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재즈카페에 그 뮤지션이 50년동안 있었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1.07.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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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넷팩상 수상작 <재즈 카페 베이시> 호시노 테츠야 감독ㆍ 카메야마 치히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인구 11만의 이와테현 이치노세시에 베이시가 문을 연 것은 1970년 6월. 반세기 넘는 세월을 지나며 재즈 관련 인사를 포함한 세계의 셀러브리티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재즈의 성지가 되었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인구 11만의 이와테현 이치노세시에 베이시가 문을 연 것은 1970년 6월. 반세기 넘는 세월을 지나며 재즈 관련 인사를 비롯한 세계의 셀러브리티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재즈의 성지가 되었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초청작 상영이 끝나고 스크린 앞에 선 감독, 간단한 소개 뒤에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호감을 표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 열띤 분위기 속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차분하게 정리발언을 이어갔다.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라 제 의견이 특별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저는 그저 한때 이 작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 따름이니까요.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이죠. 영화를 불러주신 분이나 틀어주신 분, 또, 즐겁게 봐 주신 분 모두의.”

필자와의 막역한 관계는 차치하더라도 단연,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발언. 그 어떤 문예이론서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지 못한 수용미학(Rezeptionsästhetik)의 정의였다. 작가의 작품은 세상에 나오면 이미 작가만의 것이 아니니 대중의 수용을 통한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촌놈 기죽이는 휘황찬란한 아는 척’의 무용함. 먼지 낀 서가의 빛바랜 단어들이 선명한 색으로 되살아나는 것 같던 후카다 코지의 말이 생각난 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넷팩(NETPAC)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영화 <재즈 카페 베이시>를 보면서였다.

호시노 테츠야 감독은 젊은 시절 판소리에 심취했던 크리에이터이자 도쿄의 퓨전요리 바, 가랑스의 점주이기도 하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호시노 테츠야 감독은 젊은 시절 판소리에 심취했던 크리에이터이자 도쿄의 퓨전요리 바, 가랑스의 점주이기도 하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무대는 ‘백작(count)’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그래미 어워드 9회 수상 경력의 거장, 윌리엄 제임스 “카운트” 베이시(이하 ‘카운트 베이시’)의 이름을 딴 재즈 카페다.

인구 11만의 이와테현 이치노세시에 베이시가 문을 연 것은 1970년 6월. 반세기 넘는 세월을 지나며 재즈 관련 인사를 비롯한 세계의 셀러브리티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재즈의 성지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사람들에게 결코 ‘재즈’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복잡한 장르의 구분이나 계보의 나열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자신 카운트 베이시로부터 ‘스위프티(Swifty)’라는 닉네임을 받은 재즈뮤지션으로, 미국 투어 경험까지 있는 빅밴드 리더 출신 점주, 스기와라 ‘스위프티’ 쇼지가 48년 된 턴테이블(LINN Sondek LP12)에 57년 된 프리앰프를 세팅, 50년 된 스피커(JBL 2220B 등)를 통해 명반을 ‘연주(performing)’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행위를 ‘플레이’가 아니라 ‘퍼포밍’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 주) 그렇게 젊은 시절 판소리에 심취했던 크리에이터이자 도쿄의 퓨전요리 바, 가랑스(Garance)의 점주인 호시노 테츠야 감독은 베이시라는 소우주의 일상과 그곳을 드나드는 소행성 같은 사람들을 셀러브리티와 평범한 이웃의 구분이 없이 관찰하며 명멸하는 열정이나 흥분 기쁨, 그리고 애상의 감정마저 에피소드가 되는 멋진 옴니버스드라마를 그려낸다.

아울러 <재즈 카페 베이시> 엔딩 크래디트의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P)를 맡은 카메야마 치히로다. 기무라 타쿠야의 출세작 <롱 베케이션>, 오다 유지의 대표작 <춤추는 대 수사선> 등 인기 TV드라마 프로듀서로 90년대를 풍미했던 그는, <춤추는 대수사선>, <노다메 칸타빌레>, <히어로> 등의 ‘극장버전’으로 영화계에서도 히트메이커로 자리를 굳혔고, 국내개봉에 리메이크까지 된 <용의자 X의 헌신>,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칸영화제 수상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을 내놓으며 흥행성ㆍ작품성이라는 양날의 검을 쥔 마에스트로에 등극한다. <재즈 카페 베이시>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 후지TV, 그리고 BS후지의 CEO에 취임하면서 잠시 현장에서 멀어졌던 카메야마가 7년 만에 내놓은 ‘컴백 작품’이다.

오늘 “홍상현의 인터뷰”는 이례적으로 필자와 호시노 감독, 그리고 카메야마 EP 세 사람이 함께하는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카메야마 치히로 EP는 인기 TV드라마 프로듀서로 시작, 영화계로 영역을 넓혀 히트메이커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은 뒤 흥행성ㆍ작품성이라는 양날의 검을 쥔 마에스트로에 등극했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카메야마 치히로 EP는 인기 TV드라마 프로듀서로 시작, 영화계로 영역을 넓혀 히트메이커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은 뒤 흥행성ㆍ작품성이라는 양날의 검을 쥔 마에스트로에 등극했다.

홍상현

<재즈 카페 베이시>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오셔서 넷팩상까지 받으셨습니다. 

호시노 감독

저는 아직도 ‘설마, 제가?!’ 하는 느낌입니다.

작품을 초청해 봐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기쁘다기보다 너무 놀라 한동안 실감이 가지 않았어요. 엔터테인먼트 강국으로 세계인이 즐기는 영화를 만들고 계신 한국의 여러분, 그리고 해외 영화인 여러분께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카메야마 EP

상영 날 많은 분들이 작품을 보러 와주셔서 감동했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GV에서도 관객 분들께서 진지하고도 꼼꼼하게 작품을 감상해주신 게 느껴져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흥분이 가시질 않더라고요. 지금껏 많은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영화란 역시 관객 여러분이 봐주심으로 해서 성립된다는 점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홍상현

EP는 한국에서 작품을 선보이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신데요. (웃음)

카메야마 EP

물론 그렇습니다만, 제 필모그래피는 아무래도 극영화ㆍTV드라마가 메인이었거든요. 스크린에 투사되는 다큐멘터리영화 작업을 처음 해본지라 더 흥분되는 것 같습니다.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에서 항상 드리는 질문인데요. 평소 한국 영화를 즐겨 보시는지요. 한국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호시노 감독

어떤 작품에서든 창작자의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또, 관객 여러분의 수준이 무척 높은 데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계신 분들이 많죠.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식견을 갖고 계시다고 할까요.

좋아하는 감독도, 작품도, 배우도 너무 많지만 감독을 예로 들면, 역시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즐겨봅니다. 그중에서도 <마더>를 가장 좋아하고요.

 

홍상현

EP는 하실 말씀이 더 많으실 것 같은데. (웃음) 처음 제작하신 장편상업영화가 최민수 배우를 캐스팅한 한ㆍ일 합작영화 <서울>이었잖아요. 3년 뒤에는 일명 ‘초난강’으로 불리는 쿠사나기 츠요시와 <역도산>의 나카타니 미키 등을 캐스팅해 처음부터 끝까지 캐스트 전원이 한국어로 대사를 하는 <호텔 비너스>를 만드셨고.

카메야마 EP

영화판 <충추는 대수사선>의 한국개봉을 기점으로 하면 20년 넘은 인연이네요.

당시와 비교해보더라도 한국영화는 실로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할 정도의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크리에이티브와 아이디어! 최근 들어서는 영화는 물론 드라마까지 우리에게 ‘저런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영감을 주고 있을 정도죠. 저는 특히 <엽기적인 그녀>를 처음 보던 순간의 신선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강인한 여성캐릭터와 상냥한 남성 캐릭터의 러브스토리. 제가 프로듀서였던 드라마 <롱 베케이션>도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었거든요.

같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본보기가 되는 작품들이 사랑받는 걸 보면서 후배들에게 ‘우리도 분발하자’는 격려를 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 빅밴드의 리더로 활약했던 베이시의 점주, 스기와라 쇼지의 닉네임은 ‘스위프티(Swifty)’다. 운명적 관계인 재즈의 거장 카운트 베이시가 지어주었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젊은 시절 빅밴드의 리더로 활약했던 베이시의 점주, 스기와라 쇼지의 닉네임은 ‘스위프티’다. 운명적 관계인 재즈의 거장 카운트 베이시가 지어주었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그런데, 이번에는 공백기가 좀 긴 편이었잖아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 <재즈 카페 베이시>를 제작하시게 되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함께 작업을 하시게 된 분이 엄밀히 말해 ‘업계’ 사람으로 분류되기는 어려운 호시노 감독이었던 점도 궁금하고요.

카메야마 EP

제가 샐러리맨의 신분인지라 현장책임자가 아닌 관리자로 일해 달라는 회사의 요청에 따라야했습니다. 오랜 시간 창작 작업을 해온 입장에서 쉽지 않은 시간이었죠. 영화를 보면 마음의 동요도 심해져서 한동안 영화관도 찾지 않았어요.

그 과정에서 쌓여가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주 들렀던 곳아 호시노 감독의 가게였습니다. 원래 현장 생활을 할 때부터 단골이기는 했지만.

 

홍상현

그런데 그 점주가 ‘은둔고수’더라? (웃음)

카메야마 EP

크리에이터로서의 재능까지 속속들이 파악했던 건 아니지만, 일단 음악이나 오디오, 영화에 대해 엄청난 조예를 가지고 있었죠.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는 호시노 감독이 소개하는 독립영화를 프로젝터로 가게의 흰 벽면에 비춰보면서 의견을 나누거나 했는데, 오랜 친구 집에 놀러가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홍상현

단지 그것만으로 신작 프로젝트 감독이 되셨을 것 같진 않은데요.

카메야마 EP

네. 일단 그렇게 교류하면서 지낸 시간이 도합 15년 정도인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종종 자리를 비우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벌써 5년째 카메라를 들고 스기와라 씨를 찍으러 베이시에 드나들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더러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제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조금만 힘을 보태면 의미 있는 작품 한편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일하는 일본영화방송의 프로듀서와 의논해 기획을 구체화 시켜보도록 했어요.

 

홍상현

베이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신 것도 그 즈음인가요?

호시노 감독

그건 좀 더 오래 되셨죠?

카메야마 EP

네. 10년 전쯤이죠. 그때 호시노 감독과 베이시에 처음 가서 스기와라 씨를 소개받아 교류가 시작된 겁니다. 저 자신 워낙 재즈를 좋아하다 보니 프로젝트 구상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무척 자연스러웠고요. 제 취향과는 별개로 극영화나 방송드라마를 만들 때는 마음껏 쓸 수가 없었거든요. 장르나 매체 특성상의 한계가 있어서.

「재즈 카페 베이시」에는 제임스 B. 랜싱이 1946년 창립한 스피커 브랜드, JBL의 클래식모델이 대거 등장한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재즈 카페 베이시」에는 제임스 B. 랜싱이 1946년 창립한 스피커 브랜드, JBL의 클래식모델이 대거 등장한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화제가 자연스럽게 프로듀싱에 대한 걸로 넘어오게 되었네요.

이 부분은 중요한 것이, 보통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이 감독 1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이 대부분인데, <재즈 카페 베이시>의 경우, 프로듀서의 영역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호시노 감독

적확한 말씀이십니다. 말씀처럼 <재즈 카페 베이시>는 신인감독인 제가 메가폰을 잡은 ‘호시노 영화’인 동시에 EP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카메야마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카메야마 EP

방송국 소속으로 영화에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면서 지향했던 게 프로듀서 시스템이었습니다. 제작비 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방송국이 영화의 제작위원회에 합류하면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가 있거든요. 책임도 프로듀서가 나눠 질 수 있고. 나아가서 흥행에 대한 부분까지 담보해낼 수 있으니까요.

 

홍상현

확실히 위기관리 차원에서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시절 커리큘럼을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영화작가를 기르는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누구나 봉준호나 박찬욱이 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웃음)

카메야마 EP

물론 한 사람의 대가, 그러니까 대감독 중심으로 영화제작의 흐름이 주도되는 전통적 방식에도 미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능 있는 신인들에게조차도 감독 데뷔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홍상현

예컨대 호시노 감독처럼 말이죠? (웃음)

카메야마 EP

(웃음) 성실하게 데뷔를 준비하는 차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상업적으로 일정부분의 수익까지 얻어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보자는 게 애초의 제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 세월 동안 제가 손을 댄 작품 중에는 정극이나 코미디는 물론, 가벼운 러브스토리까지를 망라하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해요.

 

홍상현

최근 일본영화에 대해 ‘검증된 작품의 영화화’가 주를 이루는 ‘지나친 안전제일주의’라는 지적이 있는데, 애초의 취지는 전혀 달랐던 거군요.

카메야마 EP

예산의 차이야 있겠지만, 크리에이터가 경제적인 부분에까지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도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보고 싶었던 거니까요.

그런데 이 프로듀서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한국에서 아주 성공적인 사례를 종종 봅니다. 이를테면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보면서, 예의 독특한 분위기까지 소화해내기는 힘들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호러에 대한 욕망을 자극받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스기와라 쇼지는 48년 된 턴테이블에 57년 된 프리앰프를 세팅, 50년 된 스피커를 통해 명반을 ‘연주’한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스기와라 쇼지는 48년 된 턴테이블에 57년 된 프리앰프를 세팅, 50년 된 스피커를 통해 명반을 ‘연주’한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이번 <재즈 카페 베이시>의 넷팩상 수상이 더욱 시선을 끄는 이유는, 작품 자체가 반세기 역사를 가진 재즈 카페에 관한 것인데 연출을 맡은 호시노 감독자신 퓨전 요리로 유명한 바, 가랑스를 경영하며 ‘명물 점주’로 불리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호시노 감독

저는 인생이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이 없었다면 <재즈 카페 베이시>도 태어날 수 없었을 테고요. 30년 이상 음식점을 운영해 온 이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지요. 제게 재능이 있다면, 바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는 거 아닐까 싶어요. 뜨거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해주셨습니다. 그 가운데는 천국에 계신 분도 계시고.

 

홍상현

‘사람’이란 소중한 ‘재산’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재능’이 될 수도 있다. 인상적인 말씀입니다.

호시노 감독

재즈의 생명은 타이밍에 있잖아요. 하지만 이는 기계적인 것과 무관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지요. 음식도 마찬가지고요.

재즈 색소폰 연주자 오넷 콜먼은 “우리 재즈뮤지션들이 기대하는 건, 인간의 퀄리티”라는 말을 남겼죠. 저는 무슨 일을 하든 이런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서울 도심 어딘가의 LP바, 혹은 다방을 떠올리게 하는 베이시의 풍경. 그러나 이곳의 음향시스템은 미국의 JBL 본사 사장단이 그 구현형태를 참고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이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서울 도심 어딘가의 LP바, 혹은 다방을 떠올리게 하는 베이시의 풍경. 그러나 이곳의 음향시스템은 미국의 JBL 본사 사장단이 그 구현형태를 참고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이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비단 재즈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해당하는 이야기.

화제가 ‘보편성’이라는 키워드로 옮겨오게 된 것 같은데요. 확실히 이 부분은 <재즈 카페 베이시>라는 작품이 갖는 중요한 매력과도 맞물리지요.

영화가 베이시의 뛰어난 사운드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한편, 재즈 마니아를 넘어 일반관객에 대해 확장성을 갖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카메야마 EP

그건 아마 영화라는 매체를 접하는 장, 즉, 영화관에 대한 제 생각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영화관은 영화를 보려는 관객과 보고 난 관객이 스쳐지나가는 곳이잖아요. 영화를 보려는 관객은 보고 난 관객의 얼굴에 설레어 하며 객석에 앉습니다. 싱글벙글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죠. 뜨거운 감정이 서로에게 전해지는 겁니다. 그렇듯 영화란 관객과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매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냐는 점입니다. 서사의 힘이죠. 이 부분에 주목해 보면 OST나 대사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일 수 있어요. 예컨대 영화는 꼭 사운드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관객에게 얼마든지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까.

 

홍상현

다음은 다소 과문한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재즈 카페 베이시>를 접하면서 궁금했던 게 하나 있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명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큐슈(후쿠오카) 출신으로, 평소 도쿄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호시노 감독께서, 왜 도호쿠 지역 중소도시의 재즈 카페를 무대로 설정하셨을까 하는 건데요.

호시노 감독

음. 그 질문과 관련해서는 지역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저는 우리 큐슈인과는 전혀 다른 도호쿠인의 기질을 동경합니다. 그곳에는 재즈와 어울리는 거리, 재즈의 느낌이 묻어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과묵한 가운데 상냥함과 강인함을 갖춘 캐릭터인 베이시의 점주, 스가와라 씨의 삶, 그 진심의 소리를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워낙 촬영을 싫어하시던 당신이지만 이 큐슈인의 열의에 마지못해 동의를 해주셨죠.

스가와라 씨의 품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말씀드리면 <철도원> 등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다카쿠라 켄 배우도 저와 같은 후쿠오카 출신이지요. 아마 저와 다르지 않은 감정으로 극중에서 도호쿠인을 연기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상현

드디어 <재즈 카페 베이시>의 주인공, 스기와라 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네요.

그 분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포스터나 스틸사진만 봐도 충분히 강렬함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웃음)

호시노 감독

아무것도 모르고 갔던 자리에서 정말 우연히 뵙게 되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멋지지만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어요. 항상 가지고 다니던 저서에 사인을 받았지요.

카메야마 EP

주연상을 받은 배우의 느낌이랄까요.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이 그대로 하나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걸 봐도 그렇지만요. 반세기 동안 재즈 카페의 점주를 연기 중인.

워낙 ‘그림’이 되는 캐릭터이다 보니 주인공으로 정하면서도 별 걱정이 없었어요. 이게 주관적인 느낌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한국 관객 여러분도 기억하시는 <철도원>, <호타루> 등의 작품에서 촬영을 맡은 기무라 다이사쿠 씨에게 작품의 포스터를 보여드렸더니 바로 “이 사람을 (배우로) 쓰고 싶다”더라고요.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

카메야마 치히로 EP는 술회한다. “워낙 ‘그림’이 되는 캐릭터이다 보니 주인공으로 정하면서도 별 걱정이 없었어요. 이게 주관적인 느낌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한국 관객 여러분도 기억하시는 「철도원」, 「호타루」 등의 작품에서 촬영을 맡은 기무라 다이사쿠 씨에게 작품의 포스터를 보여드렸더니 바로 ‘이 사람을 (배우로) 쓰고 싶다’더라고요.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카메야마 치히로 EP는 술회한다. “워낙 ‘그림’이 되는 캐릭터이다 보니 주인공으로 정하면서도 별 걱정이 없었어요. 이게 주관적인 느낌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한국 관객 여러분도 기억하시는 「철도원」, 「호타루」 등의 작품에서 촬영을 맡은 기무라 다이사쿠 씨에게 작품의 포스터를 보여드렸더니 바로 ‘이 사람을 (배우로) 쓰고 싶다’더라고요.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그렇군요. 그밖에도 감독께서 스기와라 씨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시노 감독

어떤 것을 ‘마주하는’ 스기와라 씨의 자세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저 또한 가랑스를 경영하면서 식재 하나, 와인 하나도 가벼이 지나치지 않는 태도를 갖게 되었고. 그밖에 조금 아이디얼(ideal)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스기와라 씨가 ‘오디오 마니아가 좋은 음을 원한다면 덕을 쌓을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도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홍상현

그밖에 감독께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베이시가 반세기 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호시노 감독

예컨대 <재즈 카페 베이시>의 이미지만을 보고, 가게의 오디오들이 골동품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베이시의 시스템은 최첨단이에요. 예컨대 ‘소니’라는 브랜드의 로고도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듯, 베이시도 시대에 발맞춰, 하지만 그 속도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조정을 거듭하면서 변화해 온 겁니다. 정말 고개가 숙여지는 서비스정신이랄 수밖에요.

아울러 스기와라 씨의 사업에 대한 균형감각도 뛰어났기 때문에 반세기도 넘는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홍상현

다음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질문인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EP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EP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되, 그것이 하나같이 전형적이지는 않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포착하는 지점 자체가 아주 독특하거든요. <재즈 카페 베이시>에서도 그런 터치가 느껴집니다만.

카메야마 EP

물론 베이시가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와테 현에 자리 잡은 재즈 카페이긴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접근방식을 넘어선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즉, 스기와라 씨의 고향이 이와테현이고, 베이시 또한 그곳에 있기는 하지만, 지역성(locality)에 너무 초점을 맞추지는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스기와라 씨 같은 분이라면 꼭 이와테가 아니더라도 분명 재즈 카페 점주가 되었을 테니까요. 애초에 재즈 자체도 아시아에서 기원한 음악장르가 아니고.

“재즈의 생명은 타이밍에 있잖아요. 하지만 이는 기계적인 것과 무관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지요.” 호시노 테츠야 감독의 말이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재즈의 생명은 타이밍에 있잖아요. 하지만 이는 기계적인 것과 무관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지요.” 호시노 테츠야 감독의 말이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특정한 기호나 관심사를 가진 이들로 관객을 한정하지 않는 전략인가요. 설득력 있습니다.

카메야마 EP

예컨대 편집을 담당한 다쿠치 타쿠야는 <춤추는 대수사선>, <히어로> 시리즈나 한국에서도 공개된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같은 코미디물 등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친구입니다. 다쿠치는 애초에 재즈보다 하드록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이 영화를 편집할 때, 그는 베이시에 간 적도 없었습니다.

 

홍상현

획기적인 발상이네요!

하긴, 비전문가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오히려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카메야마 EP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존에 찍어 둔 영상을 보고, 관객의 대부분이 베이시에 가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감독과 논의를 전개해보라고 했어요. 이후 두 사람이 팀을 이뤄 반년 이상 편집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홍상현

결과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입니다.

덕분에 재난극복의 메시지를 담은 수많은 ‘사회파 작품’ 중 하나도 아닐 뿐더러, 재즈나 오디오의 계보를 줄줄 읊는 마니아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 탄생했으니까요.

카메야마 EP

말씀하신 그 지점은 제작진 모두가 가장 의식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좀 더 많은 관객에 대해서 생각하되, 흔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쉬운 연상은 피해가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저희보다 한 세대 선배인 베이비부머들 가운데 음악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스기와라 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니 클래식 분야에서 활약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 씨도 자연스레 등장할 수 있었고요. <재즈 카페 베이시>의 스기와라 씨는 단순히 ‘재즈 전문가ㆍ마니아’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직업으로써 일상을 유지하는 생활인’의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베이시의 점주 스기와라 쇼지는 그 자신 빅밴드를 이끌고 미국 투어를 다녀온 경험을 가진 재즈뮤지션이다. 1967년, 일본 최초였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베이시의 점주 스기와라 쇼지는 그 자신 빅밴드를 이끌고 미국 투어를 다녀온 경험을 가진 재즈뮤지션이다. 1967년, 일본 최초였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재즈 카페 베이시>에서 가장 애정을 느끼는 장면을 소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호시노 감독

다소 사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와 가까웠던 드러머, 무라카미 '폰타' 슈이치 씨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저를 베이시에 자주 데려가 주시기도 했거니와, 영화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장 걱정해주셨지요. 늘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고. 영화 시사회장에서 뵌 게 마지막이 되어버렸네요.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카메야마 EP

저는 오프닝 신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한 남자가 가게에 불을 켜고, 의자에 앉습니다. 그 위로 음악이 흐르지요, 재즈 카페의 점주가 주인공인 극영화에서도 볼 수 있을만한 오프닝 신인데요. 사람들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무음상태에서 본다 하더라도 관객을 또 다른 세계의 문턱으로 이끌어가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주지요. 여기에 화면 속의 주인공이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 수용자가 글을 읽도록 포인트를 줍니다.

아울러 이 시퀀스에서 내리는 커피가 다름 아닌 주인공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그리는 누군가의 일상에 관객이 스며들어갈 여지가 생기는 거니까요.

물론 재즈의 박물관이자 공연장, 그리고 놀이터의 느낌 또한 갖고 있으나, 정작 베이시의 시스템은 최첨단이다. 시대에 발맞춰, 하지만 그 속도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조정을 거치며 변화해 왔을 뿐.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물론 재즈의 박물관의 느낌 또한 갖고 있으나, 정작 베이시의 시스템은 최첨단이다. 시대에 발맞춰, 하지만 그 속도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조정을 거듭하면서 변화해 왔을 뿐.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홍상현

그리고 보니 엔딩과도 수미상관 구조가 되는 느낌인데요.

카메야마 EP

그렇죠. 방금 말씀드린 오프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엔딩도 가능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점주가 가게로 들어와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영화가 끝나면 문을 닫는 흐름으로 베이시의 하루를 따라가는 패턴인데요. 극영화의 느낌과 더불어 연극적인 면도 가지고 있는 시퀀스라고 생각합니다. 레코드의 플레이와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원 모어 타임(one more time)’이라는 느낌으로 묶이는.

이 부분은 편집을 맡은 다구치 씨의 아이디어였는데요. 마침 밖에서 촬영한 베이시의 모습이 딱히 없기도 해서 살짝 연출을 가미해 찍었습니다. 스기와라 씨가 용케 감독의 설득에 응해주고요. 좀 쑥스러웠겠지만. (웃음)

 

홍상현

자, 이제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순서가 되겠는데요.

한국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두 분의 메시지와 언젠가 극장개봉을 통해 다시 한국 관객과 만나게 될 <재즈 카페 베이시>에 대해 자천(self-recommendation)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호시노 감독

저는, 음악의 힘을 믿습니다.

한국의 사물놀이에 심취했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일본음악은 정적인 반면, 한국음악은 동적이죠. 하지만 영혼을 흔드는 건 다르지 않더라고요.

1990년 북한에서 연주회를 하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멋진 모습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정말 멋졌지요. 음악은 그렇게 국경도, 정치도 쉽게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어디서든 살기 참 만만치 않은 요즈음이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극복해 나갔으면 합니다. 또, 멀지 않은 장래에 여러분과 재즈 카페 베이시에서 만나 영화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오프닝의 ‘범상치 않은 필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베이시의 점주, 스기와라 쇼지는 언론매체에 다양한 원고를 기고하며, 세 권의 저서를 출판한 문필가이기도 하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오프닝의 ‘범상치 않은 필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베이시의 점주, 스기와라 쇼지는 언론매체에 다양한 원고를 기고하며, 세 권의 저서를 출판한 문필가이기도 하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카메야마 EP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극장자체가 하나의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워하는 웃음소리를 밖에서 기다리던 있던 관객이 들을 수 있는 영화야말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믿고요. 그런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 극장이 붐비게 하고, 그로인해 다른 영화제작자들 또한 힘을 얻는 게 중요한데,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극장이 썰렁해지다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요.

영화 앞에서는 국경도 사라지죠. 저는 늘 한국영화드라마에 커다란 애정과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그런 제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아무쪼록 한국 관객 여러분도 우리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겁니다. 한국 관객 여러분 특유의, 높은 식견에 근거한 의견개진도 많이많이 해주시면 좋겠고요. 제 나이가 나이라 이제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테니 어서 작품을 만들어서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고 싶네요.

<재즈 카페 베이시>는 재즈 카페를 찾는 분들께 음악을 들려드리는 일에 50년 세월을 바친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저나 호시노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만, 극장이 없다면 영화란 그저 그림이 인화된 필름에 지나지 않죠. 음악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스기와라 씨 같은 디스크자키가 없었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도 많은 분들에게 전해질 수는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디, <재즈 카페 베이시>가 한국의 극장을 다시 찾는 날, 걸음 해주셔서 점주의 인생이 그려내는 재즈를 몸으로 듣고, 마음으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재즈 카페 베이시」의 오프닝과 엔딩은 스기와라 쇼지 점주가 가게로 들어와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영화가 끝나면 문을 닫는 흐름으로 베이시의 하루를 따라가는 수미상관 구조를 띤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재즈 카페 베이시」의 오프닝과 엔딩은 스기와라 쇼지 점주가 가게로 들어와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영화가 끝나면 문을 닫는 흐름으로 베이시의 하루를 따라가는 수미상관 구조를 띤다. (C)2020 JAZZ KISSA BASIE Film Partners

코멘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묻어나는 열정이 생물학적 연령을 잊게 만드는 두 시네마키드와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체험을 했다.

왜였을까.

아마도 코로나 19의 압박감과 공포마저 잠시 털어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재즈의 박물관이자 공연장, 그리고 놀이터(playground)인 베이시의 풍경과, 낡은 극장 복도에 티켓을 손에 쥐고 서서, 상영관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관객들의 웃음소리에 설레어하던 추억 속 장면이 어느 순간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리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다시 영화를 만들어야죠. 다큐멘터리도 좋지만 역시 저는 극영화, 드라마 장르에 특화된 사람이니 꼭 다시 프로듀싱을 해서 멋진 작품으로 한국 관객ㆍ시청자 여러분께 찾아가고 싶습니다.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에요!”라며 개구쟁이처럼 웃던 카메야마 EP의 선한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우선은 되찾을 일상의 전주곡이 될 그들의, 혹은 우리의 <재즈 카페 베이시>와 극장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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