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법원은 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각하했나

  • 기자명 이승우 기자
  • 기사승인 2021.06.22 11: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재판부의 '일제 강제징용 각하 판결'에 대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양호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닛산화학 등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2015가합13718)을 각하했다. 각하는 제소요건에 흠결이 있는 부적법한 것이라는 이유로 본안심리를 거부하는 판결이다. 즉, 재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 자체가 부적합하다 판단하여 각하 판결을 내린 것이다.

왜 이런 각하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일까. 뉴스톱은 판결문에 언급된 문건을 검토해 각하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을 분석했다.

 

◈ 강제징용 피해자 1심 각하 과정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일본 기업 16곳'을 피고로 피해자 1인당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일본 16개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일본으로 강제연행한 후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한 체 강제로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현재까지도 겪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지급임금 및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당해 소송은 강제징용 피해자 85명(원고)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강길 변호사와 법무법인 동북아의 박종강 변호사가 소송대리를 맡았다. 소송의 대상(피고)으로 ▲스미세키 마테리아루즈 ▲에네오스(ENEOS)스미토모 금속광산 ▲닛산화학우베흥산 ▲이와타치자키 건설 ▲미쓰비시 중공업 ▲니스마츠 건설 미쓰이 금속광업미쓰비시 마테리아루야마구치 고도가스 ▲토비시마 건설훗카이도 탄광기선일본제철 ▲미쓰이 E&S쯔치야(TSUCHIYA) 16곳의 일본기업이 지목됐다. △법무법인 두레 △김앤장(Kim & Chang) △태평양 △광장이 소송 대리를 맡았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피고로 지목된 일본 16개 기업 /출처=기업 홈페이지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피고로 지목된 일본 16개 기업 /출처=기업 홈페이지

 

재판부는 원고의 소를 각하했다.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헌법상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를 위해 <청구권협정>에 의해 그 소권이 제한된다며, 소 제기가 부적합하다고 판시했다.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 법해석이며, 이러한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

(2)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해 갖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

이처럼 재판부는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 조약인 <한·일 청구권협정(1962)>에 의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제한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의 각하 판결 하루 뒤인 6월 8일,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ㅇㅇㅇ판사(김양호)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해당 재판이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반국가적, 반역사적인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일협정 당시 국가 대 국가의 배상권은 부인됐지만, 개인청구권은 부정되지 않았다며 김양호 판사가 근거로 제시한 청구권소멸론은 일본 극우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 반민족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제사회가 일제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한 대목은 대한민국 헌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국가적, 반헌법적 행위라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게시 일주일만에 31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 대리인을 맡았던 강길 변호사는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대해 항소할 의지를 밝혔다. 그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미 인정한 법리를 부인하고 법이 아닌 외교적, 국제적 논리를 끌어다가 판결을 했다며 재판부의 각하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0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도 2018년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 불법성과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폄훼했다며 재판부의 각하 판결을 비난했다.

그렇다면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제한되는 권리일까. 재판부는 왜 각하 판결을 내렸고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논리는 합리적일까. 

 

◈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은 해석의 문제

① 재판부 판결: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제한된다

재판부는 각하 판결 근거로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청구권협정)>을 제시했다. <청구권협정>은 무상 공여 '3억 달러', 유상 차관 '2억 달러' 지급을 골자로 하며, 한국의 대일 청구권 포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 <청구권협정> 제2조 제3항

 

이어 재판부는 <청구권협정>과 동일한 날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조약 제173호)을 근거로 들어 <청구권협정> 제2조를 보충 설명했다.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a)

 

청구권협정 제2조 3에 의해 취해질 조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e)

재판부가 근거로 제시한 <청구권협정>과 <합의의사록>은 청구권과 관련한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됨을 명시하고 있다. 위 자료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청구권협정>에 따라 국가청구권 및 '개인청구권' 역시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판부는 규정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신중한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들의 미지급임금청구권 및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기본적으로 <청구권협정>의 해석에 관한 문제라 밝히며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청구권협정> 제2조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 2015가합13718 판결문

 

위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 2015가합13718 판결문

이처럼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이 피해자 개인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소로써 개인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고 해석했다. <청구권협정>에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해결된 권리"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권리 행사가 제한된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②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은 정의 규정이 없는 불명확한 개념

그렇다면 재판부는 왜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규정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해석'의 문제라고 언급했을까. 재판부가 인용한 근거에는 '청구권'에 관한 '정의 규정'이 없다. '청구권'이 개인청구권을 포괄한다는 규정도 없으며, 청구권의 범위를 한정하는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 규정은 법령 중에 쓰이고 있는 용어의 의미와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며 법령의 해석과 법령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방지한다. 보통 법률 제1조는 입법 목적을 간략히 나타내는 '목적 규정'이고 법률 제2조는 법령 제정의 이념이나 목적 등을 강조하는 '기본이념 관련 규정' 또는 '정의 규정'이 명시된다.

정의 규정이 분명하지 않은 법률 조항은 재판부의 해석이 필요하다. 즉, 재판부가 당해 소송에서 근거로 차용한 <청구권협정> 제2조 '청구권'은 보편적으로 명시된 개념이 아닌, 해석하기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는 '불명확한' 개념이다. 정의 규정과 해석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청구권협정> 제2조는 개인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라고 판시한 재판부의 판결은 불변의 사실이 아니다.

<청구권협정> 외에 관련 법률에는 정의 규정이 존재할까. 지난 1966년 2월 19일, <청구권협정>의 자금 관련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된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청구권자금법)>을 함께보자.

<청구권자금법>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청구권자금법> 제1조는 목적 규정으로 <청구권협정>에 의해 수입되는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 관리한다는 입법 목적을 밝히고 있다. 동법 제2조는 정의 규정으로 법에 사용되는 관련 용어들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청구권자금법>의 정의 규정에는 <청구권협정>으로 지급되는 '무상자금', '차관자금', '원화자금' 등 자금에 관한 정의는 명시하고 있지만, 청구권에 대한 정의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정리하면, <청구권협정>, <합의의사록>은 물론 협정 이행을 구체화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 모두 '청구권'에 관한 정의 규정을 명시하지 않았다. 당해 각하 판결은 절대 불변의 판결이 아니며, 재판을 맡은 재판부의 해석에 따라 자의적으로 변동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재판부의 각하 판결은 타당한가

① 재판부 판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판단한 바와 같이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제한되는 권리일까. 법원 해석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청구권협정> 및 <합의의사록>에 명시된 '청구권'의 범위, 협정이 체결됐던 제반 상황, 협정 체결 이후 후속 조치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 규정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의 범위와 의미는 '해석'이 필요하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 해석에 관한 법리로 지난 1969년 체결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중 해석의 일반규칙(General rule of interpretation)과 관련한 비엔나 협약 제31조와 해석의 보충적 수단(Supplementary means of interpretation)에 관한 제32조를 인용했다.

 

조약은 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 <비엔나 협약> 제31조 제1항

 

조약의 해석상 문맥이라고 할 때에는 조약문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한다. / <비엔나 협약> 제31조 제2항

 

조약을 해석할 때에는 문맥과 함께 조약의 해석 또는 그 조약규정의 적용에 관한 당사국 사이의 추후의 합의, 조약의 해석에 관한 당사국의 합의를 확정하는 그 조약 적용에 있어서의 추후의 관행 등을 참작하여야 한다.  / <비엔나 협약> 제31조 제3항

 

해석하면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또는 애매하게 되는 경우, 명확하게 불합리하거나 또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 조약의 준비작업 또는 조약 체결 시의 사정을 포함한 해석의 보충적 수단에 의존할 수 있다.  / <비엔나 협약> 제32조

이처럼 <비엔나 협약>은 조약을 주변 상황 등 문맥을 고려하여 해석하되, 의미가 모호한 경우에는 조약의 준비작업 등 보충적 수단에 의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엔나 협약>의 해석 기준에 따라 재판부는 1965년 6월 22일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의 준비작업, 추후 합의를 인정 근거로 인용했다. 재판부가 제시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 1961년 5월 10일,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당시 한국은 일본에 강제징용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보상을 요구. 일본 측에서 개인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지 묻자, 한국 측은 "나라로서 청구하는 것이며,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고 밝힘.

▲ 1961년 12월 15일,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당시 한국은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를 산정. 이후 일본과 조정과정을 거쳐 청구권 해결의 변두리에서 금액을 각각 구분하여 표시하지 않고 총액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합의.

▲ 1965년 6월 22일,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 체결(청구권협정)

▲ 1965년 8월, 장기영 경제기획원장관은 <청구권협정>의 무상 지원 3억 달러는 실질적으로 피해국민에 대한 배상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 발언

▲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무상 지원 3억 달러 속에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고 표명

▲ 2009년 외교통상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무상 3억 달러에 포함되어 있다고 재확인  

▲ 2016년 9월까지, 사망·행방불명 위로금 3601억원, 부상장해 위로금 1022억원 등 5500억원 가량의 위로금이 지급됨

위의 근거를 토대로 재판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도 협정 체결 당시 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식했다고 간주했다. <청구권협정> 협정 체결 때 양국의 진정한 의사가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다는 데에 일치한다고 볼 수 없으며, <청구권협정>의 3억 달러 속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상금 역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며 양국이 협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 것에 불과했다면, 위와 같은 보상 조치를 취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즉, 협정에 명시된 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보충적 수단, 추후의 관행 등을 토대로 볼 때,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은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포함한다고 판단했다.

 

② 모든 상황이 재판부의 논리를 보완하지는 않는다

(1)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시이나 에쯔사부로오' 일본 외무대신 발언

하지만 협정 체결 준비 작업과 추후 관행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지난 1965년 11월 5일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조약 및 협정 등에 관한 특별위원회'에서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장본인인 '시이나 에쯔사부로오(椎名悅三郞)' 일본 외무대신은 협상을 통해 지급되는 5억 달러(무상 3억달러+유상 차관 2억달러)과 대일청구권 사이에 법률상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시이나 외무대신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포기된 대일청구권이 개인청구권을 포함하느냐는 질문에 "외교 보호권만을 포기한 것(外交保護権だけを放棄したのであります)"이라 답변했다. 이어 협정에 명시된 대일청구권의 개념은 법률상의 근거와 사실관계가 매우 불명확(法律上の根拠あるいは事実関係、非常に不明確である)하다며 협정에 의해 개인청구권을 포기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이나 외무대신의 발언 / 출처=일본 국회 회의록 검색 시스템

 

(2) 탄바 미노루 외무성 조약국장 발언

지난 1993년 5월 26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서 '탄바 미노루(丹波實)' 외무성 조약국장은 <청구권협정>상 청구권과 외교 보호권을 구분했다. 탄바 조약국장 5억 달러를 지급을 약조한 <청구권협정> 제1조와 대일청구권과 관련한 제2조는 법적인 연관이 없다(この第一条と第二条の間には法的な直接のつながりはございませんけれども)고 말했다.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의 "재산, 권리 및 이익"은 법률상 근거로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는 "실체적 권리"이지만, 청구권은 실체적 권리가 없어 법률 근거의 유무가 문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협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된 실체적 권리에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소멸시킬 대상으로 청구권이 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まさにその消滅させる対象として請求権というものが目に見える形で存在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と思うのです)는 입장을 밝혔다.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에 대해서는 "외교권의 포기"에 그치고 있으며, 개인의 청구권이 있다면 외교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請求権(청구권)につきましては、外交的保護の放棄(외교적 보호의 방기)ということにとどまっておる。個人のいわゆる請求権(개인의 청구권)というもの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その外交的保護の対象にはならないけれども(외교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음)、そういう形では存在し得る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でございます。

-탄바 미노루(丹波實) 외무성조약국장 발언

 

(3)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 서면답변서

지난 2000년 10월 9일 열린우리당 김원웅 국회의원은 정부에게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배상을 포함한 모든 배상이 끝났다고 보는지 여부를 서면 질의했다. 이에 대해 2000년 10월 25일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은 <청구권협정>을 체결하여 양국 정부간에 청구권문제를 일단락지은 바 있지만, 정부로서는 <청구권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소송 등 재판을 제기할 권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2000년 10월 25일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 서면답변서

 

이처럼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이 개인청구권을 포함하는지 여부는 제반 상황과 정부 발표에 따라 달라진다. 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이 단순히 국가 외교적 권리인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괄하는지에 대해 엇갈리는 견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당해 판결 외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검토하여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이 개인청구권을 포함하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③ 대법원 판결: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다 

(1) 미쓰비시 중공업 소송

일본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 연행되어 노역 중 1945년 8월 원자폭탄 투하로 피해를 입은 강제징용 피해자 6명(원고)은 미쓰비시 중공업(피고)을 상대로 각각 1억원의 위자료와 각 100만원의 미불임금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제1심은 법무법인 청률, 상고심은 법무법인 김앤장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소송대리를 맡았다. 

2007년 2월 2일, 1심 재판을 맡은 부산지방법원은 증거 부족과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원고의 소 제기를 기각했다. 피해자 측의 항소로 열린 2009년 2월 3일 제2심 재판에서 부산고등법원은 1심 재판과 마찬가지로 일본 재판소의 확정판결 기판력을 근거로 항소를 기각했다. 피해자 측은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상고심에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하는 '파기환송판결'을 선고했다.

당해 소송에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청구권협정> 제1조에 명시된 5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이 제2조에 의한 청구권문제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며, 국가의 조약 체결로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 정부가 일제의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청구권협정>에서 개인청구권의 소멸과 관련한 한일 양국의 의사 합치가 없었기에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협정 체결로 소멸하지 않았고, 피고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7월 30일에 열린 부산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은 피해자의 소 청구를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책임이 있다며 피해자 각 개인에게 청구금액 및 인용금액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손해배상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했다.

최종적으로 2018년 11월 29일 열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미쓰비시 중공업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 자체가 소멸된 것이라는 피고 측의 주장은 '가정적 판단'에 관한 것으로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파기환송심의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도 위법이 없으며 소멸시효 관련 법리 오해의 위법도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 외에도 미쓰비시 중공업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관련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판결 존재한다. 2017년 8월 11일, 광주지방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억원~1억 5천만원의 금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광주지방법원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으로 지급되는 5억 달러의 명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며, 일본 정부는 해당 금액에 대해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갖고 있음을 확고히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법원 판결(2012)을 인용하여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를 근거로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으며, 미쓰비시 중공업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피고의 항소로 열린 2018년 12월 5일 항소심에서 광주고등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항소를 기각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의 불법행위로 피해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명백하며, 피고 측에서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2) 신일철주금 소송

1944년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됐던 피해자 5명(원고)은 신일본제철 주식회사(피고)를 대상으로 각 1억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피해자에게 노동을 강제한 '일본제철'은 1970년 신일본제철로 통합되었고, 이후 스미토모 금속공업 주식회사와 합병을 거쳐 2012년, 신일철주금으로 발족했기에 당해 소송은 '신일철주금' 소송이라 불린다. 대법원에서 진행된 상고심에서 법무법인 김앤장이 신일철주금 소송의 대리를 맡았다.

2008년 4월 3일,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해자를 강제징용한 구 일본제철과 신일철주금의 법인격이 동일하지 않고,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소 제기를 기각했다. 피해자들의 항소로 열린 2심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 역시 강제징용 대상으로 지목된 일본제철과 신일철주금은 독립된 별개의 법인이라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피해자 측은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열린 상고심에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하는 '파기환송판결'을 선고했다.

당해 소송에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위의 미쓰비시 중공업 소송과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는 점에서 <청구권협정> 당시 양국 정부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부의 의사 합치가 없다는 점에서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고, 피해자는 신일철주금 측에 손해배상청구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2013년 7월 10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은 구 일본제철의 행위가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청구권협정>,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신일철주금 측에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 등 대한민국 헌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핵심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에게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신일철주금은 파기환송심에 불복하여 상고했다.

최종적으로 2018년 10월 30일 열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했다. <청구권협정>은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포함된다거나 배상청구권에 대한 '포기'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에 관해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책임은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기각 요지를 판시했다.

 

이처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모두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이 개인청구권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개인청구권 소멸과 관련한 양국 정부의 의사 합치가 부재했다고 설명했다.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청구권만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고 간주할 수 없으며, 협정에 개인청구권과 관련하여 정의 규정 등을 불명확하게 표기하여 혼란을 가중한 책임은 협정 체결 당사자가 부담해야지, 피해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청구권협정> 해석

① 재판부 판결: 일본 식민지배 불법성 여부는 협정 해석과 관련 없다.

앞서 살펴본 미쓰비시 중공업 소송, 신일철주금 소송에서 대법원은 일본의 식민지배 및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지난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각하 판결은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며 재판부의 <청구권협정> 해석과 관련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관련 국내 판결' 부분에서 미쓰비시 중공업 소송, 신일철주금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인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신일철주금 소송의 반대의견만을 인용했다. 소수로 반대의견을 제시한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은 '해석'에 관한 문제이며, 관련 내용과 적용 범위는 법령을 최종적으로 해석할 권한을 가진 최고법원인 '대법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가 양 체약국은 물론 그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간주했다.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청구권협정>이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으로 체결되었다고 설명했다. 일괄처리협정은 국가가 개인청구권 등을 포함한 보상 문제를 일괄 타결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보상이나 배상을 받았다면 그에 따라 자국민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는 것으로 처리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어, <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및 그 국민의 청구권 등에 대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약으로 '일괄처리협정'에 해당하며, 개인청구권과 관계없이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기로 하는 합의를 담은 조약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위의 반대의견을 인용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갖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에 관해 일괄보상을 받는 내용의 <청구권협상>이 체결된 이상,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인지 여부는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관련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며 <청구권협상>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② <청구권협정>이 일괄처리협정이라는 이유로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

하지만, 위의 판결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및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전면 부정한 해석이다. 미쓰비시 중공업 소송, 신일철주금 소송에 관한 대법원 판결 모두 일본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이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청구권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만일 <청구권협정>이 일괄처리협정으로 체결되었다는 논리로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석한다면 일제 강제징용의 불법성과 이로 인한 피해를 모두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제 식민지배와 징용이 국내법적 해석이라는 재판부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이어졌다. 지난 10일, 연합뉴스는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전문가 위원회의 입장을 인용하여 해당 주장을 팩트체크 했다. 1930년대 당시 ILO 협약 당사국이었던 일본이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것은 강제노동을 규제하는 협약 위반으로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겨례에 재판부 판결을 반박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국제법상 탈식민화와 관련한 유엔 헌장 규정, 전시 민간인 강제징용을 반인도적 국제범죄로 명시한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조약 등을 근거로 일제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이 국제법상 불법행위로 규정돼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일제 강제징용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의 해석은 일괄처리협정인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개인청구권이 제한된다는 자체 논리와 충돌한다. 대법원은 한일 정부가 식민 지배의 불법성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이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청구권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만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려면, 일본이 식민 지배 및 강제징용 불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도출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제한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이 어떤 맥락에서 개인청구권을 포함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대법원의 다수의견을 부정한 것이다. 일제가 강제징용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가 어떻게 보장되어 왔는지에 대한 재판부의 보충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재판부가 <청구권협정>이 개인청구권을 포함한다는 근거로 인용한 추후 관행 중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자료도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난 2005년 8월 26일 개최된 민간공동위원회에는 재판부가 인용한 바와 같이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불은 국가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간공동위원회 자료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주장도 명시되어 있다. 즉, <청구권협정>과 별개로 일제의 불법행위 문제를 다루면서 일제 강점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외교적 대응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는 것이 민간공동위원회의 핵심이었다. 재판부는 일제의 불법행위에 대한 내용은 배재한 상태로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 부분만을 인용했다. 

 

개인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이 일괄처리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해석도 논쟁적이다. 유사한 시기에 체결된 <일본·인도네시아 평화조약>과 대조해보면 <청구권협정>의 문맥만으로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일소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958년 1월 20일 일본과 인도네시아 사이에 체결된 <평화조약(Treaty of Peace between the Republic of Indonesia and Japan)>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유사하게 청구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일 양국간 체결된 <청구권협정>과 '청구권'의 정의와 범위와 관련하여 다소 차이를 보인다.

<평화조약> 제4조 제2항은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전쟁 기소 과정(In the course of the prosecution of the war)에서 일본과 자국민이 취한 모든 조치에서 발생하는 모든 배상 청구를 포기(waives all reparations claims)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평화조약> 제5조 제1항은 "일본은 전쟁 기소 과정(In the course of the prosecution of the war)에서 일본과 자국민들이 취한 어떤 행동에서 비롯된 인도네시아와 자국민에 대한 모든 주장을 포기(waives all claims)한다."고 규정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 간에 체결된 <평화조약> / 출처=인도네시아 외교부

<청구권협정>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체결된 <평화조약> 역시 청구권에 대한 정의 규정이 없다. 단, <평화조약>은 '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배상 청구'라며 전쟁으로 발생한 피해와 관련 배상 청구권을 모두 소멸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모든 청구권을 '포기(waives)'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일본의 강제징용 및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쟁 책임을 명시하지 않고,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규정하지 않은 <청구권협정>과 명확히 구별된다. 즉, 협정에 명확히 명시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일본의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판단을 부정하고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청구권이 제한된다는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상으로 지난 6월 7일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각하 판결을 분석했다. 재판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개인청구권 행사가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청구권협정>이 모든 청구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일괄처리협정'으로 체결된 이상 일제 식민지배 및 강제징용의 불법성 여부는 해석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청구권협정>의 문맥과 체결 당시 상황 그리고 추후 관행을 근거로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된 청구권의 범위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구권협정>의 정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협정의 맥락은 온전히 '해석'의 문제다. 대법원은 지난 미쓰비시 중공업 소송과 신일철주금 소송에서 일본 정부와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체결된 <청구권협정>은 손해배상청구권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제시한 제반 상황 외에 협정의 청구권이 개인청구권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추후 관행도 존재한다. 국내법적 해석 외에도 ILO를 포함한 국제 규범은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른 일괄처리협정인 <일본·인도네시아 평화조약>과 비교해볼 때 <청구권협정>은 '전쟁'에 대한 배상 책임도,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고도 명시하지 않았다. 즉, 당해 소송에서 재판부의 판단은 기존의 대법원 판결, 재판부가 제시한 근거 외의 제반 상황,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국제규범, 타 일괄처리협정에 비해 불명확한 <청구권협정>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다.  

판사(判事)는 법률과 관련 법령을 통해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판(判)은 반(半)으로 가르다(刀)는 뜻으로, 특정 사건이나 사물을 나누어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해 소송을 분석한 결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판부가 과연 사건을 면밀히 분석하여 내면의 진실을 파악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근거만을 들어 논리를 보완하는 것은 판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고 독자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새로운 법적 해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사실관계와 예상되는 반론을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각하 판결은 편협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4일,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제출했다. 기존의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례 모두 1심과 2심의 판결을 부정하고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추후 법원의 판결을 기대해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