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국수도 빵도 만들고" 대통령이 내놓은 쌀값 정책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8.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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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 사과’로 주목받은 그날 윤석열 대통령은 쌀값 관련해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쌀 가공식품이 개발하고 판매가 돼야 쌀값도 좀 안정되지… 국수도 만들고 빵도 좀 만들고…” 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정부는 쌀값 안정 대책으로 쌀 가공식품 생산 및 소비 확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농촌에선 다음달 햅쌀 본격 출하를 앞두고 쌀값이 하락해 애를 태우고 있다. 뉴스톱이 쌀값에 관한 팩트체크를 준비했다.

출처: YTN 돌발영상 캡처
출처: YTN 돌발영상 캡처

①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데 쌀값만 폭락.. 사실

지난달부터 많은 언론이 쌀값 폭락에 대해 보도했다. 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 데 쌀값만 폭락하고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통계청의 ‘산지쌀값조사’ 통계로 확인한 결과 지난 5일 기준 쌀(정곡) 20kg 가격은 4만3093원으로 2018년 5월(4만3066원)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을 기록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로 검색한 쌀 소매가격(20kg 상품 기준)도 8월 4만9640원으로 2018년 9월(4만9465원) 이후 가장 낮았다.

2018년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98.979를 기록하고 있었다. 2020년 물가를 100으로 놓고 비교하는 방식이다. 2022년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다. 이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0% 가까이 높아졌다. 같은 기간 쌀값은 0.06% 올랐다. 다른 물가는 다 오르고 있는데 쌀값은 지난해 여름 한창 시세가 좋을 때보다 20%나 내렸다.

출처: 산지쌀값조사, 통계청
출처: 산지쌀값조사, 통계청

②왜 쌀값 떨어졌나? 정책 실패+수요 감소

2020년 쌀 생산량(백미, 9분도 기준)은 350만6578톤으로 1968년(319만5335톤) 이후 가장 적었다.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최악의 흉년을 맞은 것이다.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쌀값은 상당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21년 햅쌀이 출하되면서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2021년 쌀 생산량이 388만톤으로 늘어나면서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농민단체들은 쌀값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1년 10월 정점을 찍은 쌀값은 매월 내렸고 이달까지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작금의 쌀값 폭락이 상당히 엄중하고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월 정부가 3차 시장격리를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8월 5일 기준 1.9%가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7월부터 내내 가격이 하락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하다. 수확기에도 하락세가 이어질 수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농민단체는 정부의 쌀값 조절 정책 실패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는다. 수요를 초과하는 물량을 정부가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근원적 원인은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공급량이 수요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출처: 농업전망 2022, 한국농촌경제연구원

③ 쌀로 빵과 국수 만들면 가격 안정?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쌀로 빵과 국수를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면 쌀값이 안정될까?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월8일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가공성이 좋은 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신품종 벼의 보급을 늘려 윤석열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밀가루 수요의 10%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 수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분질미란 쌀알 전체에서 전분 알갱이가 성글게 배열돼 가공성이 좋은 신품종 쌀을 가리킨다. 일반 멥쌀은 전분 알갱이가 빽빽하게 들어있어 가공성이 좋지 않다. 멥쌀은 물에 불려서 분쇄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비용이 늘어난다.

정부는 밥쌀용 쌀 20만톤 규모를 가공용 쌀로 대체하면 쌀 수급을 안정시켜 가격 급등락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2021년도 쌀 생산량은 388만톤이고, 추정 수요량은 361만톤 정도다. 쌀 생산량 20만톤을 밥쌀용이 아닌 가공용으로 전환하면 수요와 공급의 괴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밀가루를 대체해 식량 자급율도 높이고, 밀가루 수입도 줄일 수 있다.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윤석열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으로 임명된 정황근 장관의 ‘야심작’이라고 볼 수 있다. 쌀가루 활용 정책은 정황근 장관이 2016년 농촌진흥청장 시절부터 주창했다. 과거 농촌진흥청장 시절 경험을 토대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되면서 윤석열정부 주요 농업정책이 됐다.

출처: 농촌진흥청 보도자료. 2019.8.28
출처: 농촌진흥청 보도자료. 2019.8.28

④관건은 시장의 선택

쌀가루 정책은 정부의 그림대로 실현된다면 만성적인 쌀 공급 과잉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제는 정부가 바라는대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쌀로 만든 빵과 국수가 소비자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전에 식품 기업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지금도 시중에는 쌀로 만든 국수와 빵 등 쌀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쌀로 만든 빵과 국수가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킬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 경쟁력과 가공성이다. 쌀로 빵을 만들려면 쌀을 불려서 가루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공정(습식제분)이 쌀가루의 가격을 높인다. 그러나 정부는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미2 등 가공용 쌀 품종이 해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품종은 물에 불리는 과정이 없는 건식 제분이 가능해 쌀가루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밀가루에 비해 2~3배 높은 가격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우리 쌀과 수입 밀의 가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공용 쌀로 빵과 국수를 만들었을 때 밀가루로 만든 것과 같은 맛을 낼 수 있냐는 문제도 있다. 농식품부는 “식품업계에서는 케이크, 카스텔라, 제과·과자류 등 비발효빵류, 밀가루 함량이 낮은 어묵, 소시지 등은 분질 쌀가루 전용 품목으로서 가능성이 있고, 소면‧우동면 등 면류, 식빵 등 발효빵류, 튀김가루 등 분말류, 만두피 등은 분질 쌀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하여 제조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밀가루 빵에 익숙한 소비자의 입맛을 가로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농촌진흥청은 제과제빵 업체들과 함께 가공용 신품종인 가루미2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밀가루 빵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생소하다는 평을 내린다. 정부가 쌀가루 전용 품목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 ‘쌀 카스텔라’를 먹어 본 소비자들은 “건조하고 뻑뻑하게 느껴진다”고 답변했다. 대체적으로 퍽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현재도 국수는 샘표 등 식품기업에서 ‘쌀 소면’ 등의 제품을 시판하고 있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이 사용하는 원료는 수입쌀이다. 가격차이 때문이다. 우리쌀로 만든 국수는 밀가루 소면과 비교해 조리법도 다르고 식감도 다르다. 우리쌀을 많이 먹어야겠다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소비자를 제외하면 낯설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쌀로 빵과 국수를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라”고 지시해도 시장이 선택하지 않으면 허사다. 정부는 가공용쌀과 쌀가루 1톤을 식품∙제분업체에 제공해 제분 특성과 품목별 가공 특성을 평가해달라고 요구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가공용 쌀을 받기는 했는데 워낙 적은 물량이라 기초적인 연구부터 시작할 계획”이라며 “당장 제품화를 이야기하기는 너무나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물량을 100톤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26년까지 가공용쌀 생산 규모를 20만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2022년(475톤 예상)의 421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4년만에 421배 생산량이 늘어날텐데, 식품기업들은 아직 어디에 써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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