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이 병원 '오픈런' 불렀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1.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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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콧물을 훌쩍거려서 동네 소아청소년과에 갔다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많아지고 소아청소년과를 지망하는 전공의들이 없어 대란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소아청소년과 대기인원이 많아서 평일에도 '오픈런', 즉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뛰어가야 한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기줄은 소아과 기피현상의 영향일까요? 뉴스톱이 분석해봤습니다.

출처: 서울신문
출처: 서울신문

 

◈5년간 662곳 줄어든 소아청소년과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최근 5년간 소아과 662개, 산부인과 275개 사라져”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송 의원은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통계와 함께 “2022년 2분기 현재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5명으로 매우 낮지만 출산과 보육여건마저 지역적 편차가 크다”며 “출산과 보육취약지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도자료는 ‘히트’했는데요, 최근까지 여러 언론들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진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은 지난 11일자 <“평일에도 ‘오픈런’해야”… 소아과 진료 대란 우려 커진다> 기사를 통해 “병원 크기나 지역에 따라 대기인원은 달랐지만, 소아과 진료를 위해 1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최근 5년간 662곳의 소아과가 사라지면서 살아남은 병원으로 환자가 몰린 영향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MBC PD수첩도 17일 <필수 의료분야 전공의 부족과 소아청소년과의 위기>라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동네 소아과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만 662곳”이라고 보도합니다.

출처: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출처: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전공의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은 사실

전공의는 인턴과정을 이수한 사람(가정의학과의 경우에는 의사면허를 받은 사람) 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이와 동등하다고 인정한 사람으로서 일정기간 수련병원 또는 수련기관에 전속되어 전문과목 중 1과목을 전공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수련하는 의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2019년 80%로 감소한 지원율은 2020년 74%, 2021년 38%로 떨어졌고, 2022년에는 27.5%까지 떨어졌습니다. 2023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에는 199명 모집에 33명이 지원했습니다. 16.6%입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필요한 전공의 100명 가운데 16명만 충원됐다는 뜻이죠.

장기적으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줄어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가 중병에 걸려 상급종합병원을 찾아가도 치료해 줄 의사가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거죠. 단기적으로는 전공의가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야간당직, 검사실부터 업무가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교수진들이 야간당직에 투입되기 시작하고, 결국엔 주간 외래진료에도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인천의 가천대 길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진료인력이 부족해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출처: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
출처: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

 

◈정말 5년간 662곳 줄었나? 

송 의원의 보도자료를 다시 살펴봅니다. “개원과 폐업을 합친 총 개수는 같은 기관 소아과의 경우 3308개에서 3247개로 61개가 감소했고, 산부인과는 개원도 늘어 2051개에서 2144개로 93개가 늘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송 의원이 산정한 기간인 2017년~2022년 8월까지 소아청소년과는 61개가 순감, 산부인과는 93개가 순증한 겁니다. 5년간 662개 감소는 폐업만 계산하고 개업은 제외한 것이어서 정확한 수치가 아닙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원, 병원,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우리나라 모든 소아청소년과 진료 의료기관 현황을 물었습니다. 심평원은 "2018년 연말 기준 3293곳이었던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은 2022년말 3263곳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5년 동안 30곳 정도 줄어들었네요. 

진료과목별 동네 의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강보험통계’의 ‘시군구별 표시과목별 의원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09년 1/4분기 기준 전국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2119곳이었습니다. 지난해 3/4분기에는 2129곳이었습니다.

 

제작: 뉴스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국 소아청소년과 의원 현황. 제작: 뉴스톱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부터 따져봅니다.(위 그림 참조) 2020년 1/4분기에는 2212곳이었다가 지난해 1/4분기 2014곳으로 저점을 찍고 3/4분기에는 2129곳을 기록합니다. 2020년 초에 비하면 83곳 줄어든 겁니다.

시도별로 2020년 이후 소아청소년과 의원 증감을 살펴봅니다. 서울(494→454), 인천(147→141), 경기(686→663) 지역에서 감소세가 나타났습니다. 부산(133→136), 충북(51→55), 충남(62→66), 제주(32→34)는 오히려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늘어났습니다. 장기간으로 보면 감소세가 맞지만 최근 1년을 보면 소아청소년과가 약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오픈런'은 감기, 독감, 코로나 삼중유행 때문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이 동네 의원 감축으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아청소년과가 일부 문을 닫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감소세가 뚜렷한 수도권의 경우에도 감소율은 10% 이내입니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 ‘오픈 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기엔 근거가 부족합니다.

출처: 질병관리청
출처: 질병관리청

그럼 원인은 뭘까요? 감기, 독감, 코로나19가 특정 지역에서 한꺼번에 유행하기 때문에 환자가 몰렸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질병관리청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에 따르면 1~6세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인플루엔자 의사환자 수/총 진료환자수Ⅹ1000)은 2022년 49주차엔 13.2에 그쳤지만 53주차엔 67.1로 급증했습니다. 7~12세 연령층은 같은 기간 29.0에서 154.6으로, 13~18세는 58.1에서 133.7로 늘었습니다. 코로나19 확진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12월 19세 이하 확진자 규모가 전월에 비해 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새해 들어 확산세가 느려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향후 독감과 감기 유행 규모에 따라 소아청소년과 ‘오픈 런’ 지속여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상급종합병원에 소아청소년과를 돌봐줄 의료진이 부족해 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부족은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감소지역, 특히 아이가 많지 않은 지역일수록 심해질 겁니다. 더 방치되면 수도권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요.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의료 대응 여력으로도 코로나19, 독감, 감기가 한꺼번에 몰려들면 '오픈 런'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분야 의료진이 줄어들면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책임은 현재의 어른들, 특히나 정치하는 분들과 정책을 만지는 고위공무원들에게 있습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인천 옹진, 경기 가평, 연천, 강원 고성, 양구, 양양, 영월, 인제, 정선, 철원, 평창, 화천, 충북 괴산, 단양, 보은, 영동, 충남 예산, 청양, 태안, 전북 고창, 무주, 순창, 임실, 장수, 진안, 전남 강진, 고흥, 곡성, 구례, 담양, 보성, 신안, 영광, 영암, 완도, 장성, 장흥, 진도, 함평, 해남, 경북 고령, 군위, 봉화, 성주, 영덕, 영양, 울릉, 울진, 의성, 청도, 청송, 경남 고성, 남해, 산청, 의령, 하동, 함안, 합천

이상 58곳의 기초자치단체는 2022년 3/4분기 현재 지역 내에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돈 얼마 줄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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