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무한정 잘나갈 것 같던 쿠팡의 위기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6.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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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연일 악재에 휘말리고 있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와 김범석 전 의장의 사임이 맞물리며 논란을 빚었고, 쿠팡이츠 입점 점주가 쿠팡이츠 상담사와 통화 도중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근로자 경시, 안전 불감증, 대주주 무책임, 갑질이슈까지 터질 수 있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졌다. 일부에서는 쿠팡탈퇴 인증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최근 쿠팡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했다.

출처: 쿠팡 뉴스룸
출처: 쿠팡 뉴스룸

 

◈물류창고 화재... 소방관 순직, 초동대응 논란

최초 발화시점에 초동 대응이 부실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쿠팡에서 물건을 분류하고 화물차에 싣는 근로자들은 핸드폰을 소지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따라서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을 사물함에 보관한다.

화재 발생 당시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노동자는 자신이 최초 화재 신고 시점보다 10분 전에 쿠팡 보안요원 등에게 신고를 부탁했지만 묵살당하고 오히려 조롱당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소방 출동이 늦어지고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서 결국 소방관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기했다.

이 노동자는 화재 경보기 오작동이 잦았고 스프링클러도 꺼둔 상태라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물류센터 전체적으로 방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추가 조사가 이뤄져봐야 알겠지만 현재 이번 화재는 인재(人災)에 가깝다. 사측이 민형사상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크다는 의미다.

 

◈간접피해... 주민 건강 피해, 물고기 떼죽음

화재 발생 이틀만인 지난 19일 현장에서 1㎞ 정도 떨어진 복하천 3개 보에서 물고기 300여마리가 죽은 채 물 위로 떠올랐다. 20일에는 폐사한 물고기가 1000마리를 넘었고, 21일 오후에도 500여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이천시는 소화수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 성분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폐사한 물고기사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또 화재 현장 인근 하천의 수질 시료를 채취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수질분석을 의뢰했다.

인근 마을 주민 수십명은 두통과 눈 따가움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고 닷새간의 진화과정에서 분진이 쏟아지며 농작물과 토양 오염 피해 보고가 잇따랐다.

쿠팡은 21일 물류센터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인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주민피해지원센터를 개설했다. 

덕평물류센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 가운데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주민피해지원센터로 피해내용을 신고하면 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농가 피해(농작물 등) ▲의료비 ▲분진에 따른 비닐하우스나 차량 등 자산 훼손 등에 대해 보상을 실시할 예정이다.

 

◈쿠팡이츠 분식점주 사망

쿠팡 자회사인 배달 대행 서비스 쿠팡이츠도 논란에 휘말렸다. 쿠팡이츠에 입점한 분식점주가 상담전화 도중에 쓰러져 결국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새우튀김 1개를 환불해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갑질 고객'을 응대한 뒤 쿠팡이츠 본사 상담원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분식점주는 쓰러졌고 끝내 숨을 거뒀다.

허석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을 대신해 피해상황을 전했다.

지난 5월 29일 유명을 달리하신 쿠팡이츠 이용 점주와 “새우튀김 하나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 며 절규하고 있는 유가족을 대신해서 피해 사례를 전달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함.

피해점주는 지난 5월 7일 쿠팡이츠를 통해 배달 주문을 받았고 다음날인 5월 8일 소비자가 매장으로 전화하여 배송 당일(5/7) 다른 음식은 다 먹고 새우튀김 3개 중 하나는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다음날(5/8) 확인하니 색깔이 이상하다며 환불을 요구함.

하루 지난 음식의 환불 요구에 피해점주가 새우튀김 1개만 환불해주겠다고 답변하자, 소비자는 쿠팡이츠에 별점하나와 비방리뷰를 게시하고 4차례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 전액환불을 요구하며 고성을 지름.

피해점주는 이후 3차례 쿠팡이츠 고객센터와 환불요구 관련 전화통화 중 갑자기 쓰러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5월 29일 사망함.

무리한 소비자 요구 등이 점주에게 끼치는 스트레스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이번 사례는 단지 갑질 소비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

리뷰와 별점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매장을 평가해 소비자 일방의 영향력을 키워 온 쿠팡이츠의 시스템도 원인임. 악성리뷰와 별점테러, 방치하는 배달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임. 매장 평가 기준 개선 및 점주 대응력 강화 방안이 조속히 요구됨.

-허석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 2021.7.22. 기자회견

갑질 고객도 문제지만, 쿠팡이츠 본사 상담원의 응대 태도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MBC가 입수한 점주(A씨)와 쿠팡이츠 상담센터의 통화내역을 살펴보자. 

[쿠팡이츠 센터 (오후 3시)]
"쿠팡이츠인데요. 고객님께서 다시 한번 통화를 하셔야 되겠다고 하거든요."

[쿠팡이츠 센터 (오후 5시)]
"쿠팡이츠인데요. (고객이) 기분이 안 좋으셔가지고 주문건을 전체 다 취소해달라고 하시는데…"

A 씨가 쓰러진 순간, 통화하던 상대는 바로 이 배달앱 업체였습니다.

[A 씨 - 쿠팡이츠 통화]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그런 말 하면서… 그건 아니잖아요. <네, 사장님 좀 진정시켜주세요…여보세요?>"

A 씨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도 배달업체의 요구는 집요했습니다.

[해당 음식점 직원 - 쿠팡이츠측 대화]
직원: 쿠팡에서도 계속 전화 오니까 전화 받고 바로 쓰러졌어요.
쿠팡: 동일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저희 사장님께 좀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 (A 씨는) 전화를 못받아요 지금.
쿠팡: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 지금 (A 씨는) 정신도 없어요, 깨어나지 않아서…
쿠팡: 알겠습니다. 추후에 조금 조심해주시고요.

쿠팡이츠 상담센터 상담사는 통화도중 점주 A씨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도 '동일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 사임

화재사고 당일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국내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 사임 소식이 전해졌다. 소비자들은 특히 이 부분에 대해 분노했다. 일부 언론들은 내년 중대재해법 처벌 조항 시행을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내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쿠팡 측은 김 전 의장은 5월31일 사임해 화재사고 탓에 사임했다는 보도는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사임 사실이 화재발생 당일에 알려지게 된 건 사임등기 완료를 확인한 한 언론사가 화재 당일 오전에 사임 관련 단독 보도를 먼저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기사를 본 다른 언론들의 관련 문의가 있어 부득이 화재 당일에 사임 소식을 발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 #쿠팡해지 운동

쿠팡 노동자 과로사, 물류센터 화재에 김범석 의장 사임 소식이 알려지고 쿠팡이츠 입점 업주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쿠팡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급격히 악화됐다. SNS를 통한 쿠팡해지 해시태그 운동이 촉발된 이유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2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김범석의 혁신에는 사람이 없다. 그가 달성한 수량적 성과는 혁신적으로 노동을 쥐어짜고, 사람 목숨을 갈아 넣어 만들어낸 것”이라며 “‘#쿠팡탈퇴’ 해쉬태그 인증이 이틀 전에 17만 건을 넘어섰다.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쿠팡의 부실한 안전관리는 이번 화재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물류센터 직원들의 코로나 집단 감염 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숱하게 지적되어온 사항”이라며 “이렇게 인권과 노동권을 유린하는 혁신기업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나. 기술혁신이 곧바로 사회혁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쿠팡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은 노동권을 무시당한 노동자,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에서도 배제되는 배송기사, 쿠팡이츠를 이용하는 중소상인, 아이템위너에 속은 소비자 등 다양하다"며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과 같은 기본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함에도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했다.


압도적인 속도와 다양한 구색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온 쿠팡이 도전에 직면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쿠팡은 성난 소비자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쿠팡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의 핵심은 상생과 책임일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로서 중소 상공인들의 판로를 만들어주고 소비자들에게 빠른 배송과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여태껏 쿠팡의 성공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쿠팡해지 운동을 벌이는 소비자들은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입점 업체들의 희생과 물류 담당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정당하게 보상해 주라고 요구하고 있다. 회사 운영 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이 없다면 쿠팡의 위기는 한시적 위기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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