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와 트럼프, 선동정치의 '데자뷰'

  • 기자명 박상현
  • 기사승인 2019.02.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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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부대 자유한국당 입당의 '데자뷰'

지난 15일 MBC 뉴스데스크는 소위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극우세력이 자유한국당에 조직적으로 입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당 밖에서 박근혜 전대통령을 옹호하는 세력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수 만 명씩 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뉴스를 들으면서 2015~2016년의 미국 공화당이 떠오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상황은 놀라울 만큼 당시의 공화당을 닮아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 기존의 당원이나 지지자들과는 조금 다른, 그러나 훨씬 더 우익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2) 특정 후보를 배타적으로 지지하면서 당내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TV에 등장한 자유한국당의 합동연설회장에서는 극우성향의 지지자들이 김진태 의원의 이름만을 연호하면서 다른 후보의 연설을 방해하고 조롱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2016년 당시 트럼프 지지자들이 공화당 내 다른 후보의 지지자들과 다른 점이 바로 상대방 후보를 조롱하면서 공화당이 평소에 지켜온 당내의 규율이나 에티켓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트럼프 지지자들의 그런 행동은 트럼프라는 후보 자신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통틀어 모든 워싱턴의 기성정치인을 조롱하는 기행을 보였던 탓이 크다. 하지만 바로 그런 행동이 평소 공화당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당으로 몰아왔기 때문에 공화당도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다. 흥행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넓은 의미의 트럼프 지지세력은 2008년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등장한 티파티(Tea Party) 운동부터 천천히 공화당을 장악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 정치적으로 특별한 어젠다가 없던 트럼프(그는 기업인 시절 민주당 정치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며 후원금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는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기존 공화당의 어젠다에 관심이 없던 이들을 끌어안은 것에 가깝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대표 후보가 2월 18일 열린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진보 대통령에 반대하는 세력의 규합

지난 몇 년 사이에 “트럼프의 당”으로 전락한 공화당에 비추어 현재 한국의 자유한국당이 걱정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 핵심이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부정하는 막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김진태라는 정치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평소 보수적인 경제관 등의 어젠다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이라는 점이다. 

티파티 운동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공통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인종문제’다. 겉으로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지만, 그 밑에는 진보적인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깔려있는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료보험을 확대하는 소위 ‘오바마 케어’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면서도 단지 오바마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오바마 케어를 반대하는 이들을 인터뷰한 Vox의 취재는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김진태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특정 보수 어젠다를 중심으로 뭉친 집단이라기 보다는 '박근혜를 끌어내린 자리에 들어선 진보적인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런 그들이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같은 당의 다른 후보들의 연설을 방해할 만큼 전에 없는 기행을 하는 것은 2016년 미국 대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기시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김진태 의원은 트럼프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비록 “춘천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기는 했어도 트럼프 만큼의 지지세력도, 파괴력도 없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2016년 초만 해도 트럼프가 정말로 당선되리라고 믿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당시 한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 이란계 남성 하나가 전화를 해서 이런 말을 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라는 황당한 인물이 2005년 이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이란 국민들은 아무도 그가 정말로 당선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당신들이 트럼프에 대해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니, 안심하지 말라.”

몇 달 후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은 물론이다.

2016년 7월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열린 전당대회에 참여했다.

주류 정당의 통제력 상실

하지만 가장 큰 우려는 김진태 의원이라는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초래할지 모르는 자유한국당의 당내 문제다. 한국당은 비록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당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보수를 대표하는 제1야당이다. 그 당이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을 5.18을 부정하는 극우단체가 방해하고, 김진태 의원을 비롯한 일부 후보들이 그들의 난동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당원들이 가장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 두 명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21세기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20세기처럼 쿠데타나 타국의 침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 절차대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전형적인 선동가인 트럼프를 공화당이라는 주류 정당이 내부적인 절차로 막아내지 못하고 후보로 내세운 것이 가장 충격적인 변화였다고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9세기, 20세기에도 트럼프처럼 민주주의를 우습게 생각하는 선동가들이 꾸준히 등장했고, 대략 30퍼센트 안팎의 지지율을 얻어내곤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주류 정당이 그들이 대선주자로 떠오르는 것을 막아냈기 때문인데, 한 편으로는 2016년의 미국 공화당은 반 오바마 표를 끌어오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한 편으로는 당내에 들어온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통제력을 상실하고 트럼프의 당으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그건 미국이니까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도 그건 다른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박상현 팩트체커는 미디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의 콘텐츠랩장이다. 통찰력 있는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에 워싱턴 업데이트를 연재하고 있으며 서울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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