 제재를 넘어 ‘과징금’을 내야 하는 경우는 무려 10점이나 감점된다.

‘권고’에 그친 <디즈니 채널>은 불이익이 없는 반면, ‘주의’를 받은 <대교어린이티브이>, <애니원티브이(AnioneTV)>, <챔프>는 방송평가에서 1점이 깎이게 된 것이다.(기사 하단에 수정 내용 있습니다.) 한편, 권고 및 주의 조치를 받은 방송사 네 곳은 모두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방심위의 지적에 대해 인정하며, 해당 에피소드의 편성을 중지하고 심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안녕 자두야>가 여성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강화했나

그러나 <안녕 자두야> 제작사 측은 방심위의 결정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대사만 놓고 보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에피소드 전체 맥락은 오히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안녕 자두야> 제작사 ‘(주)아툰즈’ 이진희 대표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오히려 <안녕 자두야>는 '성 역할의 고정 관념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담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방영된 2011년 당시 애니메이션에서 여주인공은 늘 공주였지만, <안녕 자두야>는 평범한 10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했다”며 “남자친구들보다 더 축구를 잘하고,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는 소녀로 1980~90년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 꾸준히 사랑을 받았다”고 밝혔다.

'안녕 자두야'는 2017년 12월 동계올림픽 당시 주한미국대사관과 함께 '걸스플레이2(소녀들에게도 소년들에게 주어진 사회체육활동의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주한미국대사관 공공외교과 아메리칸센터코리아(ACK) 공식 블로그 갈무리
'안녕 자두야'는 2017년 12월 동계올림픽 당시 주한미국대사관과 함께 '걸스플레이2(소녀들에게도 소년들에게 주어진 사회체육활동의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주한미국대사관 공공외교과 아메리칸센터코리아(ACK) 공식 블로그 갈무리

그러나 <안녕 자두야>를 방심위에 심의 신청한 ‘서울YWCA’는 문제가 된 장면과 대사가 주 시청자들인 어린이에게 심각한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YWCA 측은 <뉴스톱>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에게 해당 장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어린 여아들이 자신의 외모를 부정하고, 예뻐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것을 우려해 심의를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녕 자두야>가 10년 전에 제작됐기 때문에 현재의 성인지 감수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0년 전 작품이지만 2020년에도 여전히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 모니터링 대상이었다”며 “시대물이 과거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현재의 어린이들에게 성차별적인 인식을 조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과거 작품을 서비스할 때,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인종적 편견 등이 담겨있을 경우 차별적 내용에 대해서 시청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경고 영상을 담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미국 인종차별 반대 시위 여파로 방영이 중단됐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경고 영상을 달고 TV 스크린에 복귀한 바 있다. 

서울YWCA는 "<안녕 자두야>라는 애니메이션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불법촬영으로 인한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현재를 기준으로, 그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재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송,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은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과거에 제작된 콘텐츠를 재방송할 때에는 시민들의 달라진 성인지감수성을 고려하여 재검증하고, 경고 영상을 표기하거나 재편집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제는 언론의 오보?

<안녕 자두야> 제작사는 방심위의 심의 자체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라고 지적한다. ‘(주)아툰즈’ 이진희 대표는 “방심위는 프로그램 자체의 잘잘못을 따지는 콘텐츠 심의기관도 아니고, 해당 프로그램에 법정제재를 가할 권한이 없다”며 “이번 법정제재는 10년 전 작품을 개편 없이 그대로 방송한 방송사들을 향한 것이지, 작품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언론이 방송국이 아닌 <안녕 자두야> 작품 자체가 법정 제재를 받는 것으로 왜곡 보도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심위 결정 이후 <"못 생기면 결혼 못하는 세상" `안녕 자두야` 법정제재(미디어 오늘)>, <여성 외모 편견 조장한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 `법정제재`(중도일보)>, <'안녕 자두야' 이번엔 외모 지상주의 조장…“여자 얼굴이 그게 뭐냐” 법정제재(여성신문)> 등 작품에 대한 제재로 오인할 수 있는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네이버 검색 화면 갈무리
네이버 검색 화면 갈무리

이 대표는 “제작사와 방송사 간의 계약 기간이 보통 2~3년이기 때문에, 방송사가 몇 회차를 언제 방송할지에 대해 제작사는 전혀 관여할 수 없다”며 “악의적 오보로 작품이 지나친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애니메이션 특성상 판권을 팔아서 얻는 수익보다 캐릭터 사업을 통한 수익이 훨씬 큰데, 이런 기사가 나오면 명예훼손으로 인한 막강한 경제적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작사 측은 현재 해당 언론사에 정정 및 반론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언론중재위원회 언론피해 구제 조정을 신청한 상황이다. 대부분 언론사는 제작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기사를 수정했지만, 일부 피신청 언론사 측은 “방심위 보도자료 기재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보도했을 뿐”이라며 보도기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수정) 21.17.00 기사 내용 일부에 대해 문의가 있었습니다. 확인결과 수정이 필요해서 반영합니다. <뉴스톱>은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의 수정원칙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원문) ‘권고’에 그친 <디즈니 채널>은 불이익이 없는 반면, ‘주의’를 받은 <대교어린이티브이>, <애니원티브이(AnioneTV)>, <챔프>는 방송평가에서 1점이 깎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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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법정제재에 의해 방송평가에서 감점을 받는 대상은 지상파, 종편PP, 보도채널, 홈쇼핑과 같은 허가 및 승인 사업자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재심사를 받기 때문에 방송평가 결과가 반영된다. 그러나 이번에 법정 제재를 받은 <디즈니 채널>, <대교어린이티브이>, <애니원티브이(AnioneTV)>, <챔프> 등 4개의 방송사는 등록 사업자로, 방송평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때문에 같은 법정제재를 받아도 방송평가 감점 등의 영향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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