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미 원전 협력, 사우디 수주 물 건너가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5.2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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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해외원전시장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양 정상이 "원전사업 공동참여를 포함하여 해외원전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①원전수주 협력, 찬핵진영 기대감↑

한-미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원전 프로젝트의 공동 참여 등 해외 원전 시장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최고 수준의 국제적 핵안전·안보 비확산 기준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원전업계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정학적 영향력과 함께 이미 해외에 많은 원전을 수출한 경험을 지닌 미국이 함께 해외사업에 진출한다면 수주 경쟁력도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업계를 옹호하는 보수언론들도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특히 조선일보는 24, 25일 이틀 연속 사설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원전수주 협력 합의를 거론하면서 '탈원전 정책 때리기'를 이어갔다.

 

②원전수주 추진 현황

우리나라 원전업계가 해외 수주를 노리는 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체코, 폴란드 등이다. 일정표 상 가장 앞에 놓여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한국전력은 202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원전 건설 계약 체결을 기대한다. 한전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1200~1600㎿급 규모의 신규 원전 2기 건설에서 2018년 예비 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본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프랑스, 중국 등의 원전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한전은 UAE 바라카 원전 수주 경험을 내세워 사우디아라비아 수주전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말 UAE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전 협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전 업계의 기대감을 부풀리기도 했다. 

정부는 2018년 7월 2일 민관합동으로 '사우디원전지원센터'를 열고 수주를 위해 총력지원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출처:에너지경제신문
출처:에너지경제 홈페이지

 

③한-미 원전협력 탓 사우디 수주 물거품?

에너지경제는 24일 <정부·업계 공 들여온 사우디 원전수출 기대, 한미 정상회담에 물거품?>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정상회담 결과) 원전 수출 대상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가입국만으로 제한키로 한 게 계기였다. 사우디는 우리 정부와 업계가 체코와 함께 가장 유망한 원전 수출 대상으로 꼽고 그간 많은 공을 들여온 곳이지만 현재 IAEA 가입국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원자력학계 등 다른 한편에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나타난 미국의 움직임이 사우디에 대한 IAEA 가입 압박을 강화함으로써 결국 한미의 사우디 원전 수주 가능성을 더 높인 것이란 긍정적 해석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출처:국제원자력기구(IAEA) 홈페이지
출처:국제원자력기구(IAEA) 홈페이지

에너지경제는 "사우디는 현재 IAEA 가입국이 아니다"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 IAEA에 가입한 이후 탈퇴한 적이 없다. IAEA에서 탈퇴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는 IAEA 안전조치협정 추가 의정서(IAEA safeguard agreement Additional Protocol) 체제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외 원전 사업 공동참여를 약속했지만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한국이 해외 원전 수주에 참여할 때 상대국의 IAEA 추가 의정서 가입을 전제 조건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추가 설명자료인 팩트시트에도 이런 내용이 명확히 담겨있다.

이는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조치이다.

 

④핵무장 야망,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겐 반드시 넘어야 할 라이벌이 있다. 바로 이란이다.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이란의 핵 능력 개발이 눈엣가시다. 이란이 미국과의 핵합의를 깨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고 있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자극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선 이란이 핵을 가지면 자신들도 핵을 가져야 한다.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고 있는 최대 라이벌에 맞서 억제력을 지녀야 한다는 판단이다. 전통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대이란 핵억제력에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핵무장 능력에 필수적인 우라늄 농축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 물론 겉으로는 평화적 이용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미국 정보당국과 의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의도를 불순하다고 여긴다. 

이런 맥락을 모를리 없는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IAEA 추가 의정서를 채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⑤IAEA 추가의정서는 무엇?

IAEA 추가 의정서는 IAEA 조사관이 협약국의 핵시설 및 의심시설에 대해 사실상 무제한적인 접근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1990년대 초 북한 및 이라크의 핵개발 의혹으로 인해 기존 안전조치협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해 IAEA와 각 회원국간에 체결되기 시작했다.

추가의정서 가입국은 상시적 사찰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를 농축해 핵무기로 전용하려는 움직임은 즉각적으로 발각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선 IAEA 추가의정서 가입은 곧 우라늄농축, 즉 핵무장 가능성 포기를 뜻한다.

한-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는 향후 상대국이 IAEA 추가의정서에 가입해야만 원전을 수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라늄 농축에 대한 열망을 접지 않는다면 IAEA 추가의정서 카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한-미 공조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하거나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여지는 있다.

정상 회담 이전이라면 UAE 수주 당시와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협정을 맺는 방법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 회담으로 이런 방식은 원천 봉쇄됐다. 게다가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IAEA 추가의정서에 가입해야만 원자력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그동안 우리나라 원전업계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내보였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이라는 돌발변수를 만났다. 미국이 해외원전 수주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은 기대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국에 IAEA 추가의정서 가입을 의무화한 이번 협상 결과가 '눈 앞의 대어'로 여겨졌던 사우디 원전 수주를 불발로 이어지게 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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