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물리학자, 머신러닝으로 '변'을 분석하다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9.05.2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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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의대 영상의학과 소속 박승민 박사.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3일 스탠퍼드대 캠퍼스 영상의학과 ‘복합 분자 영상 연구실’을 찾았다. 수석과학자(Senior Research Scientist) 직함을 갖고 있는 그의 연구실 책상 옆에는 변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카메라를 비롯해 각종 센서가 달린 범상치 않은 변기는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스마트 변기(smart toilet)’다. 인간이 매일 사용하는 변기에서 대소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달라지는 건강 상태와 질병 위험을 감지해내는 게 2016년 이후 그가 매달려온 프로젝트다(아쉽지만 변기 사진은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 글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지난 13일 스탠퍼드 캠퍼스에 있는 연구실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스탠퍼드 의대 영상의학과 박승민 박사. 촬영: 황장석

변기 연구를 하는 박 박사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1997년 서울대 자연대에 입학한 그는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코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과정에선 응용물리 분야 미세유체(Microfluidics)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의 전공 분야와 변기는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제가 응용물리 분야의 미세유체를 전공했는데요. 스마트 변기에서 대소변 분석하는데 미세유체학이 관련이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제품 중에 미세유체를 이용한 제품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임신진단키트입니다. 미세한 통로로 유체를 흘려주는 걸 이용한 제품이죠. 임신진단키트를 보면 소변이 묻으면 쭉 빨려올라가 퍼지면서 키트 색이 변하잖아요. 그게 미세유체를 이용한 겁니다. 이게 스마트 변기에도 적용됩니다.”

 

미세유체학이란 뭔지 좀 더 알아보고자 코넬 공대 웹사이트를 찾아봤다. 박 박사가 학위를 받은 응용-엔지니어링물리학과(Applied and Engineering Physics)는 코넬 공대 소속이다.

“미세유체학은 엔지니어링, 물리학, 화학, 생화학, 나노테크놀러지, 바이오테크놀러지를 포함하는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아주 작은 단위 유체(fluids)의 움직임, 통제, 조작에 초점을 맞춘다.”

 

프로젝트 베이스라인: 4년간 1만명 생활습관 추적

박 박사의 변기 개발과 연구는 크게 보면 ‘프로젝트 베이스라인(Project Baseline)’의 일부다.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은 4년 동안 미국인 1만명의 생활 습관을 추적관찰해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을 좀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축적하는 프로젝트다. 스탠퍼드 의대 영상의학과장이며 박 박사가 속한 연구실 책임자를 맡고 있는 샌지브 갬비어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엔 알파벳(구글의 모기업)의 생명공학 자회사인 베릴리(Verily), 듀크 의대가 참여하고 있다. 취지는 인간의 질병이 어떤 경로로 발생하는지, 왜 건강한 사람이 특정한 질병에 걸리게 되는지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베이스라인(토대)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미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하는 이 원대한 프로젝트에서 스탠퍼드 의대 영상의학과가 주도하고 있는 연구 가운데 스마트 변기가 있다. 생활 습관을 추적관찰하는데 필요한 장비로 개발하는 것 중 하나다. 스마트 변기를 통해 사용자의 대소변 상태를 매일매일 모니터링해서 뭔가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한국인에게 많은 것 중 하나가 과민성대장증후군(IBS)이에요. 갑자기 설사를 하거나 변비를 하는 것이죠. 이런 경우 변을 볼 때마다 모양과 상태를 기록하는 ‘변 일기(stool diary)’를 써야합니다. 사실 개인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자기 변을 보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란 거죠. 또 계속해서 기록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쉽지도 않고요. 스마트 변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죠.”

 

그의 스마트 변기 개발엔 고등학생의 기여도 있었다. 현재 변기에 설치돼 있는 소변 분석 장치는 ‘디에고’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이 아이디어 제안부터 설치까지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스탠퍼드 입학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만큼 경쟁률이 치열한 스탠퍼드 의대 여름방학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이었다.

 

“1형 당뇨를 앓고 있어서 인슐린 주사를 제때 맞지 않거나 하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친구였어요. 프로젝트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고요.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아파서 며칠 입원하고도 다시 나와서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가 없었어요. 스마트 변기엔 그 친구 공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공부하고 있죠.”

 

특정 상품을 상상하는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스마트 변기 이미지. 스탠퍼드의 스마트 변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출처: ideaing shop smarter

 

머신러닝으로 변을 분석하다

그는 이번 연구를 하며 머신러닝 기술의 도움도 받았다. 2017년 1월 스탠퍼드 전기공학과에서 피부 사진만 찍으면 점인지 피부암인지 의사만큼 정확히 알려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는데 그 알고리즘을 적용한 것이다. 참고로 피부암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최신 통계인 2012년의 경우 환자는 330만명, 발병 건수는 540만건. 조기 검진으로 치료하면 5년 생존율이 97% 가량이지만 말기에 발견하면 14%로 급락한다고 한다.

 

“2017년 1월 그 논문이 네이처에 실렸죠. 논문을 쓴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우리도 (변 분석에) 그걸 쓸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그래서 (그런 알고리즘을) 스마트 변기에 접목했죠.”

 

그 과정에서 2017년 스탠퍼드 의대에 방문교수로 와 있던 당시 가톨릭 의대 원대연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그분이 대장항문 전문이에요. 대변 소변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많으셨고 매우 적극적인 분이었습니다.”

 

혈변 분석도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이건 대장암 검진과 관련이 있다.

 

“변에 피가 섞여 있는 것도 탐지하려고 합니다. 대장암으로 인해 나온 피를 확인하는 것이죠. 그런 피는 저희가 생각하는 색깔의 피가 아니에요. 대장암으로 인해 나온 피는 대장에 다시 흡수가 되는데 그러면 색이 까많게 됩니다. 변 색깔인지 피 색깔인지 알기 쉽지 않아요. 그걸 분석하는 기술도 특허를 신청해 놓은 상황이죠.”

 

정밀건강(Precision Health)과 스마트 변기

그는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한인 생명과학자들의 모임인 KOLIS에서 자신의 변기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KOLIS는 UC 버클리, UC 데이비스, UCSF(UC 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대 등 4개 학교를 중심으로 생명과학 관련 포스닥, 대학원생, 연구원들이 결성한 학술단체. 현재 3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발표에서 마이클 베이 감독,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2005년 영화 <아일랜드> 첫 장면을 보여줬다. 주인공 이완 맥그리거(링컨 식스-에코 역)가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었다. 무슨 의미였을까.

 

“영화 첫 부분을 보면 이완 맥그리거가 잠에서 깨거든요. 손목에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wearable)이 달려 있어요. 그 웨어러블이 잠 상태를 분석해요. 네가 잠을 잘못 잤으니 어느 센터에 가서 보고를 해라. 그러면 센터에서 처방을 해줘요. 사실 영화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그리고 있죠. 그런데 저희는 의료계의 유토피아가 그런 식으로 될 거라고 예상해요.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서 분석하고 그에 따라 건강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죠.”

 

영화 <아일랜드>에서 스마트 헬스기기를 이용해 건강을 체크하는 장면.

 

그는 ‘프리시전 헬스(precision health)’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이 개념이 자신의 연구를 포함해 갬비어 교수가 주도하는 전체 연구를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유전적 요인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생활습관까지 상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그 같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최적화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을 의미했다.

 

그는 2018년 2월 갬비어 교수 등 4명이 공저자로 사이언스 의학분야 저널인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한 'Toward achieving precision health'라는 논문을 언급했다. 논문엔 인간의 건강관리를 제트엔진 모니터링에 비유한 부분이 나온다. 비행기 제트엔진의 경우 수백개의 감시센서를 달아 엔진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해 제트엔진 회사에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해서 엔진고장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건강도 마치 제트엔진처럼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춰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조기에 치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리시전 헬스는 건강한 상태 관리 같은 겁니다. 예방이나 검진 쪽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그걸 위해 건강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스마트 변기 같은 장치도 필요한 것이죠.”

 

이런 흐름이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Big Brother)’처럼 인간을 감시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전단계가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자칫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전체 편집으로 원하는 아이를 낳는 ‘또 다른 우생학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다.

 

박 박사는 인터뷰 과정에서 영화 <아일랜드>의 사례를 들며 이런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제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부문에 있어선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습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서 사전에 질병을 예방하고, 이미 발생한 질병은 조기에 치료하는 시스템이 최선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2012년 11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의 유언 캘러웨이(Ewen Callaway) 기자는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 인간 질병에 미치는 영향(exposome)’을 연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며 “선한 빅 브라더(benevolent Big Brother)”라는 표현을 썼다. 해당 프로젝트는 수천명의 피실험자에게 센서가 달린 스마트폰을 나눠주고 일상생활에서 그들이 접하는 화학물질을 모니터링해 건강 상태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캘러웨이 기자는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걸 ‘자애롭고, 착한 감시자’에 빗댄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스마트 변기를 연구하는 박 박사에게 프리시전 헬스란 선한 빅 브라더 같은 개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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