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사원 여성 출입' 유혈사태 원인은 5개월 뒤 총선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9.01.0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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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리말라(Sabarimala)라는 이름의 인도의 한 힌두 사원이 전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 사원은 인도 남부 아라비아 해안에 연하여 있는 께랄라(Kerala) 주에 위치하여 있는데, 연간 규모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순례객이 참배를 하는 힌두교 최고 사원 가운데 하나다. 이 사원은 아이얍빤(Ayyappan)이라는 여신을 주신으로 모시는 사원인데, 아이얍빤은 전형적인 이 지역의 토착 신앙에서 나온 여신으로 중세 때 북부에서 내려온 힌두교와 습합하여 때로는 쉬바의 배우자신으로 때로는 비슈누의 여(女)화신으로 숭배를 받는 신이다. 이 여신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을 유지하는 신으로 성적 욕구를 제어하고, 출산을 포기하는 성격으로 숭배를 받는다. 그래서 이 여신을 모시는 이 사원은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은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아이얍빤(Ayyappan) 여신은 사바리말라 힌두 사원에 모셔져 있다. ⓒwikimedia

 

사실, 이 사원 외에도 힌두교 사원 가운데 독실한 곳은 여성의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전통은 전형적인 힌두교의 오염 의식(意識)과 관련이 있다. 힌두교 신자 즉 힌두는 생물의 살아 있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오염원(源)이라 믿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오염은 방사되어 남을 전염시킨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것을 다루는 일을 항구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천한 카스트이고 일시적으로 그것과 접촉하는 것은 더러운 일이니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나온 것이라 치면, 떨어진 머리카락, 잘린 손톱, 튀겨 나온 침, 싼 오줌과 똥, 싼 정액, 흘린 피 등이 있고 그 가운데 가장 정도가 센 것으로는 단연 시체다. 그러니 동물 시체를 치우거나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사람은 최하위 카스트에 속하고, 남이 마신 컵을 사용해 물을 마시는 것은 오염된 짓을 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육식을 하는 것은 시체를 먹는 것이니 오염된 일이고 그래서 높은 브라만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 시체 즉 고기 못지않게 기피하는 것이 피다. 그래서 여성의 월경은 오염된 것이고 생리가 있는 여성이 사원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일은 흔하고, 그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지킨다. 힌두교 전통이 이럴진대, 더군다나 이 아이얍빤 사원은 성(聖) 처녀로서 청정 금욕의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니 생리 중인 여성은 물론이고 아예 생리를 하는 즉 가임기의 여성(15세부터 50세)은 출입을 할 수 없도록 이 지역 사원위원회에서 관습법으로 정해버렸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인권 운동가들은 영국 지배 때부터 계속 여성 출입 금지 조치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으나 번번이 막혔다. 영국 지배자들은 관습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정리했고, 그 연장선에서 1991년 께랄라 고등법원 또한 관습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다가 2018년 9월 28일에 대법원이 여성의 출입금지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해 여성 출입을 허용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때부터 관습법을 따르는 사원 중심의 보수 측과 여성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 측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후 여성 운동가 두 사람이 몇 차례에 걸쳐 사원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였고, 이에 대해 보수측 인사들이 급속도로 세를 확장하여 그들의 입장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2018년 9월 대법원이 사원의 여성 출입 허용을 판결한 이유 보수적인 남성 힌두신자들이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출처: Feminismindia.com

이 문제를 겉으로 보면 종교의 법이 헌법에 대해 독립할 수 있느냐 아니면 헌법에 따라야 하느냐의 문제 같지만, 냉정하게 사태를 뒤돌아보면 그런 법의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 문제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인도의 정치 구조와 선거를 통한 권력 투쟁의 역학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인도 연방 정부는 힌두 근본주의를 정당의 이념으로 삼으면서 무슬림을 비롯한 소수 집단을 핍박하고 폭력으로 힌두 국가(Hindu Rashtra) 건설을 외치는 여러 극우 수구 세력과 연대하는 인도국민당(Bharatya Janata Party)이 집권 중이고, 반면에 께랄라 주는 1957년 인도공산당이 집권을 한 이래 지금까지 때로는 독립 공산당 정부를, 때로는 다른 정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한, 좌파의 영향력이 아주 강한 곳이다. 현재는 2016년 주 의회 선거에서 인도공산당(마르크스주의자) (Communist Party of India, Marxist)이 다수당으로 주축이 되어 다른 군소정당과 연합하여 구성한 연립 정권인 좌파민주전선(Left Democratic Front)이 집권하고 있다. 인도국민당의 입장에서는 1951년 총선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권을 해 본적이 없는 정치적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께랄라에서 힌두 사원 여성 출입의 문제가 대법원에서 불거지자, 인도국민당의 방계 정치 조직들이 힌두 근본주의 충돌을 조장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사태의 발단이다. 결국 종교 공동체 갈등의 뿌리는 정치의 문제고 그것은 선거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자마자 인도국민당의 방계 세력인 민족의용단(Rashtriya Swayamsevak Sangh)과 의용단일가(Sangh Parivar) 단원들은 조직적으로 힌두 신자들을 자극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종교는 종교의 고유 영역의 문제이고, 수 천 년 간 내려오는 관습법을 헌법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성한 사원이 더러운 여성의 발에 의해 더럽혀지고, 그들 더러운 몸에 의해 신성한 여신이 능멸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엄청난 군중을 조직해 사원을 둘러싸고 여성 운동가의 입장을 저지하였다. 이러한 인도국민당 방계 힌두 근본주의 정체 세력의 갈등 유발 전술은 그 동안 북부 인도에서는 잘 먹혀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북부 인도에서도 그러한 전술에 식상한 힌두 신자들의 참여가 예전 같지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곳 께랄라는 인도공산당이 60년 동안 가장 큰 정치 세력으로 권력을 유지해 온데다가,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인도 전체에서 문자 해득율이 가장 높고, 협동조합을 비롯한 풀뿌리 운동이 가장 잘 조직되어 있는 곳이다. 인도국민당과 힌두 근본주의 영향력이 별로 세지 않는 곳이다.

인도 여성들이 2019년 1월 1일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바니타 마틸(Vanitha Mathil)이라 부르는 여성 장벽을 만들었다. 출처: New India Express

힌두 수구 세력의 조직적 폭력 유발이 거세지자 이번에는 인도공산당 세력이 집권당으로서의 프리미엄과 그 동안 쌓아놓은 조직력을 최대한 활용해 같은 방식으로 조직의 세를 과시했다. 새해 2019년이 시작하는 첫 날 무려 500만 명이나 되는 여성이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면서 바니타 마틸(Vanitha Mathil)이라 부르는 ‘여성 장벽’을 쳤다. 약 620 km에 달하는 여성들의 인간 장벽 잇기가 15분 여 동안 진행되었고, 아무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다음 날 40대 여성 운동가 두 사람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사원으로 입장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사원의 사제들은 사원을 닫고 한 시간 동안 정화 의례를 하였다.

 

이후 극우 세력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고, 양 측 지지자들이 충돌하였다. 3일부터 시작된 폭력 시위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시위로 인해 가옥 수십 채와 버스와 경찰차 등 차량 100여대도 피해를 봤다.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주요 도시 시내 교통이 통제되기도 하였다. 1월 4일 금요일까지 1,718 명이 체포되었고, 1,009명이 예비 검속 상태에 놓여 있는 중이다. 1월 4일 저녁 9시50분에는 인도국민당-민족의용단 조직원으로 보이는 한 괴한에 의해 께랄라 주 집권 여당 소속 의회 한 사람 집에 폭탄을 던진 일까지 발생했다. 당시 의원은 집에 없어서 인명 피해는 없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계속해서 집권 여당 소속 정치인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극우 세력은 어떻게 해서든 폭력 사태를 키우려 하고, 결국 이 지역을 소요 지역으로 지정하려고 안간힘을 다 쓰나 정권을 가지고 있는 인도공산당(마르크스주의자)는 그들의 전술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애쓰는 형국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인도에서 종교 간의 갈등은 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종교 공동체 간의 갈등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다. 인도국민당은 경제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당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힌두교를 이용하여 힌두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유발하여 표를 모으는 전술을 쓰는 전형적인 극우 정당이다. 그런데 연방 정부 의회 선거가 이제 4~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집권 정당인 인도국민당은 최근 행한 몇몇 지역 차원에서의 선거 결과를 토대로 볼 때 올해 선거에서 재집권하기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것은 인도국민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힌두 근본주의 위에서 벌인 공동체 간의 갈등조장 전술에 국민들이 지쳐 있거나 도시와 중산층 중심의 경제 정책 결과 농민들의 지지 이탈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체로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방 정부 수상 모디(Narendra Modi)는 올 4~5월에 치를 총선 전략으로 경제 성장과 힌두주의의 두 방편 가운데 전자가 효과가 없자 후자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께랄라에서 폭력을 유발하려고 애쓰는 것은 께랄라 지역에서는 직접적인 선거 효과를 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구가 훨씬 많고 전체 대세를 좌우할 수 있으며 힌두 근본주의 정치의 붐을 일으킬 수 있는 북부에 자극을 주는 전술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께랄라의 문제는 인도에서 가장 큰 인구 2억의 웃따르 쁘라데시(Uttar Pradesh)주의 아요디야(Ayodhya)에 라마 신 사원 건립 운동과 무슬림 핍박 폭력 전술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종교 공동체 폭력 전술로 크게 재미를 본 90년대 상황과 달리 지금은 인도 국민이 과거 같이 그리 큰 자극을 받지 않고 상대적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어 그들의 전술은 그리 큰 효과는 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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