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카라 발굴에 대한 엉성한 한국 언론보도

  • 기자명 곽민수
  • 기사승인 2021.02.02 11: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사카라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대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사카라Saqqara는 카이로 남쪽으로 30킬로 가량 떨어진 고대의 유적지로, 이집트 문명기 내내 계속해서 쓰였던 ‘공동묘지 구역’입니다. 이곳은 꽤 널리 알려져 있는, 역사상 최초로 세워진 피라미드인 조세르(재위 기원전 2667-2648년)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대략 기원전 2500년 경에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작년 말에는 100개가 넘는 말기시대(기원전 664-332년)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기원전 332-30년)의 목관이 사카라에서 발견하기도 해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사카라에서의 발굴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카라 무덤의 비밀 Secrets of the Saqqara Tomb>이 넷플릭스에 런칭되기도 했습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사진 출처 : 곽민수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사진 출처 : 곽민수

 

사카라 무덤의 비밀 (Secrets of the Saqqara Tomb) 포스터.
사카라 무덤의 비밀 (Secrets of the Saqqara Tomb) 포스터.

1월 17일 조사결과 발표는 여러 외신을 통해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언론에서도 이 발굴 결과에 대한 기사들이 상당수 나왔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 언론의 보도는 허술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한국언론이 이집트 고고학 관련 보도 조금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피력하고 있는데,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날 소개된 고고학적 성과는 대략 4가지 정도로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한국어로 된 언론 보도는 그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외신을 보셔도 이게 딱딱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보니 아무래도 헷갈리실 것 같아 정리해서 간략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고왕국 6왕조 시대의 파라오인 테티(재위 기원전 2345-2323년)의 왕비 네아리트Nearit (The Guardian에서는 네아르트 Neart로 표기)의 장례신전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신전은 테티의 피라미드 옆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 테티Teti의 피라미드는 아래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현재는 모래 언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반면 내부의 현실은 겉모습보다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고 있고, 현실 벽면에 새겨진 '피라미드 문서' 역시도 잘 남겨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례신전에 대한 발굴 소식이 이번 조사 결과 발표에서 가장 관심이 갑니다.

연합뉴스의 관련 보도에 첨부된 영상에서는 이 피라미드가 아니라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보여주면서 '남편의 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이라는 글귀를 써넣음으로 매우 큰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영상 48초를 보면 사카라 유적을 스케치하기 위해서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영상 속에 등장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막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모래언덕처럼 보이는 테티의 피라미드. 사진 출처 : 곽민수
모래언덕처럼 보이는 테티의 피라미드. 사진 출처 : 곽민수

 

테티 피라미드의 내부 현실. 사진 출처 : 곽민수
테티 피라미드의 내부 현실. 사진 출처 : 곽민수

 

부적절한 자막이 사용된 연합뉴스 영상 캡쳐.
부적절한 자막이 사용된 연합뉴스 영상 캡쳐.

 

그런데, 관련 보도에서 언급되는 '네아리트'는 도무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테티의 왕비들 가운데는 현재까지 2명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쿠이트Khuit와 이푸트Iput가 그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쿠이트는 테티의 피라미드 북쪽에 만들어진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에 묻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쿠이트의 피라미드는 애초에는 피라미드가 아니라고 판단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에 있었던 고고학 조사를 통해서 무덤이 피라미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때의 조사를 이끌던 고고학자가 바로 이번 발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이집트의 전 고고부 장관이자 세계적인 학자인 자히 하와스Zahi Hawass입니다.

 

사카라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자히 하와스. 출처: 자히 하와스 홈페이지 http://www.drhawass.com
사카라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자히 하와스. 출처: 자히 하와스 홈페이지 http://www.drhawass.com

 

이푸트의 피라미드 역시도 쿠이트 피라미드 바로 옆에 만들어졌습니다. 이푸트는 5왕조 시대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Unas(재위 기원전 2375-2345년)의 딸, 즉 공주였는데, 이 인물과의 결혼을 통해서 왕족이 아니었던 테티는 파라오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쿠이트의 무덤은 원래는 마스타바로 건설이 되었지만, 그와 테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지 훗날 파라오가 되는 페피 1세Pepy I(재위 2321-2287년)에 의해서 피라미드로 증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중 그 누구의 이름도 '네아리트'와는 비슷하지가 않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 왕비들이 갖고 있던 칭호와 6왕조 시대의 왕족 여성들의 이름을 재빠르게 살펴봤는데, '네아리트'와 비슷한 발음의 이름은 찾지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제가 모르는 사실이 있거나 '네아리트'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테티의 왕비일 가능성도 있지만, 만약 그랬다면 발굴 관계당국은 그 점을 크게 홍보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테티의 왕비 네아리트'라는 말은,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 한 실수가 언론을 통해서 무비판적으로 재생산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장례 신전터에서는 3곳의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신전 부속 저장소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신전들은 신전 본체는 석재로 만들어지는데 반하여, 부속시설들은 진흙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어집니다.

 

람세스 2세 장례신전의 부속 저장소. 테티의 시대보다는 1000년 이상 후대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신전의 부속시설로 만들어진 저장소가 어떤 모습으로 생겼는지를 상상하시는데 도움은 될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곽민수
람세스 2세 장례신전의 부속 저장소. 테티의 시대보다는 1000년 이상 후대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신전의 부속시설로 만들어진 저장소가 어떤 모습으로 생겼는지를 상상하시는데 도움은 될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곽민수

 

2.

신왕국 시대의 목관들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50개가 넘게 발견된 이 목관들은 깊이가 10-12미터 정도 되는 수직갱에서 발견된 것으로, 대부분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영어로는 종종 well이라고도 쓰이지만 그보다는 더 자주 shaft라고 쓰는, '수직갱'은 '우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시설은 보통 지면을 수직으로 파고 들어간 뒤, 어느 지점부터 다시 수평으로 파고 들어가 방이 만들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라는 보통 이렇게 만들어진 방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매장 방법은 사카라 뿐만이 아니라, 이집트 전 지역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언론들은 이 '수직갱'을 '우물'로 쓰는 번역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 보도만 하더라도 연합뉴스매일경제에서 '우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보도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기계적으로 외신을 번역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렇게 발견된 목관들 가운데는 목관의 표면에 ‘사자의 서’에서 발췌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 내용이 3번에서 말씀드릴 내용과 좀 헷갈리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사카라에서 발견된 신왕국 시대 목관들 가운데 하나. 사진 출처 : Mohamed Hossam/EPA
이번에 사카라에서 발견된 신왕국 시대 목관들 가운데 하나. 사진 출처 : Mohamed Hossam/EPA

 

3.

'사자의 서'의 ‘17번째 주문’이 쓰여져 있는 4미터 길이의 파피루스도 발견되었습니다. '사자의 서'는 신왕국 시대 이후 쓰이기 시작한, 죽은 자가 저승에서 부활하는 것을 돕는 일종의 '마법 주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아주 많은 주문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코퍼스라고 할 수 있는데, '사자의서 몇 번째 주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까닭입니다.

한국언론들 가운데는 이 사자의 서가 쓰여진 파피루스가 1번에서 말씀드린 장례신전에서 발견되었다고 쓰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KBS의 보도입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보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자의 서는 일반적으로 신전에서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시신과 함께 무덤에 매장이 됩니다. 특히 신왕국 시대에 생겨난 관습인 만큼, 이번에 발견된 '사자의 서'는 2번에서 언급된 목관들 가운데 하나와 함께 있던 것이 발견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한국언론기사들에는 '파피루스 종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링크) 예컨대, 이것은 한지에 대해서 '한지 종이', 인화지에 대해서 '인화지 종이'라고 쓰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파피루스는 그냥 ‘파피루스’입니다.

이번에 사카라에서 발견된 ‘사자의 서’ 17번째 주문이 쓰여진 파피루스. 사진 출처 : 이집트 관광고고부 Ministry of Tourism and Antiquities
이번에 사카라에서 발견된 ‘사자의 서’ 17번째 주문이 쓰여진 파피루스. 사진 출처 : 이집트 관광고고부 Ministry of Tourism and Antiquities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사자의 서. 19왕조 시대 후네페르라는 사람의 사저의 서로, 여기에는 30B번 주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런던 영국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사자의 서. 19왕조 시대 후네페르라는 사람의 사저의 서로, 여기에는 30B번 주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런던 영국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4.

그 이외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유물들에는 크레타 섬이나 시라아-팔레스타인에서 만들어져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샤브티들, 목재 마스크, 새 모양으로 만들어진 조각들, 청동으로 만들어진 도끼, 사네트 게임 도구들, 전차’부대 장교를 역임했던 19왕조 시대의 인물 '카-프타'의 것으로 여겨지는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비석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기 때문에, 이 유물들이 어떤 맥락에서 확인된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