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1.07.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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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문 자체로 보면 대체로 사실, 학계 평가는 ‘실제로는 모두 점령군’

김원웅 광복회장의 고교생 대상 영상 메시지 내용이 대선 후보들 간의 공방으로 번지며 논란이 커졌습니다. 김 회장의 발언 내용과 사실 여부를 사료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김 회장은 6월 21일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경기도 양주백석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13분 분량의 영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를 처음 보도한 중앙일보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달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에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개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청소년에게 설파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광복회 홈페이지에 게시됐던 원본 영상은 현재 삭제가 된 상태입니다. 광복회 측에서는 불필요한 논란을 우려한 학교 측의 요청으로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상태라고 알려왔습니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다른 매체의 보도와 소셜미디어에서의 논란으로 이어졌고, 현재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과 이를 비판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으로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의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서 북한은 소련군이 들어오고 남한은 미군이 들어왔다. 소련군은 들어와서 곳곳에 포고문을 붙였다.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참 축하드린다’ ‘조선인의 운명은 향후 조선인들이 하기에 달렸다’ ‘조선 해방 만세’. 이렇게 포고문이 돼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점에 미군이 남한을 점령했다. 맥아더 장군이 남한을 점령하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들은 내 말을 잘 들어야 된다’ ‘내 말을 안 들을 경우에는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처벌하겠다’ ‘그리고 모든 공용어는 영어다’. 이런 포고문을 곳곳에 붙였다.”

 

우선 당시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문은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련의 포고문 제1호는 북한 점령을 담당한 극동군 제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 대장의 이름으로 발표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작 운영하는 우리역사넷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고문 원문 전체는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가 1969년에 발간한 북한연구자료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통신사인 중앙조선통신사가 발간한 조선중앙년감 1950년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군대와 연합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구축(驅逐)하였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새 조선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

화려한 과수원은 사람의 노력과 고려(顧慮)의 결과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행복도 조선 인민이 영웅적으로 투쟁하며 꾸준히 노력하여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일제의 통치하에서 살던 고통의 시일(時日)을 추억하라! 담 위에 놓인 돌멩이까지도 괴로운 노력과 피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누구를 위하여 일하였는가?

왜놈들이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조선사람들을 멸시하며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모욕한 것을 당신들이 잘 안다.

이런 노예적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저리나는 악몽과 같은 그 과거는 영원히 없어져 버렸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

조선 인민 자체가 반드시 자기의 행복을 창조하는 자로 되어야 할 것이다. 공장 제조소 및 공작소 주인들과 상업가 또는 기업가들이여! 왜놈들이 파괴한 공장과 제조소를 회복시키라! 새 생산기업체를 개시하라! 붉은군대사령부는 모든 조선기업소들의 재산보호를 담보하며 그 기업소들의 정상적 작업을 보장함에 백방으로 원조할 것이다.

조선노동자들이여! 노력에서의 영웅심과 창작적 노력을 발휘하라! 조선사람의 훌륭한 민족성 중 하나인 노력에 대한 애착심을 발휘하라! 진정한 사업으로써 조선의 경제적 및 문화적 발전에 대하여 고려하는 자라야만 모국 조선의 애국자가 되며 충실한 조선사람이 된다.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소련군의 포고문 1호

맥아더 사령부 포고 제1호로 불리는 태평양미국육군사령부포고문 제1호는 1945년 09월 24일 민중일보 보도(국립중앙도서관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된 원문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가기록원미국 국무부 사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일본 제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은 아래 여러 국가 군대 간에 오래 행해져 왔던 무력 투쟁을 끝나게 하였다.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 인민은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확신하여야 한다. 따라서 조선 인민은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원조 협력하여야 한다. 본관(本官)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미군의 포고문 1호

 

두 포고문 원문을 그대로 보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해방군,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김원웅 회장의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우리역사넷’도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미국의 포고문과는 달리 소련의 포고문에는 호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군정에 대한 우려는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1946년 6월 1일자 ‘법령 제72호의 의도, 맥 원수 포고 제2호의 부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 미군정이 새로 발포한 『군정법령 제72호-군정 위반에 대한 범죄』와 관련한 기자단 문답에서 “법령칠십이호는 일정시대 조선인의 자유를 극도로 탄압하던 치안유지법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는 기자단의 질문과 “동 법령을 치안유지법이라고 믿는 것은 오해”라는 미군정의 답변을 소개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하지만 포고문과 실제 통치는 달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북한지역에 주둔한 소련군의 모습은 포고문과는 크게 달랐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북한 지역의 소군정 체제에 대해 “실제로 그러한 선언은 허구적 기만에 불과함이 곧 드러났다. 예컨대 소련은 광복되던 해부터 북한산 쌀을 가져갔고, 수풍발전시설·흥남비료공장 등의 시설을 접수하였으며, 모든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남쪽에 주둔한 미군정에 대한 평가는 매체별로 다릅니다. 사료역사학자의 의견을 빌어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견해에 힘을 싣는 보도가 있는 반면, 일부 학자나 관계자들의 발언을 근거로 김원웅 회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매체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해방 후 북한의 소련군과 미군의 포고령을 통해 당시 두 군정의 통치 성격을 평가하면, 김원웅 회장의 발언에 무게가 실립니다. 하지만 실제 통치는 포고문과 달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미군과 소련군 모두 실제 통치는 점령군에 가까웠다’는 평가많습니다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유력 대선후보 두명이 이 시점에 '점령군-해방군 논쟁'을 벌이는 것에 대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국가관과 정체성 검증, 역사인식 논란 등의 단어를 붙이며 논쟁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소련군이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를 따지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할 일이지 정치인들이 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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