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손창현 '암투병 도작 원고' 책까지 나왔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4.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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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지난달 <아픔의 기억>이라는 책을 펴냈다. 2020년 질병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손창현. 그렇다. 2021년 1월 다른 사람의 소설을 통째로 도용해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수십 건의 도작, 표절로 공분을 일으켰던 바로 그 자다. 뉴스톱은 손창현의 도작 사례를 추가 보고한다. 다른 사람의 피땀 어린 노력을 가로채는 도작, 표절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손창현 도작 수상+출판까지

출처: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HK+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홈페이지
출처: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HK+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홈페이지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HK+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지난달 31일 <아픔의 기억>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2020년 제 15회 인문주간 질병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이다. 작품 공모는 2020년 10월 시작했고 수상작 발표는 11월에 이뤄졌다. 공모전 후원 기관에는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경희대학교,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은 손창현의 <내 인생을 바꾼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의 원고에 우수상을 줬다. 다른 세 편의 작품과 함께 최우수상 선정 후보로 거론됐다는 설명도 있다. 주최 측은 “직장암 판정을 받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거치면서도 질병과 아픔에 굴하지 않고 내면의 힘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왼쪽은 손창현의 도작이 실려있는 아픔의 기억(2022), 오른쪽은 원작이 실려있는 대장암 완치 프로젝트(2010)
왼쪽은 손창현의 도작이 실려있는 <아픔의 기억>(2022), 오른쪽은 원작이 실려있는 <대장암 완치 프로젝트>(2010)

◈인적 사항만 바꿔 도작

손창현의 원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딸,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41세 직장인입니다.” 원고 내용은 직장암에 걸렸다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완치 후기이다.

손창현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책이 출판됐다는 소식을 접한 뉴스톱은 손창현 원고와 같은 제목으로 검색했다. 그러자 2010년 대한대장항문학회가 펴낸 <대장암 완치 프로젝트>라는 책에서 동일 제목의 체험 수기를 검색할 수 있었다.

두 권의 책을 입수해 비교했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표절이다. 대장항문학회가 책을 펴낸 시기는 2010년, 경희대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2022년이니 누가 누구를 표절한 것인지는 명백하다. 대장항문학회의 <대장암 완치 프로젝트> 268쪽에는 입선작으로 김상진(가명) 씨의 ‘내 인생을 바꾼 긍정의 힘’이라는 글이 소개된다.

이 글은 “저는 울산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딸, 이렇게 네 식구가 다복하게 살고 있는 50세 직장인입니다.”라고 시작한다. 이후 내용은 손창현의 글과 똑같다.

왼쪽은 2010년 대장암 완치 프로젝트단행본에 실린 김상진(가명)씨의 수기, 오른쪽은 2022년 아픔의 기억에 실린 손창현의 원고. 사실상 똑같다.
왼쪽은 2010년 발간된 <대장암 완치 프로젝트> 단행본에 실린 김상진(가명)씨의 수기,
오른쪽은 2022년 발간된 <아픔의 기억>에 실린 손창현의 원고. 사실상 똑같다.

◈경희대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몰랐다"

뉴스톱은 해당 원고의 표절 사실을 파악하고 공모전을 주최하고 책을 발간한 경희대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의 입장을 물었다. 연구단 관계자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이런 투병 후기를 표절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2020년 공모전 심사 이후 뉴스톱의 취재가 있기 전까지는 손창현에게 당한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손창현이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를 통째로 도용한 사실이 밝혀진 게 2021년 1월이다. 이후 뉴스톱 등 여러 매체들의 후속보도로 손창현의 표절,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런데도 경희대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난달 손창현이 도용한 원고를 그대로 실은 책까지 출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희대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심사 과정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발간된 책자는 회수하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내리기로 했다. 손창현의 2020년 공모전 수상은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손창현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했다. 손창현의 도작을 제외하고 정상적으로 출품된 수상작만 모아 다시 단행본을 발행할 계획도 밝혔다. 

손창현은 이번 도작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모전 수상에 따른 상금 지금도 없었고, 단행본 발간 과정에서도 인세 지급 등 보상은 전혀 없었다는 게 연구단의 설명이다. 연구단은 2022년 2월 손창현에게 단행본 발간에 따른 인세 미지급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손창현은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도작의 출판에 동의했다. 자신의 죗값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뉴스톱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손창현의 도작 행위를 추가로 보고했다.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 각급 기관에게 권하고 싶다. 검증할 능력이 없으면 공모전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공모전은 스펙 또는 허명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철저한 검증만이 기관과 공모전의 위신을 지키는 길이다. 자신이 없으면 판을 벌이지 않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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