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손배 소멸시효는 지나지 않았다

  • 기자명 전범진
  • 기사승인 2021.10.1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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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 혹은 그 유족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들이 법원에 다수 계속(繫屬) 중이다. 우선 최근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각하 또는 원고 패소 판결이 잇따라 3건 나왔다.

먼저 202067일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85명이 일본제철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서울중앙지법 2015가합13718 손해배상() 사건 판결(민사합의34: 부장판사 김양호)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 6월 각하 판결하였다. 이 재판부는청구권 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정부나 국민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봤는데, 2018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할 당시의 소수의견과 거의 유사한 취지였다.

20208, 9월에 같은 법원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강제징용 피해자 자녀 A씨 등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서울중앙지법 2019가단5086804 손해배상() 사건 판결 등)했다.

위 판결들은“(20181030일 선고된 대법원 201361381 전원합의체 판결(재상고심)의 이전 단계인) 2012524일 선고된 대법원 200922549 판결, 200968620 판결(파기환송심)에서 청구권협정으로 망인과 같은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기 않았다는 해석을 밝혀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이 뒤의 판결에 미치고 소송을 제기할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없어졌으므로, 2012524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로 청구기각판결을 선고한다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위 판결의 취지와 같이 피해자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 기간 경과로 소멸한 것일까?

 

1. ‘법률적 장애사유 해소 시점이 소멸시효의 기산점이라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민법 제766조에 따르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1381 판결 등 참조).”

 

2. 서울중앙지법 2019가단5086804 손해배상() 사건 판결 등이 근거로 삼은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대해 알아 본다. 환송판결의 기속력이란 환송 또는 이송을 받은 법원이 다시 심판을 하는 경우에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한 법률상 및 사실상의 판단에 기속된다는 것이다(민사소송법 436조 제2항 단서, 법원조직법 제8). 이는 심급제도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효력으로서, 기속력은 객관적으로는 판결이유 속의 판단에도 미치나 당해 사건에 한정된다. 당해 사건에 관한 한 주관적으로는, 환송을 받은 법원 및 그 하급심에도 미치고, 그 사건이 재상고된 때에는 상고법원도 기속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법원 2021. 3. 15. 9815597 판결에서는 환송판결의 기속력을 받는 자기기속력은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변경권을 가진 대법원전원합의체에 대해서는 부정된다고 하면서, 전원합의체는 환송판결의 법률판단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하여 기속력의 예외를 인정하였다. 또한 환송판결에 나타난 법률상 견해가 뒤의 판례변경으로 바뀌었을 때, 새로운 주장·입증이나 이의 보강으로 전제된 사실관계의 변동이 생긴 때(대법원 1989. 6. 27. 87다카2542), 법령의 변경이 생겼을 때는 기속력을 잃는다.

위에 따르면 파기환송판결과 그 기속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의하여 예외적으로 기속력의 예외가 존재하므로, 파기환송판결 이후 최종적인 재상고심에서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는 확정된 것이 아닌 잠정적인 상태로서 조건 불성취에 준하는 상태라고 할 것이다.

 

3. 2012. 5. 24.자 대법원 판결과 2018. 10. 30.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차이점 : 전자의 판결 취지가 후자를 구속하였는지 여부가 주된 관점이다.

1) 2012. 5. 24. 선고된 대법원 200922549 판결, 200968620 판결(파기환송심)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는 다음과 같이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확정하지 못하고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라는 내용이다.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일본판결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하여 승인될 수 없으며,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청구권협정으로 망인과 같은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기 않았다고 보아야 하고, 설령 그와 같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다.”

 

2) 그러나 2018. 10. 30. 선고된 대법원 201361381 전원합의체 판결(재상고심)(위 파기환송심과 달리) 다음 판시와 같이 청구권협정에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청구권 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라는 내용은 유지되지 못하였다.(외교적 보호권 포기라는 내용은 대법관 김소영, 이동원, 노정희의 별개의견이었습니다).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전혀 없으므로 청구권 협정 제21.에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a)의 범주를 벗어나는 청구권인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직결되는 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청구권협정 제1조의 돈은 기본적으로 경제협력의 성격이었고 청구권협정 제2조와 제1조 간에 법률적인 상호관계는 없고, 협상과정에서 12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3억달러만 대한민국이 받은 상황에서 개인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기는 어렵다.”

 

3) 분명히 2012. 5. 24. 자 대법원 판결의청구권 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라는 내용은 2018. 10. 30.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서 변경되었다. 또한 2012. 5. 24. 자 대법원 판결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는지에 대하여 확정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가정적으로 포함되는 경우까지 상정하여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다는 잠정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불분명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원고들이 법률적 장애가 제거 되었다고 확신하고 이 사건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렇다면 2012. 5. 24. 자 대법원 판결의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2018. 10. 30.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까지는잠정적인 판단으로 조건 불성취에 준하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률적 장애가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4. 2012. 5. 24. 선고된 대법원 200922549 판결, 200968620 판결(파기환송심)2018. 10. 30. 선고된 대법원 201361381 판결(재상고심) 중 어느 것이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지 여부 : 법률적 장애사유 해소 시점이 판단 대상이다.

 

1) 이미 광주고등법원 2018. 12. 5. 선고 201713822 손해배상() 판결문(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소) 17페이지에서도

그렇다면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2018. 10. 30. 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확정하고 청구권 협정에 관한 해석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그때부터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원고 등과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청구권협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하여, 대법원 2018. 10. 30. 전원합의체 판결이 소멸시효의 기산점이라고 하였고, 아울러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이라는 판시도 하였다.

 

2) 법률상 장애사유가 해소된 것으로 본 판례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검사의 불법구속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불법구속시부터 진행하고 구속된 범죄사실에 관한 형사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는 사례(대법원 200022249 판결), 은행직원이 고객 예탁 금원을 정기예금으로 수령한 것처럼 수기식통장을 고객에게 교부한 후 임의로 소비하여 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에서 은행대리의 행위가 이례적인 점, 관련 형사사건에서도 고객이 예금반환청구의 상고심에서 대리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위 예금반환청구의 상고심판결이 있었던 때에 고객들이 은행대리의 위법성 및 손해의 발생사실을 인식하였다는 사례(대법원 88다카32371 판결), 경찰관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이 그 경찰관들을 폭행죄로 고소하였으나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되어 제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상고심에서 무죄로 확정된 사안에서, 무고죄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손해배상청구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한 사례(대법원 201071592 판결). 위법한 가처분명령 집행으로 인한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 기간점은 상대방의 청구권이 가처분명령시 없었다는 것이 재판상 확정된 것을 안 때라는 사례(대법원 63626 판결).

 

위 판례들을 보면 불분명한 사실이 민사나 형사 판결의 최종적인 확정으로 분명해진 시점을 법률상 장애사유가 해소된 것으로 보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산정하고 있다.

 

3) 2018. 10. 30. 선고된 대법원 201361381 판결(재상고심)의 소멸시효 부분을 살펴 보기로 한다.

원고들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 여부에 관한 준거법은 대한민국법이고, 구 일본제철의 이 사건 불법행위 후 1965. 6. 22. 한일 국교 수립전까지는 국교단절으로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판결을 받아도 이를 집행할 수 없었고, 국교 정상화 후에도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 비공개로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에서 지배적으로 받아들여 졌고, 일본의 재산권조치법 제정이 일본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권을 기각하는 근거로 명시되었고, 뒤늦게 2005. 1. 한국에서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후 2005. 8. 26. 민관공동위원회가 일제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비로소 표명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원고들이 이 사건 소제기를 한 시점인 2005. 2.까지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법률적 장애사유(대법원 20061381 판결 참조)가 있었다.라는 서울고등법원 201244947 손해배상() 판결(파기환송심)의 견해를 유지하면서신일철주금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의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4) 2018. 10. 30. 선고된 대법원 201361381 판결(재상고심)이 소멸시효의 기산점이거나 소멸시효 주장 자체가 권리남용이다.

2012. 5. 24.자 대법원 파기환송판결로써 그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 일본 기업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즉시 확정되지 않았고, 위 각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 및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여전히 국내외의 논란(국내 법학자들도 위 각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이 끊이지 않았으며, 청구권협정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과거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 등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되었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였다. 피고를 포함한 일본 기업 역시 일본 정부와 같은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이후 환송심(서울고등법원 201244947 손해배상() 판결)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판결이 각 선고되었고,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는 위 각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하여 다시 상고하였는데, 대법원이 2018. 10. 30.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의 상고를 기각하는 2013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위 전원합의체 판결 사건의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비로소 확정되었고,‘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리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5. 결론

그렇다면 2018. 10. 30. 선고된 대법원 201361381 판결(재상고심)을 법률적 장애 해소시점이자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하여 이로부터 3년 내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고 할 것이고,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의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필자 전범진 변호사는 강제노역 피해자 정모씨 유족의 법률대리인으로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한 바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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