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버스타고 고향가기 어려운 이유

  • 기자명 신다임 기자
  • 기사승인 2021.10.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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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떠올리면 즐거움 대신 걱정이 앞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를 외치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입니다. 이들은 2014년을 시작으로 매년 설과 추석 명절 때마다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시외·고속버스의 도입을 촉구해왔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들도 시외·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햇수로 8년째인 올해 추석에도 이들은 어김없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과연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 걸까요. 뉴스톱이 확인했습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은 일상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며, 장애인 등 교통약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이동권)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해당 법에 따라 2007년부터 5개년 단위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왔습니다. 여기에 장애인 단체의 지속적인 요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법원 판결이 더해져 마침내 2019년 10월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시외·고속버스의 시범 운행이 시작됐습니다. 4개의 노선(서울-부산, 서울-전주, 서울-강릉, 서울-당진)에 총 10대로, 관련 법이 제정된 지 1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안)」을 통해 휠체어 탑승 가능 시외·고속버스를 도입하고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출처: 국회입법조사처
출처: 국회입법조사처

 

■ 여전히 험난한 귀향길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노지혜(가명)씨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입니다. 그는 2년 전 시범 운행이 시작된 덕에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인 당진에 내려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일반 좌석이 33석에 달하는 버스 한 대당 휠체어석은 2석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지혜씨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서울-당진을 제외한 3개의 노선은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용 당일에도 지혜씨는 남들보다 20분 먼저 승강장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휠체어 사용자가 별도로 마련된 승강장에서 먼저 탑승한 후에 일반 승객의 탑승이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 엄수는 필수입니다. 이용 날짜를 기준으로 최소 3일 전에는 예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즉흥으로 떠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왜 휠체어 사용자들은 여전히 시외·고속버스를 이용하기가 어려운 걸까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고속·시외버스는 총 40대에 이를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휠체어 탑승 장비를 갖춰 운행 중인 고속·시외버스는 총 7대입니다. 게다가 당진을 제외한 3개 노선은 운행마저 중단된 상태입니다. 실제로 ‘휠체어 좌석 예매’ 사이트에서 확인한 결과 부산, 전주, 강릉 노선의 경우 배차 조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 갈무리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 갈무리
출처: 고속버스 예매 홈페이지
출처: 고속버스 예매 홈페이지

 

관련 예산도 줄었습니다. 휠체어 탑승 버스는 차량 개조가 불가피합니다. 별도의 휠체어 탑승객 승강구를 버스에 설치해야 하고, 정류장이나 휴게소에도 휠체어 승강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련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차량 개조, 터미널 시설, 휴게소 개선) 예산은 시범 사업이 시작된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13억 원이었던 예산이 2020년 12억 원, 올해는 10억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시범 운행이 종료되고 본 사업이 시행되는 2022년에는 5억 원이 국회에 제안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휠체어 탑승 가능 시외·고속버스 확대 약속을 파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휠체어 탑승 전용 승강구/ 출처: 한국교통안전공사
휠체어 탑승 전용 승강구/ 출처: 한국교통안전공사

 

■미흡한 연계교통

노지혜씨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버스를 타고 시외로 이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막막합니다. 터미널 도착 후에 목적지까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려 했지만, 배차 시간이 길어 원하는 시간에 탑승할 수 없었습니다. 당진의 경우, 목적지가 관내라면 콜택시 사전예약도 불가능합니다. 운영 시간도 짧습니다. 당진 장애인콜택시는 평일 08시~19시, 주말 및 공휴일에는 09시~17시까지만 탑승이 가능합니다. 지혜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광역 간 이동 후에 최종 목적지까지 이용할 추가적인 교통수단은 부족합니다. 통상 휠체어 사용자들은 ‘장애인 콜택시’로 불리는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합니다. 특별교통수단이란, 교통약자에게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차량입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특별교통수단을 마련하고 운행해야 하는 법정 기준은 보행상 장애가 있는 등록 중증 장애인 150명당 1대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국토교통부의 「2020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국의 특별교통수단 운행대수는 3,914대로 법정대수 4,694대 대비 83.4%의 보급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국토부의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안)」목표치(84%)에 도달하지 못한 수치입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8개 특별·광역시의 경우, 특별교통수단 보급률은 72.7%입니다. 서울(85.1%)과 광주(89.9%)의 경우 보급률 목표치를 상회했습니다. 한편 운행대수를 살펴보면 두 지역을 포함한 모든 지역이 법정 기준대수에 미달했습니다.

9개 도의 특별교통수단 보급률은 90.6%입니다. 경기(112.8%), 경남(105.9%), 제주(97.1%)의 경우 보급률 목표치(84%)를 상회했습니다. 그러나 운행대수는 경기(112.8%), 경남(105.9%)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법정 기준대수에 미달했습니다.

 

‘2020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표5-4] 갈무리
‘2020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표5-4] 갈무리

 

■운영은 제각각

이외에도 특별교통수단의 요금 체계, 이용 방법 및 시간이 시·군별로 달라 다른 지역에서 방문하는 사람이 즉석에서 이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2020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주말에는 주중보다 이용 가능한 시간이 짧거나 미운행하는 지자체도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사전 예약을 한 경우에만 연장 운행 및 주말 운행이 이루어집니다.

이용 대상도 제각각입니다.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의 범위는 휠체어 사용자뿐만 아니라 지자체 조례 등을 통해 노약자, 임산부, 일시적 장애인 등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한정되어 있는 특별교통수단의 공급에 비해 이용대상자는 많기 때문에 정작 특별교통수단이 절실한 휠체어 사용자의 대기시간이 늘어나는 등 이용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2020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표 5-8] 갈무리
'2020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표 5-8] 갈무리

 

■저상버스

노지혜씨는 택시의 대안으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지만 선택지가 많지는 않습니다. 휠체어에 탑승한 채로는 일반 시내버스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버스 바닥이 낮고, 경사판이 있는 저상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수가 적어 또다시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 저상버스라고 해도 도로 상황 상 경사판을 내릴 수 없는 경우라면 휠체어 탑승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지혜씨는 수많은 시내버스가 지나쳐 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출처: 서울특별시
저상버스/ 출처: 서울특별시

 

저상버스는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교통수단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내버스에 비해 차량이 적고 시‧도별로 편차도 큽니다.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안)」은 2021년까지 저상버스를 전국 시내버스의 42%까지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2020년을 기준으로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에 머물렀습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8개 특별·광역시는 40.0%의 보급률을 달성한 반면, 9개 도는 16.5%로 비교적 낮은 보급률을 기록했습니다. 최고 보급률을 기록한 서울(57.8%)과 최저인 충남(10.0%)의 편차는 47.8%p에 달했습니다.

한편 2021년 저상버스 보급률은 지자체의 저상버스 도입에 대한 의지를 고려하여 지역별 목표치를 서울시 65%, 광역시 45%, 9개도 32%로 설정했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강원도(36.1%) 및 제주특별자치도(32.9%)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목표치(32%)를 상회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2021년까지 목표치 달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0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표 5-2]
'2020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표 5-2]

 

해외 사례

해외는 휠체어 사용자의 시외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실제 이용률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시외 이동권은 인권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고속버스 접근성 규정(Fleet accessibility requirement for OTRB fixed-route systems of large operators, 2000년 10월 30일 시행)에 의해 대형 회사는 2006년 10월 30일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50%, 2012년 10월 29일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100%에 휠체어 사용자 등이 탑승할 수 있는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영국은 법률(Equality Act 2010) 등에 근거하여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 약자의 이동권 증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일하게 교통 체계를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버스의 경우, 승객 정원 22명을 초과하는 모든 버스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 탑승설비, 휠체어 고정설비, 탑승 보조 등 관련 기준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또한 정부기관인 장애인교통자문위원회(DPTAC : Disabled Persons Transport Advisory Committee)를 통해 신체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 장애인, 치매성 노인 등의 교통 접근성 확보를 위한 내부적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DPTAC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게시되어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갈 수 있어야 하며,

추가 비용 없이 쉽고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DPTAC 홈페이지
출처: DPTAC 홈페이지

 

우리나라 역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하여 국회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제정했고(2005), 정부가 이에 근거하여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동, 특히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시외 이동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으며, 사회참여 역시 어려워집니다. 휠체어 사용자에게 이동을 보장하는 사회정책이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올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국에 있는 모든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입법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편 천준호 의원과 심상정 의원 등 40인이 발의한 “저상버스 및 일반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 내용이 삽입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일부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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