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웅담채취용 사육곰 40년 잔인한 역사를 끝내자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2.01.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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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콘크리트 바닥, 낡고 녹슨 철창은 곳곳이 위험요소입니다. 비가 들이쳐도 피할 길이 없는 사육장. 비어있는 사료통. 목을 축일 깨끗한 물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코를 찌르는 악취의 정체는 바닥에 쌓인 오물들이었습니다. 한 마리로도 꽉 차는 사육장에 두세 마리의 곰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갈라진 발바닥.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가 없습니다. 어떤 곰은 좁은 우리 안을 계속해서 돌고 있습니다. 머리를 계속해서 돌리거나, 몸을 격렬히 좌우로 흔들어 대는 곰도 있습니다.

출처: 녹색연합
출처: 녹색연합

처음 사육곰 농장을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형포유류인 곰을 가까이서 만난다는 두려움도 잠깐이었습니다. 이내 철장 안의 삶이 엿보이자 화인지 슬픔이지 모를 감정이 일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과 복잡한 이해관계 사이 꼬일 대로 꼬인 사육곰 역사. 하지만 사실 아주 단순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연 나라면 이러한 환경에서 10년을 버틸 수 있을까? 곰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통해 곰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곰은 약용도, 식용도 아닙니다. 곰은 야생동물입니다.

◈10년 시한부 삶, 반복되는 불법

재수출을 통한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80년대 초 곰 사육을 허용한 정부는 이후 멸종위기종 보호에 대한 국제적 여론이 높아지자 1985년 곰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1993년 7월 우리나라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 수출 길 또한 막혔습니다. 1999년, 농가의 경제 손실을 보전을 이유로 24년 이상 노화된 곰의 처리 기준이 법적으로 마련됐습니다. 웅담 채취를 합법화한 것입니다. 2005년 이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완화되며 사육곰의 생은 더욱 짧아졌습니다.

출처: 녹색연합
출처: 녹색연합

곰들은 나날이 열악해져가는 사육 환경에 방치되어 갔습니다. 관리감독은 허술했습니다. 최소한의 권고 기준에도 못 미치는 낡은 사육장은 개선의 의지도 여력도 없습니다. 매년 발생하고 있는 곰 탈출 사고는 곰과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021년 한 해에만 3건의 탈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1월 탈출 사고 당시 발견하지 못한 1마리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일부 중성화하지 않은 반달가슴곰을 사육하는 농장에서는 매년 불법 증식이 일어났습니다. 허가받지 않고 증식한 개체만 37마리에 달합니다. 그 중 11마리가 폐사했습니다. 폐사한 곰을 신고하지 않고 처리하거나, 곰 요리를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습니다.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 곰을 사육한 농가의 출현은 사육곰 암시장이 형성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습니다.

◈사육곰 산업 종식, 모두의 과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정부는 3년에 걸쳐 900여마리의 사육곰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철창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웅담채취용 곰은 없습니다. 정부, 사육곰 농가,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한 민관협의체를 통해 협의를 통한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2021년 다시 한번 꾸려진 민관협의체를 통해 웅담채취용 사육곰 산업이 이제 종식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월 26일,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식이 열렸습니다. 환경부장관과 구례군수, 서천군수, 사육곰농가협회, 시민단체(곰보금자리, 녹색연합, 동물자유연대, 동물권행동 카라)는 2026년 1월 1일부터 곰 사육과 웅담 채취를 금지하고, 남아있는 사육곰에 대한 보호를 민관이 함께 약속했습니다. 잔인하고 부끄러운 사육곰 산업 역사를 마무리 짓는 첫 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출처: 녹색연합
출처: 녹색연합

사육곰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벌써 4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때 1400여 마리까지 늘었던 웅담채취용 사육곰은 이제 360마리(2021년 12월 31일 기준)가 남았습니다. 26년 종식 목표의 날까지 더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구례와 서천에 지어지는 곰 보호시설이 곰을 위한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보호시설이 완공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남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남은 사육곰 관리와 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이 필요합니다. 각종 불법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당연히 뒷받침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육곰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사육이나 거래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합니다.

2026년이면 ‘사육곰’이라는 이름은 사라질 것입니다. 곰이 곰답게,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간도 인간다워질 수 있습니다. 민관이 함께 모여 곰 사육 산업 종식을 약속한 이 날이 곰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작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글: 녹색연합 박은정 자연생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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