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무례한 한국기자단에 트럼프가 '격노’했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7.07.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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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소동을 부린 한국 언론을 꾸짖었다. 
-뉴욕포스트 6월 30일 기사

 

NBC 뉴스 화면 캡처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기자들의 취재 경쟁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옆 탁자 위 램프가 넘어질 뻔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사소한 해프닝이었지만, 이를 두고 한미 양국에서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이중 한국인에게 주목받은 것은 'Trump scold Korean media for wreaking havoc in Oval Office'란 제목의 뉴욕포스트 기사였다.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동을 벌인 한국기자들을 꾸짖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이후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상회담을 취재했던 기자들에 대한 비판글이 줄을 이었다. 한국 언론 역시 이 기사를 인용해 트럼프가 한국 기자들을 꾸짖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트럼프가 한국기자를 꾸짖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한국기자들의 과열 경쟁이 빚어낸 '국제적 망신'인지 <뉴스톱>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팩트체크 했다.

우선 당시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자. 

NBC 뉴스를 보면, 백악관 집무실에 다수의 취재진이 몰리면서 탁자가 밀렸고 이 때문에 탁자 위에 있던 램프가 흔들리자 경호원이 황급하게 램프를 붙잡는 장면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분, 진정해 (easy! Fellas, hey fellas, fellas, easy! fellas easy)”라고 여러 차례 말하며 혼란을 수습하려 애썼다. 

이어 “너희 기자들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 (You guys are getting worse)”라며 취재 기자단을 가볍게 비판했다. 

이어서 “매우 우호적인 기자단이다. 신경 쓰지 마라. 탁자 하나를 잃었지만...(It's actually a very friendly press. Don't let that get you, Although we just lost a table)”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농담을 건넸다. 동영상을 보면 어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기자를 꾸짖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트럼프 발언은 미국 기자단을 지칭

맥락을 고려할 때 "It's actually a very friendly press"라는 발언에서 'It'은 한국 기자단이 아니라 미국 기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에게 농담하는 과정에서 평소 미국기자들이 우호적이기 때문에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영상을 보면 한국기자들이 소동을 일으킨 장면은 잡히지 않는다. 

미국 비영리 케이블 채널 CSPAN이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장면을 보자.

영상에선 미국과 한국 기자단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가벼운 밀치기도 보인다. 취재 현장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자국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앵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정상회담을 취재하는 기자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촬영기자는 일반적으로 정면을 선호하다. 그 자리는 암묵적으로 지상파 방송과 중앙 일간지 등 인지도가 높은 특정 언론이 차지한다. 한국 기자단 일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부 미국 기자들의 불만이 있었고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언론과 오랜기간 갈등

트럼프의 발언은 그동안 트럼프와 언론의 갈등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알려졌다시피 트럼프는 자신을 비판하는 특정 언론에 대한 불신을 공공연하게 피력해왔으며 뉴욕타임스, CNN 등을 가짜뉴스의 진원지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에는 프로레슬링 경기장에서 CNN 로고를 쓴 사람을 구타하는 유머 영상이 트럼프 트위터 계정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백악관의 발언은 미국 언론과 갈등을 빚던 트럼프가 언론에 의해 작은 소동이 벌어지자 미국 언론을 꾸짖은 것으로 해석하는게 자연스럽다. 

 

미국 언론의 기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한다. 미국 언론의 기사는 당연히 미국에 우호적인 관점으로 쓰인다. 뉴욕포스트는 앞선 기사에서 "한국 언론의 대규모 파견 때문에 기자 회견단의 규모는 평소보다 컸고, 백악관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찾아 다녀 현장이 혼란스러워졌다”고 보도하며 혼란의 원인을 한국언론에서 찾았다. 

또,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 기자 스티브 허만도 “한국 기자단의 규모가 이례적으로 컸고, 한국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지나치게 경쟁하면서 이 같은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런 지적은 전형적인 미국 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혼란의 원인 제공은 한국 언론이며, 미국 언론은 잘못이 없다는 주장이다. 

뉴욕포스트는 대표적인 황색저널리즘 언론

게다가 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이 해프닝에 대해 "트럼프 언론을 꾸짖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표적 방송인 ABC뉴스도 같은 맥락으로 보도했다. 백악관 취재에 익숙하지 않은 외신 기자들이 많았다고 밝히면서 룸이 평소보다 훨씬 붐볐다고만 전했다. 

반면 "트럼프가 한국언론을 꾸짖었다"고 보도한 곳은 뉴욕포스트를 제외하곤 거의 찾기 힘들다. 그럼 뉴욕포스트는 어떤 언론일까. 뉴욕포스트는 1801년 세워져 200년이 넘은 언론사지만, 현재는 가십거리를 주로 다루는 뉴욕 지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다.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뉴욕포스트는 트럼프를 공개지지한 바 있다.

뉴욕포스트는 그동안 선정적인 기사를 게재해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12월 3일에 발생한 뉴욕 지하철 사고다. 뉴욕포스트는 지하철에 치이기 직전 사람의 사진을 1면 전체에 넣어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사진 속 인물은 한국인이어서 당시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줬다.

2012년 12월 3일 뉴욕포스트 1면

또, 뉴욕포스트는 2015년 3월 29일 신문에서 화재현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사진을 1면 전체에 실었다. 초상권 침해 문제가 심각했지만 이를 도외시한 것이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Dakota Kim이라는 기자가 쓴 2016년 5월 26일 기사에는 한국인 네일샵 종업원이 손님들을 향해 어떤 '뒷담화'를 하는지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 종업원들이 손님들을 비아냥거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네일업 종사자 및 한인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엉터리 번역기사 올려

이처럼 뉴욕포스트는 선정적 보도로 유명하며 신뢰하기 어려운 언론이지만,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이를 근거로 한국 기자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MLB파크) (오늘의유머) (인벤) (보배드림) 심지어 일부 게시물은 뉴욕포스트 기사를 엉터리로 번역하기도 했다.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뉴욕포스트 기사 번역문. 핵심적인 부분이 엉터리로 번역되어 있다.

 

윗 글 마지막 문단의 "don't let them get you"를 "그들이 당신을 해치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번역해놨다. 하지만 이 문장은 '신경쓰지 마세요'라는 의미다. 영어 사전에는 '특정 인물이나 사물에 실망하지 말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주 친화적인 언론이네요"라는 트럼프의 발언 역시 미국 언론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이 번역에서는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해석했다.

한국 언론 "소동 일으킨 적 없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되자 한국 언론들은 이를 반박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 기사는 당시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들어갔던 한국 기자단은 총 11명에 불과했으며, 일부의 지적처럼 대규모 파견으로 보기 힘들다는 내용을 담았다. 동아일보 기사 역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한국언론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도했다. SBS 기사는 스탠드가 있는 탁자가 흔들린 것은 다른 외국기자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한 이들 기사에는 네티즌들의 비판 댓글이 가득하다. 뉴욕의 '황색언론'의 보도는 믿어도 한국 언론은 믿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미 한국 언론은 '기레기'로 낙인 찍혀있어 어떤 보도를 해도 변명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찾기 위한 한국 언론의 자성과 함께 언론윤리의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뉴스톱의 판단

대체로 거짓

트럼프가 한국 기자단을 특정해 꾸짖었다는 보도는 뉴욕포스트를 제외하고 찾을 수 없다. 취재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고 이를 트럼프가 지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오히려 미국 언론을 향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뉴욕포스트의 기사와 일부 네티즌의 지적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대체로 거짓'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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