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야생동물 구조일지] 새해 첫날에 생을 마친 야생동물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2.01.0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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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야생동물은 아프면 포식자로부터 숨어버리는 것을 택합니다. 자신이 약해진 것을 알고 미리 몸을 숨겨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겠죠. 질병을 포함해 어떤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숨어 지내지만 대부분은 회복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러한 야생동물 중 극소수만이 야생동물센터의 도움을 받습니다. 숨어 지내다가 배가 고프거나 포식자에게 쫓겨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발견돼 구조되는 것이죠. 구청에서 1차 구조 후 이송되기도 하지만 전문인력이 투입돼야 할 때는 센터에서 직접 구조해 이송합니다. 구조가 어렵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송 과정에서의 문제는 다양하게 나타나죠.

출처: 서울야생동물센터
출처: 서울시야생동물센터

구조자는 구조 출동을 위한 과정에서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합니다. 신고자나 동물이 사라져 구조에 실패하는 경우인데 극단적인 예로, 노원구에서 강서구까지 먼 거리를 이동한다면 중간에 다른 동물이 구조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출동합니다. 설령 신고자가 중간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거나 동물이 갑작스럽게 움직여 다른 곳으로 이동해도 저희는 지켜봐주고 계실 신고자를 믿고 출동할 수밖에 없죠. 최대한 빠르게 간다고 하더라도 신고자가 기다림을 포기하시는 것 역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선의의 신고 하나만으로도 센터로서는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신고 후 지켜보거나 보호해주는 시간은 필수적이기에 그에 대해선 역시 양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생명에 경중을 매길 수 없기에 법정보호종이든 유해조수든 먼저 신고 접수되는 동물을 우선 구조하고 있습니다. 거리에 따라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 충분한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진행하지만 진퇴양난의 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면 직원들 역시 속이 타 들어가는 것을 감추기가 힘이 듭니다.

신고자와 동물이 저희를 기다려 준다면 그 다음은 포획입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은 자신의 몸이 아프다 하더라도 도움을 청하진 않습니다. 강한 공격행동과 방어행동을 통해 포획을 거부하죠. 중증에 도달한 진드기 감염 너구리 역시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완강하게 거부하죠. 당연한 것이겠지만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인간의 행동을 동물들이 도움으로 이해하고 가만히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피부 감염이 심해 아픈 듯 보였지만 이후 포획을 위해 가장 많이 뛰어다녔던 너구리. <출처: 서울시야생동물센터>

어찌어찌 포획에 성공해도 이미 손을 쓰기 힘든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장에선 강하게 거부하느라 남은 기력마저 소진한 상태이고 차량 내 의료장비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응급처치 또한 어렵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상자 안 체온유지와 차량 흔들림에 더 이상 건강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수건이나 담요를 깔아줍니다. 이동 중 엎질러져 동물의 건강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물이나 먹이는 당연히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이동 중 차량 내에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부랴부랴 차량을 이용해 아픈 동물을 데리고 센터로 복귀해 박스를 여는 순간, 구조된 동물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 있습니다. 구조를 진행하는 재활관리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왜 죽었을까 곱씹어 생각해봐도 답은 없습니다. 교통체증으로 이송 시간이 늘어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기력이 떨어졌거나, 이미 상처를 통해 진행된 심각한 감염 등 모든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탓 할 순 없습니다. 이 역시 센터의 구조관리사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차량 내에서 치료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간 동물들을 DOA(Dead On Arrival)라고 기록합니다. 이송 중 또는 도착 전 폐사라는 뜻입니다. 

출처: 서울야생동물센터
출처: 서울시야생동물센터

하지만 이 죽음에 멈춰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다음 구조 신고 되는 동물을 위해 슬퍼할 시간마저 부족합니다. 새해 첫날,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구조된 동물은 호랑지빠귀와 까치였습니다. 호랑지빠귀는 뇌진탕 증세를 겪고 있었고 호흡곤란을 나타내 빠른 이송이 필요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송 중 박스에서 명을 다했죠. 비록 호랑지빠귀는 DOA로 기록되었지만 그 다음 동물을 위해 움직여야 했습니다. 까치는 쥐 포획용 끈끈이에 달라붙어 깃털이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양안 시력 소실 의심 및 두부 신경 손상 징후를 나타내 끈끈이 제거보다 수의학적 치료가 먼저 선행돼야 할 것으로 판단돼 하루 계류 후 치료를 진행하기 위해 간단한 계류장과 먹이를 제공해주었죠. 그 다음 구조된 새매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돼 보호 받는 새였습니다. 역시 충돌로 인한 신경반응과 뇌진탕 증세, 호흡곤란을 나타냈고 이송 중 박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DOA로 기록된 호랑지빠귀와 새매. 출처: 서울야생동물센터
DOA로 기록된 호랑지빠귀와 새매. <출처: 서울시야생동물센터>

죽음에 무뎌져야 야생동물 구조 일을 지속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 치료라도 해봤으면 미련은 남지 않겠지만 차량 내에서 치료의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간 동물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야생에서 건강한 개체들을 만나보면 ‘DOA로 기록된 동물에게도 자유로움을 만끽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도 생겨납니다.

서울시야생동물센터는 7명의 직원들이 야생동물을 돌보며 치료하고 있습니다. 평균 입원개체는 70여마리로 바쁘지 않다 하더라도 약 10마리씩 혼자 맡아 돌보는 셈입니다. 일손이 부족하더라도 내원하는 모든 동물들에게 공평한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늘도 서울시야생동물센터에선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합니다.

글: 김태훈 서울시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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