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폐기능 30%, 마지 못해 살아 간다"

  • 기자명 이채리 기자
  • 기사승인 2022.08.18 13: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들의 토론회가 지난 13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번 토론회는 피해자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의 공정한 권리회복과 통일된 목소리를 위해 개최됐다. 뉴스톱이 토론회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났다. 

가습기살균제참사 사망자에 대한 묵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참사 사망자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 뉴스톱 

◈ 폐 기능 30%도 안돼..."마지 못해 살아간다"

가습기살균제 중증 피해자 A씨는 산소통에 연결된 비위관(흔히 레빈튜브나 엘튜브 혹은 콧줄이라 불린다)을 코에 꽂은 채 토론회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말을 하면 숨이 차오르고 기침이 나오는 탓에 말없이 토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모 기업 상담원으로 일하며 5년 동안 가습기를 코앞에서 쐬었다. 사무실 내 비치된 가습기는 건조하지 않은 여름을 제외하고 늘 틀어져 있었다. 직업 특성상 목을 자주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가습기 바로 앞이 A씨 자리였다.

폐 기능이 30%도 남지 않은 A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어떤 것도 쉽게 할 수 없다. A씨는 "혼자 일어나서 씻는 것조차 버겁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상대적으로 산소가 부족해 호흡은 더욱 힘겨웠다.

산소통에는 A씨 코에 꼽힌 산소 호스와 연결돼 있다.  ⓒ 이채리
A씨 코에 꼽힌 산소 호스가 산소통에 연결돼 있다.  ⓒ 뉴스톱

재정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A씨는 "모든 게 불편하지만 엄마로서 역할을 하지 못해 식구들한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병원에 있어야 한다"며 "애 아빠도 퇴직할 예정이고, 결국 자식한테 금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24시간 산소호흡기를 코에 꼽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려 해도 무거운 외출용 산소호흡기를 계속 들고 다닐 수 있는 여력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씨의 남편은 인터뷰 내내 A씨 옆에서 외출용 산소홉기가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코에 꼽힌 비위관(엘튜브)은 산소호흡기와 연결돼 있고, 남편은 아내의 모든 움직임과 동선을 함께 해야 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실외 활동은 더욱 어렵다. A씨는 "어느 곳을 가도 숨이 가빠 기침을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쫙 갈라진다"며 "병원을 가도 코로나 확진자로 인식돼(오해를 받아) 항상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A씨의 기침은 갈수록 심해졌고, 호흡은 가빠졌다. 기자는 인터뷰를 중단했다.

ㅇ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방에 외출용 산소통이 들어있다. ⓒ 뉴스톱

◈ 기업은 적반하장식 태도... 지쳐가는 피해자들

2015년 폐렴으로 입원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B씨를 만났다. B씨도 A씨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내내 가쁜 숨을 내쉬었다. B씨는 A사 제품을 구매했다. 가습기 통을 닦아도 되지 않을 만큼 살균 효과가 좋다고 느꼈고, 오랜 기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느끼게 되자 B씨는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원인은 가습기살균제였다. B씨는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환경부에 X-ray, 초음파 등 각종 증거들을 모아 제출했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구제 대책은 없었다. 오히려 가해 기업들은 조정금액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지난 1일 A사 관계자는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가짜 피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분들은 데미지가 제로예요. 정상인 거예요. 노출 확인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구두로요." 라고 말했다. 또한 "탑골공원 할아버지가 '우리 담뱃값이나 받자'하고 300만원 받으시는 거예요. 이거 알고 다 신청하면 어떻게 할 거 예요?"라고 말했다. 가해 기업의 적반하장식 태도는 폐 질환으로 평생을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겼다. 

B씨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사당에 가서 목소리를 내고, 여의도 환승센터 집회에서 피켓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진척도 없었다. 결국 B씨는 모든 행보를 멈췄다. 10년이 넘는 싸움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토론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토론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토론회
가습기살균제 피해 해결을 촉구하는 피켓들이 쌓여있다. ⓒ뉴스톱

◈ 피해자 단체 대표 "SK케미칼의 책임 과소평가 돼"

가습기살균제 간질성 폐질환 피해유족과 피해자 모임 김미란 대표는 토론회에서 "원료 제조 및 제품 판매에 관련한 SK케미칼의 책임이 과소평가 됐다"고 지적했다. SK케미칼에 1차적 책임이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의미다. 가해 기업들은 '종국성'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종국성이란 조정위 결정에 따른 보상을 끝으로 더이상 기업에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난 4월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는 피해 구제 조정안을 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원인이 밝혀진 지 11년 만이다. 등급 외 84살 이상 피해자는 최저 금액인 2500만원, 초고도 등급인 1살 피해자는 최대 금액인 5억3522만원을 받게 된다. 사망자 유족에 대한 지원금은 2억~4억원으로, 기존에 지급된 특별유족조위금, 구제급여조정금, 추가지원금 등은 모두 공제된다.

조정위의 최종안은 강제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무산된다. 하지만 피해구제 분담금 비중이 가장 높은 옥시와 애경은 보상액수가 많다는 이유로 조정안을 거부했다. 지난 4월 27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환경보건시민센터측은 조정이 무산되는 상황을 우려하며 조정위가 조속히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 참여한 단체는 조정위는 해체돼야 하고 조정안은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토론회 도중 조정안의 문제점이 언급됐다. 조정위를 두고 "피해자들과 공식적인 소통 과정이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어서 "피해자 실태를 살펴보면 호흡기질환을 동반한 전신질환 사례가 많다. 하지만 전신 질환 판정 기준 및 건강등급평가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전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생존 피해자들이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개별 전신 질환들을 아우르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피해자 판정 등급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또한 피해자들은 "사망자 및 피해자의 노출 당시 시점, 질환 발생 시점에서 피해액을 소급해 이에 상응하는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ㅣ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항의 피켓을 들고 서있다. ⓒ뉴스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한시적 기구로 9월 10일 조사 활동을 종료한다. 사참위 관계자는 지난 17일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조사 활동을 통해 밝혀낸 내용이나 대안은 매년 국회에 보고하게 돼 있고, 이행 권고안은 9월 10일에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사참위 종료를 두고 "국가가 만들어놓은 기관에서 피해자들에게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냐"며 비판했다. 오는 8월 25일 SK케미칼, 애경, 이마트에 대한 항소심이 재개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