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년 명가의 장인정신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만들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1.05.2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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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전형으로 주인공 ‘나나세’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그래서 ‘죽어! 죽어!’ 하는 데스 메탈 가사까지 쓰게 만든 아버지가 어느 날 진짜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사망기간은 단 이틀뿐이니까.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꼰대’의 전형으로 주인공 ‘나나세’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그래서 ‘죽어! 죽어!’ 하는 데스 메탈 가사까지 쓰게 만든 아버지가 어느 날 진짜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사망기간은 단 이틀뿐이니까.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긴장감이 흐르는 신입사원 채용 면접.

자기소개를 부탁받은 20대 여성이 멍한 어조로 운을 뗀다. 약대 3학년, 딤섬도시락을 좋아하는데 점원의 ‘무료미소’는 싫단다. 뭐, 그런가 보지. 헌데 폭탄발언이 이어진다. 싫어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잔소리가 심하고 (아마도 홀아비?) 냄새나는’ 본인의 부친이란다. ‘어? 어?’ 하는 사이 ‘그런 사람이 사장인 이런 회사에는 추호도 입사할 생각이 없다’면서 직격탄! 이내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자 데스 메탈 밴드 활동으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분출하고 있다며 샤우팅으로 마무리한다.

“이상임다!”

결과야 말 할 것도 없지만 다음 장면이 이어질 때까지 필자가 살짝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은 ‘따로 기록했다가 인터뷰의 도입부에 소개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강렬한 독백의 내용. 다음은 투피스 정장에 핑크색 헤어스타일로 포인트를 준 그 20대 여성. 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죽어는 봤지만>의 히로인, 히로세 스즈 배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 남겨진 칸영화제 초청작 <바닷마을 다이어리>(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스즈,’ 마을에 숨어든 수상한 청년(모리야마 미라이 분)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분노>(이상일 감독)의 ‘이즈미,’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쥔 <세 번째 살인>(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키에.’ 어떤 캐릭터에서도 볼 수 없던 궁극의 개그감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죽어는 봤지만」의 메가폰을 잡은 하마사키 신지는 요 몇 년 새 전래동화(복숭아동자)를 패러디한 이동통신사 시리즈 광고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톱클래스 CF감독이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죽어는 봤지만」의 메가폰을 잡은 하마사키 신지는 요 몇 년 새 전래동화(복숭아동자)를 패러디한 이동통신사 시리즈 광고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톱클래스 CF감독이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물론, 필자로서는 불만이 있을 리 없다. 연기자에게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란 매너리즘의 첩경 아닌가. 혹, 그럼에도 히로세 배우의 대표작 캐릭터에 미련을 갖는 독자가 계신다면 장르영화의 내적 요소 중 하나인 포뮬라(formula)의 정의를 떠올려 보자. 장르영화의 즐거움과 긴장은 ‘기대되고 예측할 수 있는 친숙한 요소’를 의미하는 포뮬라와 예기치 않은 스토리 변화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보면 이 얼마나 생산적인 캐스팅인가. 히로인의 등장만으로 장르영화의 재미를 확보한 채 남은 90분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데.

무슨 침 발린 말인가 싶거든 상상의 허를 찌르는 이 영화의 시납시스를 살펴보자.

‘꼰대’의 전형으로 주인공 ‘나나세’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그래서 ‘죽어! 죽어!’ 하는 데스 메탈 가사까지 쓰게 만든 아버지(츠츠미 신이치 분)가 어느 날 진짜로 ‘죽어(!)’ 버린다. <데스 노트> 풍의 으스스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회사가 개발한, 복용하면 딱 이틀 동안 죽어있게 되는 신약의 효과. 문제는 그 이후다. 회사를 차지하려는 이들이 아버지를 정말 화장해버리려고 하는 것. 주어진 시간은 빈소가 차려져있는 기간 뿐. 나나세는 존재감이 없다 못해 ‘고스트’라 불리는 아버지의 비서 마츠오카(요시자와 료 분)와 함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소위 ‘병맛’이 넘치는 이 코미디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인물도 무척 흥미롭다. 요 몇 년 새 전래동화(복숭아동자)를 패러디한 이동통신사 시리즈 광고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톱클래스 CF감독 하마사키 신지. 1900년 창업한 간장집(난조야)의 아들로, 집안에서 만든 간장 CF로 ACC 도쿄 크리에이티비티 어워드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를 만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세 번째 살인」, 이상일 감독의 「분노」 등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헤로세 스즈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에서 이전까지의 모든 캐릭터를 뒤집는 ‘데스 메탈 반항아’로 분했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세 번째 살인」, 이상일 감독의 「분노」 등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헤로세 스즈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에서 이전까지의 모든 캐릭터를 뒤집는 ‘데스 메탈 반항아’로 분했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44세가 되시는 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셨는데, 그 작품이 무려 해외의 영화제에 초청되셨습니다. (웃음) 평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나요?

하마사키 신지

우선, 해외 영화제에 초대받는다는 것 자체가 난생 처음이라 너무 영광이고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한국의 유명한 국제영화제 중 하나라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제 작품이 초대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 관객 여러분이 어떻게 봐주실지 정말 기대가 되더라고요.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에서 매번 드리는 질문인데요. 평소 한국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나요.

하마사키 신지

한국영화는 일본영화보다 맛이 진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훨씬 대륙적이고, 섬나라 일본과는 같은 아시아인데도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음식에 비유하자면 일본영화가 다시 국물 같은 소박한 맛인데 반해, 한국영화는 불고기나 김치처럼 제대로 된 맛이라고 할까요.

「포스트맨 블루스」 이후 20년간 한국 관객들의 꾸준한 사람을 받고 있는 츠츠미 신이치 배우는 딸과 마주칠 때마다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 ‘밉상 아빠’로 분한다. 실제로는 「죽어는 봤지만」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질 정도의 ‘딸 바보’라고.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포스트맨 블루스」 이후 20년간 한국 관객들의 꾸준한 사람을 받고 있는 츠츠미 신이치 배우는 딸과 마주칠 때마다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 ‘밉상 아빠’로 분한다. 실제로는 「죽어는 봤지만」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질 정도의 ‘딸 바보’라고.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좋아하는 한국영화 작품이나 감독, 배우 등이 있으신지요?

하마사키 신지

제가 사실 한국영화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웃음)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밀양>, <버닝>,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아가씨>,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마더>, <기생충>을 특히 좋아합니다.

훌륭한 감독이 워낙 많이 계시잖아요. 그 층이 매우 두텁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고 매번 차기작을 기대하게 되는 분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 언제나 멋진 한국영화에는 제가 좋아하는 송강호 배우가 출연하신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여성 연기자 중에는 배두나 배우가 멋지고요.

 

홍상현

대학 졸업 후 업계 최고의 광고제작사에 들어가 커리어를 쌓고, 프리로 독립하시면서부터는 연출하신 이동통신사의 시리즈 광고가 호감도와 연출력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유명 CF감독으로 활약해 오셨습니다. 경제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굳이 영화감독이 되실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마사키 신지

광고는 30초라는 분량 제한이 있잖아요. 그 분량 제한 속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광고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다시 말해, 조건이 붙어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인 거죠. 그래서 언젠가 이런 제약이 적은 영화 분야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가운데 마흔 네 살이 되어버린 겁니다. (웃음)

그러다 이번에 광고업계에서 알고 지내던 사와모토 요시미츠 씨의 시나리오를 연출할 기회가 주어졌지요.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어는 봤지만」의 히로세 스즈 배우는 데스 메탈 밴드의 리더를 연기하며 발군의 노래실력을 보여준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죽어는 봤지만」의 히로세 스즈 배우는 데스 메탈 밴드의 리더를 연기하며 발군의 노래실력을 보여준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방금 언급하신 사와모토 요시미츠 작가는 칸국제광고제 수상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지낸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시고, 동방신기와 한일 월드컵 당시 결성된 양국 음악 유닛을 위해 작사까지 하셨을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으십니다. 또, <죽어는 봤지만> 이전에 시나리오를 쓰신 작품 두 편도 한국에서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는가 하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셨고요. 이번에 같이 영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와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궁금합니다.

하마사키 신지

시나리오를 쓰신 사와모토 씨는 저와 10년 넘게 CF 작업을 함께 해 온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대사 톤, 유머의 포인트나 스토리 전개 방식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죠. 따라서 이번에 호흡을 맞추면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수월했고요.

애초에 <죽어는 봤지만>의 원안이 된 것도 사와모토 씨가 예전에 간단한 플롯을 적어놓은 몇 장의 종이들이었어요. 이 플롯을 개발해 이야기를 점점 부풀리고 시나리오로 진행해나간 겁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했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일단 오리지널 시나리오이다 보니 자유롭기는 해도 나름의 어려움 또한 감수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래도 결국 시나리오가 완성되었고 이 이야기를 지지하는 스태프와 캐스트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그들과 힘을 모아 촬영을 진행하고 편집을 거쳐 한편의 영화를 완성했던 과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홍상현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말씀처럼 좋은 시나리오가 준비되었는데. 그렇다면 이것을 하마사키 신지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 어떤 부분에 노력을 기울이셨나요.

하마사키 신지

<죽어는 봤지만>은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상당히 정보량이 많은 영화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복선의 회수, 웃음의 소재를 알리는 방법, 유령의 설정이나 부모자식 관계, 회사의 이권 다툼, 시간 축을 사용한 타임 리밋, 그리고 주인공 나나세가 이끄는 밴드의 음악 등이 동시에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이것을 어떻게 영상에서 조화시킬지가 크리에이티브의 열쇠였어요. 물론 좀 더 심플한 스토리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코미디로써의 메리트가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략 150분쯤 되는 볼륨의 내용을 90분 정도로 압축시켜보자’는 플랜을 세웠습니다. 아무래도 평소 CF를 주로 제작하다 보니 많은 정보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영상을 만드는 데 익숙한 편이라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가 비교적 수월했어요.

제목에서부터 소위 ‘병맛’이 넘쳐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죽어는 봤지만」은 상당한 디테일을 자랑하는 영화다. 모든 장면의 연기와 미장센, 편집과 사운드 등이 대단히 견고한 구조로 짜여 있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제목에서부터 소위 ‘병맛’이 넘쳐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죽어는 봤지만」은 상당한 디테일을 자랑하는 영화다. 모든 장면의 연기와 미장센, 편집과 사운드 등이 대단히 견고한 구조로 짜여 있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CF는 보통 30초 동안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어 놓아야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기에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감동이나 재미를 이끌어내는 연출이 필요합니다. 다만, 장편상업영화는 적어도 90분 이상 이어지는 서사를 전개해 가야하기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한데요. 힘드시지 않던가요.

하마사키 신지

CF를 100미터 달리기라고 한다면, 영화는 마라톤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든 장면을 CF처럼 온 힘을 다해 찍는다면 저도 관객 여러분도 분명 숨이 찰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따라서 우선 각 신이 전체적 서사구조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충분히 이해한 뒤에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제작에 익숙한 주변 스태프 여러분들로부터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감사했고요.

 

홍상현

일단 필자의 <죽어는 봤지만>에 대한 느낌은 디테일이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장면의 연기와 미장센, 편집과 사운드 등이 대단히 견고한 구조로 짜여있었는데요. 역시 121년 역사의 간장명가의 아들로서 물려받은 장인정신이 연출의 스타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웃음)

하마사키 신지

감사합니다. 엄청난 취재력이군요! (웃음)

간장집 아들로 나고 자란 사람이다 보니, 어쩌면 제게도 말씀처럼 장인정신이 배어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평소 CF를 만들 때도 그렇지만 편집이나 사운드 디자인 등이 세세하게 설계되어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실제로 편집상의 아주 작은 터치 하나로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침묵을 지키게 될 수 있지요. 간단한 사운드디자인 하나로 결과물의 퀄리티가 몰라볼 만큼 달라질 수도 있고요. 시나리오에도 아이디어가 중요하지만 촬영이나 편집에 있어서도 어떤 아이디어가 가미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코미디는 디테일이 생명이고요. 아, 이렇게 말씀드리고 보니 정말 대를 이은 간장집의 DNA가 제 안에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웃음)

저승사자로 분한 릴리 프랭키 배우(오른쪽)는 하마사키 신지 감독이 연출한 트럭 CF에서 아버지 역의 츠츠미 신이치 배우와 무려 6년 동안이나 함께했던 인연이 있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저승사자로 분한 릴리 프랭키 배우(오른쪽)는 하마사키 신지 감독이 연출한 트럭 CF에서 아버지 역의 츠츠미 신이치 배우와 무려 6년 동안이나 함께했던 인연이 있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다음은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 부분은 감독님의 특기와도 연결됩니다. 예컨대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동통신사 CF 시리즈는 전래동화의 캐릭터에게 희극성과 현대성을 가미하면서 국민적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하지만 코미디영화의 경우. 의외의 사건과 해피엔딩이라는 전형성은 존재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혹평을 받게 되죠. <죽어는 봤지만>의 경우, 로맨스 제로의 약학 연구자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 딸,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있는 인물이지만 존재감이 제로이기 때문에 ‘고스트’라 불리고, 그것이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아버지의 비서 등,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세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인데요. 캐릭터의 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감독께서 어떤 플랜을 세우고 실행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마사키 신지

평소 CF 작업을 하면서 등장인물이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번에 영화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예컨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이며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을까, 어떤 옷을 즐겨 입으며 뭘 좋아하는지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가 더해지는데요. 바로 제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일이죠. ‘이 사람은 이 삼촌과 닮았구나, 대학시절 친구 중에 이런 애가 있었는데, 비슷하지 않을까’ 처럼.

<죽어는 봤지만>의 중심인물은 아버지 역의 츠츠미 배우와 딸 역의 히로세 배우, 그리고 ‘고스트’ 역의 요시자와 배우, 이렇게 세 사람이죠. 그래서 일단 시각적 이미지는 어느 정도 아웃라인이 잡혀있었는데, 아무래도 전래동화처럼 관객에게 캐릭터의 정보가 사전에 주어지지 않는 현대극이다 보니 인물의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설정해 두지 않으면 묻혀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츠츠미 배우의 경우 특이한 헤어스타일과 안경으로 포인트를 주었고, 히로세 배우는 머리색부터 바꿨어요. 한편, 요시자와 배우는 존재감이 없어 ‘유령’으로 불리는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꽃미남 캐릭터를 봉인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웃음)

‘달달한 꽃미남’ 캐릭터로 유명한 요시자와 료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에서, 존재감이 없다 못해 ‘고스트’로 불리는 ‘마츠오카’로 분한다. 하마사키 신지 감독은 그런 요시자와 배우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꽃미남 캐릭터를 봉인하는데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달달한 꽃미남’ 캐릭터로 유명한 요시자와 료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에서, 존재감이 없다 못해 ‘고스트’로 불리는 ‘마츠오카’로 분한다. 하마사키 신지 감독은 그런 요시자와 배우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꽃미남 캐릭터를 봉인하는데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한국에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유명한 히로세 배우의 파격적인 연기변신은 <죽어는 봤지만>의 큰 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히로세 배우와의 촬영은 어땠나요. 데스 메탈 반항아의 역할창조를 위해서 히로세 배우에게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마사키 신지

히로세 배우가 코미디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지금껏 본 적 없는 그의 모습을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개그감이 있더라고요. 초반부터 상당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줘서 놀랐어요. 거침없이 모든 신의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정말 일본을 대표하는 대배우가 될 수 있겠다’고 확신할 수 있었지요.

그밖에 가장 큰 도전은 역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사전에 상당한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은 것 같더라고요. 노래실력이 정말 뛰어나서 다시 한 번 놀랐죠. 극중에서 히로세 배우의 밴드는 인기가 없는 걸로 되어있는데, 그런 느낌이 너무 안 나서 제가 낭패다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웃음)

그리고 ‘데스 메탈 반항아’캐릭터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일단 히로세 배우 자신이 ‘반항적인 시선’을 잘 표현해주셨습니다. 슛이 들어가면 일단 눈빛부터 확 달라지더라고요. 촬영 첫날 영화의 첫 장면인 면접 신을 찍었는데 이전까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데스 메탈 반항아’가 면접장에 앉아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죽어는 봤지만>에서 히로세 배우는 유머연기, 감동연기, 액션까지 소화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분위기를 바꿔가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셔서 ‘연기적 반사 신경’이 정말 탁월한 분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버지가 ‘사망상태’에 있는 사이, 진짜로 장례를 치러버리고 회사를 차지하려는 이들을 막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나나세와 마츠오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빈소가 차려져 있는 기간 뿐이다. 두 사람은 과연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아버지가 ‘사망상태’에 있는 사이, 진짜로 장례를 치러버리고 회사를 차지하려는 이들을 막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나나세와 마츠오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빈소가 차려져 있는 기간 뿐이다. 두 사람은 과연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20년 전 <포스트맨 블루스>로 처음 한국 관객과 만난 이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츠츠미 신이치 배우와의 케미스트리가 훌륭합니다. 다만, 히로세 배우로서는 대배우와의 공연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하마사키 신지

<포스트맨 블루스>! 이야, 그립네요! 사부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츠츠미 배우와는 릴리 프랭키 배우와 같이 출연한 트럭 CF에서 6년 정도 함께했던 경험이 있다 보니 서로 간에 절대적인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역으로 츠츠미 배우의 캐스팅이 확정된 순간 부모자식 관계를 다루는 코미디영화로서 이미 어느 정도의 수준이 담보되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백전노장인 그가 함께하는 이상 코미디로서의 축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한편으로, 츠츠미 배우와는 첫 공연인 히로세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히로세 배우가 보여준 모습이 워낙 대담무쌍해서 츠츠미 배우도 내심 놀라셨을 거예요. 이 부분에 관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실제로 츠츠미 배우는 따님이 있거든요. 촬영을 하다 갑자기 “우리 딸이 이렇게 나한테 ‘죽어, 죽어’ 하면 정말 상처받을 것 같다”고 멍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웃음) 정말 죄송했습니다!

 

홍상현

요시자와 료 배우의 경우 <죽어는 봤지만>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개되기 직전 주연작인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 <킹덤>이 한국에서 공개되었습니다. ‘달달한 꽃미남’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설마 코미디 연기에 이렇게까지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하마사키 신지

요시자와 배우요! 정말 멋지죠?!

말씀하신 <킹덤>에서와는 정말 극과 극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연기의 폭이 정말 넓잖아요. 다들 인정하는 꽃미남 배우인데 존재감이 없다는 게 특성인 ‘고스트’를 표표히 해내는 연기력에 정말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 역할창조와 관련한 접근법이 정말 훌륭했어요. 예컨대 걸음걸이나 말투, 심지어 자세 하나에까지 존재감이 없고 멍청한 캐릭터인 고스트의 특성을 완벽하게 표현해주었거든요. 심지어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 레벨이었나 하면, 본인 등장 신을 찍어야 하는데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제 옆에 있었습니다. (웃음) ‘어? 이거 뭐야’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기획탐구라도 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어요.

정말 틀림없는 배우입니다. 대단한 사람이에요.

「죽어는 봤지만」의 시나리오를 쓴 사와모토 요시미츠 작가는 칸국제광고제 수상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지낸 국제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업계의 마당발이기도 한 그 덕분에 「죽어는 봤지만」에는 초호화캐스트의 카메오(사진 왼쪽의 익숙한 얼굴에 주목하자)들이 등장한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죽어는 봤지만」의 시나리오를 쓴 사와모토 요시미츠 작가는 칸국제광고제 수상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지낸 국제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업계의 마당발이기도 한 그 덕분에 「죽어는 봤지만」에는 초호화캐스트의 카메오(사진 왼쪽의 익숙한 얼굴에 주목하자)들이 등장한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홍상현

여기서 또 한 가지. 카메오 캐스트가 정말 눈부실 정도인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웃음)

하마사키 신지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왜 이런 유명한 분들이 카메오 출연을 해주시는지 촬영을 하던 저조차 잘 모르겠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웃음) ‘무슨 이상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싶은 게.

카메오가 초호화캐스트라 저도 정말 기뻤어요. 막상 촬영을 하던 당시에는 최대한의 효과를 거둬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조금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요. 이런 올스타 캐스팅이 성사된 것은 아마 시나리오를 쓴 사와모토 씨의 인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웃음)

 

홍상현

<죽어는 봤지만>으로 영화감독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차기작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역시 언젠가는 간장집의 후계자가 되시는 건가요. (웃음)

하마사키 신지

감사합니다.

영화감독으로도 꼭 살아남아서 차기작을 찍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업을 잇는 건, 다행스럽게도 제 형이 맡아주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어 부담감에서 해방되어 안심하고 있습니다. (웃음)

코로나 19 확산의 공포에도 아랑곳없이 박스오피스 1위를 향해 질주를 시작한 개봉일(2020년 3월 20일)로부터 정확히 만 1년을 하루 앞두고 있던 지난 3월 19일. 제44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히로세 스즈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으로 두 번째 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코로나 19 확산의 공포에도 아랑곳없이 박스오피스 1위를 향해 질주를 시작한 개봉일(2020년 3월 20일)로부터 정확히 만 1년을 하루 앞두고 있던 지난 3월 19일. 제44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히로세 스즈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으로 두 번째 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C)2020 Not Quite Dead Yet Film Partners

“살면서 반항기를 경험할 수는 있겠지만, 아버지가 이틀 동안 돌아가시는 상황은 좀처럼 겪기 힘들 겁니다. <죽어는 봤지만>은 그런 특수한 설정을 담은 오리지널 코미디영화예요.

웃다가 울고, 또 다시 웃게 되는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새 코로나 19도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요? (웃음) 독특한 웃음 코드가 많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 한국 관객 여러분께 어떻게 비쳐질지 몹시 궁금합니다.

꼭 한번만, 아니, 한번은 섭섭하니까 내키시면 두세 번 봐주셔도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의외의 발견을 하시게 될 수도 있잖아요! (웃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코로나 19 확산의 공포에도 아랑곳없이 박스오피스 1위를 향해 질주를 시작한 개봉일(2020년 3월 20일)로부터 정확히 만 1년을 하루 앞두고 있던 지난 3월 19일. 제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히로세 배우는 <죽어는 봤지만>으로 두 번째 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코미디영화로는 이례적인 일대사건.

분명 하마사키 감독도 시상식에 참석해 예의 마주보는 사람까지 유쾌해지는 미소로 축하의 말을 건넸으리라. 그의 차기작을 보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 아무쪼록 그때쯤에는 부디 마스크 없이, 노트북의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게 아닌 그의 웃음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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