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플랑크톤이 원전을 껐다고?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4.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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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 원전 1, 2호기가 가동정지됐다. 지난달 23일 가동정지 이후 1일 100% 출력을 회복한지 5일만에 되풀이된 사고다. 원인은 해양생물이 취수구를 막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대체 어떤 해양생물이 원전을 정지시킬 수 있단 말인가? 원전 운영사는 '살파'라는 생물을 지목했다. 언론들은 이 동물이 '대형 플랑크톤'이라고 보도했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출처: 한겨레 홈페이지
출처: 한겨레 홈페이지

 

①살파=플랑크톤? 사실

살파는 해파리와 유사한 젤리 모양의 투명한 해양동물이다. 최대 15cm까지 자란다고 한다. 학술적으로는 척삭동물문 탈리아강 살파목 살파과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살파는 큰살파(thetys vagina)로 남해와 동해에서 주로 서식한다. 한겨레가 독도에 살고 있는 살파에 관해 보도한 적도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살파를 "해수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대형 플랑크톤의 일종"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를 근거로 다수의 언론들이 살파를 '대형 플랑크톤'이라고 보도했다.

흔히 '플랑크톤' 하면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작은 바다 생물'을 떠올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플랑크톤의 사전적 의미는 "물속에서 물결에 따라 떠다니는 작은 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살파는 플랑크톤일까? 살파는 몸통 가운데 부분이 원통형으로 비어있다. 해파리의 움직임과 비슷하게 몸통을 수축시켜 물을 뒤로 뿜는 '제트 수류' 방식으로 움직인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다 자라면 15cm에 이를만큼 크기도 크다. 

그렇지만 살파는 플랑크톤으로 분류된다. 플랑크톤으로 분류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이동성이다. 해류 흐름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는지이다. 살파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는 하지만 해류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새우, 게, 조개 등도 유생(갓 부화한 어린 개체) 시절에는 플랑크톤으로 분류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②해양생물 때문에 원전이 멈춘다? 사실

플랑크톤이 원전을 멈춘다. 가능한 일일까? 이번 가동정지 사례가 발생한 한울원전은 지난달 23일에도 같은 유형의 사례가 발생했다. 모두 살파가 취수구로 유입되면서 생긴일이다. 한울원전 관계자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2006년 이후 한 차례도 없었던 해양생물 유입사례가 발생했다"며 "5중의 유입방지 시설을 가동하고 있지만 워낙 많은 양이 몰려들어 대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원전은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냉각수가 필요하다. 바닷속에 설치된 취수구를 통해 바닷물을 끌어들여 발전계통의 열을 식히고 배수구를 통해 바다로 온배수를 내보낸다. 취수구에는 거대한 펌프가 설치돼 바닷물을 끌어들이는데 이물질이 유입될 경우 취수펌프가 손상되거나 출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때문에 그물망, 세척수 펌프, 순환수 펌프, 드럼 스크린 등의 장치를 설치해 이물질 유입을 차단한다.

냉각 계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원자로 자동정지 등 재난 예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3월 22일에 발생한 한울2호기 터빈·원자로 정지 및 한울1호기 터빈 정지 사건은 대량의 해양생물(살파)이 취수구 외부에 설치된 그물망을 손상시키고 1·2호기 취수구로 급격히 유입되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출처: 원전안전운영정보 사건·사고 검색
출처: 원전안전운영정보 사건·사고 검색

 

◈가시고기, 새우, 해파리 등이 원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운영하는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에서 취수구 해양생물 유입관련 사고를 검색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원전이 가동되기 시작한 1978년 이래 이번 사고까지 취수구 해양생물 유입관련 사고는 19건이다. 취수구로 유입된 생물은 큰가시고기, 새우, 해파리, 살파 등이다.

가동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출력을 감소하게 만드는 등 해양생물이 유입된 사례는 훨씬 많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만 해도 멸치떼, 새우, 해파리 등으로 인한 해양생물 유입 사고가 25차례 발생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개발한 [발전소 취수구 유입 해양생물 제거시스템 및 제거방법]. 기존 드럼스크린 등 방식보다 대폭 업그레이드됐다는 설명이다. 출처:한국해양과학기술원 홈페이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개발한 [발전소 취수구 유입 해양생물 제거시스템 및 제거방법]. 기존 드럼스크린 등 방식보다 대폭 업그레이드됐다는 설명이다. 출처:한국해양과학기술원 홈페이지

 

◈2주만에 다시 터진 사고 문제는 없나?

지난달 사고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안위는 한울1·2호기 사건 진행 과정에서 운전원의 조치가 관련 절차서에 따라 수행되었고 안전설비가 설계대로 작동했으며, 발전소 내·외 방사선의 비정상적 증가 등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취수구에 유입된 해양생물이 제거됐고 손상된 그물망이 적절히 교체됐으며 해양생물 유입에 대비한 한수원의 순찰 및 조기대응 절차가 강화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문제 없다는 뜻이다. 이어 원안위는 "아울러, 해양생물 감시카메라(CCTV) 설치 및 그물망 보강·추가 등 후속조치를 수행할 계획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주만에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면서 한수원, 한울원전본부 등 원전 운영사는 물론 원자력 안전 당국의 신뢰도에 흠집이 나게 됐다. 

고품질의 전기를 24시간 365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던 원자력계의 호언장담도 해양생물 앞에 허언이 돼버렸다.


2021년 4월8일 오전 11시53분> 기사 본문 중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에서 취수구 해양생물 유입관련 사고를 검색한 결과"는 17건에서 19건으로 수정합니다. 기사 작성당시 반영되지 않았던 이번 사건 관련 2사례가 추가됐기 때문에 일어난 변동입니다. 바로잡아주신 부산에너지정의행동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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