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군대가 쌍팔년도 수준"의 '쌍팔년도'는 언제인가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1.04.2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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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대에서 코로나19 자가격리 병사 부실급식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치권이 반응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은 2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런 문제로 인해 군의 사기가 저하된 측면이 있어서 대단히 참담하다. 군인은 21세기 군인들인데 병영 문화는 여전히 쌍팔년도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쌍팔년도가 몇 년도인지 정확히 언제인지 기 의원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맥락상으로 볼 때 1988년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쌍팔년이란 단어는 지난해 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사용했다.  진 교수는 2020년 11월 29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청와대의 운동권 작풍'이란 글에서 "문제는 청와대다. 지금 기소된 사람이 수석, 비서관, 행정관, 수사관 등 벌써 열 댓 명"이라며 "거기에 원전 사건도 몇 명 연루된 것으로 보이니, 이 정도면 총체적 파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경향 '작풍'이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애써 쌓아온 이 자유민주주의적 시스템이 적법절차를 우습게 아는 저들의 '쌍팔년도 운동권' 작풍에 의해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 교수가 말한 '쌍팔년도 운동권'은 1987년 6.10항쟁 이후 전대협 세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1976년 1월 30일자 경향신문 기사. '쌍팔년도'가 50년대라고 언급하고 있다.
1976년 1월 30일자 경향신문 기사. '쌍팔년도'가 50년대라고 언급하고 있다.

 

지금은 대체로 1988년을 쌍팔년으로 지칭하고있지만 원래 한국에는 두개의 쌍팔년이 있다. 나이가 오래된 세대는 단기 4288년, 1955년을 쌍팔년도라 불렀다. 이런 명칭은 과거 언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 찾은 가장 오래된 '쌍팔년도' 기사는 1976년 1월 30일자 경향신문의 <육해공 국군과의 대화5-병영은 사회진출의 도장 자부와 보람의 황금기>다. 기사에서 허정렬 육군상사는 "부대내의 말이었지만 '쌍팔년도'(5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는 배고프고 춥고 잡일로 고달팠지요. 오늘의 내무반, 식사, 피복, 휴게실 등 사병복지는 옛날과는 비교도 안되게 효율적이고 편안하고 배부릅니다. 이런 시설은 전방이 더 훌륭합니다. 한마디로 요즈음 사병들은 먹고 자고 입는데 불평은 없읍니다"라고 말했다. 

1977년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신상웅 단편소설 <음모>에서도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세태풍자 소설이어서 정치 얘기가 잠깐 나온다.

"요즘 유언비어뭐야?"

"희사(喜捨)하기." (기꺼이 기부한다는 의미)

"아냐 일찍일찍 돌아가라. 고호움."

"아냐 겨울은 원래 추운거다야."

"아냐. 유언비어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야."

"아녜요. 서민은 모름지기 참새대가리나 열심히 씹어라, 예요."

"아저씨, 그말 잘 나왔어. 우리도 그거 한번 구워먹어봅시다."

"몇마니라 드릴까?"

"기분인데 댓마리 구웁시다."

"기분인데 한마리 서어비스하죠, 장도를 비는 뜻에서."

"쉽! 아저씨 목소린 너무 커요. 소시쩍에 웅변하신거 아뉴?"

"한가락 했죠."

"쌍팔년도에" 

"바로 봐주는구먼"

"자유당때 내리 낙선만 하셨겠군."

"바로 봐준다니까. 쫄땅 망해서 이꼴이 됐잖우."

참새 대가리 굽는 소리가 지지직 났다. (하략)

1977년 동아일보에 게재됐던 주말콩트 '음모'
1977년 동아일보에 게재됐던 주말콩트 '음모'

 

쌍팔년도는 자유당때라는 표현이 바로 이어진다. 꽤 오래전에 종종 "자유당 때"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한참 전 옛일이라는 표현이었다. 

1986년 12월 9일자 경향신문 칼럼 <방풍림의 정치>에서 구건서 논설위원은 마지막 문단에서 "한때 '쌍팔년'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단기 4288년(1955년) 휴전 후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기를 상징했던 이 말이 오는 88년에는 전혀 다른 번영의 황금기를 의미하는 상징어가 될 지 모른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남들도 잘했고 우리도 잘했다는 말이 나와야 황금의 88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86년에 88년은 한국이 한단계 도약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번영의 황금기'를 기대하게 하는 단어였다. 

1988년 9월 18일자 한겨레 <서울은 '쎄울'이 아니다>라는 칼럼에서 최일남 논설위원은 "그러나 지난 7년동안 오늘의 쌍팔년도만을 위해 사는 것처럼 설쳐대고 국민을 다그치던 권력과 관료들이 무수히 외쳤던 '이래라' '저래라'의 예를 일일이 들먹일 겨를이 없다"고 적었다. '오늘의 쌍팔년도'라는 표현에서 '과거의 쌍팔년도'를 유추할 수 있다. 1988년은 이제 새로운 세대의 쌍팔년도가 된 것이다. 

앞서 기동민 의원, 진중권 교수의 용례에서 보듯이 이제 쌍팔년도는 대부분 1988년도를 의미한다. 후진적이고, 발전이 더디고, 인권이 존중받지 못한 시대의 상징으로 쌍팔년도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이다.  앞의 기사를 보면 1976년의 군대는 과거 쌍팔년(1955년)에 비해 더이상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고 잡일에 시달리지도 않는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2021년의 군인들이 자가격리 당하며 밥도 못먹고 난방이 안되어 살얼음이 어는 공간에서 학대를 당했다. 기동민 의원은 '1988년 쌍팔년'을 언급했겠지만, 실상 현재의 군대는 '1955년 쌍팔년'에 비교할 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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