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국 성장을 막는 것은 '언론 부패' 때문?

  • 기자명 이승우 기자
  • 기사승인 2021.06.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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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유일의 완전한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 수준의 경쟁력과

기술력을 가지고도 

더이상 오르지 못하는 것은

<언론의 부패>다.

-독일 유명 시사주간지 슈피겔

위의 문구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6.16)에서 회자되는 글이다. 해당 글을 보면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 한국이 언론의 부패때문에 성장을 못하고 있는데 출처는 독일 <슈피겔>이라고 주장했다. 뒤 이어 한국 언론의 청렴도와 공정성이 과거보다 후퇴하여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세계언론자유지수 평가에서는 상위권인 반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언론신뢰도평가에서 5년째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필자는 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라는 자부심을 가진 국가에서 언론의 수준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 글은 여러 커뮤니티(6.16)에 복사되어 퍼졌으며 아래 그림처럼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되어 SNS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 글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당부분이 허위다.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하고 있는 독일 '슈피겔지' 기사 내용. 하지만, 원문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 과연 슈피겔지 기사 내용인지, 아니면 임의로 슈피겔지 이름을 차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① 슈피겔이 보도했다? → 원문 출처 확인 불가

게시글의 필자는 슈피겔이 남미 브라질과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해 조명한 기사에서 발췌했다고 밝혔다.슈피겔은 독일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로 세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런 슈피겔이 보도를 했다고 하니 게시글을 읽는 사람들은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이 처음 등장한 곳은 5월 9일 루리웹으로 "독일 슈피겔지에 최근 한국얘기가 나왔네"란 제목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루리웹 글 역시 출처를 첨부하지 않았다. 뉴스톱이 슈피겔의 뉴스 아카이브(Nachrichtenarchiv)에서 올해 1월 1일부터 커뮤니티에 처음으로 글이 게시된 5월 9일까지 올라온 기사를 검토했다.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 한국' '한국의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은 언론 부패' 등을 검색어로 넣어 봤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KOREA)'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다시 했지만 역시 나오지 않았다. 남미 정치 현황과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비교하는 기사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로 '슈피겔(DER SPIEGEL)' 지는 1947년 창간된 시사주간지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언론 중 하나다.지난 1962년 10월, 서독 방위 태세에 결점이 있음을 지적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Fallex 62> 문서를 기사화 한 '슈피겔 사건'으로 독일 내 언론의 자유를 확고히 보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서독 정부는 슈피겔 발행인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Rudolph Augstein)'를 포함한 기자 8명을 구속했지만, 언론 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국방부장관이 물러나고 내각이 개편됐다. 1966년 8월 5일에는 독일 연방 헌법 재판소가 언론의 자유를 인정한 '슈피겔 판단(Spiegel-Urteil)'을 내리기도 했다. 위의 글 게시자는 이런 슈피겔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글의 신뢰도를 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② 한국은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 → 아시아 유일 아님

한국이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2018년 1월 31일 중앙일보는 "한국, 완전 민주주의 지위 회복"...20위 랭크"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 따르면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가 '2017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선진국 그룹과 함께 완전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20개 국가 중 마지막 자리(20위)를 차지했다. 마지막에서 기사는 "지난해 아태지역 국가들 중 '완전 민주주의'로 분류된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 뿐이었다"고 밝혔다. 즉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의미였다. 이후 한국이 '아시아 유일의 완전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퍼졌다. 

'완전 민주주의 국가(Full Democracies)'라는 용어는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사용된다. EIU는 매년 167개국의 ▲선거과정과 다원성 ▲정부 기능 ▲정치 참여도 ▲정치 문화 ▲시민 자유 등 5가지 척도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한다. 완전 민주주의(Full democracy)는 8~10점, 결함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는 6~8점, 혼합된 체제(Hybird regime)는 4~6점,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는 0~4점이다.

2020년 EIU의 민주주의 지수 분포도. 아시아는 대만, 일본, 한국이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2020년 EIU의 민주주의 지수 분포도. 아시아는 대만, 일본, 한국이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 출처=EIU

문제는 한국은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2일 EIU가 공개한 '2020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2020)'에 따르면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아시아 국가는 대만, 일본, 한국 총 3개국으로 각각 세계 11위(8.94점), 21위(8.13점), 23위(8.01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대만, 일본보다 후순위에 랭크된 것이다.

2020년 EIU 민주주의 지수 / 출처=EIU
2020년 EIU 민주주의 지수 / 출처=EIU

 

EIU가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20년의 평가에서 한국이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였던 적은 단 한 해도 없었다. 한국과 일본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8.0점을 초과한 점수를 받으며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됐다. 한편, 대만은 2020년에 최초로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았다.

2006년~2020년 EIU 민주주의 지수 / 출처=EIU

한국은 지난 2008년 EIU 평가에서 28위(8.01점)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20위(8.11점), 2011년 22위(8.06), 2012년 20위(8.13점)으로 매년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2013년 21위(8.06점), 2014년 22위(8.06점)을 기록하면서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됐다. 하지만, 2015년엔 22위(7.97점), 2016년 24위(7.92점)를 기록하면서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밀려났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17~2019년에는 8.0점을 받았으나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는 점이다. 8.0점은 결함있는 민주주의와 완전 민주주의의 기준점인데 8.0점을 받은 국가는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가 됐다. 즉, 중앙일보가 2017년 보고서의 점수만 보고 내용은 검토하지 않아 '오보'를 낸 것이다.

2017년 EIU의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8.0점을 받아 20위를 기록했지만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에 랭크되었다.
2017년 EIU의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8.0점을 받아 20위를 기록했지만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에 랭크되었다.

 

일본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됐다. 이 중 2008년부터 2014년의 기간 동안은 한국과 동일하게 완전 민주주의로 인정받았다. 이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하락했다가 2020년에 완전 민주주의 국가 지위를 회복했다.

즉, 이명박·박근혜 정부대인 2008~2014년에는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으나 '아시아 유일'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2019년에는 8.0점을 받았으나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2020년에는 대만, 일본, 한국이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한국은 한번도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인 적이 없다.

 

그러면 슈피겔이 남미와 아시아의 민주주의 수준을 비교한 기사를 내보냈다는 주장은 어디서 온 것일까. 2017년 EIU 보고서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EIU는 매년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하면서 보고서에 제목을 붙인다. ▲2020년: 아프거나 건강하거나?(In sickness and in health?) ▲2019년: 민주적 좌절과 시민 항쟁의 해(A year of democratic setbacks and popular protest) ▲2018년: 미투?(Me too?) ▲2017년: 공격 받는 언론의 자유(Free speech under attack) ▲2016년: 개탄스러운 사건들의 복수(Revenge of the deplorables) 등을 주제로 하여 당해년도 민주주의 지수에 대한 평가를 싣는다.

2017년 EIU 평가 보고서 23쪽은 남미(Latin America) 지역의 정치현황을 분석했다. 2017년도 평가에서 남미는 정부 기능과 정치 참여에서 부패와 조직적 범죄로 인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남미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된 우르과이를 제외하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16개, 혼합된 체제 국가 5개, 권위주의 국가 2개로 평가됐다. 특히 EIU는 브라질에서 정치인과 기업인 사이의 부정부패가 만연해있으며, 부패 수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2017년도 EIU 보고서는 언론의 부패로 인해 한국의 성장이 저해된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슈피겔의 뉴스아카이브에는 2017년 1월 26일 "미국은 이제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간주된다(Die USA gelten im internationalen Vergleich jetzt als "beschädigte Demokratie")"는 기사만 있을 뿐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언급한 내용은 없다.  

 

◈ 한국 언론은 세계 최하위 수준?

그렇다면 "한국의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이 언론의 부패"이며 "한국 언론의 청렴, 공정성이 최하위"라는 주장은 사실일까. 게시글 작성자가 추가 근거로 인용한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국경 없는 기자회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언론이 최하위 수준이라는 주장을 검증했다.

 

①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한국 언론 신뢰도 최하위...이용자 정치적 편향성이 주원인

영국 옥스포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Reuters Institute)'는 매년 <디지털 뉴스 보고서(Digital News Report)>를 발표한다. 2020년 조사 대상은 총 40개국이었다. 2021년에는 46개국으로 늘어났다.

지난 2020년 6월 출간된 '디지털 뉴스 보고서 2020'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40개국 중 40위로 나타났다. 언론에서 확산하는 뉴스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냐는 질문에 '21%'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1위는 핀란드로 56%의 응답자가 언론에서 유통되는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2021년 보고서에서는 한국 언론 신뢰도는 46개국 중 38위로 약간 개선되었다.

2020년 디지털 뉴스 보고서의 뉴스 신뢰도 조사. 한국은 40개국 중 40위를 차지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출처=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한국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뉴스(News I Use)에 대한 신뢰도는 27%, 검색을 통해 확인한 뉴스(News in Search) 신뢰도는 19%인 것으로 나타났다. SNS와 플랫폼 상의 뉴스(News in Social) 신뢰도는 16%였다. 반면 1위를 기록한 핀란드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69%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한편, 검색을 통해 확인한 뉴스 신뢰도는 26%, SNS와 플랫폼 상의 뉴스 신뢰도는 16%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위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의 뉴스 소비자는 시중에 유통되는 뉴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용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불신에 기반을 두고 뉴스를 소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과 핀란드의 언론 신뢰도 비교 / 출처=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한국과 핀란드의 언론 신뢰도 비교 / 출처=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이처럼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40개국 중 40위다. 시중에 유통되는 뉴스 뿐만 아니라 독자로서 소비하는 뉴스에 대한 불신 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다만,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보고서는 뉴스 매체 이용과 신뢰도를 기반으로 분석한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언론의 청렴, 공정성이 과거보다 후퇴했다는 내용은 언급 되지 않았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는 한국의 낮은 언론 신뢰도가 뉴스 이용자의 정파성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같은 관점 뉴스, 관점없는 뉴스, 반대 관점 뉴스 선호> 조사에서 한국은 '나와 동일한 관점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44%로 조사국 평균 28%보다 월등히 높았다. 한국보다 같은 관점 뉴스를 더 선호하는 국가는 터키, 멕시코, 필리핀 등 세 나라 뿐이다. 한국의 저널리즘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질문 방식에서도 기인한다. 설문조사는 "당신은 대부분의 뉴스를 거의 신뢰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뉴스를 정파적으로 소비하는 한국인들은 '우리편 뉴스'는 신뢰하지만 '다른편 뉴스'는 불신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추론할 수 있다.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를 합치면 21%로 40개국중 40위지만 5점 척도 평균을 내면 한국은 2.8점으로 프랑스(2.71) 칠레(2.68), 미국(2.28)보다 높은 36위다. 미국의 경우 양당제로 인해 진보-보수 언론의 대립이 극심한 나라도 2021년도  조사에서 미국은 46개국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같은 관점 뉴스, 관점 없는 뉴스, 반대 관점 뉴스에 대한 선호도 조사 /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정치성향별 뉴스 선호도 조사에서는 '매우 보수'와 '매우 진보'인 사람들이 '중도'인 사람들에 비해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층에서 동일 관점 뉴스 선호 비율은 40%에 못 미치는 반면, 매우 보수는 66%, 매우 진보는 55%가 동일 뉴스를 선호했다.

정치관심도별 뉴스 선호도 조사에서는 정치에 '매우 많이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이 동일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한 사람 중 34%만이 동일 관점 뉴스를 선호한 반면, 매우 많이 관심이 있다고 답한 사람 중 70%가 동일 관점 뉴스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종합하면 한국 언론 신뢰도가 낮은 데는 여러 요인이 영향을 주고 있다. 언론의 정파성과 낮은 품질도 원인으로 꼽히지만 이용자의 뉴스 이용 편향성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오히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는 저널리즘 자체의 품질보다는 사람들이 언론 기관에 불만족하거나, 언론이 전달하는 뉴스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뉴스 신뢰도 5점 척도 평균 /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② 국경없는기자회: 한국 언론자유지수 180개국 중 42위...언론 신뢰도와는 별개의 평가 기준

국경없는기자회(RFS, Reporters Sans Frontières)는 2002년부터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를 발표한다. 지난 4월 20일 공개된 2021년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노르웨이, 2위는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1등을 차지했던 핀란드였다.

국경 없는 기자회 2021년 세계언론자유지수. 한국은 180개국 중 42위로 '만족스러운 상태'로 평가됐다. /출처=국경 없는 기자회(RSF)

RSF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언론의 태도, 한국 공영 방송 안정화 등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공영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사 구조적 문제, 언론의 명예훼손 소송 문제 등을 들어 42위로 평가했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보고서가 뉴스 소비자 대상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반면, RSF의 세계언론자유지수는 언론의 독립성 등 제도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국가의 언론자유지수가 반드시 높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반대로 언론자유지수가 높은 국가라 해서 높은 언론 신뢰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디지털 뉴스 보고서 2020에서 24위를 기록했던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160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로이터 연구소가 3위로 평가했던 터키의 언론자유지수는 153위였다.

이처럼 두 지표는 완전히 다른 평가 기준을 두고 있기에, 특정 지표만을 가지고 언론 수준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한국의 뉴스 이용자 신뢰도가 최하위인 것은 사실이나, 언론의 다원성과 독립성, 미디어 환경, 관련 제도, 투명성 등에 관한 언론자유지수는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됐다. 

국경없는기자회 역시 세계언론자유지수가 언론의 자유에 대한 평가일 뿐, 언론의 질적 평가는 아니라고 밝혔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언론 신뢰도와 자유지수 평가만을 가지고 당해 국가 언론에 대한 질적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언론자유지수는 한국 언론의 부패가 세계 최하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언론자유지수의 평가 기준인 정치적 독립성, 다원성, 투명성 등이 높을수록 언론의 부패와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 부패' 문제를 지목하려면 언론 신뢰도, 언론자유지수가 아닌 언론의 부패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다른 지표를 근거로 삼아야 했다. 

해당 커뮤니티 글은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낮았던 2009년에 신종인플루엔자, 2016년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거론된 사건과 언론자유지수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신종인플루엔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처음 발병한 뒤 한국으로 유입된 것이고, 세월호 참사 보도는 '기레기'라는 용어가 유행하게 만들었으나 언론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인과관계의 오류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상에서 확산하고 있는 "독일 슈피겔지가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언론의 부패를 지적했다."라는 주장을 팩트체크했다. 확인 결과 독일 슈피겔지에서는 게시글에 언급된 원문 출처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글에 기재된 일부 내용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한국이 아시아 유일의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된 적은 없으며, 슈피겔지에서 한국 언론 부패를 지적한 적이 없다. 한국 언론 신뢰도가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은 맞지만 주된 원인은 이용자의 편향성때문이다. 언론자유지수가 보수정부때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언론 부패의 근거가 되기는 힘들다. 오히려 권위적 정권의 대언론정책이 언론자유지수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언론이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의 책임을 특정 부문에 돌리는 것은 사회발전을 오히려 방해한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맞아 떨이지고 외신이 보도했다고 하면 의심없이 퍼다나르는 행태가 건전한 여론형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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