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뿐 아니라 치아변색ㆍ과체중도 '질병'이다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6.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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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이루어진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11차 개정에서 ‘게임 사용 장애’가 공식적인 질병 분류에 포함되면서, 관련 논의가 뜨겁습니다. 국내에서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게임 사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게임업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정부 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태를 ‘질병’으로 보냐는 것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ICD의 게임 사용 장애 등재를 계기로, 뉴스톱에서 질병의 정의를 짚어봤습니다.

 

질병 정의를 둘러싼 논쟁

질병(disease)이란 뭘까요? 언뜻 생각하면 무척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정의를 내리려면 쉽지가 않습니다. 특정한 어딘가가 아픈 상태를 말하는 것도 같고,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질병이라고 칭하는 포괄적인 정의를 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보건의료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부어즈(Christopher Boorse) 교수와 같은 사람은 질병을 ‘생물학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생리학적 정의를 내세운데 반해,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일련의 보건학자들은 더 포괄적인 정의를 위해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질병’이라 규정했거든요.

 

크리스토퍼 부어즈

쉬운 예시 하나로 둘을 비교해보겠습니다. 감기는 질병일까요? 생리학적 관점에서 감기는 당연히 질병입니다. 콧물이나 기침과 같은 증상을 유발해 인체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을 방해하니까요. 물론 WHO의 정의를 따라도 감기는 당연히 질병입니다. 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기는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니, 당연히 질병이 되는 겁니다. 이런 감염성 질환은 어느 쪽이건 질병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조금 더 어려운 것을 다뤄보겠습니다. 치아가 누렇게 변하는 치아 변색은 질병일까요? 치아의 색은 치아가 수행하는 생물학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보기가 흉할 뿐이지 치아가 제대로 기능하긴 하므로 생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를 질병이라고 보기가 힘듭니다. 반면에 WHO의 관점으로는 치아 변색도 질병이라 볼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기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우리는 누렇게 변색된 치아로 인해 정신적 안녕에 부정적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치아변색은 국제표준질병분류기준에도 버젓이 질병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감기 같은 기초적 질환은 물론이고, 치아변색과 같은 세세한 질병도 포괄할 수 있으니 협소한 생리학적 질병 정의보단 WHO의 정의가 가장 적절한 것일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건강’의 정의

앞서 WHO에서는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정의한다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은 ‘신체적으로 안녕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으로 안녕하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안녕하지 못한 상태’라고 역으로 정의될 수도 있겠죠. 이런 정의는 포괄적으로 다양한 상태를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질병 정의의 기준이 되는 ‘안녕(well-being)’ 개념이 자의적이고 유동적이라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런 논쟁의 중심에 선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입니다.

 

ADHD는 일반적으로 어린 아동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남자아이는 ‘과잉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여자아이는 ‘부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복합적인 질병입니다. 그런데 ADHD 증상이 있는 아동들은 생물학적으로 ‘집중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는 아닙니다. 단지 또래의 평균보다 조금 낮을 뿐이죠. 과거에는 이런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지속적으로 올라가면서 이 정도의 집중력 뒤쳐짐도 정신적으로 안녕하지 못한 상태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업적 성취의 중요성이 커진 결과죠.

 

이번 WHO의 국제표준질병분류기준에 ‘게임 사용 장애’가 들어간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게임 사용 장애(Gaming disorder)에 대한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 행위의 패턴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게임 사용 장애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WHO의 질병 정의에서는 ‘사회적 안녕’을 해친다는 점에서 질병이 된다는 것이죠. 굳이 게임만을 콕 집어 박해한다고 하기엔, 카페인 섭취 장애나 성적 행위 중독 같은 것들도 동일하게 질병 코드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질병에 대한 정의가 너무 유동적이고 넓은 탓입니다.

 

 

질병 분류보단,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문제

이처럼 WHO의 질병분류는 최대한 많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정되고 있어 원론적으로는 반감을 살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가령 앞서 언급했던 치아변색의 경우도, 일단 질병으로 분류가 되면 관련 정의에 따라 각국 보건의료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치아 미백이 공식적인 의료행위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게이머들이 강력하게 반발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사회에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비만’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WHO에서는 과체중(overweight)도 질병으로 분류를 해 질병코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WHO가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한 목적 자체는 분명합니다. 과체중이 발생하면 신체적 안녕을 해칠 수 있는 당뇨나 고지혈증 같은 질병의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본인 스스로의 정신적 안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이를 질병으로 등록하여 보건의료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비만은 사회적인 차별도 같이 받습니다. 똑같은 질병이라도 안경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시력을 얘기하는 것과, 비만인 사람이 자신의 체중을 얘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게임 사용 장애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과는 별개로, 소위 ‘게임중독’이 질병이 되는 순간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게임을 ‘병 걸리게 하는 나쁜 행위’로 몰아가고 게이머를 ‘예비 중독자’라고 치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해서 치킨집 사장님이 비난을 받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게임은 그보다 훨씬 나쁜 상황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국내 논의는 ‘게임중독 진단 방법’과 ‘게임중독 치료 방법’에 머물러 있습니다.

 

단순히 게이머들이 투정을 부린다는 식의 인식을 넘어, 사회에서 차별적 인식을 받는 질병을 새로이 국내 질병분류에 등재하는 것을 더 신중히 처리할 수는 없는 걸까요? WHO에서 게임 사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취지를 살리면서도, 가뜩이나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는 게이머들에게 피해가 최소화되는 길이 모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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