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용품 모양·명칭 어린이 식품 허가한 식약처
한동안 펀슈머 열풍이 불면서 이마를 칠 정도로 특이한 식품들이 많이 출시됐습니다. 밀가루 회사와 맥주 회사가 협업한 밀가루 브랜드의 맥주를 비롯해 구두약 브랜드의 흑맥주 등 성인대상 상품은 지금까지 시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풍은 어린이 대상 식품으로 이어졌고, 딱풀 모양 캔디, 구두약 모양 초콜릿 등 학용품 모양의 식품이 출시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분별력이 부족한 어린이 등 취약계층이 식품이 아닌 것을 식품으로 오인해 잘못 섭취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국회는 관련 법률을 개정했고 정부는 시행규칙까지 개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어린이들의 혼동을 불러일으킬만한 제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습니다. 뉴스톱이 검증해봤습니다.
◈여전히 팔리는 연필 초콜릿
인터넷 쇼핑몰 쿠팡에서 ‘연필 초콜릿’을 검색하면 색연필 모양의 ‘ㅇㅇㅇ 연필 초콜릿’이 검색됩니다. 영락없는 색연필 모양입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것이라 제품 포장에 써 있는 글씨만 보고는 이게 진짜 색연필인지 초콜릿인지 알 수 없습니다.
11번가, G마켓 등 다른 오픈마켓에서도 ‘연필 초콜릿’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고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않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별력이 떨어지는 미취학 아동이 연필 모양 초콜릿을 맛있게 먹고는 진짜 연필을 초콜릿으로 오인해 먹을 가능성이 문제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의 2018년 보도자료를 살펴봅니다. <식품·장난감 모양의 제품으로 인한 어린이 안전사고 주의>라는 제목입니다. 소비자원은 “어린이가 식품 또는 장난감으로 오인하여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제품들이 시중에 다수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의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유럽연합 등에서는 식품 또는 장난감을 모방한 제품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힙니다.
◈학용품 모양 식품 표시·광고는 위법
우리나라에선 학용품 모양의 식품을 판매해도 괜찮은 걸까요? 2021년 7월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식품 등을 생활용품 등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를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법 8조 ①항 9호는 “총리령으로 정하는 식품 등이 아닌 물품의 상호, 상표 또는 용기ㆍ포장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해당 물품으로 오인ㆍ혼동할 수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했습니다.
후속조치로 식약처는 2021년 10월 법에서 언급하는 총리령인 시행규칙을 개정했습니다. 화학제품안전법 상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과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시행규칙이 정하는 학용품이 금지 대상입니다. 식약처는 이런 내용을 강조하는 보도자료(윗 그림 참조)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법규상으로 ‘연필 초콜릿’은 학용품 포장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해 해당 물품으로 오인∙혼동할 수 있는 표시 또는 광고’에 해당되는 게 명확해 보입니다.
◈법 따로 현실 따로
뉴스톱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연필 초콜릿’의 위법성에 대해 질의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광주수입식품검사소는 “관련 규정은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과 학용품의 상호, 상표 또는 용기·포장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해당 물품으로 오인·혼동할 수 있는 표시 광고를 금지하는 것으로, 식품의 형태를 규제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므로 'ㅇㅇㅇ 연필 초콜릿' 제품이 해당 규정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우리 소에서는 해당 제품에 대한 수입신고를 수리하였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식품표시광고법과 시행규칙은 표시∙광고를 금지하는 것이지 식품의 형태를 규제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는 게 식약처의 유권해석입니다.
좀 이상합니다.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연필 초콜릿’이라는 표시를 하고 판매하고 있고, 연필 모양의 제품 이미지컷을 사용해 판촉을 벌이고 있음에도 ‘식품의 형태를 규제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문제없다고 본 겁니다.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이유를 살펴봅니다. “최근 식품과 관련 없는 상표나 포장이 식품과 결합한 펀슈머(Funsumer)식품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음. 그런데 이들 펀슈머 식품 중에서는 구두약을 비롯한 생활화학제품과 포장이 유사한 식품이 유통ㆍ판매되어 어린이, 노인 등 취약계층이 실제 생활용품을 식품으로 오인하여 섭취하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총리령으로 정하는 물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 또는 광고 행위를 금지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는 것임”이라고 밝힙니다.
'생활화학제품과 포장이 유사한' 것이 문제라는 점이 명확합니다. 누가봐도 색연필처럼 포장하고 '연필 초콜릿'이라는 이름으로 표시해 팔고 있는 제품이 법률 위반 소지가 없다는 판단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납니다.
법조문과 개정이유 등을 따져봤을 때 학용품인 연필로 오인할 수 있는 모양의 초콜릿을 판매하면서 해당 이미지 컷을 사용하고 ‘연필 초콜릿’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행위는 식품표시광고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대로 뒀다가 '연필 초콜릿' 맛을 기억하는 어린이가 연필을 먹고 탈이 난다면 식약처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식약처의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