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태블릿은 영국에서 정말 '폭발'했을까

  • 기자명 문기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6.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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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영국의 타블로이드 언론 데일리 메일을 인용, <英 소년 머리맡에 둔 삼성 태블릿서 발화…화재 직전 발견>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20일 영국 스태퍼드셔 번트우드의 한 가정집에서 충전 중이던 삼성 태블릿에 ‘불이 붙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인터넷 언론 인사이트 역시 26일 같은 소식을 전하며 <“침대맡에 두고 자던 ‘삼성 태블릿’이 충전 중 갑자기 폭발했습니다”> 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불에 탄 태블릿과 침대. 출처: 스태퍼드셔 소방안전청

 

서울신문과 인사이트의 보도 모두 피해 가족을 인터뷰한 데일리 메일의 25일자 기사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BBC를 포함 같은 소식을 전한 여러 언론사가 있었음에도 데일리 메일만을 인용해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스태퍼드셔 소방 당국에서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삼성 태블릿이 ‘또’ 화재를 일으킨 걸까? 당시 상황은 얼마나 심각했던 것일까? 국내 언론이 인용하지 않은 자료를 검토하여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1. 삼성 태블릿이 "폭발"했다?

→폭발한 적 없으며 기사본문에도 없는 내용

태블릿이 “갑자기 폭발했다"고 전한 인사이트의 기사 제목이 우선 눈길을 끈다. 삼성은 지난 2016년 갤럭시 노트 7 배터리 폭발 사고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전형적인 ‘낚시’ 헤드라인이다. 정작 인사이트 기사 본문 그 어디에도 태블릿이 폭발했다는 내용이 없다. 전체적인 기사 내용은 데일리메일을 인용한 서울신문과 대동소이하다.

스탠퍼드셔 소방당국 공식 자료에 따르면 태블릿은 다행스럽게도 큰 불로 이어지지 않고 밤새 그을음을 내는 데 그친 것 (fortunately for the family, it did not develop into a full fire but had smouldered throughout the night)으로 확인됐다. 

 

2. 태블릿이 “불이 붙기 직전” 발견되었다?

→불타기보다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발견 당시 태블릿은 소년의 머리맡에 놓인 상태에서 “타고 있었으며 방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뻔한 위급한 상황을 표현한 만큼 제목에서도 긴박함이 느껴지는 워딩을 택했다. 좀 더 상세한 정황은 데일리메일이 전하고 있다. 20일 아침 에이미 휴킨 (33)은 “침대에 태블릿이 붙은 것 같다 (tablet was stuck to the bed)"는 아들 칼럼 (11)의 말에 잠에서 깼다. 기사에 보도된 휴킨 부부의 말에 따르면 당시 칼럼의 방은 흰 연기로 가득 차(full of white smoke) 있었으며 태블릿이 놓여 있던 침대 머리맡에는 커다란 탄 자국 (big burn mark)이 있었다. 가족이 4년 전 구입한 태블릿은 불이 붙기 직전(minutes away from catching the fire)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아들 칼럼은 기적적으로 무사히 탈출(miraculously escaped uninjured)했지만 사건의 충격으로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데일리메일은 주장했다.

하지만 스태퍼드셔 소방당국은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도문에서 조금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20일 아침 리치필드 지역 소방서에 출동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 당시 태블릿이 놓여 있던 침대는 “불타고 있다기보다는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소방관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출동했다(the bedding smouldered rather than setting well alight however … [the firefighters] went to the house in Keepers Close, Burntwood, to discover what had happened)”고 밝혔다. 연기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도 찾을 수 없다. 소년이 잠에서 깼을 때 침대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방은 검은 그을음으로 덮여 있었다 (covered in a layer of black soot). “아슬아슬한 탈출(near escape)"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당국 역시 위험성을 인지한 것은 맞으나,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직전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음을 시사한 데일리메일과 서울신문의 논조와는 다소 온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3. "10분만 늦었어도 대형 화재로 번졌을 것"이다? 

→소방당국은 '10분'을 언급한 적 없다

서울신문은 데일리메일을 인용, “10분만 더 늦었더라면 치명적인 화재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소방당국의 말을 전했다. 데일리메일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휴킨 가족에게 해당 내용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피해 가족의 증언을 그대로 받아 적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확인 결과 소방당국의 배포자료에서는 해당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보도문은 사건 당시 출동했던 소방대원 브래드 로빈스 (Brad Robins)의 발언을 전하고 있다. 로빈스는 피해 가족이 몹시 충격을 받았음(has been greatly shocked)을 밝힌 뒤 불이 붙을 수 있는 물건 근처에 충전중인 전자기기를 놓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한 정품 충전기를 사용하고 올바른 사용법을 준수하는 등의 안전사항을 설명했다. 당시 상황의 위급함을 강조하기보다는 향후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BBC도 스태퍼드셔 소방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전했다. 보도문을 인용, 큰 화재로 번지지 않은 것이 행운이었다고 (“fortunate”) 썼다. ‘10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한 내용은 없었다.

이렇듯 같은 사건을 두고도 소스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신문이 언급했듯 해당 제품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피해 가족이 '정품 충전기(genuine charger)'를 사용했다는 소방당국의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삼성 측에 책임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상황이라면 공식 발표를 포함해 다양한 자료를 참조했어야 마땅하다. 서울신문이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인용하여 독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언론의 ‘외신 편식’을 다시금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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