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EU, 탄소중립 위해 원전비중 늘린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7.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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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탄소 제로 30년 전쟁]이라는 시리즈물을 연재하고 있다. 언뜻 취지는 좋은 것 같은데 또다시 기승전 원전으로 향하고 있다.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정보를 전달하는 걸 넘어 데이터를 왜곡하고 엉터리로 인용하고 있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관한 세계 기후 정상회의가 열렸다. 지난해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던 주요국 정상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동력은 원전에서 나올 전망이다. 유럽위원회(EC)는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재분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종 결정은 안 났지만, 원전도 재생에너지처럼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원전 수명을 현재 60년에서 최대 100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나섰다.

실제로 각국 정부는 원전 비중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원자력 비율을 현재 12%에서 20%로 늘리기로 했다. 일본은 2030년까지 3배로, 중국은 2035년까지 2.7배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5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넷 제로' 보고서에서 원전의 에너지 공급 비율이 2020년 5%에서 2050년 11%로 배 이상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보고서에서 “원전이 급격히 줄면 결국 탄소 제로 목표 달성을 더 비싸게,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7월 확정된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정부는 전력에서 2014년 22.2%(설비용량 기준)였던 원전 비율을 2029년 23.4%까지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9%였던 원전 발전 비율을 2050년 7%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권태신 원장은 “불안정성 같은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원전 없는 탄소 중립을 주장하다 보니, 기업들이 현실성 있는 탄소 중립 로드맵을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유럽 “원전은 녹색에너지” 지정 추진, 2021. 7.10>

①EU, 원전 비중 상향 조정? - 근거없음

출처: Going CLIMATE-NEUTRAL by 2050, EU, 2019
출처: Going CLIMATE-NEUTRAL by 2050, EU, 2019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각국 정부는 원전 비중을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다"면서 EU 사례를 제시한다.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원자력 비율을 현재 12%에서 20%로 늘리기로 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뉴스톱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EU 홈페이지와 전문가들을 통해 관련 내용을 찾아봤지만 조선일보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해당기사를 작성한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출처를 물었다.

조선일보 기자는 "자료를 참조하라"며 링크를 보내줬다. EU가 2019년 발간한 'Going CLIMATE-NEUTRAL by 2050'이라는 책자이다. 이 중 원전 비중에 관한 언급은 '내륙 지역의 총 에너지 소비(Gross inland consumption of energy)'라는 그래픽 자료에만 나온다.

이 그래픽은 2016년 EU 지역 에너지 소비량과 2030년, 2050년 전망치를 보여준다. 막대 그래프로 표현돼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에너지원별의 대략적인 사용량을 알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수치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2050년대가 되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50~60% 정도로 늘어나고 화석연료 사용량이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정도이다. 원전은 소폭 증가하는 정도로 이해된다.

출처: EU 발전비중 전망
출처: Technical assessment of nuclear energy with respect to the ‘do no significant harm’ criteria of Regulation (EU) 2020/852 (‘Taxonomy Regulation’),Joint Research Centre (JRC), the European Commission’s science and knowledge service, 2021.3.19

EU가 내놓고 있는 전원별 발전 비중에 관한 최신자료(윗 그림 참조)를 살펴 보자. 유럽위원회의 과학지식서비스 공동연구센터(JRC)가 만든 자료이다. 2015년 EU 지역의 발전량 가운데 27%를 차지하던 원전(파란색 부분)의 비중은 2020년 23%로 낮아졌고 2050년대까지 22%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전망이다. 조선일보의 보도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②유럽위원회 원전 녹색에너지 재지정? - 부정적 기류

조선일보는 "유럽위원회(EC)는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재분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최종 결정은 안 났지만, 원전도 재생에너지처럼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위원회는 지난 3월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에서 제외한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초안을 공개했다. 공동연구센터(JRC)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본 분석 보고서를 제출해 검토를 진행 중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원전 발전 비중이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덴마크·스페인 등 5개국은 공동으로 원자력을 택소노미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지난달 30일 녹색 금융 체계(Green financing framework)를 확정하고  “많은 지속가능 투자자들이 원자력에 대한 배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영국 정부는 그에 따라 원자력 관련 지출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것”(Recognising that many sustainable investors have exclusionary criteria in place around nuclear energy, the UK Government will not finance any nuclear energy-related expenditures under the Framework.)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유럽이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재지정할 것처럼 보도했지만 EU의 최강자 독일이 반대하고 있고, EU 바깥에 있는 영국도 원전에 대한 재정 투입 중단을 선언하면서 유럽 내에서 원전의 입지는 좁아지는 형국이다.

출처: IEA

출처: Net Zero by 2050 - A Roadmap for the Global Energy Sector, IEA, 2021

 

③IEA 자료에 대한 취사선택

조선일보는 "지난 5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넷 제로' 보고서에서 원전의 에너지 공급 비율이 2020년 5%에서 2050년 11%로 배 이상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IEA는 보고서에서 '원전이 급격히 줄면 결국 탄소 제로 목표 달성을 더 비싸게,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라고 언급했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IEA '2050 넷 제로' 보고서를 찾아봤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윗 그림 참조)

"Sharply reducing the roles of nuclear power and carbon capture would require even faster growth in solar PV and wind, making achieving the net zero goal more costly and less likely."

우리말로 번역하면 "원자력과 탄소포집의 역할을 급격히 낮추면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더 빨리 성장해야 하며,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더 비싸고 어렵게 만든다" 정도다.

태양광과 풍력의 빠른 성장이 동반되면 비싸고 어렵지만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다. 조선일보 번역이 크게 잘못돼 보이지는 않는다.

조선일보가 원전의 에너지 공급 비중을 언급한 부분도 IEA 자료와 상충되지는 않는다.  

출처: Net Zero by 2050 - A Roadmap for the Global Energy Sector, IEA, 2021

그러나 조선일보가 인용하지 않은 또다른 표를 살펴보자. 발전 부문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2020~2030년 10%였던 전체 발전 대비 원전의 비중은 2050년 8%로 떨어진다. CAAGR(연평균증가율)은 2020~2030년은 3.4%로 전망됐지만 2020~2050년으로 기간을 늘리면 2.4%에 그친다. 갈수록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출처: Net Zero by 2050 - A Roadmap for the Global Energy Sector, IEA, 2021

IEA는 경제 발전 정도를 기준으로 원전의 발전 비중을 예측해봤다. 선진국(advanced economies)에선 발전 분야 에너지믹스에서 원전의 비중이 2050년까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신흥국과 개도국에선 원전이 소폭 증가하는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

 

④일본의 원전 3배로? - 후쿠시마 사태 이전 회복 불능

일본 정부는 최근 2030년 태양광 발전 단가가 원전보다 저렴해질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일본은 2010년 원전의 발전 비중이 29%를 차지했지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겪은 뒤 현재는 7.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배출 ‘제로(0)’를 실현하기 위해 전체 전력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50~6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일본은 현재 75%에 이르는 화력 발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의 비중을 20~22%로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일본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도 고려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회의적 입장이 많다.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부지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 탓이다.

설사 원전 비중이 20%대로 높아진다고 해도 후쿠시마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원전의 비중은 오히려 낮아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선일보의 해외 통계 인용은 부적절하다. 2050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원전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독일은 2022년 전면적인 탈원전을 선언하고 착실히 이행 중이다. 이탈리아는 1980년대 이미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이행했다.  뉴스톱은 지난 3월 <[팩트체크] 원전 25%p 줄이면 유지, 10% 줄이면 대폭 감축?>기사를 통해 각국의 원전 정책을 짚어봤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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