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원내대표가 '신독재'란 단어를 쓴 이유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7.0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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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준일의 행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행간'은 매일 중요한 뉴스 중 하나를 선정해 그 배경을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의 키워드는 ‘신독재’였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아닌 정권의 절대권력 완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악용하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이코노미스트지가 말한 ‘신독재’ 현상과도 부합한다”고 말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3월 교섭단체 연설에서도 ‘독재’라는 말을 여덟 번 사용했지만 당시 ‘신독재’라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신독재’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지, 자유한국당과 나경원 원내대표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신독재 언급한 나경원 원내대표>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연합뉴스 유튜브 화면 캡처

1. '좌파독재’의 업그레이드

나 원내대표가 ‘신독재’란 말을 공식석상에서 처음 사용한 것은 지난 5월 17일 대전 서구에서 열린 정부 규탄대회였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좌파정부가 이제 독재의 길로 간다”며 “신독재라는 개념이 있다. 위기에 카리스마로 정권을 잡은 다음, 둘째로 적만 찾아다니다가, 셋째로 사법부, 언론, 검찰을 장악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선거법을 고치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시 신독재를 언급한 건 나흘 뒤인 5월 21일 원내대책회의였습니다.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 등 패스트트랙 안건이 독재로 가는 길의 마지막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자유한국당이 즐겨 쓰던 단어는 ‘좌파독재’였습니다. '좌파독재'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월 27일 황교안 신임 자유한국당 대표 취임 이후부터입니다. 원내외에서 끊임없이 좌파독재를 언급하면서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 지지율이 꽤 올랐습니다. 신독재라는 말을 5월부터 쓰긴 했지만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좌파독재라는 '레토릭'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좌파독재’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우파와 좌파를 나누는 말입니다. 현재 보수/우파라는 단어는 과거보다 훨씬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란 단어는 부패, 독직, 국정농단의 상징이 됐고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념성향 여론조사를 보면 2016년 12월 이후 한국사회는 진보 우위 사회가 됐고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수보다 10~15%포인트 높게 나옵니다. 지금 우파, 보수를 입에 올리는 집단은 태극기 부대 혹은 유튜브에서 연일 막말로 정부를 공격하는 사람들입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6월초 홍카레오에 출연해 좌파독재는 틀린 개념이라고 지적하며 독재는 우파가 많이 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이념투쟁에서 민생투쟁으로 노선을 살짝 선회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행보로는 중도확장성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신독재’란 단어는 문재인 정권이 독재정치에 가까운 일방적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이게 이념투쟁에 매몰되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효과를 줄 수 있는 단어입니다. 나 원내대표는 소위 ‘달X’발언 논란을 일으킨 뒤 5월 16일 한 보수 유튜브 방송에 나와 “비속어보다는 좌파독재란 말이 민주당 지지자들을 자극했다”고 자체 진단한 바 있습니다. 좌파독재란 단어를 덜 쓰겠단 얘기죠. 앞으로도 ‘좌파독재’라는 단어가 자유한국당 내에서 쓰이겠지만 ‘신독재’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리란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편 KBS는 문재인 정부가 신독재라는 주장은 사실상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 ‘김정은 대변인’ 학습효과

어제 나 원내대표 연설이 정부를 비판하는 수위는 지난 3월 국회 연설에 못하지 않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자극적인 단어를 피했다는 겁니다. 지난 3월에는 나 원내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해 여야간 몸싸움이 일어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서 자당 의원들과 박수까지 쳤습니다.

이른바 톤다운의 배경에는 자유한국당의 잇따른 설화, 말실수에 있습니다. 한때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올랐던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최근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TBS가 의뢰로 지난 1~3일 전국 유권자 1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대한 리얼미터 발표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7.4%를 기록해 4개월만에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황교안 대표 아들 스펙과 특혜채용 논란,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화 발언, 최근 엉덩이춤 논란까지 고루 영향을 끼쳤지만, 특정 언론인의 과격한 발언도 문제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차명진 전 의원의 세월호 유가족 폄훼발언, 한선교 의원의 기자들 폄훼발언, 그리고 나 원내대표의 문재인 지지자 폄훼발언까지. 정부여당의 실책이 있었는데 야당은 더 큰 헛발질, 그야말로 똥볼을 찼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월은 패스트트랙 충돌로 긴장감이 높아지던 정국이었다면 오늘은 장기간 공전 끝에 국회를 정상화시킨 직후라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야당입장에서도 어렵사리 국회에 복귀한만큼 원내에서 투쟁을 해야하는데 말실수로 공세의 주도권을 넘겨주면 안되는 입장입니다.

 

3. 예고된 총공세

나경원 원내대표 연설을 보면 7월 국회 자유한국당 방향이 보입니다. 주요 키워드는 ‘신독재’ 외에 ‘적폐몰이’ ‘패스트트랙 폭거’ ‘진정한 자유’ 등입니다. 적폐몰이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불만입니다. 8일부터 열리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자유한국당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지 보여주는 겁니다. 현재로서는 사개특위 위원장을 자유한국당이 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수처, 검경수사권조정 합의안도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9일부터 사흘간 대정부질문이 열릴 것입니다. 북한 목선 귀순 관련 안보 구멍과 은폐 의혹에 대한 강한 공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공세적 입장에 있는 야당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정국을 운영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오버하지 않고 조심하자는 기류가 나타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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