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은 희생자 실명보도? 유족이 허락했다

  • 기자명 김정은 기자
  • 기사승인 2022.11.1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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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간한 시민언론 <민들레>와 유튜브 기반 <더탐사>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유족과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국민의힘은 민들레가 명단을 발표한 당일 “자유의 영역이 아닌 폭력이고 유족의 권리마저 빼앗은 무도한 행태”라며 논평했습니다. 유족의 동의하에 실명공개를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안호영 수석대변인도 14일 “유가족의 동의 없이 명단들이 공개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민들레는 희생자 실명 공개 이유에 대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데 호명할 이름조차 없이 단지 ‘158’이라는 숫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추모 대상이 완전치 추상화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를 근거로 댔습니다. 외신은 희생자 사진을 공개하며 사연을 실명으로 보도했다는 겁니다. 

'외신이 희생자 실명을 공개했으니 우리도 공개한다’는 민들레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을까요. <뉴스톱>은 CNN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과 영국의 언론사를 중심으로, 이들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 외신의 희생자 실명 공개…’유족 취재’ 바탕으로 이뤄져

워싱턴포스트의 '이태원 참사' 보도(10/31). 참사 희생자들의 실명과 사진 등을 공개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민들레가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며 언급한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기사(위 사진 참고)는 참사 희생자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희생자 8명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기억하는 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희생자들의 숫자가 아닌 그들의 삶에 주목한 점이 눈에 띈다”고 평가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인 희생자 스티븐 블레시(Steven Blesi)의 아버지를 인터뷰한 내용(아래 사진 참고)을 기사에 실었습니다. 기사에는 “스티븐 블레시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아들은 모험에 가득 찬 아이었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희생자 '스티븐 블레시'의 아버지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모험에 가득찼던 아이"라고 말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미국 뉴스 채널 CNN도 ‘스티븐 블레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그가 찍은 사진과 함께 한국에 온 계기를 기사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친구들과 가족이 블레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도 공개됐습니다. CNN은 그의 친구들을 독점 인터뷰했다고 기사에 명시(아래 사진 참고)했습니다.

CNN은 참사 희생자의 가장 친한 친구를 인터뷰했다고 기사에 밝혔다. 출처: CNN

CNN은 블레시 아버지가 참사 직전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민들레가 유가족 동의 없이 희생자 실명을 공개한 것과 달리, 워싱턴포스트와 CNN 모두 ‘유족 동의’를 바탕으로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CNN은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를 기사에 인용했다. 희생자 'Blesi'의 아버지는 참사 직전,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출처: CNN

외신이 희생자 이름과 사진을 기사에 공개한 것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반면 민들레는 유가족에게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희생자 이름 공개 당시 민들레는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지만 양해를 구한게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습니다. 동의를 구하기 위해 민들레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현재 유가족의 항의에 직면한 민들레는 요청자에 한해 희생자 이름을 익명처리하고 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4일 민들레의 명단 공개를 비판하는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민언련은 “언론이 유족 동의를 거치지 않고 희생자 명단을 공표한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그 명분이 무엇이든 사회적 애도는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4일 <민들레>의 유가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공개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출처: 민변

민변도 민들레의 공개 행위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변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정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보호의 원칙에 따라 희생자들의 명단이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희생자 유가족들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강조했습니다.

 

◈ 보도윤리, 국가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본질’은 같아

민들레의 보도윤리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희생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한국기자협회와 신문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재난보도준칙>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재난보도준칙 중 해당 항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2장 취재와 보도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제19조(신상공개 주의)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민들레의 희생자 실명공개는 '최대한 신중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고, '피해자 가족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실명공개가 오히려 선정적으로 인식되어 반발과 불쾌감을 유발한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다른 언론의 보도 선정성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참사 사진과 영상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빠르게 퍼져 2차 가해를 유발하고 있다"며 "이를 보도하고 확산시킨 주범은 언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윤리를 둘러싸고 많은 비판이 일자, 우리 언론은 2차 가해와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방지하고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고 현장 영상과 사진을 보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KBS 보도본부는 참사 이틀 후인 31일, “이태원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사고 당시 상황을 직접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엄격하게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해외 언론은 참사 현장과 피해자 사진을 참사 당일 그대로 보도했고 지금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CNN은 시민을 구조하는 119소방대원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 모포로 덮여 있는 희생자의 모습을 기사에 실었습니다. 대부분 AFP와 로이터(REUTERS) 등 통신사의 사진을 인용(아래 사진 참고)했습니다. 

CNN은 이태원 참사 현장을 담은 통신사의 사진을 기사에 실었다. 출처: CNN

영국 공영방송 BBC도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과 사진을 여과 없이 공개(아래 사진 참고)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좁은 골목을 개인이 촬영한 영상을 보도(아래 사진 참고)하거나, 희생자의 죽음에 슬퍼하는 유족의 모습을 기사에 넣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의 얼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일, 좁은 골목의 상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출처: BBC NEWS

영국의 신문사 <더 가디언(The Guardian)>과 독일의 공영방송 <ZDF>의 보도를 살펴보면, 위에서 설명한 보도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에 있던 시민의 얼굴을 노출했고, 참사 당일의 긴박한 순간을 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했습니다.

독일 공영방송 <ZDF>는 슬퍼하는 유가족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공개했다. 출처: ZDF

<외국의 재난보도 기준 및 보도사례(2014)>에 따르면, 외국 통신사들도 재난재해보도에 대한 기본적인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설립한 다트 센터(DART Center for journalism and trauma)피로 얼룩진 이미지와 같이 지나치게 과도한 표현이나 기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사진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또는 일반 독자나 수용자에게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결국 국가마다 참사를 취재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더라도, ‘과도한 참사 설명과 이미지는 지양하는 것이 공통적으로 윤리 강령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참사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필요하고 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국내외 언론의 '이태원 참사' 현장 보도가 적절했는지, 어느 선까지 보도해야하는지 토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들레가 언급한 것처럼, 외신은 희생자의 실명과 사진을 기사에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외신은 민들레와 달리 유가족의 동의를 바탕으로 희생자들의 생애에 주목했습니다. 또 외신은 우리나라 언론보다 참사 현장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외신이 현장 사진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고 해서, 우리 언론이 이들의 보도 양상을 따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과 영국 등 각국 언론사마다 재난보도준칙이 존재하고, 공통적으로 과도한 기사와 이미지 사용은 자제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추모와 애도를 위해 희생자 개인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나아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유가족이 느낄 트라우마를 방지하고 이들의 의사를 고려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가족들의 허락을 전제한 외신의 보도행위와 다르게, 유가족 허락없이 실명을 공개한 민들레의 보도는 재난보도준칙을 위반한 것이기도 합니다.

 

뉴스톱은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우울감, 트라우마 등의 심리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24시간) ☎ 1577-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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