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양궁제조사 삼익스포츠 결국 망했다? 한국에는 윈앤윈이 있다

  • 기자명 우보형
  • 기사승인 2019.07.2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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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경기에 쓰이는 활은 모두 외국산이었다. 남자는 주로 미국 호이트의 활을, 여자는 일본 야마하의 활을 사용했다. 남자대표팀은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미국이 호이트 활 공급을 중단해 성능이 떨어지는 활을 들고 경기에 임했다. 결국 남자 단체전과 개인전 모두 미국에 금메달을 내줬다. 이에 대한민국 양궁협회는 이듬해부터 초등/중학교 외국산 활 사용을 금지시켰다. 국내 제조사가 이때부터 성장해 해외 업체에 뒤지지 않는 활을 만들어 냈고 현재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 꾸준히 올라오던 '호이트 활 공급 거부 사건' 게시물의 요약이다. 이 게시물은 큰 유명세를 끌진 않았어도 꾸준히 언급되던 게시물이다. 그러던 중 이 게시물이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과 맞물려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바로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받은 차별>이다. 그러자 지난 7월 19일, 한국일보는 <96년 올림픽 ‘양궁 사건’에 일본 경제 보복 해법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아마도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받은 차별> 게시물이 세간의 관심을 끌자 이를 기사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일보 기사는 “이 게시물은 본 누리꾼들은 "우리도 어려운 상황을 성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더 큰 고통도 있었는데, 이겨냈다. 우리의 질긴 국민성을 보여줄 때"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소개한다. 그리고는 “그렇다면 현재 삼익스포츠는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2015년 파산한 상태다.”라는 마지막 한 줄의 강렬한 충격 멘트로 마무리한다.

 

 

<사진1>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삼익 리커브 보를 사용한 한국 양궁 대표팀의 경기 모습.

 

삼익스포츠의 리커브 보(Recurve bow)는 한국일보 기사의 서술대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호이트 사의 리커브 보(양궁에 쓰는 활) 판매거부 사건으로 리커브 보 국산화가 시작되었던 것도, 그 결과 21세기 초반 삼익스포츠가 많은 각광을 받았던 것도,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한 때 잘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입증하듯 국내 언론에도 제법 많은 노출이 있었다. 간단하게 찾아봐도 <한국이 자랑하는 스포츠 용품 ①삼익스포츠 활> <삼익스포츠 양궁 베이징서 '으쓱'> <세계 최고수준 양궁제조 기술력 … 외국 대표선수들도 선호> <대한민국 활, 세계를 호령하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국일보 기사가 말한 대로 삼익스포츠는 안타깝게도 2015년 파산한 상태인 것도 사실이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던 세계 1위 업체인 미국의 호이트가 베이징 올림픽 이후 각국 선수들에게 포상금을 내걸고 물량 공세에 나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회사 규모에 비해 막대했던 제품 개발비 부담이 컸다. 선수용 양궁의 개발비는 개당 10억~20억 원에 이른다. 소재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특성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매출처였던 일본과의 거래도 2011년 대지진 이후 급격히 줄면서 결국 법정관리 수순을 밟았다는 게 한국일보 기사가 말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그렇게 삼익스포츠는 2015년에 파산했고, 여기까지는 한국일보 기사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기사의 진짜 문제이자 반전은 이 때 성장한 국내 양궁 메이커가 삼익스포츠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국내 양궁 메이커 ㈜윈앤윈이 있기 때문이다. 윈앤윈은 1980년대 중반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설립한 국내 메이커다, “호이트 활 공급 거부 사건”이 나올 시점에 호이트와 함께 경기용 리커브 보 시장을 양분하던 야마하가 리커브 보 시장에서 철수하려 하자 2002년에 이를 인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일본 등록 선수의 80~90% 정도가 한국 윈앤윈이 만든 활을 쓰게 만들었다.

<사진2> 2014년 아시안 게임 당시 일본과 준결승을 진행한 말레이시아 양궁선수가 윈앤윈 리커브 보를 들고 있다.

그런데도 항상 언론에선 삼익스포츠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SQ인터뷰] '한국 양궁의 최초 사나이' 박경래,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스포츠Q의 2014년 기사가 사실상 처음이 아니었나 싶고, <[가자! 스포츠 산업 강국] 토종 기술강소기업 윈앤윈·진글라이더, 양궁·패러글라이더 '세계제패'> 기사 정도가 있었을 뿐 그 이전에는 별다른 노출이 없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삼익스포츠가 2015년에 파산한 이후 2016년 리우 올림픽 시절부터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양궁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구본찬이 들었던 활이 윈앤윈의 하이엔드 브랜드 WIAWIS의 제품이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진3>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 개인 금메달리스트 구본찬의 개인전 결승 경기 캡쳐. 구본찬이 사용한 리커브 보의 날개에 윈앤윈의 하이엔드 제품 브랜드, WIAWIS의 로고가 보인다.

물론 여자 양궁에선 이전에도 꽤나 인지도가 있었던 야마하를 인수한 업체이므로 당연히 윈앤윈 제품을 사용했다. 아래 사진을 참조하라.

<사진4>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의 모습. 최미선 선수가 윈앤윈의 하이엔드 제품 브랜드, WIAWIS의 리커브 보를, 기보배는 윈앤윈의 리커브 보를 들고 있다.

 

이후 윈앤윈에 대한 본격적인 언론 노출이 사적되었다. 간단히 검색해본 것만으로도 <토종 양궁장비 업체 ‘윈앤윈’ 세계 시장 석권 비결>이란 제목의 서울 경제 기사, <최종병기 활, 막강 멘탈 빚어낸 ‘양궁의 나라’ 두 주역>이란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도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2016년 첫 번째 언론 노출이 <독보적인 글로벌 1위 양궁 윈앤윈> 이라는 제목의 한국일보 기사였다는 점이다.

한국일보의 <96년 올림픽 ‘양궁 사건’에 일본 경제 보복 해법 있다?> 기사가 왜 윈앤윈의 존재를 무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해당 기사는 기자가 새롭게 취재한 내용이 전혀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을 그대로 '복붙'한 뒤에 삼익스포츠가 파산했다는 내용만 한 줄 덧붙인 것이다. 자사 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도 한국업체인 윈앤윈이 삼익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기자의 게으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윈앤윈의 WIAWIS 리커브 보는 한국 국가대표선수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국가 대표선수 등,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 참가하는 각국 대표선수들 중에서 약 50%의 선수들이 사용하는 리커브 보다. 또한 리커브 보를 만들며 축적한 카본 기술을 바탕으로 컴파운드 보 보 시장에 진출을 시작했으며 WIAWIS는 경기용 하이엔드 리커브 보 브랜드로서만이 아니라 카본 바이크 브랜드로도 시장에 발을 들이민 상태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국내 메이커 윈앤윈이 탑 티어로 꼽히며 리커브 보 시장에서 입지를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해볼 때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국산화가 이번 일본발 경제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해볼 것이 많다. 하지만 결국 국산화를 한 '삼익스포츠는 파산했다'는 식으로 앞뒤 맥락없이 한줄로 마무리하는 것은 국산화와 장기 투자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필자도 무조건적인 국산화와 장기 기술 투자가 해법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윈앤윈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아니 선도해나가는 수준의 탑티어적 결과물을 내놓았다. '시간과 예산을 좀 더 주시면 세계에서도 통하는 것 만들지도 모른다'는 언론플레이를 해온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시점에선 국산화와 홀로서기의 성공 사례로 윈앤윈이 언급될만 하다. 언론은 좀더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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