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국이 인신매매 2류 국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7.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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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Department of State)가 지난 19일 세계 188개국의 인신매매 근절 노력을 평가한 2022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2년부터 줄곧 1등급(Tier 1)으로 분류됐던 우리나라는 20년 만에 2등급으로 내려앉았다. 1등급에는 미국을 비롯해 독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캐나다, 칠레, 핀란드 등 30개국이 포함됐다. 아시아 국가로는 대만, 필리핀, 바레인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왜 20년만에 인신매매 방지 분야에서 2류 국가로 전락했을까? 뉴스톱이 알아봤다.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요즘 세상에 인신매매? … 납치 아니어도 인신매매에 해당

나이 좀 있는 분들은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니버스에서 건장한 괴한들이 내려 여성 또는 어린이를 납치하는 장면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리고는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미 국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2000년 개정된 미국의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VPA)은 "중대한 인신매매 형태"를 “강제, 사기 또는 강요에 의해 상업적인 성행위를 유도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된 자가 만 18세가 되지 않은 성매매, 또는 비자발적 노예 상태, 빚을 갚기 위한 노동, 채무 구속 또는 노예에 복종하기 위한 목적으로 물리력, 사기 또는 강요를 사용하여 노동 또는 서비스를 위해 사람을 모집, 은닉, 운송, 제공 또는 획득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어 “범죄가 이 정의에 해당하기 위해 피해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리적으로 이동될 필요가 없다”고 부연한다. 

쉽게 정리하면 피해자가 원치 않는 노예 상태에 빠지거나, 성매매에 이용되거나, 강제로 노동하는 등의 경우 미 국무부가 정의하는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2021년 4월 인신매매ㆍ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인신매매 및 착취를 "성매매 착취,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의 착취를 목적으로 폭행, 협박, 위계, 위력, 보호자에게 이익 제공 등의 방법을 사용해 사람을 모집, 운송, 전달, 은닉, 인계 또는 인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한국은 왜 2류 국가?

미 국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지는 못하지만 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인신매매 방지 분야에서 2류 국가이다.

그 이유로는 ▲인신매매 범죄 기소 건수 감소 ▲외국인 성매매 피해자 추방 등 불이익 ▲성매매 관련 업자 조사 없음 ▲외국인 선원 대상 노동착취 방기 ▲관계 당국의 피해자 확인 지침 미활용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

등을 꼽았다.

미 국무부의 손끝은 대한민국 정부와 사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검사들을 위한 새로운 훈련 과정을 만들고, 선원근로감독관에게 인신매매와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고, 새로운 피해자 확인 지침과 국가적인 인신매매 방지 행동 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을 시작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노력은 이전과 비교하면 진지하지 않았고 지속적이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조사는 2021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5년차가 평가대상이다.

 

◈지적된 사례 … 부끄러운 한국 사회 민낯

미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 사례를 열거했다.

1. 아동 대상 성 착취: 인신매매범들은 점점 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피해자를 모집하고 강요하여 상업적 성행위에 가담하도록 만들고 상업적 성 구매자와 통신하도록 함으로써 인신매매를 촉진했다. 채팅방 운영자는 아동 성매매 피해자를 포함한 한국 여성과 어린이를 모집하고 포르노 자료 제작에 참여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신체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한다.

2. 외국인 여성 성매매 사기: 인신매매범들은 미국을 포함한 해외 여성들을 마사지 가게, 살롱, 바, 레스토랑에서 성매매를 하거나, 종종 부채에 기반한 강압을 통해 인터넷 광고 에스코트 서비스를 통해 착취한다. 인신매매범들은 주로 중국, 태국, 러시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모로코 및 아시아, 중동, 남미의 다른 나라 출신의 남성과 여성을 한국에서 강제 노동과 성매매로 몰아넣는다.

3. 장애인 강제 노동: 인신매매범들은 신체적 또는 지적 장애가 있는 일부 한국 남성들에게 어선과 양식장, 염전, 가축 농장에서 일하도록 강요했다.

4. 외국인 농업노동자 인권 침해: 인신매매범들은 이주 노동자, 특히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에 연루된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써 부채에 기반한 강압을 통해 때로는 수천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한국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고용된 약 20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어업, 농업, 가축, 식당 및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이 부문에 고용돼 있지만 숫자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 NGO들은 코로나19 관련 여행 제한으로 인해 이주 노동자가 적었다고 보고했다. 등록 이주노동자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일부는 강제 노동 조건에 직면해 있다. 농업 부문의 이주 노동자들은 때로는 부적절한 주택, 때로는 온실, 선적 컨테이너 또는 기숙사에서 살도록 강요받는다.

5. 외국인 선원 착취: 세계 최대의 원거리 어선 중 하나인 한국 어선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노동을 포함한 학대에 대한 보고가 계속되고 있다. 채용 담당자, 선박 소유자, 선장 및 직업 중개인은 종종 부채에 기반한 강압을 사용하여 이주 어부가 한국 국적의 선박 또는 소유 선박에서 강제로 노동을 착취한다.

6. 인신매매 사범과 단속 당국의 유착 가능성: 인신매매범들은 일부 법 집행 당국과의 파트너십을 활용해 피해자들을 추방하거나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보고 기간에, NGO는 경찰, 성적으로 착취당한 아이들 및 상업적 성관계를 가진 개인을 포함한 일부 정부 직원을 보고했다.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인신매매 근절 노력 평가 결과. 초록색은 1등급, 노란색은 2등급, 빨간색은 3등급에 해당된다.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미 국무부의 권고

미 국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인신매매를 근절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주요 권고 조치로는, ▲경찰, 이민, 노동 및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피해자 식별 지침을 일관되게 사용 ▲성매매 종사자, 선원, 이주 노동자 등 취약 인구 중 피해자 사전 선별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응하는 처벌 ▲한국 국적 어선에 대한 강제 노동 조사, 기소 및 유죄 판결을 위한 노력 증진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처벌 중단 ▲인신매매범에게 자유형(징역 또는 금고)을 포함하는 적절한 처벌 선고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피해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사용하도록 법 집행 기관에 대한 교육을 제공 ▲경찰·출입국·노동·사회복지 공무원이 유형을 불문하고 인신매매 피해자 모두를 지원 서비스에 회부할 수 있는 정식 절차 수립·시행 ▲단속 공무원, 검사, 사법 공무원 및 사회 서비스 제공자를 교육하여 국제법에 규정된 인신매매에 대한 이해도 높임 ▲외국인 선원에 대한 보호 강화 및 시행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어선의 노동 실태를 점검하기 위한 보다 일관되고 효과적인 제도 개발 ▲인신매매 피해자, 특히 남성, 아동, 외국인 및 장애인 피해자에게 제공되는 전문 서비스의 품질 개선 ▲인신매매 법 집행 및 피해자 보호 자료를 수집하여 인신매매와 성매매 등 다른 범죄와 구별하는 체계 구축 ▲성매매를 단속하기 위한 기관 간 협력 강화 ▲(주로 외국인) 근로자에게 부과되는 채용 및 배치 수수료를 없애고 고용주가 모든 채용 수수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조치 등을 꼽았다.

 

◈한국 정부 "노력 약화 아냐", NGO "처벌 조항 만들어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교부는 한국의 인신매매 방지 등급이 하락한 것과 관련해 “보고서는 전년 대비 개선 여부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라며 “이번 결과가 한국의 인신매매 방지 노력이 약화했거나 관련 인권 상황이 악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또 “보고서상 사실관계에 벗어난 기술이 있으면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미국 측에 해당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 근거 자료를 제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고서의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노력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다. 모두 알지만 저마다의 사유로 공론화하기 꺼리는 외국인과 내국인에 대한 강제노동, 성 착취 등 다양한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다. 공익법센터 어필  등 시민사회는 우리나라 각계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 실태에 대한 경종을 끊임없이 울려왔다. 

공익법센터 어필 정신영 변호사는 이번 2등급 강등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매년 대응을 잘하고 있다가 지난해 뭔가 크게 잘못을 해서 2등급을 떨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해마다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가 매년 되풀이 되는 상황을 끊어낼 근원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가 지적한 근본적 원인은 인신매매 범죄자가 처벌받지 않는 법조항의 허점이다. 2023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인신매매방지법은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정작 인신매매법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정 변호사는 "인신매매방지법을 개정해 인신매매범을 처벌할 수 있도록 바꾸고 정부가 인신매매 피해자를 식별하고 통계를 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에서, 어촌에서 일손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이다. 조선소, 건설현장 등 육체 노동이 동반되는 작업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은 값싼 노동력을 끌어다 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수급에 애를 태운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년들은 농촌, 어촌, 조선소, 건설현장을 외면한다. 애쓰는 것에 비해 받는 돈이 적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경제 구조가 돌아가기 위해선 값싼 노동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온갖 탈법적인 요소들이 횡행한다. 농촌에 일하러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난방이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 재우고, 어선을 타는 외국인들은 통장과 여권을 사용주가 압수한다. 도시 사람들은 싼값에 농수산물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눈을 감는다. 사실상 우리 모두(어쩌면 대부분)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의 공범인 셈이다.

바로잡을 건 바로잡고, 지불할 것은 지불하자. 누군가의 땀과 눈물을 헐값에 빨아먹는 것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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